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ri [2] · MS 2002 · 쪽지

2017-06-25 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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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와 지방대의 학점 (2)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12384603

그저께 올린 글 ( https://orbi.kr/00012364801 ) 은 학력 블라인드 제도로 인해 대학 간 격차가 이슈가 되던 와중에, 양 극단을 실제로 체험해 본 국내의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그 격차에 대해 제가 느낀 바를 진술하기 위해 썼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 댓글들을 읽어 보니, 불편한 주제를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는데 괜히 나섰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된 이상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 몇몇 글들을 읽고, 또 제 글에 달렸던 댓글들을 모두 다 읽고 제 글을 옹호하는 분들과 반대하는 분들 사이에 왜 그렇게 온도차이가 났고 인신공격이 난무했던 것일까 곰곰 생각을 해보고 자료도 찾아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제가 알게 된 점들과 제 분석들을 이렇게 새로운 글로 공유해 봅니다.


이전 글에서 저는 시종일관 “2점대 학점”이나 “학점 2.0”에 대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고, 그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너무 심한 비유”, “2점대 학점은 공부를 포기했다고 봐야 맞는 것”이라는 반응을 했습니다. 이 부분이 논란의 핵심이자 근원이니 그것에 집중하겠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한 것인지 그 이유들 중에서 제가 발견한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1. 서울대 의학과에서는 48.6% 2점대 이하 평점을 받았습니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대학알리미 ( academyinfo.go.kr ) 사이트에 게시된 사실을 확인하니 그랬습니다. 2014년 1학기의 전공과목 등급 도수분포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값들은 제가 기억하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서울대학교 의학과 2014년 1학기 전공과목 등급 도수분포


등급 - 평점 - 도수 - 백분율 순서

A + 4.31038.1
A04.01209.4
A-3.71148.9
B + 3.316813.2
B03.015111.8
B-2.716412.9
C + 2.315111.8
C02.015111.8
C-1.7866.7
D + 1.3221.7
D01.0151.2
D-0.720.2
F0292.3



2014년 1학기 자료를 인용한 이유는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지난 3년 간의 자료가 시계열 순으로 게시되어 있는데, 그 중 첫번째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3년 간의 자료를 모두 열어 보고 제 주장에 유리한 사례만을 인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하 다른 모든 자료 역시 여러 개의 자료가 있을 경우 랜덤 추출해서 분석한 것입니다. 대체적인 경향을 확인하면 될 것이어서, 엄밀하게 숫자를 분석하는데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해석해 보면, 서울대학교 의학과에서는 


“2점대 이하 평점”에 해당하는 B- 이하 등급의 비율이 전체의 48.6% 였습니다. 

“C학점 이하”에 해당하는 C+ 이하 등급의 비율이 전체의 35.7% 였습니다.

“2.0점 이하”에 해당하는 C0 이하 등급의 비율은 전체의 23.9% 였습니다.


의학과의 특성 상 4년 간의 모든 수업이 전공필수 과목이므로 위 등급이 그대로 졸업 GPA(평점평균)가 됩니다. 의학과에서는 진급이 1년 늦어지면,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 과정 등이 모두 늦춰지면서 동료가 상사가 되는 셈이 되므로, 유급을 당해 강제로 특정 과목을 재수강하지 않는 이상 GPA를 높이기 위해 재수강을 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도 비슷하겠지만, 제 학번 전후해서도 수능 자연계 전국 1, 2, 3등은 모두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했습니다. 저희 학번 말고 바로 윗 학번에서 1, 2, 3등 중 한 분(정확히 지칭할 수도 있지만 명예로운 것은 아니니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은 저랑 같이 본과 수업을 들었는데 그 분도 학점이 2점대였습니다. 


애초에 하루도 쉴 수 없게 커리큘럼이 짜여있던 순환기학은 밤샘 공부를 하고도 1/3 정도가 재시험을 봤는데 재시험을 보는 학생들 중 수능 도수석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그 중에 공부를 제일 못하던 학생도 수능 자연계 0.0x% 성적을 받았겠지요. 커트라인이 0.1% 안쪽이었으니까요. 이들이 모두 결국은 의사고시도 합격하고 의사가 되었으니, 아무리 의사고시가 고시 취급을 못 받아도 “공부를 포기하고 놀면서” 합격할 시험은 아니므로 C, D등급을 받았던 학생들도 다 공부를 했던 학생이라는 건 입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대 의학과의 경우 극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도 있어서, 다른 대학들도 살펴보았습니다.




2. 같은 석차로 어떤 대학에서는 A- 받고 어떤 대학에서는 C+ 받습니다.


학점이 짜기로 유명하다는 서강대 같은 시기의 등급 도수분포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경영학과가 서강대의 대표적인 학과라 생각해서 인용하였으며, 다른 학과, 다른 연도의 성적은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여러 표본들 중에서 제 논지를 강화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서강대 경영대가 서울대 의대보다 평점을 후하게 주는 편입니다. 



서강대학교 경영학전공 2014년 1학기 전공과목 등급 도수분포   


등급 - 평점 - 도수 - 백분율 순서

A + 4.341314
A04.033711.4
A-3.72207.5
B + 3.359020
B03.035312
B-2.71776
C + 2.32679.1
C02.030910.5
C-1.71103.7
D + 1.3602
D01.0361.2
D-0.7180.6
F0592




경희대학교는 대학 급간 상 “인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정도 위치에 해당한다 생각했습니다. 그 중 전통적인 문과 학과라 생각되는 영어학부의 학점 표본을 추출해 보았습니다.



경희대학교 영어학부 2014년 1학기 전공과목 등급 도수분포


등급 - 평점 - 도수 - 백분율 순서

A + 4.329821.1
A04.033824
A-3.727519.5
B + 3.31208.5
B03.017912.7
B-2.7705
C + 2.3261.8
C02.0241.7
C-1.7211.5
D + 1.380.6
D01.030.2
D-0.740.3
F0433.1


경희대학교 영어학부에서는 상위 64.6%인 학생까지 A를 받았습니다. 서강대 경영학전공에서는 상위 64.6% 석차로 B-를, 서울대 의학부에서는 C+를 받았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세 학교 세 학과에 완전히 동일한 수준의 학생이 입학했다고 가정해도, 받을 수 있는 평점에 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3. 이공계 학과 전공수업에서는 좋은 등급을 받기가 힘들어서 C0 이하 등급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20%에 육박하기도 합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공과목에서 C0 이하 등급(C0, C-, D+, D0, D-, F)을 받은 비율은 서울대의 각 학과별로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학과는 모든 학과를 계산하지 않고 랜덤하게 골랐습니다.


이공계 학과들

의학과 : 23.9% (1학기), 14.0% (2학기)

수리과학부 : 8.6% (1학기), 9.5% (2학기)

컴퓨터공학부 : 17.0% (1학기), 16.7% (2학기)

전기정보공학부 : 9.4% (1학기), 10.2% (2학기)

물리천문학부 : 14.2% (1학기), 13.8% (2학기)

수학교육과 : 18.3% (1학기), 10.3% (2학기)

간호학과 : 5.3% (1학기), 3.5% (2학기)

의예과 : 0.8% (1학기), 29.5% (2학기) 


문과 학과들

경영학과 : 7.7% (1학기), 5.5% (2학기)

경제학부 : 11.8% (1학기), 6.0% (2학기)

영어영문학과 : 4.1% (1학기), 1.2% (2학기)

아시아언어문명학부 : 0.0% (1학기, 51명), 0.0% (2학기, 41명)

농경제사회학부 : 3.7% (1학기), 2.0% (2학기)


D, F 같은 등급 얘기가 나와서 사족을 달아보자면, 서울대 의학과에서는 교수님들께서 공부 못하는 학생은 “C 아니면 F” 같은 식으로 성의없이 평가하지 않으시고 C+, C0, C-, D+, D0, D-, F 로 정말 촘촘하게 변별을 해서 학점을 줍니다. 이 녀석은 정말 공부에 손을 놔서 안 되겠다, 너를 그대로 두면 환자를 잡겠다 싶으면 F를 주지만, 그게 아니면 D+를 줄지 D0를 줄지 고민하십니다. 또 F를 받은 학생의 일부는 정말 공부를 안 한 경우겠지만, 어떤 일부는 출석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F를 받기도 합니다. 




4. 이공계 GPA 문과 GPA보다 낮습니다.


그 결과 그 해(2015년 2월 졸업생) 이과와 문과의 졸업생 GPA 평균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공계 학과들

의학과 3.16

수리과학부 3.48

통계학과 3.33

컴퓨터공 3.25

전기정보 3.40

물리천문학부 3.36

화학생물공 3.26

조선해양 3.19

지환시 2.93

간호 3.37


문과 학과들

경영 3.67

경제 3.76

국문 3.54

노문 3.71

영문 3.70

농경제 3.54


부언을 하면 올 2월 졸업생의 경우 의학과 GPA 평균은 3.03 이었고, 제가 재학할 때에는 2점대였습니다. 평균이 2점대이다 보니 저는 2점대라고 해서 공부를 안 하거나 못 하는 학생이라 보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5. 재수강으로 인해 졸업 시점의 GPA  높아질  있습니다.


의치한약 등 대학생이라기보다는 체계적인 직업 교육을 받는 것에 가까운 일부 학과들을 제외하면, 재수강을 해서 등급을 올려 평균 평점도 올릴 수 있습니다. 평점이 낮은 학생들일수록 재수강 유인이 강해지기 때문에 재수강을 통해 2점대 초반 학생들은 점점 비율이 낮아지게 되고 점점 더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지환시의 경우 GPA 평균이 2.93이었던 것을 보면, 그리고 그 GPA는 교양수업까지도 합한 것임을 고려하면, 서울대 공대나 자연대 전공 수업에서는 의학과에 못지 않은 비율의 학생들이 C학점을 받아갔을 것입니다.




6. 대학교 1, 2학년 학생들은 교양수업으로 인해 학점 인플레를 겪습니다그러나 고학년이 되면 학점은 DTD입니다


많은 대학생 오르비 회원들이 “내 주변에는 C학점이 없는데” 같은 생각을 했던 이유 중에는 그 학생들이 아직 저학년이어서 교양 수업 비율이 높아 대체로 학점도 높은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보통 저학년 때에는 교양수업을 많이 듣고, 졸업을 앞둔 고학년 때에는 전공수업을 많이 듣는데 교양수업은 대체로 A등급, B등급 성적을 받기 위한 허들이 낮은 편이고, 학교나 학과, 수업에 따라서는 상대평가 규제가 강력하지 않아서 아주 많은 비율의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 전공수업은 교양수업 대비 학점을 받기가 훨씬 터프합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의예과 첫 학기 때에는 오르비 운영할 거 다 하고, 친구들과 술마시러 다니고, 연애하고, 전국 방방곡곡 설명회 강연 다니면서도 한 과목 B+를 제외하고, 전과목에서 A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학점으로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본과에 진입해서는 수험생 때보다 더 공부하고도 참교육을 당했었지요. 




7. 4.0 해당하는 A0 이상의 등급을그것도 전공수업에서 40% 이상의 학생들이 받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학기 경북대 수학과의 전공수업 등급 분포를 보면,


등급 - 평점 - 도수 - 백분율 순서

A + 4.314326.1
A04.07012.8
A-3.7407.3
B + 3.312021.9
B03.05810.6
B-2.7254.6
C + 2.3315.7
C02.0183.3
C-1.791.6
D + 1.320.4
D01.030.5
D-0.720.4
F0274.9



입니다.


4.0에 해당하는 A0 이상 등급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39%에 이릅니다. 혹시 특별히 이 학기에 A등급이 많았나 해서 확인해 보니 그 다음 학기는 A0 이상 등급의 비율이 40%를 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점 인플레는 꾸준히 유지되어온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교양수업과 재수강을 섞으면 4.0 이상의 평점을 받은 학생의 비율은 40%를 훌쩍 넘을 것이라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나 내신 9등급 제도에서 4등급 커트라인이 40%입니다. 그렇다면 4.0이라는 학점은 4등급 뒷부분 혹은 5등급 앞부분 정도의 내신이라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꼭 경북대만 학점을 후하게 주어서는 아니고, 서울대도 학과에 따라 A등급을 후하게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리과학부는 같은 학기에 43%의 학생들에게 A0 이상의 학점을 주었습니다. 반면 통계학과는 21%의 학생들에게만 A0 이상을 주었습니다. 의학과는 17%의 학생들에게 A0 이상을 주었습니다.


논란이 되었던 서울대 수학과 2.0 과 경북대 수학과 4.0 의 비유는, 내신으로 치면 서울대 수학과 7~8등급과 경북대 수학과 4~5등급을 비교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 2.0 이라는 학점은 나쁜 학점이기는 하지만 학과에 따라 사정이 다른 경우도 있음은 제 재학 당시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경북대 4.0 이라는 학점이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높은 학점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회사를 운영해 보면서 천 통 이상의 이력서를 읽어 보면서 대략적인 느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통계 자료로 확인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저께 썼던 글을 냉정하게 제3자의 시점에서 보려고 노력해 보니 글에서 hubris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굳이 영단어를 동원한 건 반추의 결과 제가 느낀 감정에 가장 가까운 단어이면서 그에 상응하는 우리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의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의 복합 정도되는 감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그 글을 쓸 수 있다면 좀 더 실제 데이터 위주로 건조하게 글을 썼을 것 같습니다.


글과 댓글에 등장하는 여러 비유들은 양쪽의 사정을 다 알게 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저도 반대측의 사정을 잘 몰랐으면서 반대측은 왜 내 쪽의 사정을 알고 있는 상태를 전제하고 글을 읽기를 바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을 특히 반성합니다.


그래도 그 글과 이 글이 학력 블라인드 제도라는 감정이 개입하기 쉬운 주제를 두고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 데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p.s. 이 글을 두고 그냥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되는데 이런 분석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제 먼 후배가 하기에 거기에 저는 이렇게 답을 하고자 합니다. 


그 말은 거꾸로 뒤집어 학벌 사회에서 부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학력 블라인드 제도 도입하지 않고,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신입사원을 뽑고 공무원을 뽑아도 그냥 니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다 되는데 왜 세상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려 하느냐?" 


서울대 의대생에게는 학력 블라인드 제도가 본인에게 관계가 없는 일이라 이런 글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현 정권에서 공기업 신입사원, 공무원 선발에서부터 시작해 사기업에도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오르비 수험생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고, 많은 집단과 개인의 이권을 좌우하는 중대한 이슈입니다.


그 이슈가 중대한 만큼 정책입안자도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판단에 근거해 정책을 추진하고, 제도와 규칙을 정비하고, 필요하다면 예외조항을 만들어야 하고, 유권자도 막연한 감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투표를 해야 합니다. 이 글을 마치 오르비에 흔한 문이과 논쟁, 대학서열 논쟁과 같은 것으로 절하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 첨언합니다.




(잘못된 사실에 대한 지적이나 문의는 쪽지로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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