기록으로 남겨둡니다 ('정치와 법' 행정소송 항소심)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55116473
2021수능 정치와 법 5번 문항에 대한 행정소송 항소심 첫 변론이 2월 23일에 열렸고, 1회로 구두변론은 종결되었습니다. 선고기일은 3월 30일 14:00로 지정되었습니다. 최종판결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만약 2심에서도 패소한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줄 만한 수준이 안 되는구나' 하고 저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문제제기했다는 기록은 명확히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 며칠 전 법원에 제출한 제 의견서도 오르비에 박제해둡니다. 의미있는 판결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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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견 서
사건번호 : 2021누50964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결정처분 취소
1. 본인 소개
저는 수능, 공직적격성평가(PSAT), 법학적성시험(LEET) 베스트셀러 수험서를 여럿 써온 이해황입니다. 논리적 사고는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턱 없는 기초 논리학’ 강의를 유튜브에 무료로 올리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정당 사상 최초의 자격시험인 ‘국민의힘 공직후보자 역량강화 평가’(PPAT) 과목 중 ‘자료해석 및 상황판단’을 맡아 강의하고 문제를 출제하기도 했습니다.
본 사건과 관련하여 억울함을 주장하는 원고 수험생들의 절박한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고, 사비를 털어 이 소송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2. 복수정답 논란에 대하여
이 사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이 소송이 진행되기 전에 이미 [나무위키 -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7.6. 사회탐구 영역 정치와 법 5번 복수정답 논란]에 기록되었을 만큼, 당시 수험생 사이에서 제법 논란이 됐던 사안입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굵은 글자는 원문서를 따름.)
7.6. 사회탐구 영역 정치와 법 5번 복수정답 논란
사회탐구 영역 정치와 법 5번 문항 역시 정답으로 발표된 4번과 더불어 3번 선지 역시 복수 정답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문제의 조건에는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 중 하나이다."[25]라 적혀있고, 3번 선지에는 갑국과 을국 모두 "예"라고 답할 질문으로 "국민이 선거를 통해 행정부 수반을 직접 선출하는가?"가 들어갈 수 있다고 진술되어 있다. 평가원은 갑국이 대통령제이면 을국이 의원 내각제이고, 갑국이 의원 내각제이면 을국이 대통령제가 되므로 갑국과 을국 중 하나는 대통령제의 특성에만 해당하는 선지 3번의 질문[26]에 "아니오"라고 답해야 하므로 3번은 틀린 선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건의 각각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갑국과 을국 모두 대통령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의가 제기되었다. "각각"은 "물건 하나하나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표현 의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즉 평가원의 표현 의도가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 중 서로 다른 하나이다."였다면 문제 오류가 아니게 되는 것.
하지만 평가원은 이미 "각각"이라는 단어에 중복의 의미를 내포한 적이 있다. 수능이 치러지기 불과 3개월 전에 시행된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물리학 I 5번 문제에는 "A, B, C는 각각 도체와 반도체 중 하나이다."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 있으며 당시 물질 A와 C는 도체, 물질 B는 반도체로 A와 C에서 중복이 발생했었다. 즉 평가원은 기존 9월 모의평가에서 사용되었던 "각각"과 대수능에서 사용한 "각각"의 의미를 달리 했다는 말이 되고 이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_출처: https://namu.wiki/w/2021학년도%20대학수학능력시험
3. 두 가지 풀이방법
이 사건 문제는 중의적 문장 ”a와 b는 각각 X와 Y 중 하나이다“(이하 abXY문장)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답이 둘로 나뉩니다.
배타적 해석: a, b가 X, Y와 1:1대응되는 경우만 허용됨
포괄적 해석: a, b가 X, Y와 1:1대응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a, b가 모두 X인 경우와 모두 Y인 경우, 즉 2:1대응도 허용함
이 사건 문제에서는 “갑국과 을국의 정부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이 abXY문장입니다.
이미 여러 전문가분들, 특히 정치학자 OOO 교수님과 논리학자 OOO 교수님이 ③이 정답이 되고 오히려 ④가 오답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저는 수험서 저자 및 강사로서 abXY문장 해석에 따라 풀이방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자세히 보인 후, 이에 대한 의견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3.1. 풀이방법1. 배타적 해석(피고측 주장)
정답 ④번 해설
a. (나)에 ‘의회 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존재하는가?’가 들어가면, “갑국: 예, 을국: 예”라는 답변에 의해 갑국과 을국 모두 의회 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갑국에서는 행정부 수반의 소속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아니므로, 갑국은 의원 내각제일 수 없습니다. 이때 abXY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든 배타적으로 해석하든 상관없이, 갑국은 대통령제입니다.
b. 그런데 abXY문장을 배타적으로 해석하면, a로부터 을국이 의원내각제임이 한 번 더 추론됩니다.
c. 전형적인 대통령제 갑국은 행정부 수반은 법률안 거부권을 가지며, 의원 내각제 을국은 그렇지 않으므로 ④는 옳은 설명입니다.
오답 ③번 해설
a. (나)에 ‘국민이 선거를 통해 행정부 수반을 직접 선출하는가?’가 들어가면, “갑국: 예, 을국: 예”라는 답변에 의해 갑국과 을국은 모두 대통령제입니다.
b. 그런데 abXY문장을 배타적으로 해석하면, 갑국과 을국이 모두 대통령제일 수 없습니다.
c. 이처럼 모순이 발생하므로 (나)에 ‘국민이 선거를 통해 행정부 수반을 직접 선출하는가?’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③은 틀린 설명입니다.
3.2. 풀이방법2. 포괄적 해석(원고측 주장)
정답 ③번 해설
a. (나)에 ‘국민이 선거를 통해 행정부 수반을 직접 선출하는가?’가 들어가면, “갑국: 예, 을국: 예”라는 답변에 의해 갑국과 을국은 모두 대통령제입니다.
b. abXY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시, 갑국과 을국이 모두 대통령제일 수 있습니다.
c. 이처럼 (나)에 ‘국민이 선거를 통해 행정부 수반을 직접 선출하는가?’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③은 옳은 설명입니다.
오답 ④번 해설
a. (나)에 ‘의회 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존재하는가?’가 들어가면, “갑국: 예, 을국: 예”라는 답변에 의해 갑국과 을국 모두 의회 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갑국에서는 행정부 수반의 소속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아니므로, 갑국은 의원 내각제일 수 없습니다. 이때 abXY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든 배타적으로 해석하든 상관없이, 갑국은 대통령제입니다.
b. 그런데 abXY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a로부터 을국이 의원내각제임이 추론되지 않습니다.
c. 따라서 ④의 “갑국의 행정부 수반은 법률안 거부권을 가진다”는 옳지만, ‘을국과 달리’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④는 문항으로부터 추론되지 않는 정보를 단정했으므로 틀린 설명입니다.
4. 두 풀이방법에 대한 의견
4.1. 풀이방법1(배타적 해석)에 대한 의견
제가 출제자였다면 “갑국과 을국의 정부형태는 서로 다르며,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라고 다섯 글자를 추가하여, 애초에 포괄적 해석이 불가능하게 문제를 구성했을 것 같습니다. 혹은 포괄적으로 해석하든 배타적으로 해석하든 상관없이, ③이 오답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답항 ③의 내용을 다르게 썼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행정소송은 물론이고 아무런 논란도 없이 지나갔을 겁니다.
피고는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두 국가의 정부형태가 다름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무척 떨어진다고 판단합니다. 대부분 원고측 항소이유서에 잘 논증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항소이유서에 빠져있는 ‘비교’라는 단어에 대해서만 추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피고는 항소심 준비서면(2022. 2. 16.) 4쪽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출제기관이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식의 저주란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추측하여 발생하는 인식적 편견을 가리킵니다.
출제자와 달리, 수험생들은 ‘갑국과 을국의 비교’가 ‘갑국과 을국의 정부형태 간 비교’[대분류]인지, ‘갑국과 을국의 정부형태 내 비교’[소분류]인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수능시험을 충실히 준비한 수험생일수록, 수능 2개월 전에 피고가 출제한 아래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정치와 법’ 18번(갑 제222호증)을 충분히 분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정부형태인 갑국(대통령제)과 병국(대통령제)을 비교하는 답항 ④, 또한 같은 정부형태인 을국(의원내각제)과 정국(의원내각제)을 비교하는 답항 ⑤를 충실히 분석한 학생들일수록, 수능 시험장에서 이 사건 문제를 접했을 때 두 국가의 정부형태가 같은 경우의 비교 또한 염두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사건 문제는 수능시험을 충실하게 준비한 수험생들에게 오히려 더 혼동을 초래하게 되므로, 일방적으로 출제기관의 자의적 의도만을 좇아 배타적 해석에 근거한 이 사건 처분은 부당합니다.
4.1. 풀이방법2(포괄적 해석)에 대한 의견
국어학적으로 abXY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은 이미 국어교사(갑 제9호증), 국문학박사(갑 제10호증), 국어학박사(갑 제11호증)을 통해 충분히 제시되었으므로 더 언급하지 않습니다.
저는 수험적으로 피고가 출제한 두 문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ㄱ. A, B, C는 각각 도체와 반도체 중 하나이다. 에너지띠의 색칠된 부분까지 전자가 채워져 있다.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물리I 5번)
ㄴ. (가)와 (나)의 결정 구조는 각각 단순 입방 구조, 체심 입방 구조, 면심 입방 구조 중 하나이다. (2018학년도 6월 모의평가 화학II 13번)
ㄱ은 abcXY문장, ㄴ은 abXYZ문장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 앞대상과 뒷대상의 개수가 맞지 않기 때문에 배타적 해석을 전제로 한 1:1대응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 문장들은 배타적 해석이 불가능하고 포괄적 해석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abcXY문장이나 abXYZ문장의 특수한 꼴이 abXY문장이라고 본다면, 당연히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상식적으로도 “1심과 2심의 재판결과는 각각 승소와 패소 중 하나이다”로부터 1심과 2심의 재판결과가 서로 다르다를 추론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수험생들이 포괄적 해석을 바탕으로 풀이방법2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오히려 풀이방법1보다 더 논리적·합리적인 풀이방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호종 철학박사님이 지적했듯(갑 제32호증), “배타적 해석은 단순한 해석이지만 포괄적 해석이 교육과정 내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간 깊이 있는 해석입니다. 문제를 더 깊이있게 해석한 수험생이 오히려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라는 의견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대분류대통령제, 의원내각제)뿐만 아니라 소분류(여대야소-여소야대, 독립내각-연립내각)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풀이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문항의 논리적 결함은 명확합니다. 1심 재판부도 변론 종결시 일단 국어학적으로는 출제의도 등을 차치하고 오류가 분명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들었습니다. 결국 판결의 관건은 수능이 어떤 시험이냐, 어떤 시험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답변일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2022수능 생명과학II 출제오류를 인정한 최근 판결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처분이 유지될 경우 향후 수능시험에서는,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과학의 기본 원칙상 성립할 수 없는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그러한 오류가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이 사건 문제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정답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는 수험생들에게 향후 수능시험에서 피고가 의도하였을 특정 풀이방법을 따라야만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게 될 수 있고, 이로써 수능시험을 준비함에 있어 기초적 개념과 원리에 근거하여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합리적인 풀이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특정 문제유형의 특정한 풀이방법 또는 출제자가 의도할 만한 정답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우려도 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추리·분석·종합·평가 등의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수능시험의 목표 및 출제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_서울행정법원 2021. 12. 15. 선고 2021구합86979 2022대학수학능력시험정답결정처분취소
재판부에서 위와 같은 수능의 목적 및 출제원칙에 동의하신다면, 포괄적 해석에 근거하여 풀이방법2을 택한 수험생들을 구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보다 논리적이고 엄밀하게 생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원고를 비롯하여 추후 이 사건 문제를 배우게 될 수험생들은 논리성·합리성을 따지기보다는 그저 윗사람들,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는 사람으로 사회에 배출되고 말 것입니다. 이는 원고 승소로 인한 잠시의 혼란보다도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일입니다.
2022. 2. 22.
이해황 (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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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 조금만 생각을 더 해보려 하거나 꼼꼼하게 보려는 학생들은 당연히 제한조건이 없으니 두 국의 정부형태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완전히 논리적 어폐인거 같아요. 이번 생명과학 2 소송도 꼼꼼히 조건을 체크하는 학생들 손을 들어준 만큼, 좋은 결과 있을거에요! 너무너무 응원합니다
처음 기출문제를 풀때 저렇게 접근해서 답이 안나와 헤맸던 경험이 있네요..ㅠ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며 응원하겠습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응원하겠습니다
근데 선생님한테는 정말 죄송하지만 정법 공부 좀 해본 학생으로써 저렇게 풀면 답이 이상한건 사실이라 어쩔 수 없는거 같습니다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봐주시겠어요?
이거 최종판결 나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