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ㅜㅗ초 [882156] · MS 2019 · 쪽지

2020-03-02 03: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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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64>100 반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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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집에서 할것도 없고 그래서 미루고 미뤘던 합격수기를 쓸것이다. 아마 이게 마지막 오르비 접속일 것이다. 

이렇게 글쓰는거 처음이라서 필력 이해좀...


일단 나의 현역생활부터 말하자면 나는 자사고에서 내신 4등급대, 생지러이고  공부에 손을 땐것도 아니고 그냥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 였다. 


현역떄 나의 꿈은 건동홍이었다. 나쁘지않은 평범한 대학에 들어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2019 6월 수가 64점을 맞았다. 눈물이 나왔다 .건동홍도 못갈 점수였다. 9평에는 23212가 떳다. 항상 수학이 문제였다. 


수학문제들을 보면 그냥 토쏠리고 어지럽고 그랬다. 6평의 트라우마인걸까? 

수능은 14212가 떳다. 수학이 개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동홍 공대를 갈수 있어서 갔다.

나는 거의 50일전에도 매일 피방을갔다.  지금생각해보면 건동홍공대를 갈수있었던게 기적인것 같았다. 


그렇게 대학교를 들어갔다. 하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학교에 대한 열등감과 대학생활에 기대가 너무 컸었던 탓일까? 실망감이 컸다.


계속 반수 고민을 하던도중 결정적인 계기가 2개가 생겨 반수를 시작했는데, 첫번째는 꿈이 생겼다. 나는 꼭 수의사가 되어야만 했다. 두번쨰는 친구의 말이었다. 걔가 말하길 내가 지금 반수안하면 내가 평생 자기를 만날떄마다 '아 그떄 반수했었다면' 징징댈꺼라고했다. 후회 하고 싶지 않았다.


쩃든 대학교에 수특을 들고 다니면서 대충 거의 다 풀었다. 놀꺼 다놀면서 공부를 했다.


근데 5개월동안 재충전을 해서 그런가 2020 6평을 봤는데 국어를 95점 받았다. 여전히 수학은 문제였다.


6월이되고 나는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기숙학원에서의 일주일은 정말 자살하고싶었다. 맨날 2시기상이었는데 6기상이라니. 그리고 하루종일 앉아있으니까 너무 좀이 쑤셧다. 그리고 첨보는 사람과 옆에서 잠을 자는것은 생각보다 훨씬 미친짓이다. 걔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거슬려서 잠이안온다.


그래도 그런 생활을 계속하니까 사람이 변하긴 하더라. 취미가 겜,축구,술에서 독서로 바뀌었다 ㅋㅋㅋ. 게다가  시를 자주 썻다.  시를 쓰는 것을 많이 추천한다. 나는 내가 쓴 시를 보며 맘을 계속 다 잡았다. 안 믿기겠지만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다 끝난 지금 그떄의 진정성이 담겨있는 시를 볼떄면 괜히 울컥하고 그런다ㅋㅋ. 


기숙에 있으면서 수의사에대한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렇게 기숙에서의 한달이 훅 지나가 버렸다. 근데 가면 갈수록 선생님들의 노가리시간이 너무 늘어난다. 나는 반수생이여서 1분1초가 급했다. 남들 다 5개월에 걸쳐 끝네는 드리블 12를 난 한달만에 해야만 했다. 


그래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냥 뛰쳐나왔다. 나오면서 담임이란 작자한테 별의별 악담을 들었다. '니가 나가면 성공할꺼 같에? 내가본 지난 학생들로 봤을떄 절대 못해 독재하지말고 그냥 재종이라도가' 이 분은 나가는 날까지 만류하더라.ㅋㅋ 엄마 아빠도 나한테 실망한 눈초리였다. 그것도 못 버티고 나오냐는듯.....너무 억울했다. 놀려고 나간게 아니라 공부하려고 나가는거였다. 나는


난 그 분함과 억울함으로 독재학원에 들어가서 증명하려 진짜 열심히했다. 독재학원은 자리가 없어서 메이저가 아니라 집앞 구석에있는 학원이었다.  예상보다 더 꾸졌다. 학생들중에 예비군형님들도 많고 담배냄새가 지독한 아주 그런 학원이었다.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독재학원은 기숙학원만큼 지옥이었다. 기숙은 친구들이라도 많지 독재는 철저히 혼자였다. 이게 진짜 정신병이 온다. 평소에 난 혼밥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정말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다. 이렇게 힘들떄는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는게 정말 중요하다. 기분 좋은걸 생각하고 집에 올떄 밤풍경들을 보면서 견뎠다.


정말 독재에서 독하게 살았다. 6시에 일어나 단지내 헬스장을가 1시간뛰고 8시까지 입실한다음 11시까지 공부했다.

지금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생활이다. 그래도 몇번하더니 되더라. 습관이 이래서 무섭나보다 ㅎㅎ...

그리고 멍떄릴떄마다 '너지금 뭐하는중이야'를 되뇌었다. 이건 김동욱 선생님방법이다ㅎㅎ. 도움이 정말 마니 된다.


수학은 배성민선생님을 들었다. 배성민선생님의 강의가 나한텐 정말 딱 맞았었다. 한 강의 들을떄마다 신세계였다.

현역떈 뭘공부한거지 생각이 들정도로 모든 내용이 새로웠다. 배성민 선생님은 딱 수능을 초점으로둔 강의였다.

내신같은 증명, 엄밀 이런거 다 개나줘버리고 오로지 수능을 위한 알고리즘이 좋았다.  신기하게 수능 수학에도 패턴이 있더라. 거의 다 그냥 '이거 물어볼거야~' 하고 내는 기분이 었다. 


(빌드업, 뉴런) (드리블 12, 클맥)  (기출을품다 ,카운터 어택) 이렇게 공부했다. 이것들을 4개월 만에 끝냈다. 정말 전깃불에 콩 볶아 먹었다.  수학문제를 풀떄 한문제를 풀더라도 이 문제에서 뭐라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마인드가 정말 중요하다. 쉬운 문제라도 나는 뭐라도 얻을려고 고민했다. 이게 도움이 많이 된거 같다. 수포자였던 나는 거의 모든 문제에서 꺠달음을 얻었다.  


또 수학은 정말 양인거 같다. 그냥 계속 많이 풀면 전에는 껄끄러웠던 유형이 매끄럽게 풀려졌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약점 중심으로 열심히했다. 약점 보완이 정말 중요하다. 또 보완하는 재미도 있다.ㅎㅎ


그리고 정말 중요한건데, 모든 과목이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아 이거 절대못풀어'가 아니라 '이것도 못 풀면 수의대 못간다'라고 생각하고 난 멍청하지만 항상 나는 머리가 좋다라고 자기 최면을 계속 걸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려운문제도 일단 끈질기게 보게된다.


쩃든 9월평가원에서 나는 수가 96점을 맞았다. 2등급도 맞아본적도 없고 맨날 3등급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1등급,게다가 백분위 99를 받아버렸다. 21212였다 믿기지않았다. 한편으로는 우울했다. 수능떄 이점수가 나왔어야했는데.. 


수능날이왔다. 긴장이 전혀 되지않았다ㅋㅋㅋ. '그냥 망치면 돌아가지뭐~ 인생뭐있나~' 이 생각이었다. 수능장으로 가는 엄마차에서 신나는 노래를 틀으면서 신나게 리듬을타면서 갔다. 국어가 끝났다. 너무 잘본거 같았다. 수학이 끝났다. 더 잘본거같다. 정신없는채로 수능장에서 나와 채점해보니 31121 국어를 개망쳤다 ㅋㅋㅋㅋㅋ.


다시한번 국어에서 맨탈 안나가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쨋든 제목그대로 수가 100점을 맞았다. 백분위 99가 내인생에서 마지막일줄알았는데 백분위 100을 그것도 수능에서 맞을 줄이야. 연대 공대, 수의대 점수 라인이었다.  

나는 당연히 나의 꿈인 수의대에 입학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실감이 안난다. 그래서 최초합했을떄 기쁘기보다 그냥 어안이 벙벙했다. 


반수하기전에 내가 수의대를 목표로 반수한다 할떄 모든 친구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될꺼 같았다. 그리고 그꿈을 이뤘다. 힘들고 또 힘든 수험생활끝에 꺠달은게 하나가 있는데, 남들 말 듣지말고 '자기가 될꺼 같다'하면 정말로 된다. 이건 진짜 팩트면서 중요하다. 남들한테 '이거 될까요?' 이런것 물어보지말고 스스로 ' 왠지 할 꺼같은데?' 라고 

최면을 걸자. 


정말 파란만장한 2019년이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이렇게 다이나믹한 일년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든다.  마찬가지로 

가장 찬란해야할 20살을 책상위에서 보낸 재수생들은 그만큼 보상 받을 수있다 :)


필력이 그지같지만 꽤 진심을 담아서 썻다.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살자.

작년에 기숙에서 오르비를켜 이런 글을 보면서 마음을 다 잡고 희망을 가졌던것 처럼 

수험생분들이 내 글을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한번 사는 인생 다들 성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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