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 쪽지

2017-12-29 02: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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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 16수능 삼반수, 그 뒤 (1) -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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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퇴실하셔도 좋습니다."



고사장에서 퇴장해도 좋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지겹고도 지겹던


16학년도 수능도 이제 막 끝났다.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메고서


고사장을 나선 나는


시험장 옆에 있던 고척돔을 지긋이 바라봤다.



"내가 저 고척돔을 야구 때문에 아니라 수능 때문에 처음 보다니..."



내 처지가 무언가 묘했다.



다시 한번 자조적인 표정으로


나 자신을 지켜보다가


교문을 나서 바로 택시를 잡았다.



"에휴... 버스 여러개 갈아탈 기운도 안 난다. 그냥 택시나 타자."



택시 안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나는


4개월 동안의 날들을


잠시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아... 이건 정말 못할 짓이었다."



꺼져있던 휴대폰을 키고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아... 채점 망해서 복학뜨면 대학원 테크트리 타야하니... 학점 열심히 따야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영 잘 봤을듯한 느낌은 안 들었다.



가뜩이나 못하던 영어에서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버린 채로


남은 몇 분 동안 분투를 하다가


"에라이 그냥 대충 풀고 대충 찍자."


하며 반쯤 포기를 했던 기억도 기억이었지만



생명과학I에서 괴랄한 난이도를 마주하고서


"이건 버티기만 해도 이긴다..."


하면서 사투 아닌 사투를 했던 기억도 기억이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 봤을거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 내가 이런 짓을 다시는 하나봐라."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등장하면서 남긴 말이었다.



수고했다는 말과


진짜로 복학할 예정인지 묻는 질문


(포기 뉘앙스를 글이나 댓글로 많이 남기긴 했었다.)


다이어트 했냐는 질문(...)


설마 오늘 수능 봤었냐는 질문 등



내 근황과 관련된 지인들이나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었다.



그 댓글들을 보고서


"그래...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했던 것일까. 다시는 딴 생각을 품지 않아야지."


하고서 대학원까지 그대로 


스트레이트로 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그럴줄 알았다.




2. 



택시 안에서 같이 수능을 봤던 동기랑


카톡으로 신나게


영어를 욕하고 생2도 디스하고


생1에 대해서 한탄한 다음


집에 도착한 나는



잠깐 그저 멍이나 때리면서


인터넷이나 끼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몇십분 동안 인터넷을 하던 중


"기왕 복학하더라도... 돈 내고 본 시험인데 점수 정도는 알아야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없는 과목들이 산더미라


가채점표를 채점해보긴 싫었지만


그래도 시험을 본 이상 채점은 해보는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노트북을 키고 채점 사이트로 이동했다.



"나는 빠른채점이 좋아. 한번에 결과가 나오잖아."



하나하나 채점하는 것은


하나씩 틀릴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냥 한번에 채점을 돌려보기로 결정했다.


복권 긁는 느낌도 나고 좋으니까 말이다.



"무난하게 다 푼 수학부터 채점해보자."



일단 초장부터 기분이 나빠지긴 싫었으니


제일 확실한 수학부터 채점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답안을 모두 입력하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후..."



눈을 감고 클릭했다.



"눌렸나?"



눈을 떴다.


100점이었다.



"작년에도 수학은 100점이었지..."



15수능 수학B형의 경험도 있었기에


그냥 이번에도 쉽게 나왔거니...하고


그저 생각을 멈췄다.


(1컷이 100 나올줄 알았다.)




3.



곧이어 첫번째 대망의 과목 차례가 되었다.


국어였다.



작년에 국어에서 통수를 맞았던


악몽도 있었고


9평에서 망한 기억도 있었기에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거 망해도 복학이야...복학이야...괜찮아...괜찮을거야..."



자기합리화 주문을 수없이 걸고서


국어 답안을 겨우겨우 입력했다.



눈을 딱 감았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인생은 한방이야. 누르자!"



눌렀다.


살포시 눈을 떴다.



98점.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당장은 복학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


아니, 어쩌면이라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과목들이 산더미였다.


영어와 생1


그 과목들에 따라 내 운명도 달렸다.




4,


영어 답안지가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았다.



문제는 빠른채점 서비스가


갖춰지려면 7시 가까이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 이걸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빠른채점을 포기하고


직접 답안지를 찾아 하나하나 채점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나는 영어바보다... 영어바보다... 좀 틀려도 이상 없을거야..."



다시 또 자기최면을 수없이 걸고서


가채점표에 적힌 답안을 하나하나 채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듣기는 전부 맞았다.


"후... 수능장 듣기가 느리게 나와서 망정이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


독해문제 답안도 연이어 채점하기 시작했다.



빈칸문제로 가자마자 하나가 스크래치 났다.


"아이고 시인이여!"


마음은 아팠지만 어쩌겠는가.


3점문제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간접쓰기 문제로 가자마자


2연속으로 문제가 스크래치 났다.


3점문제 하나와 2점문제 하나.



"......여기서 내 복학이 결정되는건가"



다시 채점을 이어갔다.


다행히 뒷 문제들은 모두 맞았다.



92점이었다.



곰곰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국어랑 수학은 무조건 1등급일테니... 영어가 2등급이라면... 논술은 일단 몇개 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탐구를 아주 망하지 않는 한... 일단 당장 복학은 아니다."



드디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1만 잘 나온다면


이제 본게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 말이었다.



이제 관건은 탐구영역이었다.



복학을 준비해야 할지


수시 한두 개만으로 승부해야 할지


정시도 쓸 수 있는건지


그 모든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었다.




4.


과학탐구영역 답안지는 늦게 나왔다.


그동안 인터넷이나 보고


유튜브나 끼적거리다가


고등학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시험은 어떻게. 채점은 했나?"


"영어까지만 나왔음."


"국영수 결과는 어떻게?"


"국어가 98이고 수학이 100, 영어가 92점 정도?"


"오... 완전 잘봤는데?"


"아... 근데 막상 이러니까 영어가 또 아쉽다. 만약 영어만 잘 봤어도 아... 개 아쉽네."


"야야. 시험에 If가 어딨냐. 나도 그 If면 국어 몇개만 더 맞았어도 서울대 모든 과 프리패스인데. 일단 넌 최선을 다했고 아쉬워 할 필요가 없는거야. 너무 If에 얽매이지는 말자. 누구나 한 문제만 더 맞췄으면 하는 If는 있는 법이야."


"그게 맞겠지. 내가 여기서 한 문제를 더 맞췄다면 또 다른 한 문제를 아쉬워했겠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복학 확률이 점점 낮아지니


몇시간 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일단은 적어도 당일날이니


'한문제'라는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쓸데없는 미련이니까.



아무튼 8시가 넘어서


과학탐구 답안지가 나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채점을 시작했다.



5.


제일 먼저 채점한 것은


생명과학2였다.



역시나 내가 1등급이라고


수학 다음으로 자신한 과목이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11번... 2점 까비"



18번은 풀어서 맞추고


20번은 두 선지 중 하나로 찍어서 맞췄다.



48점이었다.



"아무리 생2가 미쳤다지만... 그래도 48점이면 1등급이겠지."



적어도 생2는 1등급이 되리라 생각하고


마지막 남은 관건인 생1을 채점하기 시작했다.



2페이지에서 3페이지로 넘어가자마자


서서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어... 이렇게 틀리면 안 되는데..."



3점... 2점... 2점...



총 7점이 깎여서


43점이 나왔다.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고


어려웠었다지만 


탐구 한 과목에서 7점이나 깎였다는 것은


나에게 그동안 화학I에서 겪었던


그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하... 화학I에서 2~3등급 뜨는게 그렇게도 싫어서 생명과학I으로 갔던만... 정녕..."



15수능 생명과학II 때의 그 등급컷이


재림하지 않는 이상


탐구에서의 타격은 크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1컷 40초반대는 그냥 그저 생2가 미친 과목이라서이지


생1마저도 미친 과목이 되었을 줄은 그땐 몰랐다.




6. 


곧이어 엄마가 오고


한바탕 논쟁이 시작되었다.



"탐구 43점? 그건 잘 봤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니..."


"이거 43점도 1등급 컷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요."


"설마 1등급 컷이 그것보다 더 낮게 나오겠니?"


"생2가 그랬었잖아요. 그때 1컷 처음에 39 나오고 복수정답 인정되고도 42점 나오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1등급 컷은..."


"보면 알죠."


"그건 알아둬라. 1등급 3개 못 맞추면 볼 수 있는 논술 확 줄어든다."



이렇게 등급컷에 대해 한바탕 논쟁을 하던 중


예상 등급컷들이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아 일단 이런 의미없는 논쟁말고 등급컷부터 보고 다시 말하죠."



국어랑 수학부터 먼저 살펴봤다.


각각 95와 96이 예상 1컷이었다.



"아... 영어 이번에 쉬웠으면 어쩌지... 내가 영어를 제일 못하는데..."


불안감을 가지고서 영어 등급컷을 봤을 땐


93~94 정도가 예상 1컷이었다.



"오...?"



생2까지 1등급인걸 확인하고


생1의 1컷을 확인할 차례였다.



예상 1컷이 39~41 정도로 잡혔다.



"...어?!? 내가 43점이니까... 1등급?"



그 15수능 생2에서 봤던 등급컷이


16수능 생1에서 똑같이 재림한 것이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그 1컷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7.



설마설마 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난 순간


한 몇분 동안은 생명과학I 1등급 컷만 보면서


허허... 하고 웃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러다가 멘붕 아닌 멘붕을 끝마치고


먼저 등급부터 추산해보기 시작했다.



11211.



의대 논술 최저등급인 1등급 3개를


만족하는 성적이었다.



"잠만... 이정도 성적이면..."



수시 최저 만족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시로도 의대를 무난하게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


사상 처음으로 나온 것이었다.




"엄마. 이제 끝났어요."


"생1 등급컷이라도 높게 나와서 최저라도 끝났니?"


"아니. 잘 들어봐. 일단 논술은 전부 볼 수 있어요."


"진짜?"


"네. 생1 1등급 컷이 진짜로! 뻥 안 치고! 39에서 41! 그니까 나는 43! 1등급이라고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져도."


"39에서 41? 어지간히 어려웠나보다..."


"그런데 논술은 부차적인 문제고 제일 중요한게 있어요."


"뭔데?"




"정시로도 의대를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 나왔어요."





계획이 


단 몇시간 만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1월과 12월의 모습이


정반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계속 -


(11월과 12월 내용 정도만 담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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