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8-01-11 04:10:10
조회수 2,517

(썰) 16수능 삼반수, 그 뒤 (4) - 논술, 토익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15298160

https://orbi.kr/00014945702 (1편)


https://orbi.kr/00014988109 (2편)


https://orbi.kr/00015255305 (3편)


=================================


가군 원서 결정과정에서 생겼던 


수많은 잡음들이 생각났기에


살짝은 뭔가 기분이 묘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그 때의 아쉬움이


삼반수의 동기 중 하나로 작용했기도 했고


원서 결정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인지


뭔가 마음이 영... 그랬던 측면도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그냥 지나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잠깐 고민하던 끝에


나는 조심스레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조용히 인사를 드렸다.



모니터를 보고서 작업을 하던 선생님의 시선이


그와 동시에 나를 향했다.



- 이전 편에서 일부 인용 -


-------------------------------------------------------------


(기억에 의한 고증이므로 불확실한 점 있을 수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서술한 것이니 양해를...)




1. 



"어? 너는 작년에?"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이었다.



"간만에 들렀어요 선생님."


"오. 여기는 웬일이냐?"


"이번에 의대 간다고 삼반수 하느라 여기서 논술 듣는김에 한번 찾아뵈러 왔어요."


"오... 이번에 어떻게 잘 나왔어?"


"아 네. 정시로도 어느 의대를 가느냐를 고를 정도로 나왔어요."



"아 선생님. 작년에 그때 죄송했어요."


"음? 뭐가?"


"아... 그때 선생님한테 말씀 안 드리고 나군이랑 다군 바꿨던거요."


"아... 그랬었나? 그때 나군이랑 다군에 뭐 썼었지?"


"나군에는 고대 바시의, 다군에는 서남의 이렇게 썼었어요."


"아아... 그게 뭐 어때서 그럴 수 있지."



그냥 생각보다 별 이야기 없이 


안부인사는 싱겁게 끝났다.



그 외에도 박승동 원장을


복도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박승동 원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수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다.


그 특유의 목소리와 함께 말이시다.



(기억력이 조금 딸려서... 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2.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다시 토요일이 되었다.


그 날은 고려대 논술날이었다.



"와... 간만에 학교 다시 한번 가네."



1학기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똑같은 루트를 거쳐서


5호선을 타고 6호선으로 갈아탔다.



정말 익숙하고도 친숙했던


그 통학길


다만 그 통학길을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술에 응시하러 간다는 것은


아이러니 같은 풍경이었다.



그 날은 같이 반수하는 과동기 한 명과


논술 안내요원으로 하루 일하게 된 과동기 한 명과


셋이서 보기로 결정하고서


굳이 따라가겠다는 엄마를 거절하고서


집을 나왔었다.



그 날의 고사장은 법학관 구관이었다.



"아... 법학관 구관... 수업 들을 때 온갖 구석은 다 돌아다녀도 여기는 안 와봤네."



고려대역에서 내린 후 


조심스레 루트를 짐작해가며


법학관 구관을 찾았다.



법학관 구관에 들어가니


과거 고법 시절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있는 풍경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크... 여기가 바로 예전의 고법이었구나..."



살짝 감탄을 하고서 내가 논술을 응시할 고사장으로 갔다.


고사장으로 들어가보니


전년도 때와는 다르게 지정 좌석이 아닌 


선착순 좌석이었다.



"선착순... 대충 적당한 통로면서 중간 위치에..."



대충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잡은 뒤


마음의 여유를 잡는 겸 


주변을 살짝 두리번거리며


풍경 감상을 하였다.



곧이어 시험 시간이 다가오고


시험지와 답안지가 배부된 뒤


시험이 시작되었다.



수학논술은 미적분이 나왔던 기억이고


생물논술은 하디 법칙과 겸형 적혈구 등이


출제되었던 기억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참살이길로 가면서 과동기에게 연락을 돌렸다.



"야. 나 지금 참살이길로 가는 중, 지금 ㅇㄷ?"


"나 지금 OO이랑 같이 있음. 안쪽으로 들어가는 코노 거기, 맨날 가던 데에 있다."


"ㅇㅋ. 글로 가겠다."



곧이어 코노 앞에서 만난 뒤


코노로 들어가서


신나게 노래 몇 곡을 달린 후


참살이길 옆쪽에 있는 스테이크집으로 갔다.



(참고로 거기는 경양식 스타일에 가까움. 목살스테이크 가격이 7000~8000원으로 기억함. 국수나 샐러드나 스프, 음료 등은 셀프여서 자기가 퍼먹을 수 있는 구조. 내 기억이 맞다면 '죠스그릴'이 상호일 것이다.)



거기서 한바탕 이야기를 하면서


늦은 점심 또는 이른 저녁 (점저)를 먹었다.



"지금 쯤이면 이제 슬슬 논술 보는 애들 빠졌겠지?"


"설마 지금까지 있는 애들이 있겠어?"


"ㄹㅇ; 이제 슬슬 여유롭게 집에는 가겠지"



밖으로 나와보니


참살이길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고


오가는 버스는 마치 닭장들처럼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 저 닭장에 들어가야 하나?"


"...그냥 신설동역까지 금방인데 걸어가자."


"저기 낑겨서 가는 것보단 1호선 틈새시장을 공략하는게 낫겠군"



그 날은 안암오거리에서 신설동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탔었던 기억이다.



뭐... 6호선이 생기기 전에는


그 루트가 고대생들의 통학 루트였으니


그냥 옛 선배들의 통학길 체험한다 생각하고


걸으면 그만인 거리 정도였다.




3.



문제는 다음날 있었던 논술이었다.


마지막 논술로는 일요일에 진행되는


중앙대 논술과 인하대 논술이 있었는데



학원에서 중앙대 논술까지는


확실히 보자고 답변을 했지만


인하대 논술부터는



"음... 이걸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인서울이나 삼룡도 써볼만하긴 한데 또 애매하고... 아무래도 이건 너의 선택에 달린 것 같다."



라고 답변을 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 때문에 수없이 고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 학원선생님들에게


수없이 물어보고 또 물어봤지만



각자의 대답이 다르거나 


"너에게 달렸다."  같은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으니


나로서는 크나큰 난제였다.



특히나 그 당시에는 


생명과학II 백분위가 98로 예상되었기에



나로서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정시에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더 크기도 했었고


학원에서도 그런 의미를 암시하는 원서 조언을


자주 했었으니


...그냥 결정에러 그 자체였다.



결국 다음날 결정하기로 마음먹고서


중앙대 논술까지는 정상적으로 치른 후


그 뒤에 바로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앙의 논술까지 무사히 치른 뒤


흑석역에서 노량진역까지는 동일하게 갔다.



이제 노량진역에서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선택이 갈라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여기서 1호선을 탄다면 나는 인하대 논술을 보러가는 것이야."


"반대로 여기서 개찰구를 나가는 순간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이야."



물리적 시간이 살짝 촉박한 때였기 때문에


그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최종선택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5분 동안 고민을 했다.


"내가... 여기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잠시동안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개찰구로 다가가 교통카드를 찍었다.



집으로 가는 길.


인하대 논술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도박판에 패를 던져보겠어."



어차피 앞에서 본 논술들은 


직감적으로 불합격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구 백분위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서울의나 삼룡의에 판돈을 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서


정시판으로 뛰어들기로 그때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도박판이 성공을 했냐면


전혀.


오히려 대실패로 이어질 뻔했으니 말이다.


(지금 다니는 대학 빼고는 전부 폭발이거나 총알이 모자랐다. 위험전략을 썼으니까...)



인생의 모든 도박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모든 도박은 항상 미지의 기회비용을 낳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도박을 감행한 순간


그 기회비용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감내할 수 있어야만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그 도박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뭐... 가장 나은 행동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뭐 "왕관을 쓰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라."같은


거창한 말은 뒤로 제치고서라도


도박하려면 리스크 정도는 감당할 생각을 해야하듯이...



아무튼 노량진역에서의 선택을 마무리 지은 후


페북에다가 "내가 오늘 한 선택이 미래에 후회할 선택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라는


소망을 담은 글을 남기고 


집으로 길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4.



이제 논술이 모두 끝나고 


나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찾아왔다.



드디어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면서


집에서 신나게 쉬고 있던 중 문득



이렇게 남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보면 좋을지 


고민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바로 한다면 가장 가성비가 좋게 나올만한 것이..."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뉴토익이 다음 해부터 적용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뉴스기사와 안내문을 통해


뉴토익에 대한 설명을 보니 


구토익에 비해서 뭔가 어려워지니


나한테 불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토익... 그러고보니 나는 지금 영어를 공부한지 얼마 안 되었잖아? 수능을 공부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 포텐이 남아있을거야!"




갑자기 근거도 없는 토익에 대한 자신감이 들면서


수능영어를 공부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토익영어도 비슷하게 어느정도는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을 풀로 충전한 상태서


토익 긴급접수를 신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토익... 유형파악이나 문제연습은 해둬야하긴 하는데... 귀찮다. 수능도 끝났는데 무슨 공부야."



분명히 토익에 대해서는


처음 응시는 하더라도


사전연습, 하다못해 유형을 파악하는 시도라도


하는 것이 보통 정석이다.



하지만 귀차니즘에 빠진 나머지


나는 일주일을 금방 보내버리고


토익에 대한 대비는 


하나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2015년 11월 27일


고사장에 가서야 유형을 파악했을 정도로


토익을 우습게 보다가 토익에게


제대로 참교육을 당한 그 사건은



생각보다 다른 방향으로


내 인생의 모습에 영향을 준 요소가 되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 계속-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