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하다가 본 글인데 남자가 저랑 유형이 비슷한 듯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22050490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이블에 엎드려버렸다.
“뭐야? 사람이 사과하는데. 그렇게 반응하는 게 어딨어?”
“그건 사과가 아니잖아” 여자가 엎드린 상태로 대답했다.
“난 미안하다고 했어”
“미안하다고 해서 모든 게 사과는 아니지”
“그럼 뭐?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건데? 무릎이라도 꿇을까?”
“네가 그런 말을 할수록, 나는 네 미안하다는 말에 대해서 진정성을 느끼기가 힘들어”
“아, 그래? 그럼 어쩌라는 건지 제대로 이야기나 해봐. 진정성 있는 사과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말해보라고…”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과 기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에 질세라 한동안 퍼붓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잠깐 동안 엄청나게 커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하다가 이십 분쯤 지날 무렵에는 무척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아집과 맹목적인 분노를 발견했다. 또 감정에 못 이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잠시나마 가장 증오스럽고 추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남자의 변화를 아주 편안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났어” 마침내 남자가 말을 끝냈다. “너는 무슨 할 얘기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여자가 되물었다.
“응”
“나는, 음, 할 얘기가 별로 없는 걸. 네가 미안하다고 했고”
“이번에는 진정성이 느껴졌어?”
“응. 많이 느껴졌어”
“아, 모르겠어. 진정성이라는 건 너무 어려운 개념이야, 나한테는”
“그래?”
“너랑 이런 식으로 싸우고 싶지 않았어.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걸까? 나도 속으로는 내 잘못이나 결함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도, 막상 싸울 때가 되면 하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져. 싸우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의 말싸움에도 지고 싶지 않은 거지”
“그래. 그래 보이더라”
“그러니까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니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 같은 사과가 나오는 모양이야”
“그런 사과만큼 의미 없는 사과도 없지. 그건 자신의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거고, 상대방이 느낀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거니까. 당장의 상황에서 벗어나고는 싶고, 그런데 지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할 수밖에”
“나는 정말 바꾸고 싶어” 남자가 말했다.
“뭘?” 여자가 물었다.
“이런 내 성격 말이야. 부정적인 상황도 싫고, 타협하기도 싫은…”
“왜 바꾸고 싶은데?”
“왜냐하면, 그런 게 너한테 상처를 주니까”
“……”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얼굴이 꺼져있는 휴대폰 화면에 작게 비쳐 보였다.
“사실, 나는 이런 걸 바꾸고 싶어서 많이 노력하는데 말이야. 잘 안돼. 노력한다고 이런 것들이 다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이십 년 넘게 형성해온 성격 같은 것들이”
“노력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사람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지만, 어떤 것들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영원히 바뀌지 않아. 죽는 그 순간까지 그대로인 것들은 분명 있지.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그렇지, 난 그게 두려워. 내가 내 이런 결함을 영원히 바꾸지 못해서, 너처럼 좋은 사람을 내 곁에서 떠나보낼까 봐 두려워. 너는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믿어?” 남자는 거의 울먹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여자는 남자의 빨간 눈시울이며 검은색과 진한 갈색이 반쯤 섞인 눈동자, 흐르는 대신 속눈썹에 스며들어 반질거리는 눈물과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대답해줘. 바꿀 수 있을까?” 남자가 다시 물었다.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줄래? 노력하면 바뀔 거라고 해줘. 나한테 용기를 줘”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그런 게 영원히 바뀔 수는 없어” 여자가 대답했다. 남자의 깊은 곳에서 뭔가 쪼개져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럼 나는, 너와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겠네”
“세상에는 헤어지지 않는 관계도 없어.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언젠가는 헤어지는 거야. 어떤 형태로든”
“그럼 우리가 만나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어? 바뀌지 않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지? 네 말대로라면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라고. 안 그래?”
“아니, 아니야. 언젠가 헤어진다고 해서 모든 만남에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노력해서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이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지”
“무슨 소리야? 그게”
“언젠가 끝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 아무리 봐도 끝이 없는 영화를 상상해봐. 상영시간이 백 년, 아니, 무한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영화를 생각해보라고. 그런 영화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
“……” 남자는 왼쪽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래도 끝이 있다는 건 슬픈 거야”
“그래서 슬픔도 가치가 있는 거지”
“난 너랑 헤어지기 싫어. 그래서 노력할 거야. 노력해서 날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아니. 아무리 기다려도 바뀔 순 없다니까”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냥 이대로 받아들이라고?”
“계속해서 노력해야지”
“영원히 바뀌지 않는데도?”
“응. 바뀌지 않아도 나는 널 사랑해. 네가 내게 상처 주는 부분을 영원히 갖고 있더라도 사랑할 거야. 그걸 고치기 위해 영원히 노력한다면”
“아, 아”
“그래 줄 수 있니?”
“그래, 노력할게. 영원히 바뀌지 않더라도 노력할게”
두 사람은 말이 끝나자마자 껴안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남자가 이 대화를 기억해낸 것은 여자와 헤어진 지 십오 년이 넘게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아빠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딸의 얼굴에서 십수 년 전의 자신을 발견했다. 딸이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말없이 쳐다보다가, 가만있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소리에 입을 열었다.
“……네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메아리>, 2019. 3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기출 둘중에 하나 살건데 추천좀 해주십쇼
-
지금거의다끝난상황임다
-
억지로 문제 푸는건 가능한데 경계선 판단이 안됨; 그냥 이건 이러니까 되는것...
-
한과목만 맞추면 되고요 3등급 정도만 나오면 될 것 같고 투과목도 괜찮습니다
-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 메가스터디도 돈 안주는데
-
슈수퍼 레버기 1
모닝콜로 일어나놓고 추워서 다시 잠 아침으로 십원빵 먹기...
-
이거 믿는 옯붕이 있냐? 엄마한테 속은거임 저런거 티내면 개찐따같으니까 대학가서...
-
지거국 교수들은 7
근로자의 날 때 일 안하나요? 다들 공무원인건가?
-
작년의 나는 너무 멍청하게 공부 한 것 같다
-
성격,공부,인성 다 포함해서 외모 비중이 일반적으로 몇은 차지할까? 남친 된다는 조건 하에
-
n제 한 문제 몇 시간씩 박는게 좋은 학습법일까요? 4
n제 풀다가 한 문제 잡히면 끝까지 해설 안보고 풀려고 하다보니 2시간 3시간 훅...
-
사탐런 1
제가 완전히~ 그냥 쌩노벤데 이번에 재수하면서 교대나 지거국 공개 가는게 목표라서...
-
???: 언제 한 번 봐야지 집 들어가서 먼저 연락할게! 했는데 연락이 없음 아 ㅋㅋ
-
강박있는 나조차도 저건 ㄷㄷ ㄹㅇ 컨셉이길.....
-
7년간 우울증 약 먹은 예비신부 "예비신랑에게 말해줘야 하나요?" 3
결혼 전 예비신랑에게 과거 우울증 병력을 알려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예비 신부의...
-
197일만에 1
경기권 잡대->건동홍가본다 딱대
-
진짜
-
안넝 오르비 0
방가방가
-
얼버기 2
-
얼버기 0
고도의 노슬립은 얼버기와 다를 바가 없다
-
오.등.완! 0
중간고사 1일차임에도 6시 등교한 나 제법 성실해요
-
ㅇㅂㄱ 3
뒤지겠네
-
얼버기 1
음 악몽을 꿨네요....... 오늘부터 msi 시작하네요 상혁이형 ㅎㅇㅌ!!!!
-
시간참빠르네
-
아 개재밌네
-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제 세개 남았어"
-
잔잔 겜했다 통화하면서 겜한거오랜만..
-
생명과학 1등급, 기하 85점 화이팅!
-
컨디션이 더 안좋아졌네 에라이
-
다들 뭐함?
-
한국여행 유투브가 이렇게 재밌을수가....최고다
-
그냥 답을 확신할 수 없는 그 특유의 ㅈ같음이 너무 싫음 수험 과목으로서는...
-
생1)방추사 길이랑 세포분열이랑 무슨 상관 관계인가요? 2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 방추사 길이가 짧아지나요?
-
실검 꼬라지.. 2
과연 최상위권. 음음
-
내신 반영이야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왜 3년 예고는 밥먹듯이 어기는 거지...
-
'코로나19 게놈서열' 공개한 과학자…근황 '충격적'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게놈(genome·유전체) 서열을 전 세계에 처음으로 공개했던...
-
배고프네 3
저메추좀
-
얼버기 4
반갑습니다
-
지금 파데 수1수2미적하고있는데 이거하고 킥오프 쎈 기생집2,3점 짱쉬운/짱중요하고...
-
어제 입시전형 떠서 대충 교과점수 계산해보니 47.5/50 나옴 2024 입시...
-
ㅈㄱㄴ
-
옷 샀다 오예 0
-
★[5/12 영어노베 무료특강!]★ 말이됨?! 수능날, 주제를 안 잡고도, 주제&빈칸 모두 맞추기 가능하다고!? [노병훈 EGON 영어강사] 0
안녕하세요 오르비 학생 여러분 :) 5월 12일 무료 오르비 특강으로 [FOR...
-
앙 ㄱㅁ찌
-
맨날 나만 그럼? 이불 싸매더라도 그게 훨나음 ㄹㅇ
-
국힙원탑 3
-
병원 이름은 침대라네여 옵붕이들은 지금이라도 주무시길... It's time to go to bed
-
이투스 환급 들어왔네 12
개꿀
-
안가람쌤… 4
공통 듣고있는데 미적분도 듣고싶어서,, 미적반에 수1,2랑 공통반 수1,2 아에 안...
??? : 미안해
??? : 뭐가 미안한데?
앗...
고집이 엄청 세네요
네
저런사람 만나면 상처 많이 받을것같아요.
남자주인공 엄청 슬픈게 눈에 그려져서 짠합니다
ㅠㅠ
세상이 냉정하긴 하지만 저 여주인공처럼
냉정하고 냉랭한 사람이 연인이라면 사랑을 받자고 하는건지 상처를 받자고 연애하는건지 괴로울겁니다.
저런사람들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