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세레비✨ [541907]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9-05-01 21: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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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현강을 다니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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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3일.


스타강사의 사회문화 현장강의를 들으러 간 날.

동시에 재수생활을 처음으로 하게된 날. 동시에, 자취를 처음으로 시작한 날. 그와 동시에, 추위와 꽤 헤매이며 싸우는 밤을 맞이해야 했던 날.


그 날을,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대전 촌놈 티 안내려, 큰 짐을 가득 싸들고 자연스레

회기역에 내렸다. 그 역 1번 출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내가 당분간 지내게 될 자취방이 있었다.


그곳에 대략적으로 짐을 풀고, 기대되는 심정으로

대치동에 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엔 길을 찾지 못하면 어떨까하고,

GPS가 켜진 스마트폰을 들고 학원을 찾았다.

마침내, 스타강사의 실물을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와 동시에 기대가 되었다.


이 동네에서 공부만 하면, 나도 미래 세대의 아인슈타인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이 교만하든, 교만하지 않든, 나는 그 때의 감정을 그대로 서술하고 싶을 뿐이다.)


모든 것이 잘 될 터였다.

경쟁력 있는 공간, 경쟁력 있는 최고 강사, 열의있는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집합체. 나는 그 곳에 조화되어, 그네들의 흐름대로따라가기만 한다면, 안 될 것은 없었다.


인강에서는 일주일 뒤에 올라올 강의를,

나는 퍼즈 버튼이나, 이어폰 착용 없이 그것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상대적 ‘우월감’을 느꼈다.


재수생활의 처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불안감과 좌절감을,

나는 실제로 그것들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현우진 선생님을 실물로 뵙는걸.

-그래도 나는 이지영 선생님 싸인을 개념교재에 받았는걸.

-그래도 나는 조정식 선생님의 아주 좋은 현장자료를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걸.

-그래도 나는 심찬우 선생님께 ‘공주’라고 불려보기도 했는걸.


그래, 위로 내지는 정신승리의 실체는 저런 형태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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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수생활을 거쳐 오며, ‘대치’에의 동경은 점점 혐오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인식은, 대치동 버거킹에서, 새치기를 하는 학부형들을 

볼 때 왔다.


 그 인식은, 3초면 마감되는 스타강사의 ‘현장 좌석예약’ 속도를 볼 때 왔다. 


그 인식은, ‘은마 사거리’를 지나면서

수 많은 청춘들이 아파하고, 그러기에 이름모를 누군가를 증오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왔다. 


그 인식은, 250명이 들어서 있는 공간에서 내가 사람이 아니라, 부품처럼 대해질 때 왔다. 이를 테면,


-학생 136번 교재요. 이 쪽 앉으시고, 가방 옆 자리에 두지 마세요. 시험은 1교시 끝나고 10분 휴식 후에 보겠습니다.


그래, 그 깨달음이란 도처에서 왔으며, 역설적으로

필연적으로 내게 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


나는 그 혐오감으로 인해서, 스타강사들의 종강 날, 대치동에

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종강을 맞이해서 마지막으로

강사님들께 드릴 편지와 선물을 준비할 제, 나는 내가 왜 ‘대치’를 동경했는가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기 시작했다.


갈 수 없었다.

재수생활을 완벽하진 않지만, 온전히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강사들의 멋있는 말투, 패션, 철학, 센스, 능력이 아니었음을

마지막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들에게 배운 것이라곤, 안타깝게도, ‘수능적 지식’ 밖에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네들은 아주 훌룡히 ‘내가 돈을 내야하는 이유’를

정당화 시켰다. 그 분야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아주 열심히,

체계적으로 전달해주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내가 왜 ‘대치동’에

존재하게 되었고, 이 곳에서의 동경이 혐오감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 물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 쓰고 버리는 참고서 같은 존재. 

대학에 가게 된다면, 잊어 버려도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

그들은, 내게 그들을 그렇게 치부하도록 요구했다.


수능적 지식이 재수생활의 전부이며, 본질일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 임을 증명하고자 재수생활에서 끝 없는 자기기록을 해왔던 것인데, 나를 가르쳐준 이에게 

1년간 생활해오며 나름 정리해왔던 그 답안의 정답여부를 들을 순 없겠다 싶었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로 남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한다면,

매우 적당한 표현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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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심찬우의 종강은 갔다.

이 사람의 강의에서 내가 얻은 것은 ‘수능적 지식’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 사람이 내게 준 것이 있다면, 매우 특별한 의미에서의

삶의 정의였고, 나만의 색깔이었다.


또한, 나는 그 사람에게 마지막 종강 날,

내가 내린 그 답이 정답이었음을 확인 받았다.


실제로, 40-50명이 듣는 교실에서

종강하고 잠깐 둘이 보자는 얘기도 먼저 들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공감콘서트에서 ‘포옹’으로

그 질문의 답을 위한 다소 몽환적이기도, 절망적이기도 했던

여행은 그렇게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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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활에서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나’에서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토즈 독서실에 앉아, 구호소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먹고

있는 찬우를 ‘읽으며’ , 어린 시절 황망히 도둑질을 하곤 했던

‘나’를 그려내는 것이 그 예.


불을 끈 고시원 방 안에서, 오늘 내가 느꼈던 슬픈 감정은

도대체 어디메서 온 것인지, 차근차근 정리해보고, 그 과정에서 한 줌의 눈물을 터뜨리는 것이 그 예.


나를 이제껏 잘 길러와준 고마운 부모를 문득 인식하게 되고,

그네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 남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이내 다시 펜을 잡으려 발악하는 것이 그 예.


대치동에서는, 저런 예를 늘어 놓는다면,

나는 병신새끼인게 뻔할 것이다. 그래서 가지 않는다.

나는 내 행복을 찾아 대치동이 아닌, ‘깊은 나’로 방향을

틀겠다. 그것이 내 삼수생활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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