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때설대자랑 [368745] · MS 2011 · 쪽지

2012-09-19 18:12:51
조회수 4,397

광해 진실???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3073962


이번주에 볼거 없어서 광해 봤는데

국사 1등급이었는데 다 까먹어서 기억도 안나지만,,,,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예전 설민석 선생님 강의 듣고 공부해서 반가워서 봤는데

재밌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역사는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는 군요.
한번쯤 봐보면 좋을거 같네요.    http://www.etoos.com/teacher/event/2012/09/sms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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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식의흐름 · 309024 · 12/09/19 18:27 · MS 2009

    아마 조선의 세종, 영조 ,정조 비슷하게 훌륭한 왕이 광해였을지도. 국난의 상황에서도 외부로부터 백성을 지키고, 내부론 착실히 복구사업을 추진했으니 말이죠..

  • 나는한씨 · 33163 · 12/09/19 18:43 · MS 2003

    광해 넘잼있었어여 ㅋㅋ

  • rester · 69803 · 12/09/19 20:31 · MS 2004

    http://mirror.enha.kr/wiki/%EA%B4%91%ED%95%B4%EA%B5%B0

    왜란 당시 왕이 수도를 버린 것에 분개한 백성들이 궁에 불을 지를 때, 광해군의 집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부분이 인상깊네요.

  • 破乙 · 54101 · 12/09/19 23:48 · MS 2004

    지금 보고 집에 옴 ㅋㅋ

  • 비단물결레이 · 263575 · 12/09/20 00:46 · MS 2008

    선조가 진짜 개X임. 자기 친아들 광해에게 죽을때까지 믿음을 주지 못했음.

    자기 스스로가 방계 출신이어서 (친아버지가 왕이 아닌 케이스) 꼭 중전에게 낳은 대군을 왕위에 올리고 싶어했는지

    친아들 광해군보다 9살 어린 인목대비를 중전으로 삼은 뒤에 영창대군을 생산해서 두고두고 불화의 씨를 남기죠

    (진정 종묘사직과 왕권의 안정을 위했다면 애초에 친아들보다 9살 어린 젊은 여성을 아내로 삼지도 않았을것)

    애초에 광해군이 임난을 잘 극복한 능력을 경계해서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구요

    유영경같은 무리들이 끝없이 광해군을 저격하고 (자신의 정치생명을 영창대군에게 걸어서

    선조가 죽기 직전까지도 상소의 상소를 거듭해서 세자를 폐하고 영창을 세자로 옹립하라는 언플로

    선조를 끊임없이 선동하고 선조가 내린 교지(광해군을 왕으로 임명한다)를 숨겨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

    왕권흔들기에 대가- 후에 삭탈관직, 유배, 자결 이후 부관참시)

    결국 조선역사상 친국(왕이 직접 주관하는 형행자리)을 가장 많이 하게 되었고

    조선역사상 최악의 왕이라 손꼽히는 능양군에게 결국 왕위를 빼앗기는..

    능양군 이후 전부 왕이 능양군 후손이었기 때문에 광해는 조선사에서 두고두고 까이고 숙종 때에도

    노산군 ㅡ> 단종 공정왕 ㅡ> 정종으로

    묘호가 붙지만 연산은 원래 쓰레기였으므로 그 정당성을 잃어도 비교적 훌륭했던 광해군은 묘호도 못 붙이고 조선이 끝나고

    일제시대 때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중립외교가 부각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죠 참..

    R.I.P 광해..

  • 고승덕빙의 · 386966 · 12/09/20 07:07 · MS 2011

    역사에서는 아주 작은 하나가 결국에는 큰 변하를 일으키는거 같던데, 광해군이 계속해서 정권을 잡았다면 조선역사가 어떻게 됐을지도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