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367231] · MS 2011 · 쪽지

2015-11-02 12:40:23
조회수 3,210

[비잔틴 史] 어려운 한국사 - 근대사 이것만 기억하고 들어가쇼 1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6728465

1. ‘동포제는 호포제를 의미하며, 사람들은 반상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논리로 이 제도를 반대했다.

흥선대원군의 업적인데 동포’, ‘신포모두 호포제를 의미해요. 양반들에게 군역 세금을 받는거에요. 영조의 균역법과 함께 생각해두세요.

 

2. 양전사업, 서원정리, 동포제 등은 양반의 기득권을 혁파하는 동시에 국가 재정 수입 증대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였다.

사창제는 국가 재정 수입과는 별도로 민생 안정으로 기억해두세요.

 

3. 일본과는 강화도 조약 부록 조약에서 무관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을 명시했으며, ‘1883에 맺어진 조일 통상 장정을 통해 관세와 방곡령등을 획득했으나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였다.

조일통상장정 정말 시험에 잘 나와요. 강화도 조약, 부록조약은 묶어서 기억하고, 조일통상장정 별도로 기억하고. 알겠죠?

 

4. ‘1882에 맺어진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이 알선하였으며, ‘최혜국대우’, ‘거중 조정’, ‘관세자주권등이 명시된 조약이다.

최초로 서양과 맺은 근대적 조약이죠?

 

5. ‘김홍집등이 다녀온 ‘2차 수신사(1880)’조선책략을 국내에 소개하였고 이로 인해 본격적인 개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통리기무아문과 12’, ‘별기군이 설치되었으며 ‘5영이 2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위정 척사파는 영남만인소등을 통해 반발하였고, ‘임오군란등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참고서를 보면 이 사건들이 분리해서 서술이 되는데 딱 위에처럼 겹쳐서 진행이 되니까 전개 과정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해요.

 

6. ‘1881’ ‘박정양, 홍영식, 어윤중등이 조사시찰단을 다녀왔고 같은 해 김윤식등이 영선사로 파견되었다.

최근에는 많이 나오지 않아요.

 

7. 1870년대 최익현 등은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며 왜양일체론을 주장했다.

최익현은 흥선대원군 실각할 때 큰 활약을 했고, 을사의병에서도 활약을 했죠.

 

8.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 때 난병과 함께 궁궐에 들어왔고, 1차 갑오개혁 때는 일본군과 함께 궁궐에 들어왔다.

대원군이 2번 복귀 하는데 누구와 함께 복귀했는가가 중요해요.

 

9. 임오군란 때는 제물포 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맺었고, 갑오개혁 때는 한성조약텐진조약을 맺었다. 임오군란으로 박영효가 ‘3차 수신사로 파견되었다가 박문국설립을 주도하였다.

제물포 조약으로 일본군이 공사관 경비로 들어와서 임오~갑신 기간에 유일하게 일본군과 청군대가 국내에 머물렀답니다.

 

10. 임오군란 때는 명성왕후 가짜 장례식이 있었고, 명성왕후의 요청으로 청나라 군이 파병되었고 이 후 민씨정권은 친청파가 된다. 이 후 갑오개혁기 때 친러파로 전환하던 중 을미사변이 일어난다.

명성황후 장례식은 총 3번입니다. 임오군란, 을미사변, 대한제국 선포 때요.

 

11.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는 통상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김홍집 등은 개화파이다.

개화파를 온건, 급진으로 구분하지 않고 물어보는 경우는 있지만 통상개화파와 일반 개화파를 구분하지 않는 경우는 없어요.

 

12. 오경석은 역관으로 해국도지, 영환지략을 반입했고, 유대치는 백의정승으로 개화파 관료를 길러냈다.

역관은 조선 후기 대외 무역에 관여해서 큰 이득을 보았고, 서구 선진 문물 수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13. 급진개화파는 반청 자주, 온건 개화파는 친청 사대 정책을 추구했다.

그래서 급진개화파를 독립당, 온건개화파를 사대당이라고도 부른답니다.

 

14.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 헌정연구회는 입헌군주정을 신민회, 대한광복회는 공화정을 추구하였다.

아얘 입헌군주정을 목표로 한 단체는 헌정연구회 밖에 없구요. 갑신-갑오-독립은 그런 성격이 있다는거에요.

 

15.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서는 모두 왕권과 민씨 척족의 권한을 제한하려고 하였다.

이런 부분이 입헌군주제적인 모습이에요. 갑오 1,2차에 모두 이런 말 나와요. ‘왕실 사무와 정부 사무를 분리한다는~

 

16. 1884년에는 갑신정변, 1885년에는 거문도 사건, 한반도 중립화론 논의 등이 있었다.

갑신정변 다음해에 조선중립화론 논의 되었다고 붙여두세요. 거문도랑 중립화 자꾸 연도 헷갈리닊/.

 

17. 일본은 경복궁 점령을 계기로 ‘1차 갑오 개혁, ‘청일 전쟁의 승리과정 중 ‘2차 갑오 개혁, 삼국간섭과 을미사변으로 ‘3차 갑오개혁이 일으켰다.

갑오개혁의 계기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1차 흥선대원군, 유길준 2차 박영효, 서광범)까지 잘 외워두세용.

 

18. 1894년 초반에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고, ‘텐진조약을 근거로 청일전쟁이 시작했고, 1차 갑오개혁기 때 동학군이 2차로 봉기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당하고, 이듬해 2차 갑오개혁이 진행되었다.

일본의 경복궁점령-청일전쟁-1차 갑오개혁 추진! 이것에 반대하며 동학 2차 봉기 스타팅 되었습니다~!

 

19. 1차 갑오개혁에서는 왕실 사무와 정부 사무를 분리했고 2차에서는 홍범14를 통해 왕실의 정치 간섭을 배제하려고 했다.

갑신정변에서는 대신과 참잔은 의정부에서 정령을 의결, 반포하라라는 문장이 이런 의미에요. 입헌군주제 지향.

 

20. 1차 갑오개혁 때 ‘6조가 8아문으로, 2차 때는 ‘8아문이 7, 전국은 ‘23로 재편되었다.

 

21. 1차 갑오개혁 때 개국칭호를 사용해서 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3차 때는 건양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자주국을 표방하였다. 이후 1897년 광무개혁 때 공식적으로 사대관계를 폐지하고 황제국을 표방하였다.

개국, 건양 많이 나와요! 건원은 법흥왕입니다.

 

22. 교육입국조서는 2차 갑오개혁, 1895년에 시행되었고 한성사범학교한성소학교가 건립되었다.

학생들에게 누누이 말하는거지만 189412월에 2차 갑오개혁을 진행했고 그 추가 조치로 1895년 초반에 교육입국조서가 반포가 된거에요. , 2차 갑오개혁의 조치라는거요.

그리고 소학교령이 반포가 됬기 때문에 소학교들은 계속 만들어지겠죠? 광무개혁 때건 1900년대 초반이건~ 이 부분도 기억해두세요.

 

23. 광무개혁 때 양지아문지계아문을 통해 양전사업, 지계 발급이 이루어졌다. 또한 상공업 진흥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어 근대적 회사와 은행들이 설립되었다.

선 은행(1896)만이 유일하게 광무개혁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점도 기억해두세요. 나머지 한성은행, 천일은행은 모두 광무개혁기에 만들어져서 화폐정리사업 때 사라져요.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