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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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는 전부 상향해서 논술로만 넣었다.
그런데 과를 생각하지 않고 학교레벨 위주로 넣었었다. 인기없는 과랑 경쟁률 낮은 과를 위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멍청한 짓이었긴 하다.
수능을 보았다. 언어를 치루고 수리를 치룬 뒤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야, 벌써 언어랑 수리가 끝났어."
잠시 후에는 탐구까지 모두 끝났다.
수능이란게 겨우 이런 시험이었나? 내 12년 쌓은 노력의 결실을 보는 시험이 이렇게 빠르게 끝나도 되는건가?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허탈했다.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가채점을 해보았다. 성적이 꽤 좋았다. 웃는 얼굴로 부모님께 자랑하다가 이내 어머니를 껴안고 오열했다.
그렇게 우선선발 기준을 충족시키고 논술에 합격하여 성균관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계열에 입학하게 되었다. 다행히 성대에서는 (약간 납득이 안되지만) 전전컴이 취업은 잘되는데 경쟁률은 다른 계열에 비해 낮았었다. 수시를 넣을 때는 물론 전자전기공학부에 진학할 생각으로 넣었다. 전화기니까! (물공님이 이 문장을 읽을 때는 아마 ㅂㄷㅂㄷ하실거다!)
새터를 통해 새로운 동기들을 사귀었다. 우리 조만 그런건지 다른조도 그런건지, 이번 수능이 7차교육과정 마지막 세대여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우리조에 배정받은 동기들 중에 94년생은 거의 없고 죄다 재수, 삼수생 출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ㄷㄷㄷ 뭐 지금은 그런거 신경 안쓰고 말 놓으며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에 관심을 가졌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2옥타브 솔조차 내는 것을 버거워할 정도로 실력이 개판이었다. 보컬 학원같은 걸 다닐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꾸깃꾸깃 용돈을 모아 노래방을 자주 다녔다.
음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사회 생활을 통해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말로를 보셨었기에 내가 음악의 길로 가는 것을 매우매우 싫어하셨다. 뭐 나도 그런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찬성이었다. 나도 이것저것 들은 것이 있어서 알기에, 음악이 좋지만 그 길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딱히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꿈이 있다면 그 쪽으로 진학할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 하듯이 공부를 해서 막연히 좋은 대학을 가서 취업이나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성대를 왔고, 새터 공연을 보았다.
노래방 중고딩으로서 쌓아온 6년의 노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도 저런 무대에 한 번 서보고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노래를 뽐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아리의 신입생 모집 기간에 음악 동아리 하나를 들게 되었다.
난 1학년 때는 그냥 질펀하게 놀아 재끼고 공부는 2학년 때부터 하고 싶었다! "12년 동안 공부에 매진했고 나중에는 사회의 톱니바퀴가 될텐데 겨우 1년동안 노는 게 뭐가 문제냐"고 아버지께 뻔뻔한 태도로 자신있게 밀어붙였더니 아무 말씀 안하시고 니 맘대로 하라 하셨다 ㅋㅋ
허락을 받은 뒤 내 1학기 학점은 2.2점을 받았다. 학사경고는 피했고, 지금은 다 복구해서 1학기 학점이 3.6 됐으니까 상관없다!
그냥저냥 1학기가 지나가고, 2학기가 되어서 "프로그래밍 기초와 실습"이라는 C언어 과목을 수강했다. 하나 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실습 과제 시간에 남들은 쩔쩔 매는걸 난 꽤 금방 해서 좀 빨리 퇴실하는 수준이었다(물론 이건 자랑이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중간이 없고, 정말 잘하거나 정말 못하거나 둘 중 하나랜다. 난 전자인 것 같았다. C언어가 매우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얼마 안있어 전공진입을 할텐데, 전전과 컴공 중 어느 과로 진학해야 하나?
정말정말 많이 고민했다. 과를 한 번 정하면 이게 내 한평생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의 글들을 읽어보면 컴공은 월화수목금금금에 야근투성이, 낮은 임금으로 허덕인다는 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재능이 있으면 살만 하다는 글도 있고, '그런 얘기는 IT학원 출신이라던가 하위권 대학 나온 코더들의 얘기지, 상위권 대학 컴공은 그렇지 않다'는 막연한 내용의 글도 있었다. 전전에 대한 글은 뭐 전화기라고 해서 칭송을 받고 있으니 굳이 글을 뒤져볼 필요는 없었다.
난 물리를 정말정말 싫어한다. 전전을 가면 주구장창 재미없는 물리 관련 공부를 할 것 같았다. 공대 공부를 버티지 못하고 자퇴해서 다시 수능을 본 사람들의 사연도 있는데 내가 그 수순을 밟을 것 같았다. 하지만 4년간 그 고통을 버텨내면 다른 과들에 비해서는 꽤 탄탄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음은 자명했다. 반면에 컴공은 앞서 적었듯이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C언어가 매우매우 재밌고, 커리큘럼들을 뒤져보니 관심이 더 쏠렸다. 또 앞으로 내가 잘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진짜 몇달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그래도 내가 하고싶은 걸 하자'는 결론을 내려 컴퓨터공학과에 진학을 하였다.
우리 동아리는 매년 11월 마지막주 토요일 즈음에 정기공연을 한다. 그래서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뒤에 동기들과 계속 공연 연습에 매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구경온 대선배들의 뒷말씀에 의하면 역대 공연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공연이었다고 한다 ㅎㅎㅎ 그래도 공연 영상을 볼 때마다 손발이 오글거리는건 사라지지 않을건가 보다.
2학기를 마치고, 올해 새터가 다가왔다. 이제 나는 헌내기가 되었다 ㅎㅎ 시간 진짜 훅가더라.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새신짝에서 헌신짝이 되어버리다니..
새로운 후배들과의 만남이었다. 나한테 후배가 생기다니 ㅋㅋㅋㅋ 내가 선배라니 ㅋㅋㅋㅋ 근데 왠지 어색했다. 작년 새터 때 선배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래도 술이 들어가고부터는 어색함이 풀려 열심히 술게임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난 술이 쎈 편이기에, 술먹다가 뻗어버린 애들은 나랑 다른 한두 명이 케어를 해주었다.
둘째 날이 되었다. 겨울방학 때 열심히 연습한 곡을 뽐낼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다른 동아리의 공연이 있은 뒤, 우리 동아리 차례가 되었다. 내 노래는 세 곡 중에 마지막 순서였다. 첫 번째, 두 번째 곡을 공연하는 중에는 심장이 진짜 엄청 벌렁벌렁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충 둘러봐도 눈에 보이는게 수 백명이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무대 위에 올라갔다. 올라가서 관객들을 본 순간, 긴장이 확 풀리고 심장 뛰는게 신기할 정도로 가라앉더라. 전날에 술먹어서 목상태도 좀 안좋은 상황이었는데, 큰 실수 안하고 무사히 마치고 내려왔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었다. 해방감과 쾌감이 굉장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제 내가 가창부장이라는, 동아리 간부 중 하나가 되었다. 특이하게 이번 기수 애들은 엄청난 인원이 들어와서, 겨우 8명인 우리 기수들이 이들을 이끌어 나가는게 힘겨웠다. 물론 지금도 힘들다 ㅠㅠ 그래도 어쩌겠나, 동아리를 사랑하는데 이 정도 쯤은 감수해야지! 나중에 취업할 때 자기소개서에 리더십 어쩌고 하면서 한줄 끄적일 정도는 될 것이다. 하하.
여름방학이 되었다. 사실 고3 10월에는 나도 포카칩, 이해원, 일xx살 모의고사를 사서 실전 연습을 한 경험이 있었다. 이 때 생각이 든게 대학가서 이런걸 만들어보는 거도 꽤 재밌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여름방학이 되고 나니 그게 떠올라서, 간단하게 수학 A형 모의고사를 하나 만들어 배포하였다. 반응이 꽤 좋았다. JSJH님께 쪽지가 왔다. 같이 수학 A형 모의고사를 만들어서 출판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좀 꺼려지고 뭔가 겁이 났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해볼만은 한 거 같아서 수락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J&S 모의고사이다. 판매량이 B형만큼 많은 게 아니라 매우 저조하지만, 일개 대학생으로서 꽤나 진귀한 경험을 한 것이지 않은가? 전국의 문과 수험생들이 내 모의고사를 푼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A형 모의고사만 만든 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물론 B형까지 제작하기에는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보통 봐왔던 거도 수학 실전모의고사는 B형만 자주 출시되고 A형은 천대받는 느낌이라, 그 틈새를 공략하고도 싶었고, 많은 문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도 싶었다. 이렇게 한 번 경험도 해봤겠다, 능력이 된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모의고사 제작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다행히 컴공에 진학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여태까지 들었던 전공과목들이 아무리 힘든 게 있어도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지금 배우는 것들도 다 재밌다. 성취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학점을 좀 짜게 준다는 핑계를 깔고) 여태까지 받은 전공 평점은 3.5를 넘는다. 교양과목 점수를 합하면 3.1이 되는건 함정이다 ㅡㅡ 망할 교양과목 ㅅㄲ들.
군대는 원래 2학년 마치고 갈 생각이었다. 공군이나 의경에 지원할 생각이었는데, 2학년이 되고 나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대학원에 대한 관심도 생긴 것이다. 그래서 군대 vs 대학원 에 대한 고민도 날로 커져갔었다. 군대가고싶은 마음이 커졌다가, 대학원 가고싶은 마음이 커졌다가.. 들쭉날쭉했다.
얼마 전에는 대학원 설명회가 있었다. 여러 연구실 부스를 돌면서 이것 저것 구경 많이 했다가 눈에 들어온 세 가지 연구실이 있었다. 인공지능, 임베디드시스템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 이 세 가지다. 대학원 진학해서 이걸 배우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사실 컴공이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전공을 살리기 어렵다는데, 대학원을 진학하면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고, 내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다. 대체복무의 기회도 있다. 결국 공군, 의경을 신청할 마음을 접고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중인 수학 모의고사 만드는 뮤지션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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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