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주의] 국어 42번 문제 이의제기에 관한 추가의견입니다.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19282023
※ 해당 내용은 논리학/논리철학/가능세계 의미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반론들이 추가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원래 국어 42번에서 선지 3번도 복수정답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복수정답 인정 여부를 떠나서 이 문제 자체에 매우 심각한 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금 발견한 내용인데, 논리학 영역을 벗어나는 논리철학적 문제인 것 같습니다. 출제자가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해당 문제의 풀이 자체는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해당 문제는 가능세계 의미론과 전통/현대논리학에서의 정언논리 체계라는 매우 복잡한 논리학/논리철학/언어철학적 개념을 다루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제시문과 해당 문제를 모두 읽어보시고, 문제에 대한 이해황님의 최초 이의제기와 souvenir님의 반론의 내용을 모두 파악해야 이 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http://dotheg.com/221400173453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최초로 이의를 제기하신 이해황님의 주장과 souvenir님의 반론이 모두 맞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일단 42번의 는 다음과 같은 두 명제가 반대 관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P: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 (전칭긍정명제-A) 기호화하면 (∀x)(Ax→Bx)
Q: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 (전칭부정명제-E) 기호화하면 (∀x)(Ax→~Bx)
반대 관계란 의 설명처럼 두 명제 다 참인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둘 중 하나만 참이거나 둘 다 거짓인 것은 가능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떤 선지든 를 이해한 것으로 적절한 선지가 되려면, 되려면, 해당 선지에서 주어진 해석에서 반대 관계는 반드시 성립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당 정언명제를 이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미 논의된 전통논리학적 관점과 현대논리학적 관점입니다. 먼저 전통논리학적 관점에서는,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는 문장이 참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가능세계의 논의영역에 한 명 이상의 학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는 이해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고 인용하신 책 『입증』과 다른 수많은 논리학 교과서에 제시된 것처럼 (∀x)(Ax→Bx)&(∃x)(Ax)로 기호화됩니다. 이를 ‘존재함축’이라고 합니다. 반면 부울 이후 현대논리학의 해석에서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는 문장은 이러한 존재함축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문장은 풀어쓰면 “임의의 세계에서 어떠한 대상이 학생이라면, 그 대상은 반드시 연필을 쓴다.”는 일종의 조건문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조건문에서 “임의의 세계에서 어떠한 대상이 학생이라면,”이라는 조건문의 전건이 거짓이면, 이 조건문 전체는 사소하게 참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 분량이 길어지므로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조건문은 (∀x)(Ax→Bx)로만 기호화됩니다. &(∃x)(Ax)으로 연결된 존재함축 부분이 빠진 것이죠. 이것이 전통논리학과 현대논리학에서 이 정언문장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반대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그 해석을 이 문제를 푸는 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문제의 요구조건인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논리학적 해석에서 바로 이런 경우가 발생합니다. 현대논리학적 해석은 존재함축을 하지 않으므로 논의영역이 공집합인, 즉 임의의 가능세계에 학생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허용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는 P와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는 Q 모두가 사소하게 참이 됩니다. 그런데 P와 Q가 모두 참이 되는 경우를 반대 관계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를 현대논리학적으로 존재함축을 배제하고 해석하는 것은 해당 문제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를 전통논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옵니다. 그렇다면 전통논리학적 해석에서는 P와 Q 사이에 반대 관계가 주어진 조건에 모순 없이 성립할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역시 우리가 검토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논의영역이 공집합인,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가능세계입니다. 아 그런데 전통논리학은 존재함축을 전제하므로 학생들이 한 명도 없는 가능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통논리학적 해석에서 주장하는 것은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는 명제가 참일 경우, 반드시 한 명 이상의 학생이 해당 가능세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명제가 거짓일 경우는요?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에서 이 명제는 현대논리학의 해석처럼 참이 아니라 주어에 해당하는 대상이 없어서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대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를 전통논리학적 관점에서 다시 검토해봅시다. 경우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1) P가 참이고 Q가 거짓
(2) P가 거짓이고 Q가 참
(3) P와 Q가 모두 거짓
(1), (2)는 당연히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P와 Q 중 하나의 명제가 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은 어떨까요? 두 명제가 모두 거짓이라면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는 허용됩니다. P와 Q중 최소한 하나가 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아니기에, 전통논리학임에도 불구하고 존재함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당 가능세계에서 반대 관계가 모순 없이 성립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해석을 선지 3번에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선지 3은 두 명제 중 적어도 하나가 반드시 참이라고 주장하는 선지이기에, 두 명제가 모두 거짓인 해석이 모순 없이 주어진다면 거짓이 되는 선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를 상상할 경우, 이 세계에서 P와 Q는 전통논리학적 해석에서 당연히 모두 거짓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는 존재함축을 하지 않으므로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를 상상하는 데 어떠한 모순도 없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에서는, 선지 3번의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쓴다.”와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는 두 명제가 모두 거짓입니다. 이상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해당 해석에서 어떠한 모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지 3번은 틀렸습니다. 이것이 사실 souvenir님의 반론의 요지입니다. (다만 자세한 설명을 위해 논리학적 개념들을 동원해서 길게 쓴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난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해황님의 예상되는 반론 (2)에 대한 답변입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한 해석은 전통논리학적 해석을 전제하되 존재함축을 전제하지는 않은, 학생이 없는 임의의 가능세계에서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제시문에서 주어진 가능세계의 완결성에 따라, 어떤 명제와 그 명제의 모순명제(기호로는 P와 ~P)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배중률이 어느 세계에서든 성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해석 하에서 모두 거짓이 되는 선지의 두 명제는 다음과 같은 명제입니다.
R: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쓴다. (특칭긍정명제-I) 기호화하면 (∃x)(Ax&Bx)
S: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 (특칭부정명제-O) 기호화하면 (∃x)(Ax&~Bx)
가능세계의 완결성에 따라, 배중률은 이 경우에도 성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쓴다.”는 I명제는 이 해석 하에서 거짓이고, 이 명제의 모순명제는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는 E명제입니다. 그리고 배중률에 따라 이 E명제는 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는 O명제 역시 이 해석 하에서 거짓이고, 이 명제의 모순명제는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는 A명제입니다. 그리고 역시 배중률에 따라 이 A명제는 참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A명제와 E명제가 동시에 참이 됩니다. 그런데 이는 의 처음 전제인 반대관계에 위배됩니다. 따라서 이처럼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는 의 조건에 위배되므로 이 문제에서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황님의 재반론입니다.
어,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여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해석은 전통논리학 안에서의 해석이므로,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에서 A, E, I, O명제는 모두 거짓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I명제와 O명제로부터 배중률을 적용하면, A명제와 E명제가 참이 되어 버립니다. 한 해석 하에서 동일한 명제의 진리값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제가 보기에 이 점이 이 문제의 진정한 난점입니다.
이것은 전통논리학이라는 한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논리적 모순입니다. 적어도 학생들이 없는 가능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전통논리학적 체계 안에서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배중률은 필연적인 논리 법칙이므로, 논리학 체계를 불문하고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인 법칙입니다. 그래서 동일률, 모순율과 더불어 이를 항진명제(tautology)라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세계에서 배중률을 적용하면 주어부의 대상이 없는 명제는 모두 거짓이라는 전통논리학의 해석에 문제가 생기고, 그렇다고 전통논리학의 해석을 유지하자면 학생이 존재하지 않는 해당 세계에서 항진명제인 배중률이 적용되지 않는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논리학 체계에서 전제하는, 한 명제의 진리치는 반드시 참 혹은 거짓이어야 한다는 ‘이가원리(principle of bivalence)’를 포기하고, ‘진리치 공백(truth-value gap)’이라는 제3의 경우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스트로슨(P. Strawson)이라는 20세기 초반의 언어철학자가 제안한 방법인데, 이 방법에 의하면 전통논리학 체계에서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 혹은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 같은 명제는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에서는 참도 거짓도 아닌, 진리치 공백에 해당합니다. 주어부에 해당하는 대상이 없으므로 참/거짓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치 공백에 해당하는 명제들 사이에서는 배중률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배중률은 P와 ~P명제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인데, 진리치가 공백인 명제는 그것에 대응하는 ~명제를 설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와 선지 3번은 모두 완벽하게 해결됩니다. 전통논리학적 해석에서 학생이 없는 가능세계를 상정하면 이 세계에서 A, E, I, O명제는 모두 진리치 공백이 됩니다. 그렇다면 A와 E명제는 진리치 공백으로 동시에 참이 아니므로 에서 전제하는 반대 관계 성립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I와 O명제 역시 진리치 공백으로 선지 3번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참이 아닙니다. 해당 명제들이 진리치 공백에 해당하므로 배중률이 성립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해당 명제들 중 어느 것도 P와 ~P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선지 3을 거짓으로 만드는 하나의 일관적인 해석입니다. 따라서 진리치 공백을 인정하는 이 해석을 받아들일 경우, 선지 3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명백한 오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해석을 엄밀하게는 전통논리학의 해석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논리학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명제의 진리치는 참 혹은 거짓 중 하나여야 한다는 ‘이가원리(principle of bivalence)’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이해황님의 이의제기와 souvenir의 반론은 모두 타당합니다.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어딘가에서 착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것은 문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전통논리학 체계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한계들 때문에 부울 이후의 현대논리학이 등장한 것이구요. 하지만 평가원이 과연 이러한 내용을 출제의도 혹은 오답 포인트로 제시할까요? 다만 어찌 되었건 현행 논리학 체계에서 의 조건들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선지 3을 거짓으로 만드는 일관성 있는 해석이 하나라도 주어질 수 있다면, 선지 3번을 복수정답으로 인정하기에는 (논리학적으로)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이 결론은 여러분들의 반론을 수용하여 수정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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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글자 이원준으로 깰끔하게 정리
이원준쌤이 뭐라 하셨어요?
이원준 메가스터디 국어 강사는 “보기에서 ‘반대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3번은 반대 관계가 아닌 모순 관계에 대한 선지이기 때문에 정답에서 제외된다”며 “오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반박했다.
뉴스에서 발췌용
이 뉴스 보도가 매우 이상합니다. 3번 선지는 반대 관계도 아니거니와 모순 관계도 아니고 소반대 관계입니다. 이것을 이원준 선생님이 착각하셨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전달 과정에서 보도상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음 이원준쌤이 복수정답ㅇㅣ 어려울거라 예상하셨단것도 아니라고 보시나요?
아니요. 이원준 선생님의 의견은 복수정답이 아니라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근거가 인터뷰 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막 3줄만
해당 내용과 별도로 이원준 선생님의 의견은 보도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선지 3번의 두 명제가 모순 관계여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선지 3번의 두 명제는 모순관계가 아니라 소반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올라왔던 42번 갑론을박으로 재수공부하면 국어 100점 씹가능?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평가원 답변을 기다려보죠 :)
‘이가원리(principle of bivalence)’를 포기하고,
‘진리치 공백truth-value gap)’이라는 제3의 경우를 허용하는 것이
엄밀하게는 전통논리학의 해석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문제에서는 <보기>에서 사용되는 논리학의 해석이
전통논리학의 해석 전체와 일치할 필요가 있음을 가정하지 않습니다.
<보기>에서 제시하는 것은 오직 A와 E가 반대관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논리학의 해석과 현대논리학의 해석을 혼용하더라도
그 사용으로 인한 논리 체계 내부의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각각의 경우를 모두 <보기>의 조건을 만족하는 가능세계로 볼 수 있습니다.
네, 그것이 가능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평가원의 입장에서 할 답변이라기에는 저도 매우 의아스럽네요. <보기>의 조건을 만족하는 임의의 가능세게에서 선지 3이 거짓인 해석이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선지 3은 거짓이기에, 오답 여부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과연 이러한 해석을 전제로 문제를 출제한 것인지는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저도 이런 근거로 문제를 출제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원 글이 내용적 측면에서 오류를 지적하는 글이라서 저렇게 썼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고등학생에게 3번 선지의 정오를 엄밀하게 판단시키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진리치 공백에 대한 반론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진리치 공백만이 ③이 틀렸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해석이라면, 학문적 논의와 별개로 평가원에서 복수정답을 인정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답변이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블로그에서, 또 이곳에서 수준 높은 논의를 이끌어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ebs 풀이에 3번이 명제 두개가 모순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틀렸다고 나와있고 아마 평가원도 42번 문제를 낸 의도가 3번선지의 두 명제를 모순관계인지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낸것으로 생각 됩니다. 게다가 종로학원장은 이번 수능에 오류가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한 데다가 기술자님께서 블로그에 말씀 하신 것처럼 푼 학생들도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정답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되네요
출제의도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기존에 제기된 반론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의신청 제도는 출제의도와 출제결과의 불일치 때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유튜브 영상에서도 답했듯) 저도 출제의도는 짐작하나, 이것이 실현될 때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3번 선지의 두 명제가 모순관계가 아니면
"가능세계의 완결성에 따르면" 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비약입니다. 이런 판단을 출제 의도로 냈다면 더더욱 오류라고 봅니다.
보기에 따르면
(가)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와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가 모두 참인 것이 가능하지 않다.
가 성립하고, 이는 가능세계의 일관성에 의해
(나)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와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가 모두 참인 세계는 없다.
와 같습니다. 그리고 3번 선지에서 부사절을 제외하면
(라) 어떤 세계에서든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쓴다"와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 중 하나는 참이다.
가 되므로, (나)로부터 가능세계의 완결성 조건을 사용하면서 보기와 윗글 내에서 (라)가 도출가능한지가 살펴볼 만 합니다.
이 때,
(a)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와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의 둘 중 하나가 참이고 다른 하나가 거짓인 경우가 가능하고, 또한 그 경우만이 가능하다.
가 가정된다면 "모든 학생은 연필을 쓴다"가 참인 세계는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가 거짓인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b) "어떤 학생도 연필을 쓰지 않는다"와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쓴다"의 둘 중 하나가 참이고 다른 하나가 거짓인 경우가 가능하고, 또한 그 경우만이 가능하다.
가 가정된다면, (나)는
(다)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쓴다"와 "어떤 학생은 연필을 쓰지 않는다"가 모두 거짓인 세계는 없다.
와 같은 말이 되고 이가원리를 가정한다면 이는 다시 (라)와 같은 말이 됩니다. 따라서 (a)와 (b)가 가능세계의 완결성과 보기와 윗글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무모순율, 이가원리, 가능세계의 완결성, 일관성을 모두 사용하면 (a)와 (b)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중 지위가 가장 애매한 것이 이가원리이지요.
여기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이가원리를 가정한다면 윗글과 보기로부터 3번 선지의 부사절 이후 내용이 추론됩니다. 따라서 논점은, 이가원리를 가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나 3번 선지의 "가능세계의 완결성에 따르면"의 역할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대학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가 원리를 포기하는 경우를 접해 본 적이 없다"
를 평가원에서 최소한 암묵적으로 전제했다고 가정한다면, 이 지문은 이가원리가 암묵적으로 가정된 맥락 하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윗글과 보기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된 가능세계들은
"다보탑이 경주에 있다"가 참인 가능세계
"내가 8시 기차에 탔다"가 참인 가능세계
"내가 지각을 했다"가 참인 가능세계
"모든 학생이 연필을 썼다"가 참인 가능세계
정도입니다. 윗글과 보기의 논리체계는 이런 유형의 명제에 개입해야 하지만, "학생이 존재한다" 꼴의 명제에도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Leokil님 말처럼 윗글과 보기의 논리체계를 전통논리와 현대논리와 유사하지만 동일하지는 않은 논리체계로 보고 있고, 이것이 보다 안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해당 논리체계에서 선지 3번이 맞다는(즉 복수정답이라는) 의견이신가요?
제가 보기에는 이가원리가 가정된 상태에서는 3번이 도출됩니다. 그리고 이가원리를 가정하지 않고 진리치 공백을 인정하면 3번이 거짓이 된다는 것은 인문학님이 잘 말씀해 주셨고요.
다만 평가원이 '이가원리를 가정하지 않으면 3번이 거짓이 되기도 한다'라는 대답하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학술적인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수험생의 상식적 추론의 범위라던가 등등등...) 그렇기에 3번이 답이 아닌 이유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평가원이 복수정답을 인정하여도 놀랍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출제 오류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저도 좀 긴가민가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다시 생각이 바뀔 수 있지만요...
여기에 추가하면, 엄밀하게는
(1) 임의의 P에 대해 "P or not P"가 참이다.
라는 것이 배중률이고
(2) 임의의 P에 대해, P가 참이거나 not P가 참이다.
라는 것은 배중률이 아닌데, 왠지 모르겠지만 수능 제시문은 (1)과 (2) 모두 배중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가원리를 함축하지는 않습니다만 좀 그렇기는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본문 내용에 동의합니다. 이상으로 이해황님과 제가 계속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가 얼추 나온 것 같네요... 아무튼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분 말씀이 모두 맞고 정답은 4번만 성립하지만 오답의 근거를 교과내적으로 판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원 정답 처리가 맞겠네요.
네. 해당 문제는 복수정답이 아니라 문제 오류로 인한 전원정답 처리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이가원리를 부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학생 입장에서 3이 거짓인 일관된 해석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가원리를 전제하고 3이 거짓인 일관된 해석을 도출한다면 가능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해석은 도출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해야할 것은 '이가원리를 부정할 수 있다' '불완전성정리' 등의 사전 지식 없이 고등 과정만으로 3번 선지가 엄밀히 판단 가능한지에 대해 살펴봐야 하는데... 쉽지 않아보이네요
불완전성 정리가 이가원리를 반드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https://orbi.kr/00019305786 의 '4. 약간의 추가'에서 제시하신 논의에 대한 추가 의견을 밝혀 두었습니다.
현재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선지 3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가능세계의 일관성과 포괄성에 따르면'이라는 조건이 추가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순수한 완결성만으로 선지 3의 명제가 추론되지는 않으므로 3은 오답인 것 같습니다. (잠정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