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27일의 기억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18779260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한 하루가 있다. 세월이 지나도, 아니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명료하게 기억할 날일 것이다.
목요일이었다. 흐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찍 깼다. 용산 본부로 아침 일찍 '신고'를 하러 가야 했으므로. 하긴, 신고가 아니더라도 일찍 깼을 것이다. 더 이상 그 곳에서 내가 할 일이 없었으니...
동기 3명과 함께 밥을 먹었다. 마지막 아침 식사.
계란과 고기, 햄버거, 과일, 그리고 커피... 일반 한국군 식사와는 질이 달랐던 음식들. 하긴 1986년 9월 5일 논산훈련소를 나와 평택 카투사 트레이닝 센터에서 처음 맞이했던 미군 식당은 경이 그 자체였다.
이등병 계급장을 처음 단,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했던 만 20세 청년의 눈에 한국과 미국의 국력 차이를 절감케 한 것은 군 장비의 차이가 아니라, 식당의 음식 차이였다.
마지막 식사 날, 동기 3명과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제 기억도 없다. 나는 당시 이런 저런 사정으로 머리를 꽤 기른 상태였다.
식사를 한창 하고 있는데, 우리로 치면 중사에 해당하는 미군 E7이 나에게 다가와서 나지막하게 말했다.(미군 E5는 우리로 치면 병장, E6는 하사에 해당한다.)
“이 봐 친구. 머리가 조금 길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 오늘 제대하는데.”
그 뒤 이어진 그의 말은 지금도 내 귀에 또렷하다.
“Enjoy your life!"
지긋지긋하던 군 생활. 식민지의 감성이 무엇인지 느끼게 했던 2년 간 양키들과의 공동 생활. 그 시절이 끝나는 날이었다.
오전10시였는지, 10시 30분이었는지... 파견부대장에게 제대 신고를 한 뒤 동기 3명은 용산에서 택시를 함께 탔다.
나는 꿈에 그러던 학교로 돌아갔고, 다른 동기 하나는 내가 내린 신림동을 거쳐 누나가 산다는 안양으로 갔다. 나머지 동기 하나는 집이 어디었는지, 왜 함께 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안양이 누나 집이라는 동기 한 놈이 그리도 술 한 잔 하자고 졸랐지만, 나는 대학이 그리웠다.
대학 정문에서 나는, 지금 생각하면 모질게도 “잘 가라.‘를 말한 뒤 뒤도 안 보고 내렸고, 당시 과 사무실이 있던 5동으로 향했다.
1988년 10월 27일 목요일. 제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후기.
안양에 누나가 산다던, 연세대 경영대 2년을 마치고 입대했던 동기는 제대 이후로도 연락이 꾸준히 됐다. 행시를 거쳐 지금은 정부 부처 고위 관료로 ‘V.I.P.'를 모시는 곳에 파견 근무 중이다.
역시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1년 마친 뒤 입대했던 다른 동기 하나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1990년대 말, 내가 다니던 회사로 급작스레 전화가 와서 “주유소 경영을 한다. 내가 술 한 잔 살게.”라고 전화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제대 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첫 댓 만덕
-
대충 소원 들어주면 죽어도 만족함
-
글 목록이 아무리봐도 여자는 아니긴하네 흠.. (여르비 계정 몇개 염탐함) 근데 또...
-
이지랄날거면 유류분지문 열심히 기출분석하신 강민철 선생님의 노력은 뭐가됨?ㅋㅋ
-
약대 질문이요 0
수학 영어 물리 지구 1. 97 1 99 99 2. 99 1 99 99 3. 96...
-
기분이 조타 세대 교체 ㄷㄱㅈ 고려장 ㄷㄱㅈ
-
웃김 ㅋㅋ 장이수 하드캐리
-
[속보]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 유류분 제도 위헌 4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 유류분 제도 위헌
-
셤 끝 0
오늘은 놀고 낼부터 다시 공부해야지..
-
원래 30분 발표인데 내가 마지막 순서니까 20분만 하고 일찍 끝내야지 야강이니까...
-
그리고 체감상 대여섯명 넘으면 그 안에 소그룹? 같은거 생기면서 소외되는 사람 나타나는거 같음
-
재밌었당! 무서운거 첨 타봄..! 신나서 눈 훼까닥해가지구 무서운 거면 줄 잔뜩...
-
영어 내신 문제 14
이런 식으로 만드는 거 맞나요?? ㅠㅠ 과외생 곧 시험이라 문제라도 만들어주려고...
-
드디어 책이 도착했음!!! 방금 언박싱하고 갑자기 자랑하고 싶어짐요 다시 공부 갈기러 감
-
공하...싫! >< 이런 느낌이랄까 ㅈㅅ
-
맨날 전원정답 아니면 복수정답 엔딩이었음..
-
이 둘은 뭐가 다를까 어차피 지식이 내 머리에 들어오는 거니까 똑같은 줄 알았는데...
-
황밸이 고대 스모빌=설사과대 고컴=설인문 연대 디스플레이=서울대 심리...
-
이의제기했는데 내일 한문제만 재시친다함 300명한테 욕먹는중 ㅅㅂ.
-
그럼 나는 몇점..?
-
국어4등급 사람 한 명 살린다 치고 도와주세요ㅠㅠㅠㅠㅠ 4
국어 내신은 강남8학군에서 2322(고1중간부터 고2기말)로 문학 개념어나 어휘같은...
-
옷질,노래.춤,사교성 등등 제로부터시작해서 힘들었지만 웃는연습하는게 젤힘들었음..
-
계란만 들어갔거나 해봐야 햄치즈만 추가된 젤 기본 토스트라고 생각함 반박 안받음
-
본인의 계획 3
1. 25수능으로 최저 맞춰서 지방의나 지방한을 들어간다. (의는 모르겠는데 한은...
-
ㅇㄷ감
-
레전드 공하싫 5
반드시 쓰는데 공하싫..
-
문과 경희 시립 1
동일 과 기준
-
솔직히 새학기시즌 때 술자리 한개도 안나가도 괜찮음 19
친구는 어떻게든 한명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
정말..
-
현 고1이고 작년 기준으로 대략 고3 모고 국영수 2~3나왔고 물지는 1~2나왔어요...
-
왜 대기업 취업 안하고 학원강사해? 그거 전망 안좋잖아? 왜 물리 강사를해?...
-
정말 안괜찮은데 교차로 문과가면 힘들텐데 그거 무시하고 학교 레벨만 높이려는 사람들...
-
R&D 삭감 한방으로 문이과 격차를 줄여버림 뭔가 이상한거 같지만 대석열 외치고 한잔해~
-
고2 고민 0
현 고2이고 모고 수학은 96,92점좀 늘 1등급인데 내신에서는 왜 3,4등급이...
-
대학가면 술자리 ㅈㄴ많지않아요? 내가 학생회하고 동아리 5개해서 그런건가
-
인싸가많으면 알아서 챙겨주지않음? 찐따가아닌이상 인싸많은곳가는게 이득아닌가요.
-
대학 옮겨도 못사귈려나
-
군대 7월에가면 0
12월에 들어오는 애들이랑 동기고 6월에 온사람이 선임이라는데 진짠가요
-
물리 전기력 1
23 09 문제 전기력 귀류법 말고는 방법 없나요 ??
-
클러치n 휴강 전까지 수1한거 같은데 휴강 끝나면 수2부터 하는건가요? 댓글 부탁드립니다!!
-
그래도 오늘 외진 겸 외출 다녀온만큼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 화이팅:)
-
국어 > [리트 전개년 기출 언어이해] 2020 25~27 > [리트 전개년 기출...
-
그래도 이딴 성격에 좋은 친구 좋은 부모님 만났던거면 인복은 좋았던 것 같다
-
본인은 수의대>인설약>경한>지방약>>>>>>>>>>...
-
고삼현역입니다 우선 푸는 순서는 화작, 독서론 16분 독서 인문 지문 13분 문학...
-
중도 지하에 구석에 있는 책상에 맨날 앉아계신 아저씨 계신데 뭐죠 라는 글에 ‘그거...
-
근데 아싸 인싸 찐따 이런게 있다는게 신기하지않음? 8
똑같은사람인데.. 기가막히게 나뉨,,
-
연고서성한+중or경한 논술 다 쓸까 원래 연대냥대는 최저없어서 안썼었는데
-
시험기간엔 점심만 먹고 끝나는게 ㄹㅇ굿 오늘 순공 9시간 가야지
청와대 파견근무는 능력이뛰어나고 끌어주는? 인맥이 있어야한다 들었습니다
파견후 조직에 돌아오면 핵심보직에 가고 차후 경력관리에도 도움이된다고 알고있습니다.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들은 대통령에 가깝고 같은컬러분들을 임명하는거 같은데 그밑에서 일하는 행정관이나 정부부처에서 파견나가는 공무원들은 정치색을 보나요 능력위주로 선발하나요?
그럼 청와대 자체가 정권이 바뀔때마다 너무 치우쳐지지않을까요?? 청와대 자체가 대통령중심의 국정운영을 위한 곳이라 상관없는것인가요?
허나 조응천 의원은 dj부터 mb 박근혜 문재인까지 중용되고있는데 정치색보단 능력인가..아님 그분이 상당히 정치적인것으로 보면될까요?
정치적인 것에 대해 제가 답할 능력도 없고, 자칫 답해봐야 논쟁만 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파견되는 직업 공무원은 정치적으로 임명된 '어공'('어쩌다 공무원')보다는 정치색이 덜 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2009년 잠깐 일 했을 때의 경험도 그랬고요.
네? 청와대에서 일하셨다고요? 뭐하시는분이세요?? 왜 엘리트분께서 여기에..자녀분 입시때문인가요?
제 예전 글 보시면 될 것입니다, 후후... 엘리트는 절대로 아니고요. 이제는 농사와 독서, 운동으로 소일하는 사람입니다...
참, 하나 추가하면...
청와대에는 두 종류의 공무원이 있습니다. '늘공'(직업 공무원을 '늘 공무원'의 준말인 '늘공'으로 부르지요.)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준말)이지요.
청와대의 일상적인 업무는 늘공이 담당합니다. 하지만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는 당연히 어공이 장악하지요.
항상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옛 추억에 젖어서 '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