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성운 [830362]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9-05-20 15: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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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부탁)[국어 칼럼] 수능 국어는 실전에서 어떻게 읽을까? (+가능세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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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가 글을 어떻게 읽고 푸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써 보았습니다. 뇌피셜이니까 걸러서 들어주세요!


저는 최근 3개년 수능 및 평가원 모의고사(17학년도~19학년도, 총 9회) 시험지를 보면서 정답 선지에 대한 근거를 지문에서 찾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지문에서 중요한 부분에 대한 감이 생겨서 읽으면서 요점을 집어낼 수 있게 되고, 그읽그풀을 할 수 있는 독해력이 생기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기출 문제를 무작정 푸는 것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수능 국어를 처음 공부하면서 많은 분들이 자연스레 범하는 실수는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논리실증주의자와 포퍼는 지식을 수학적 지식이나 논리학 지식처럼 경험에 무관한 것과 과학적 지식처럼 경험에 의존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라는 문장이 주어졌을 때,


“어라 왜 과학적 지식이 경험에 의존하고 경험에 무관한 건 논리학 지식이지? 경험에 의존한다는 게 무슨 소리지? 논리학 지식은 뭘까? 논리실증주의자가 뭐야?”


와 같이 독해해서는 안 되고,


“논리실증주의자와 포퍼라는 사람들은 지식을 경험에 의존하는지에 따라 구분하는데, ‘수학적 지식’, ‘논리학 지식’은 ‘경험’에 무관, ‘과학적 지식’은 ‘경험’에 의존한다고 보는구나.”


와 같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글에서 주어진 글자 그대로를 수용하는 식으로 각 문장을 올바르게 읽어 나가신다면 낮은 난이도의 짧은 지문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는 능력은 필수입니다. 문장을 읽었을 때 즉각적으로 의미가 받아들여져야 독해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많은 강의에서 다루고 있으니 터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수능 국어의 고난이도 지문들은 단순히 각 문장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해당 문장의 전체 속에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글의 세부적인 내용이 아닌 구조에 집중하며 독해한다고 생각하며 글을 읽으신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조에 집중하며 글을 읽는 것은 각 문단의 중요 내용을 뽑아서 취하는 발췌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유기적 구성을 파악하고 세부 요소들을 연결시키며 읽는 것입니다. 글의 구조를 파악하게 되면 글의 논지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며, 문제 풀기 전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강하게 남겨두어야 할 것이 바로 논지입니다.

90%의 수능 문제들의 정답 선지는 논지와 직결되어 출제되므로 문제를 풀면서도 논지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선지는 참/거짓을 판별할 필요 없이 일단 제껴 두고 중요한 내용을 다루는 다른 선지들을 먼저 판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문을 독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문단입니다. 두괄식으로 구성된 지문들은 당연히 첫 문단에 중요 논지가 바로 제시되어 있으니 파악하기도 쉽고 읽기도 비교적 수월합니다. 


18수능 부호화 지문의 첫 문단만 가져와 보겠습니다.


디지털 통신 시스템은 송신기, 채널, 수신기로 구성되며, 전송할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부호화 과정을 거쳐 전송한다. 영상, 문자 등인 데이터는 기호 집합에 있는 기호들의 조합이다. 예를 들어 기호 집합 {a, b, c, d, e, f}에서 기호들을 조합한 add, cab, beef 등이 데이터이다. 정보량은 어떤 기호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얻는 정보의 크기이다. 어떤 기호 집합에서 특정 기호의 발생 확률이 높으면 그 기호의 정보량은 적고, 발생 확률이 낮으면 그 기호의 정보량은 많다. 기호 집합의 평균 정보량을 기호 집합의 엔트로피라고 하는데 모든 기호들이 동일한 발생 확률을 가질 때 그 기호 집합의 엔트로피는 최댓값을 갖는다.


두괄식 지문임에도 불구하고 첫 문단이 참 지저분합니다. 

엔트로피, 정보량 등등 이상한 소리는 앞서 말씀드렸듯 세부적인 정보이니 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시면 되고, 중요하게 머릿속에 남기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첫 부분인 “디지털 통신 시스템은 송신기, 채널, 수신기로 구성되며~”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래 구질구질하게 적어 둔 게 사실은 디지털 통신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서 써 둔 거니까 디지털 통신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며, 그러니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당연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바로 다음에 나오는 “~전송할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부호화 과정을 거쳐 전송한다.”에서 ‘데이터’를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부호화 과정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지저분한 것들을 도입해서 글을 썼겠거니 하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독해하면서 머릿속에 남긴 내용들은 대부분의 경우 문제들의 정답 선지에 대한 근거가 됩니다.


두괄식 지문들과 달리 미괄식으로 구성된 대부분의 고난도 지문들은 첫 문단을 읽었을 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바로 다음 문단을 읽어도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저분한 글이라도 첫 문단이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는 있을 것이고, 이는 나머지 문단들을 독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글을 읽으며 이 문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를 따져 본다면 단순하게 논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19수능에서 가장 어려웠던 가능세계 지문의 시험장에서의 사고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문을 옆에 두고 같이 읽어주세요. 처음 접해보는 지문이라면, 혼자 읽고 문제를 풀어보신 뒤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1문단 ]

도입부에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면 맥락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부적인 내용에 빠져들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첫 문단을 이런 식으로 작성한 출제자의 의도일 것입니다. 

일단 첫 문장을 읽으면 모순 관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모순이 무엇인지에 대한 직관과 굉장히 부합하는 설명이므로 쉽게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 문장에는 기호로 모순을 어떻게 나타내는지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것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납득하면 됩니다.

그 다음 문장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앞 문장과 연결지어 “서로 모순인 두 명제가 둘 다 참일 수는 없다는 법칙을 무모순율이라고 한다.”고 정리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문제는 다음 문장인데, 지금까지 모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보탑 어쩌고 하면서 모순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앞에서 모순을 다루고 있었기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보탑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의 이해가 아닌, ‘모순이 아니므로 앞에서 말한 무모순율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리하면 굉장히 불편한데, 어쩔 수 없이 글에서 추가로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지막 문장에는 갑자기 가능세계라는 용어가 튀어나옵니다. 처음 보는 말이니 나중에 설명해 주겠거니 하고 넘어가도 괜찮지만, 1문단의 전체적 맥락과 연결지어 보았을 때 해당 문장의 앞부분은 무모순율을, 뒷부분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순이 아닌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잡아낼 수 있다면 좋습니다.


[ 2문단 ]

첫 문장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1문단을 읽고 온 우리는 지금 가능세계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한데 알려주지는 않고, 필연성과 가능성을 분석하는 데 쓰인다고만 합니다. 여기서 미괄식일 확률이 높은 짜증나는 글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둘째 문장에는 필연성과 가능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나와 있고, 이는 중요하지만 어렵지 않으니 그냥 글자 그대로 저장해 두면 됩니다.

그 뒤에 나오는 지저분한 내용들은 방금 한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반복한 것에 불과하므로, 가볍게 읽고 지나가 주면 됩니다.


[ 3문단 ]

첫 문장을 읽으니 일상적인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2문단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니 거의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반복되는 키워드인 ‘일상적인 표현’에 주목하여 독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읽어보면, 제시된 사례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와 전통 논리학에서의 규칙이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라는 것을 캐치할 수 있고, 이 경우 가능세계라는 개념을 활용해 여러 가능세계 중 현실세계와 더 유사한 가능 세계에 따라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처리가 되었다면 마지막 문장에 A와 B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모두 설명할 필요 없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적당히 파악이 되었으니 넘어가면 됩니다.


[ 4문단 ]

드디어 가능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이 문단을 읽으면서 앞의 세 문단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리는데, 많은 학생들이 여기까지 읽기 전에 지문을 포기해 버립니다.

가능세계의 성질 중 첫째 일관성과 둘째 포괄성은 2, 3문단에서 나온 가능세계의 쓰임들과 연결지어 읽으면 매우 당연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둘 다 ‘가능성’에 주목하여 정리하면 됩니다.

셋째 완결성 또한 1문단의 무모순율과 연결되어 무리 없이 처리가 되며, 배중률이라는 새로운 용어만 가볍게 머릿속에 남겨 두면 됩니다.

문제는 넷째 독립성인데, 설명을 읽어 보면 지금까지 나온 가능세계의 쓰임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분명 글의 모양만 보면 다른 성질들과 대등한 병렬구조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논지와 연결이 되지 않으므로 중요도가 매우 떨어지고, 문제에 정답 선지로 나올 확률도 적습니다.

시간이 매우 부족할 때는 이러한 부분은 혹시 문제에서 필요하게 되었을 경우에 다시 찾으러 오기 위해 글의 어디쯤에 있었는지 정도만 남겨 두면 됩니다. 

남은 시간이 적당하다는 가정 하에 읽어보면, 서로 다른 가능세계는 겹치는 게 1도 없다는, 독립성이라는 단어와 부합하는 간단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내용을 W1 W2 운운하면서 복잡하게 적어둔 것이 시험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 5문단 ]

마지막 문단은 글을 깔끔하게 끝내기 위한 문단으로 보이며, 중요한 내용도, 어려운 내용도 없습니다. 쓰여 있는 그대로가 전부입니다.


이와 같은 미괄식 지문은 후반부의 중요 내용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매우 불쾌한 것은 당연한데, 이는 많은 학생들이 수능 시험장에서 고난도 지문을 읽다가 포기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원칙대로 불편함을 참고 독해해야만 어려운 지문들을 만나 변별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글과 함께 출제된 네 문제 중 정답률이 낮은 40번과 42번 두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42번은 해당 시험지에서 수험생들이 두 번째로 많이 틀린 킬러 문제입니다.


40번

① 존재합니다.

② 3문단과 연결시키면, ‘필연적인 명제’를 이용하여 말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1문단과도 연결시킬 수 있는데, 만약 ㉠이 거짓이면 ~㉠은 참이므로 결국 해당 선지는 “모든 가능세계 중 다보탑이 경주에 있지 않은 가능세계는 없다”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거짓이므로 정답입니다.

③ 둘 다 참일 수 있으므로, 1문단의 논지에 의해 모순 관계가 아님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④ 이 선지 자체가 3문단과 연결하면 “만약 Q이면 Q이다.”에 해당하는 필연적인 명제이므로 적절합니다.

⑤ 1문단의 논지에서 둘 다 참인 것이 가능하고, 모순 관계가 아닙니다.


42번

가 주어진 문제는 항상 를 먼저 비문학 지문처럼 독해해야 합니다. 를 읽어 보면, 지문에서 제시된 모순 관계가 아닌 반대 관계라는 것이 새롭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지문과 연결지어 의미를 해석해 보면, 보기에 제시될 명제들이 모순 관계인지 반대 관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① 주요 논지 두 개를 연결했다면 정답일 확률이 매우 높지만, 논지인 완결성과 논지와 연결이 되지 않은 독립성을 서로 연결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처리하기도 번거롭고 정답일 확률이 낮으므로 일단 지나가고, 논지와 직결되어 빠르게 처리가 가능한 다른 선지들을 먼저 처리한 뒤 정답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만 돌아와서 체크합니다.

② ①번 선지와 마찬가지로, 일단 넘어갑니다. 시험장에서의 사고과정대로 두 선지에 대한 설명은 뒤에 있습니다.

③ 완결성이 나왔으니, 선지를 끝까지 읽기 전에 일단 지문을 떠올리며 완결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크합니다. ‘모순인 두 명제는 어디서든 둘 중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 이제 확인해야 할 것은 선지에 나온 두 명제가 서로 모순인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모순이라면 정답일 테고, 모순이 아니라면 완결성에 의해 설명할 수 없으므로 절대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선지를 마저 읽어봅니다. 다시 1문단과 연결하면, 모순인 것은 둘 다 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어진 두 명제는 둘 다 참이 될 수 있으니 틀린 선지입니다.

④ 포괄성이 나왔으니, ‘가능한 일이면 그게 팩트인 가능세계가 있다!’를 떠올립니다. 선지에 제시된 두 명제는 서로 모순 관계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각 명제가 가능한가입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와 연결할 필요조차 없는, 깔끔한 정답입니다. 만약 주어진 두 명제가 모순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완결성과 연결하여 정답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⑤ 일관성이 나왔으니, ‘불가능한 일이면 그게 팩트인 가능세계는 없다!’를 떠올립니다. 일관성에 대한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일관성은 가능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조건을 논하는데, 선지 마지막을 보니 “~존재하겠군.”이므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틀린 선지입니다.

모두 풀고 시간이 남았다는 가정 하에 ①, ②번을 다시 보겠습니다.

① 부분적인 표현에 집중하지 않고, 와 연결시켜 보면 주어진 두 명제는 서로 반대 관계입니다. 에 의해 둘 다 거짓일 수 있으므로 하나가 반드시 참이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② 일단, ‘가능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포괄성에 의해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데, 선지에 해당 표현이 존재하므로 언뜻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논지와 연결시켜 바라본다면 한 명의 학생이 연필을 쓰는 것과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는 두 명제는 서로 모순 관계임을 즉시 파악할 수 있고, 1문단과 연결되어 무모순율에 의해 둘 다 참인 가능세계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틀린 선지입니다.


문학 같은 경우도 비문학처럼 읽는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물론 EBS 연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문학에서도 독해력이 중요합니다.


소설 같은 경우는 비문학에서 이해를 하려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단어와 표현의 의미를 완벽하게 해석하고 넘어가려고 하면 시간을 많이 소모하게 되므로 비문학 지문에서 요점을 잡아내고 그 요점을 중심으로 글을 읽듯이 중심인물을 잡아내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글을 읽어 나가면 됩니다.

중심인물을 잡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은데, 소설에서 중심인물은 제시된 상황완결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시로 18수능「사씨남정기」를 가져와 봤습니다.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고 가정하고 독해해 봅시다.


왕비가 웃으며 말했다. “부인이 이곳에 오긴 오겠지만 아직 때가 멀었소. 남해 도인이 그대와 인연이 있으니 잠깐 의탁하게 될 것이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니라.” 사 씨가 여쭈었다. “남해라면 바다 끝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첩에게는 탈 것이 없고 돈도 없는데 어찌 갈 수 있겠나이까?” 왕비가 말했다. “조만간 길을 인도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조금도 염려 마라.” 이윽고 좌우에 앉아 있는 부인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위국 부인 장강, 한나라의 반첩여 등이 있었다. 사 씨가 다소곳이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뜻밖에도 모든 부인님의 얼굴을 오늘 뵙게 되니 크나큰 영광입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읽어 봅시다.


드디어 하직을 하고 여동의 인도를 받아 내려오는데, 걷었던 주렴을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이 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니 유모와 시비가 부인이 깨신다 하고 부르거늘 사 씨가 일어나 앉으니 이미 날이 저물었다. 멍한 정신이 한참 만에야 진정되었다. 입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왕비께서 하시던 말씀이 뚜렷했다. 유모에게 물었다. “내가 어디 갔다 왔느냐?” 유모와 시비가 대답했다. “부인께서 기절하는 바람에 소인들이 간호하여 이제야 깨어나셨는데 어디를 가셨단 말입니까?” 사 씨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다 말하고 대나무 수풀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히 저 길로 갔다 왔으니 어찌 꿈이라 하리오. 믿지 못 하겠다면 나를 따라오라.”


살짝 알겠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모든 사건이 ‘사씨’ 에게 일어나거나 ‘사씨’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사씨’에 초점을 두고 좀 더 읽다 보면 첫 문단을 독해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고, 마치 미괄식 비문학 지문과 같이 후반부에서 얻은 단서로 글 전체가 매끄럽게 독해됩니다.


문제를 풀 때는 비문학에서 논지와 직결되지 않는 선지를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씨’에게 주목하지 않고 ‘유모’가 뭘 어쨌다느니 하는 선지는 정답일 확률이 낮으므로 “어 진짜 그랬었나?” 하고 글을 찾아보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다른 선지 먼저 확인하면 됩니다.


주제와 문제를 연결하는 좋은 문학 지문의 예로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된 「느낌, 극락같은」을 들 수 있습니다. 본문을 싣지 않았으므로 기출문제를 보면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초반부에서는 두 인물 간의 갈등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마지막을 읽으면서 이 글의 주제는 예술은 형체보다 의미,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뭐 대충 이런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운 글은 아니지만, 문제를 푸는데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의 주제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인물은 ‘서연’이지만, 글을 전개하는 중심인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조숭인’입니다. 글에서 ‘조숭인’의 역할을 살펴봅시다.

도입부에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며 글을 열고, 그의 대사가 나올 때마다 장면의 전환이 일어나며 주제를 환기합니다. 주제를 중심으로 읽다가 ‘조숭인’이 중요하다는 걸 파악했어야 한다는 것이 출제 의도인 것이죠.

실제로 해당 지문과 함께 출제된 모든 문제의 정답 선지가 ‘조숭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해석이 되지 않는 시어는 넘기고, 해석이 되는 것만 이용해서 시가 주는 느낌을 파악합니다. 

시가 지문만 봐서는 전혀 해석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의 를 비문학 지문처럼 독해한 뒤 시를 의 비문학 지문의 예시처럼 독해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문만 보고 어떻게든 독해가 가능한 시는 대부분 를 먼저 읽으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기여할지 몰라도 정작 풀어야 하는 문제의 정답으로부터는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2019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 출제된「우포늪 왁새」의 경우, 제대로 독해하지 않았다면 의 마지막 줄과 ⑤번 선지의 내용이 겹쳐 옳은 내용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작품을 제대로 독해한 뒤 작품과 연결하여 판단했다면 쉽게 정답을 고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학에서 출제되는 표현상의 특징을 묻는 문제의 선지는 보통 “A를 통해 B를 하고 있다.”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제를 풀면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B입니다.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B가 전혀 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A를 판단할 필요 없이 정답일 가능성이 낮은 선지이므로 일단 넘어가고 다른 선지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화법과 작문입니다. 19수능의 화법과 작문 파트의 현장 체감 난이도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막상 오답률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화작을 풀면서 받는 스트레스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화작 10분컷 내야 시간이 안 부족하다’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문학 하나 더 맞춰봤자 화작을 틀려버리면 어차피 점수는 똑같기에, 일단 화작을 틀리지 않는 것이 고득점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비문학은 잘 풀면서 화법과 작문을 자꾸 틀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비문학과 화작 문제를 풀 때 다르게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화작은 논지가 주장으로, 세부 내용이 근거로 바뀐 비문학 지문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비문학을 풀듯이 차근차근 독해하면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능 국어 실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순서대로 모두 풀기보다는 80분 내에 45문제 중 아는 문제는 모두 맞춰야 한다는 마인드로, 조금 모르겠다 싶은 문제는 일단 과감하게 버리고 시험지의 마지막 장까지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지문이 아니라 문제를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난도 지문이라도 딸려오는 서너 문제 중 한두 문제는 반드시 쉽게 출제되므로, 못 풀 것 같고 풀어도 오래 걸릴 듯한 문항만 건너뛰면 심리적 압박감도 훨씬 덜합니다.

건너뛴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막상 수능 시험장에서는 한 문제 틀리는 게 정말 두렵고, “10초만 더보자 10초만! 그럼 보일거야!”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기에 시험장에서도 초연하게 고득점을 받아낼 수 있으려면 충분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도입부에서 말씀드렸듯이 최근 3개년 기출 문제를 정말 많이 반복해서 풀어보시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연습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시험장에서 익숙하게 풀어낼 수 있으려면 최근 2~3년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출제한 전국연합 학력평가(3월, 10월) 문항들 및 실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모는 분석을 위해서가 아닌, 80분 동안 처음 보는 글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모 시험지와 이미 여러 번 본 기출 시험지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야 합니다. 실모를 푼 뒤에는 출제 의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내가 어디서 시간을 뺏겨서 시간이 부족했고 틀린 문제는 왜 이렇게 생각해서 틀렸는지를 정리하고 사고 과정을 점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지문을 접했을 때 틀리는 문제가 있다면, 기출분석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게 아닐까요? 독해의 감을 유지하고 자신감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실모는 기출과 항상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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