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4기념 [763171]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8-11-14 1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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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인의 작년 지진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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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쓰고 보니 글이 지진만큼 개판임

본인 모교 일정
오전 : 열람실에서 자습
오후 : 재단 체육관으로 이동 후 예비소집

오전 자습을 끝낸 솜털뽀송 현역이인 저는 친구들과 함께 룰루랄라 체육관으로 이동 했습니다

수험표와 수험생 유의사항 책자 등을 받고, 저는 체육관 제일 안쪽, 무대 바로 앞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았어요

그렇게 학생들이 하나 둘 바닥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예비소집도 시작 됐습니다

예비소집 안내 담당 선생님께서 말주변이 워낙 좋으셔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예비소집이 끝나가는가 했지요

책자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후두둑.. 후두두둑..



선생님 뒤로 가루(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지진 때문에 석면 가루가 떨어진 거라고..)가 떨어지는걸 본 친구가 저에게

"저거봐.. 저게 뭐야?"

라고 묻기에 무대를 쳐다보는 그 순간..


쾅!!!!!!!!!!!!!!!!!!

하는 굉음이 울리고

땅도 울렸습니다


옆라인 문과 친구들이 미친 것 마냥 무대위 선생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님(선생님) 내려오세요!!!!!!"

문과 친구 아버님이었거든요

선생님이 무대에서 뛰어내려오시는 모습까지만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엔 저도 앞만 보고 뛰어서요..


굉음과 동시에 친구와 저는

서로를 '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제 시야에서 바로 사라졌어요

나도 뛰어야해서 남이 잘 오고 있는지 볼 시간이 없어

수험표 버려 안내책자 버려

수능이고 나발이고 나 살아야되거든


어떻게 일어서서 어떻게 뛰었는지 기억도 안나


저는 그래도 책가방을 메고 뛰었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아무 구멍에나 팔을 끼워넣고 뛰어서 오른쪽 끈에 왼팔을 넣고, 가방은 뒤집어진 채로 들고 뛰었더군요

그리고 한 손엔 안경을, 다른 손엔 수험표를 쥐고 뛰었습니다

안내책자는 바닥에 버리고 왔고요,

체육관에서 탈출하고 확인해보니 전쟁통에 수험표는 챙겨야겠다고 챙겨온게, 찢어져 있었습니다


나갔더니 댕댕이 판이었어요


우선 여자애들. 울어요
남자애들. 허망한 표정으로 허.. 하고 체육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지진이 터지면 카톡, 문자, 전화도 터져서 안되더라고요

그 와중에 주위를 보니 엎어져서 다리 까지고,

선생님 수험표가 없어요 엉엉..

가방이랑 뭐뭐 안에 다 놓고 왔어요 엉엉..


전쟁통이 따로 없었죠



뛸 때의 풍경이 아직까지 생각이 나요

무대와 출입구가 정 반대편이라 제일 먼 거리를 달렸는데

건물이 흔들리면서 예전 행사 때 썼던 비닐 조각이나 색종이들이 공중에서 반짝반짝 떨어지는 것과 대조 되게

지상에서는 선생님들께서

뛰어!!!!!! 뛰어!!!!! 나가!!!!! 빨리 나가!!!!!!


하고 소리치시는 모습,

뛰다가 다리풀려 엎어져서 우는 애 데리고 어떻게든 질질 끌고가는 모습,

그리고 3년동안 같이 지내온 친구들의.. 등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저는 본 적이 없었어요



지진이 끝나도 이 난리통은 끝나지 않아요


학교가 부셔져서 수험장이 바뀌니 어쩌구~


경주, 영천 등지로 옮겨서 시험을 쳐야하고 저쩌구~



또 학교가 전국단위라 100명 가량은 포항이 고향이 아니야..

대구에서 온 제 친구 전화기는 그날부터 주말까지 터지는줄 알았대요

엄마, 아빠는 고사하고 양가 조부모님, 사촌언니오빠들, 삼촌, 고모, 고모부, 이모...

문자에 전화에 난리도 난리도 아니었다고..

시기상 애매해서 집도 못가

여진은 계속 돼..


특히나 이 친구들한테 일주일은 거의 죽음이었죠

무연고지 포항에서 3년 버텼더니,

마지막으로 얻고 가는건 지진.


수험생 사이트에서 그러더군요

'이번에 수능 만점 포항에서 나오면 개꿀잼각?'

'엌 포철고에서 나올 듯'


응 아니야.. 멘탈 다 터졌어..



지진이 날때 바닥에 앉아있어서 그런가

한동안은 어디에 앉아있기만해도 허리가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진에 멘탈도 다나가고..


지진 때문에 수능이 연기 되면서 수험생 사이트에는 포항 욕이 넘쳐나더군요

지진이랑 목숨을 키워드로 한 농담들도요

몇 개 보고 충격 받아서 그 이후로 안봤습니다 하나도..

그런 애들은 우리랑 같이 체육관 바닥에 앉아서 같이 예비소집 했어야했는데 그렇지? 얘들아? 너희는 재수하니? 올해도 뭐.. 수고해라^^


어쨌든

친구들네 학교는 배수관 터지고, 교실이고 화장실이고 다 부서졌대서 진짜 놀랐습니다

그래서 상태가 영 안좋은 수험장은 중학교로 수험장을 바꾸는 것도 불가피 하게 됐었음
중학생인 제 동생이 학교 싹 갈아엎니라고 힘들어뒤졌다카더라

그대로 수능쳤으면 쉬는시간에 저기 앉아서 볼일보다 위에서 떨어지는 벽돌 맞고 뒤..졌겠구나.. 싶었죠

오늘은 제발.. 내일 수능 치고 싶네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모두 내일 수능 대박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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