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당신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을 구박하지 마세요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4301408
글 쓰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bgm으로 깔아봅니다. 감성변태 유희열님의 스케치북입니다.
내일부터 2015 수능 재도전을 위해 등록한 도서실에 출근(?)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재수하기 전에 '다짐'을 위해 값싼 감성적인 글을 하나 써서 남겨둘까 했는데 살짝 다른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제 주제에 맞지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오지랖 넓은 재수생의 애교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엄밀히 말하자면 반의 반 정도밖에 맛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입시철 수험생들은 유형이 참 다양하구나를 느낍니다.
우선합격되어 편한 마음으로 계신 분들, 추가합격권이 되어 줄태우는 심정인 분들, 어디어디 빵꾸가 뚫렸는데 그곳을 넣으려다가 말아서 아쉬움을 느끼시는 분들..
그 분들 중에는 올해 입시를 아쉽게도 실패로 맺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따지면 그 쪽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수능날 아쉽게 점수가 떨어진 분들, 잠시 방황을 겪으시다가 돌아오신 분들 등등..
누구든지 말로 풀어내기에도 너무 긴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함부로 유형화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오르비에 아예 멍석 깔고 폐인짓하던 도중 저와 같은 분들의 재수 다짐글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수험생활을 '비불능의 나날들'로 평가하시면서, 다가오는 그 해는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하셨지요.
'예전의 나'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었으며, '새로운 나'는 한없이 꾸준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순수한 열정을 욕보이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들께 감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만약 수능을 본인 기대 이상으로 쳤다면 '예전의 나'를 한없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할 용기가 있었을까, 라구요.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길냥이 수준일 뿐이니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했던 제가 뭐라고 지적질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저 질문에 '잘보긴 했지만 내가 부족했다'고 쉽게 인정하실 수 있는 분들은 아주 많을 것 같진
않습니다.
얼마 전에 올린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12월 재수를 결심했을 때 저는 '내가 부족했어, 내가 공부 열심히 안했어'라는 생각으로 무장했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오를거야, 제대로만 하면 나에게 서울대 같은 건 꿈도 아닐거다 같은 헛된 망상까지 했구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니까 예전의 제가 너무 불쌍했어요.
물론 내가 공부 안하고 농땡이 부린 시간들, 방황했던 시간들도 적지않게 있기는 했지만..
항상 절박함을 가지지도 않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게 좋았든, 나빴든간에 '과거의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최선이었던 거예요.
남들이 보기에 부족하고 하찮지만 그때 제 엔진으로는 가장 멀리 갈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 생각을 하며 내내 괴로웠던건 제 열정의 시간들을 그저 결과에만 억지로 끼워맞추려니 거기서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책없이 사춘기적 싸구려 감성글만 주구장창 늘어놨지만 민망함을 무릅쓰고 다른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정말 20년 가까이 살면서, 무슨 일이든간에 열정적으로 보낸 시간이 하나도 없었나요?
그 긴 시간 동안 여러분은 항상 의지없는 사람, 게으른 사람일 뿐이었나요?
그 긴 시간을 되새겨봤을 때, 어쩌면 스스로가 생각해도 멋진 나의 모습이 있지 않았을까요?
다들 하는 이야기지만 수능은 결과싸움입니다. 그토록 열심히 했다고 해도 수능 성적표에 찍혀나오는 표준점수, 등급은 그걸
반영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도 그런걸로 평가원느님께서 찾아와 오 너 빡세게 공부했구나 옛다 1등급 주마하는 일은 전혀 없지요. 안타깝게도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수능을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흘린 땀은 표준점수로 등급이 매겨지지 않아요.
여러분이 그동안 해온 노력을 결과라는 틀에 애써 끼워맞추지 마세요.
몇달 전의 여러분을 못났다 못났다며 매질하지 마세요. 조언 그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마세요.
대신 어릴적 부모님한테 그랬듯이, 여러분의 여자친구/남자친구에게 그러듯이 안아주고 사랑해주세요.
지금의 본인은 과거의 본인이 그토록 당신을 사랑해주었기에 있습니다.
모두들 수능을 보기 전날 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보상을 받을 준비를 하렴'같은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그 때의 여러분은 '미래의 나'를 아꼈다는 거예요. 그렇게 잘 대해준 '과거의 나'에게 인정은커녕 구박만 주고 있으면 얼마나 맘 아파할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아주 큰 스케치북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곳에 뭘 그릴지는 이제 각자 달린 일인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모두 똑같이 잠재력이 무한합니다. 여기에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그때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려갈 뿐이지요.
인정하세요. 그 때 내가 가지고 있는 크레파스들로는 내가 원하는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인정하세요. 그 때 쓴 크레파스들로 그린 그림들도 알고보면 충분히 예쁜 그림이었다고.
그게 내 기대에만 못 미쳤을 뿐, 이제껏 그려온 그림들은 분명 모두 예쁜 그림이었다고.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스케치북을 찢고 다른 것을 찾는게 아니라 그 그림을 좀 더 예쁘게 그릴 도구를 찾는 일입니다.
글이 너무 두서없네요. 저와 같은 여러분을 응원하고 싶었는데 이상한 말만 한 것 같아 조금 그렇네요 하하;
어찌 됐든 지금 이 길을 다시 걷는다는 건..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열정이 있기 때문일테죠.
지금 갈 수 있는 쉬운 길들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피발바닥 될 걸 알면서도 가시밭길을 가려하는 우리 바보같은 2015 N수생들..
여러분이 그린, 지금은 창피하고 못나보이기만 하는 그 그림들마저도 저는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히 제가 여러분께 "그 그림은 충분히 아름다웠음을" 일깨워준 사람이 된다면 저는 아무렇든 좋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글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손발이 오글거려서 글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을텐데 꾹 참고 읽어주신 것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희생할 그림은 꽃나무가 가득한 그림이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합격했다고 안내한 상황에서 구제해준 사례가 있나요?
-
갔더니 일단 성비 4대1 ㅋㅋㅋㅋ 글고 조교샘들 다 남자임 ㅋㅋㅋ...
-
이거 실황으로 봤었는데 개웃겼는데 ㅋㅋㅋㅋㅋㅋ 집에서 웃참하느라 뒤지는 줄 알았음 이때
-
지방대라 진학사 안 돌릴 거 감안해도 붙을 수 있을까요? 간호학과입니다ㅜ 학원이나...
-
기술가정에서 가정임 막 남자 가정교사라고 지역언론에 나오고 그런거 보면 어지간히...
-
현 교육과정에서 없어졌나요? 빌드업 삼각함수 다 끝나고 수열 들어가기 전인데...
-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으로 대치동에서 영어강의 김동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피셜 세미...
-
붙을 가능성 있을거 같지만 다른 군에 1지망있어서 2지망인 4칸 vs 붙을 가능성은...
-
어카냐 나 지거국 가야돼?
-
진짜 ㄹㅇ 가고싶었던 과인데 계속 최초합 뜨다가 갑자기 추합됐어여.. 이거 붙을 가능성 있긴한가요
-
수십~수백명이 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웬만하면 답의 근거까지 설명해주고 싶지만...
-
남자는 3합5 3
221 ㄷㄱㅈ 최저아닙니다 진학사 칸수입니다 ㅜㅜ
-
화가 나면 안되겠죠 왜케 보고잇으면 화가나지
-
캌테일 사주세요
-
흐응 2
서울대 안간거라는 생각은 웨않헤...? 이것도 오래됐네
-
기숙학원 5
어디를 가야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혹시 추천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인하대 유학생들의 생활을 돕고 인하대생들의 언어를 키우기 위해 인하대 선배님들이...
-
사탐런 2
25수능에서 생지 선택하고 개망해서 사탐런하려고 합니다 사문은 확정이고 나머지 한...
-
6명뽑는과 3등인데 개쫄려서 못쓰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시발 이...
-
8칸 뜬 대학이 갑자기 불합되진 않겠죠..?? ㅠㅠㅠ 급 불안하네요 다군 7말고 9...
-
ㄷㄷㄷㄷ 하지만 포기는 금물~!
-
님들이라면 뭐 고름?
-
오늘의 결론 5
에이핑크 몰라요는 옛날 노래다
-
새벽여캐투척 11
이츠키가좋다
-
적분퍼즐 6
적분퍼즐<<이거 드릴이나 사설에선 많이 봤는데 통합이후 미적분에 한번도 나온적없죠?
-
발상의 전환 6
확통 3점 틀려서 81인데 내가 1년간 공부하면 틀릴 일 없으니까 난 수학...
-
노래 좋네 9
-
어어 안되는데
-
담임쌤이 단톡에 올려준 건데 전 잘 몰라요 정시 안 쓸 거라...
-
ㅋㅋㅋ 6칸뜨는 학교는 가기싫음
-
돈카츠 먹고 싶네 11
히레카츠가 땡기는군아
-
부산에서 상경하려는데 기숙사가 붙을지 모르겠어서.. 자취를 해야할 수도 있을거같은데...
-
연애, 꾸밈 질문도 가능 + 연프 출연제의 다수 + 다수의 이성 만나봄
-
일단 오르비같은 커뮤는 디시기준을 끌고오면안된다 디씨가 유동이 있는 특이한...
-
10분째야 미치겟어
-
어 형이야
-
왜 안보이지 비싸도 후기는 ㄱㅊ았던거 같은데
-
새로 들어오는 후배님들이 모를까봐 올립니다 학교 자체적인 천원의 아침밥 말고도...
-
오르비 가입을 1.1일에 했어서 1.1일 쯤되면 가끔씩 생각이 나네요 해마다 한두번...
-
현타와서글씁니다.. 한번에 보면 다 나오는 점쟁이분들 빼고 극복 어떻게들 하셨나요?...
-
공군<<<<<< 헌혈8회or봉사64시간+한능검+토익730점+한국어 능력...
-
뭔가 자꾸 쓸게없이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느낌 ㅋㅋ 이번년도는 인스타 보는 시간을 줄여봐야겠당
-
그때만해도 커뮤가 디시로 통일되기 전이라 수험생 커뮤들 각각 화력 장난 아니었습니다...
-
의외네 1
인하의 압살로 예상했는데 비슷비슷하네 굉장히 의외;;
-
접수 완료 0
진학사 칸수 655 안전빵으로 지름 하남자 픽인데 어쩔 수 없지
-
오히려 폭날거 같네ㅠㅠ
-
고려대 공과대학(공대 전전)에 대한 정보는 고려대 홈페이지 어디에 나와있나요?...
-
7칸 쓰는게 맞나?
당신의 그림을 응원합니다.
추천 2천개 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동감합니다.ㅋㅋ
초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란 없다. 그냥 자기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 너무 공감합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수험생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회색도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그림을 완성하여야 한다"
따지고보면 특별히 잘난사람도, 못난사람도 없는데 사람들은 결과만보고 그런 결과를 낳은 이유를 만드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저 모두 평범한사람인데 말이죠..^^..
마지막 서핑이라 생각하고 눈팅중인데 정말 좋은글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목표 수정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인생의 중요한 시기인 이 시점에, 난 더는 못하겠다 할만큼 미친듯이 공부했다면 그게 성공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결과가 좀 미끄러졌더라도, 그 값진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거니깐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나네요ㅜㅜㅜ
ㅜㅜ
맞아요.작년 한해 재수하면서 성적잘나올때는 내 자신이 그렇게귀하고 자랑스러울수가 없었는데,수능을 잘 못본 이후부터는 계속 나 자신을 몰아세우고있었네요.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은 묻어두고 아쉬웠던 일만 생각하고..이제부터라도 다시 사랑해줘야겠어요ㅜㅜ감사합니다..
저는 다른케이스같군요 진짜로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기에 인정은 못하겠고 구박 좀 해야겠습니다
닉에서 느껴지네요
반성하시고 변하신다면 좋은 결과 있을거에요 화이팅
고마워요 정말정말
추천 백만개 찍어드리고 싶네요 큰 깨달음 얻어갑니다 ..이런 글 너무 좋아요ㅎ
미친글이네요.. 너무 공감합니다
글 정말 잘 쓰셨네요... 눈물이 나네요ㅠㅠㅠㅠㅠ
그동안 가장 나를 하찮게 본 건 주변도 아니고 스스로였네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올한해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ㅠㅠㅠ
각설님..^^ 따뜻하신 분임에 좋네요~
정말너무좋은말이예요..............매번결과에맞춰구박하고면박주던저자신에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좀더안아주고한번ㅂ만더해보자고.....해야겠어요
후회를많이하는성격인지라 지난 20?19?년간 하루에도 몇번씩 후회에후회를 거듭하고 자책하는것을 일상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ㅋㅋ
그로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고3어느날 자기방어본능이 발동했던지 이런생각이 스쳐지나가더군요
'내가 했던일이 좋았든 나빴든 그것은 그당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결정이었다구!'
이후 주위를 둘러보니 그때이렇게할걸저렇게할걸 하며 괴로워하는사람이 수도없이만더군요 저와같은깨달음을얻었다면 과거의일로 후회하지않고 '지금'할수있는일에 최선을다할텐데말이죠ㅜㅜ저와같은생각을한사람을찾아볼수가없더군요ㅠㅠ
이런경험이있던저로서는 님글을 읽으니 표현할수없을정도로 반가움이 밀려오네요ㅋㅋㅋㅋ반갑습니다 각설이님!!나와같은생각을하는 동갑내기가있었다니!!!!ㅋㅋㅋ
저도 재수든반수든 올해 재도전을 하게되었답니다ㅎㅎ같은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구요!
어쩌면 이런글을 읽고싶었는가봐요ㅜㅜ
따뜻한 글 정말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