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체만채!0 [1272513]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3-12-10 00: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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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설의를 꿈꾸던, 나의 마지막 수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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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한 밤 중에 술마시고 써보는 푸념? 글입니다.. ㅎㅎ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ntro 1. 2023 수능

 나는 작년 수능에서 실력에 비해 과분한 점수를 받았어. 지구과학1에서 뼈아픈.. 마킹 실수를 하나를 제외한다면. 현장에서 응시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23 수능 지1은 정말 어려웠어. 가채점을 마친 뒤에 마킹을 확인해보는데, 내가 마킹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종이 치더라. 그렇게 나의 2023 수능은 끝이 났어.


 처음에는 그래도 의대는 가겠다는 마음에 행복했는데, 성적표가 나올 때 보니까 45점이 42점이 되면서 백분위가 99에서 95가 됐더라. 원서 써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탐구가 불일 때 저정도 백분위 차이는 거의 수학 2문제랑 똑같아. 한 순간의 실수로 인설의가 지방 국립의대까지 내려와 버렸어. 내가 의대를 들어간 것만으로도 행복하시다는 부모님 앞에서 애써 웃어보긴 했지만, 마음까지 행복하진 않더라.


  Intro 2. 너만, 봄.

 어쨌든 나는 지거국 의대 중 하나에 진학하였고, 어떻게든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결심했어. 근데.. 생각보다 내가 가게 된 도시는 많이 열악하더라.(동기들 미안) 앞에서 얘기했던 작년 수능의 아픔과 이 곳에 대한 실망이 쌓이면서 조금씩 학교 생활에 집중하기 힘들어졌고, 공부보다는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어. 나랑 정말 친했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매일 밤마다 한탄하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미안하다 사랑한다 친구야) 그러던 어느 날, 술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겼어. 큰 문제는 아니였지만 그날부터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냥 이렇게 살다가는 무조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심스레 반수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고, 나의 생각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었어, 솔직하게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오히려 당신께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흔쾌히 승낙해 주시더라. 그렇게 나는 새로운 열망을 가지고 작년의 아픔을 씻기 위해 서울로, 시대인재 학원으로 떠났어.


  Body 1. 삼반수의 시작

 나는 다시는 지구과학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1을 버리고, 바로 물1으로 바꾸면서 삼반수를 시작하였어. 학원에 가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6월 모의고사를 봤는데, 국어와 수학은 여전히 살아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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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약했던 영어, 그리고 처음 시작한 물1을 열심히 공부하면 정말 목표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과탐, 영어에 집중하며 열심히 공부하는데..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지. 6월 모의고사에 있었던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겠다는 (없었던 것 같은데) 정책을 발표하면서, 나 역시나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또 6월 모의고사에서 과탐 투과목 표준점수가 폭등했는데, 내 주변 친구들이 서서히 투과목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해서 이것 때문에도 많이 흔들리더라. 그래도 나는 최대한 내가 가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그러던 중 어느 날..


  Body 2. 저 관악이 내겐 너무나 빛나 보이더라

 6월 말과 7월 초에 학원에서 방학을 시작했어.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습실을 개방했는데, 학원조차 문을 닫는 그 하루는 도저히 집중이 안되더라. 그래서 서울대에 다니고 있던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저녁에 친구와 함께 서울대 캠퍼스를 산책했어. 그 날은 내가 굉장히 오랜만에 서울대에 가본 날이였는데, 음.. 정문의 “샤”를 보니 왠지 모를 무언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더라. 그날 나는 반드시 서울대 의대를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날 바로 학습 컨설턴트님과 상담을 하러 갔어. 컨설턴트 님께선 올해는 표점 폭등 사태, 그리고 서울대의 투과목에 대한 가산점 때문에 투과목 한 개, 또는 두 개를 선택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씀하셨고, 현실적으로 7월에 선택과목을 바꾸는 것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기에 목표를 낮추는게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어. 여러 사람들의 의견들이 부정적이였고, 나 역시나 나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더라. 학사에 필수본 물리학2, 섬개완 생명과학2 OT를 다운로드 받아서 여러 번 돌려보고(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투과목 OT에선 강사들도 하지 말라고 말려ㅋㅋㅋ)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며 하룻밤을 샌 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학원에 가서 그날부로 선택과목을 물1+생1으로 물2+생2로 바꿨어.(헬게이트 오픈!) 


  Body 3. 흔들림은 확신이 되고

 예상은 했지만, 투과목은 정말 쉽지 않더라. 시작한지 2주일도 되지 않아 7월 월례고사를 봤는데, 정말 어이없는 점수가 나왔어.

 그냥 점수와 함께 웃으면서 거의 한 달 가까이 과탐 두 과목만 공부하며 8월 월례고사를 봤는데, 이번에는 국어와 수학이 흔들리더라.


 정말 떨리는 시간들이였고, 이후로는 전 과목의 밸런스를 열심히 맞추면서 공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내 인생에서 정말 후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게 보낸 나날들이였어. 그렇게 9월 모의고사를 봤고, 나는 전 과목에서 단 한 문제만을 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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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9월 월례고사를 봤는데, 역시나 비슷한 결과가 나오더라. 


 학원 내에서 서울대식으로 빌보드 5등을 차지했고, 이대로이면 정말 서울대 의대에 진학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고, 11월 월례고사까지도 찢어버렸어. 마침내 나는 확신에 가득 찬 채 수능을 보러 들어갔지.



  Body 4. 예상과는 달랐던 현실

 수능 날 아침, 나는 웃으면서 시험장에 들어갔어. 그렇게 1교시 국어를 시작했는데, 웬걸,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모의고사보다도 어렵더라. 나는 모의고사에서 늘 5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그 날은 가채점을 할 시간조차 없었어. 그 상황에서 나는 국어를 정말 망쳤다고 생각했고, 무조건 수학을 다 맞아야겠단 강박을 가지고 시험을 시작했어. 그런데, 그나마 자신있던 수학조차도 말리더라. 22번과 28번이 잘 풀리지 않아 완전히 멘탈이 망가졌고, 어찌어찌 끝까지 갔을 때는 검토할 시간이 하나도 없었어. 내 경험상 이렇게 검토할 시간도 없이 끝나는 시험에서는 늘 결과가 좋지 못했기에, 나는 “끝났다..”라는 생각만 들었어. 그 뒤에는 어떻게 시험을 쳤는지 기억도 안나네. 굉장히 알딸딸한 기분으로 가채점을 해보니 생각보다 현실은 더 처참하더라. 국어는 그냥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푼 후 가채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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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는 택도 없겠지만, 그래도 과탐 투과목 표준점수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잘 나와 원래 다니던 학교보다 조금은 잘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멍하게 3주의 시간을 보냈어.


  Body 5. 반전, 그리고 또 반전

 12월 7일에 표준점수 도수분포표가 발표되었어. 메가스터디가 예측한 물2와 생2의 만점 표준점수는 각각 78점, 79점이였는데 실제 결과는 73점, 74점이더라. 예상보다 10점 가까이 표준점수가 내려갔기에, 내가 생각했던 대학은 갈 수 없는 대학이 되었고 졸지에 나는 성공한 것 없이 복학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그저 막막한 마음에 밤을 지새운 뒤에 성적표를 확인하는데..

 복기했던 국어 점수보다 내 국어점수가 10점이 더 높더라. 나조차도 내 점수를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는데 놀랍게도 사실이였어. 허둥지둥 새로 점수를 입력해보니, 서울대 의대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충분히 만족하며 다닐 수 있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정도의 점수는 나왔어. 


  Finale.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

 비록 만족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하룻밤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면서 지금은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야. 아마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수능은 없을 것 같고, 앞으로는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 같아. 누군가는(아마 절대 다수는) 나의 결과를 보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 그렇지만 나 자신 만큼은 올해 내가 걸어온 과정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올해의 이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 같네. 누가 뭐라해도 앞으로의 나는 환하게 빛날 것이기에, 나는 올해의 결과가 전혀 부끄럽지 않아.

 내 글을 보고 있는 너희들 중에도 분명 지금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거라 생각해. 특히 여기까지 읽고 있다면 더더욱.. 비록 매정한 세상은 너희의 결과밖에 관심이 없겠지만, 만약에 괴로워하던 작년의 내가, 지금의 네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한 번쯤은 너희가 만들어 온 아름다운 과정을 되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어. 너 자신에게 부끄럽게 살지 않은 너라면, 너는 너이기에 충분히 아름답고, 앞으로 충분히 아름답게 빛이날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앞에 어떤 시련이 기다릴진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 더욱 빛나자!


세 줄 요약

1. 작년에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받아 설의 목표로 투투 박고 +1.

2. 계속 모의고사 치면 잘 나와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은 결과

3. 나는 그래도 내가 좋다. 우리 모두 행복하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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