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1144720] · MS 2022 · 쪽지

2024-03-05 12:30:25
조회수 4,298

서울대 인간관계 포기썰 2-2(장문)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67519595

안녕하세요. 어느덧 겨울이 지나가고 새로운 봄이 돌아왔네요. 모두 좋은 신학기의 시작을 보내시고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개강 준비 및 시간표 수정으로 한창 바빠서 이제서야 여기 글을 올려보게 되었는데, 더 바빠지면 아예 이곳에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그 전에 올릴 건 올려야겠습니다.


지난 서울대 인간관계 포기썰 1편에 이어서 2편인데, 이번에는 여러가지 부번호(-)가 붙습니다. 이번에는 2-1을 건너뛰고 2-2부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편은 2학기에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사실 이미 글을 쓸 때부터 2학기 걸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건이 엄청 많지는 않았는데 그게 하나같이 주제가 민감한 사안들이라 잘못 쓰면 이곳에서 큰 싸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제 이미지야 워낙 그쪽으로 알려져있으니 둘째 치고 이곳에서 싸움 나는 게 싫어서, 뭘 써야 할 지 고민하다가 그나마 덜 민감한 사안부터 차근차금 올려봅니다. 이것도 문제 있으면 아마 금세 내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서울대 생활 1만 올리고 끝나는 건 좀 이상하니까 우선 2까지는 책임지고 업로드 합니다. 이어서 2-3을 올리고, 2-1은 신중히 고민을 해보도록 하겠지만 아마 안 올라가거나 토막글 정도로 올라갈 것 같네요.


이번에는 최대한 절제하면서 쓰려고 해도 글이 좀 많이 길어졌습니다. -1. -2를 붙였는데도 1학기 분량을 훨씬 뛰어넘네요. 요약한다고 한 건데도 그때 생각하면서 쓰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과격한 표현을 절제해보려고 해서 기어코 3월로 글이 넘어가고 말았는데, 잘 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길다고 느끼시거나 너무 예민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빨리 스크롤 내리시기를... 오늘 글은 어쩔 수 없이 분위기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댓글을 달면 저는 거의 모든 댓글에 원래 성실하게 답변해 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시간은 좀 걸릴테지만 답변은 해드리긴 할텐데, 조롱이나 비꼬는 논조라고 판단되면 평소와 달리 싸움 방지를 위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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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하기 전

사실 제가 왕따 당했던 이야기는 작년에 몇 번 한 적이 있었고, 심지어 전 대학에서도 사실상 그런 생활을 했지만 솔직히 작년(2023년)에 있었던 일은 좀 충격이었습니다. 전 대학에서는 제가 입학 전 새터하고 회식 때 사고 친 것도 있고 해서 충분히 과 차원에서 왕따 당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타격이 적지 않았지만 20살이었고, 이미 따 생활에서 벗어난 게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서 얌전히 굴다 코로나가 터지고,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학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서 과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고, 과 사람들하고도 교류하지는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나이도 있고 굳이 불편하게 애들하고 친해지려는게 서로 안 좋을 것 같아서 단념해서 왕따는 아니지만 투명 인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때가 언제 찾아올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닌게, 에타에서 가끔 글을 쓰면 절 아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오르비 때부터 알고 있던 과 애들이 몇 명 있긴 한 것 같은데, 크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올해 전공 진입을 하느라 과 생활에서 그러한 트러블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걱정을 뒤로하고, 저는 대학교에서 과를 제외한 곳에서 왕따를 겪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가장 힘든 시기인 2학기에 당하게 될 줄은. 그 동안 교양에서 팀 활동을 할 때 말은 잘 안 했지만 적어도 필요한 정보 공유에는 꼭 참여하고, 무임승차도 절대 하지 않는 등 나름 팀플에서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하긴 했습니다. 무엇보다 소규모 수업이어도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이나 교수에게 쪽 당해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2학기 때 들었던 모 필수 교양 수업에서 왕따를 비롯한 이런저런 일이 터지면서, 가뜩이나 무너져버린 가을과 겨울은 더욱 괴롭고 혹독하게 되었습니다. 퇴고하느라 좀 오래 걸려서 쓰긴 했는데 돌이켜보니 정말 생각하기도 싫네요..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그 수업은 그냥 필수 교양(이하 교양)이라고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연락처를 주고 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리고 이미 제 나이와 학과가 알려져 있는지라 잘못 이야기해서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타 수강평에는 정말 참고 참아서 순화했지만 적을 건 다 적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성적이 예상보다 꽤 잘 나와서 성적에 예민한 저는 미화가 되고, 나쁜 점만 있던 건 아니어서 우선 ☆☆로 남기긴 했지만, 제 기억에서는 ☆을 하나도 주고 싶지 않은 강의였습니다. 비슷한 글을 에타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땐 종강 전후 시기라서 이렇게 자세하게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학교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이곳에 올려봅니다.




1. 9월

이 강의는 나름 꿀강이라고 소문났던 필수교양 강의였습니다. A+은 물론 기본적인 성적도 잘 주신다는 점에서 다른 1픽으로 찍어야 하는 필교 다음으로 2픽을 했고, 수신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2픽으로 잡은 필교 자체가 공통적으로 로드가 워낙 많은 수업이라서 결국 누가 별점 높은 사람을 잡는지가 관건이었는데, 당시에 아침 수업임에도 무려 별 5개 만점이였던 수업이길래 혹해서 잡았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9월이 되었습니다. 일단 개강 날에는 수업이 없었습니다. 한 주가 지난 월요일부터 수업이 있었는데 첫 수업부터 당시 꼭 잡고 싶던 수업이 있었고 뺄까말까 고민했는데, 결론은 수업 시간에 잡는데 성공. 근데 그 수업이 아이러니하게 이 수업 무드(결말)와는 정반대의 강의였습니다. (나이 많으신, 제 또래 주변의 분들이 상당히 많이 듣는 힐링 강의였습니다.)


첫 수업부터 약간의 뻘짓이 있었습니다. 수업 장소를 제대로 보지 않고 들어갔다가 엉뚱한데 앉아 있었고, 수업 10분이 지나서야 뭔가 이상한 것을 알아채고, 교수님이 자기소개하자 그제서야 교실에서 조심히 빠져나와 옆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때부터 솔직히 힘겨웠습니다. 누가 봐도 긴장한 티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인 채로 그렇게 발표를 하였고, 대놓고 친구 만들고 싶다는 언급도 하였습니다. 솔직히 발표나 면접 할 때마다 말이 심하게 웅얼대고 머리가 새하얘져서 늘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대본을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버벅거렸습니다.


이후 수업 시간에 당분간 혼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눈이 워낙 좋지 않고, 말귀도 어두워서 맨 앞에 앉지 않으면 수업 듣는 게 힘듭니다. 애초에 뒤에 앉아있으면 본능적으로 수업을 거의 안 들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서... 그러다 보니 모두가 선호하지 않는 맨 앞은 가끔 사람이 올 때 빼고는 앞에 아무도 앉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이건 개인적인 활동 할 때 한정이긴 했습니다. 대부분이 모둠 활동 시간을 꼭 포함하고 있어서 모둠끼리 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수업 자체가 모둠 활동이 엄청 많았고, 팀 발표, 개인 발표 등 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 지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집중력마저 해이해져서 그 모둠 활동을 할 때마다 정말 엉뚱한 소리만 내뱉은 것 같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에겐 무난하지만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고 물어봐야 겨우 수업에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발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시험은 그나마 괜찮은데, 이건 피할수도 없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괜찮았던 순간은 만들고 발표하기 전까지였습니다. 발표 하자마자 정말 벙어리처럼 굴어버렸습니다. 팀 발표할 때 팀 조원이 째려볼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조나 사람이 발표하면 굉장히 흥미롭게 바라보고 질문도 많이 하고 하는데, 제가 발표할 땐 다들 집중도 안 해주고 질문도 어거지로 하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속상했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말이죠... 너무 미안해서 같이 준비 한 조원 눈치 살피면서 사과하고 끝났습니다. 걱정인 것은 이런 게 중간고사 이후에 한 번 더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추석 연휴 직전, 교수님이 회식을 한다고 교양 강의 학생들을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자율적 참석이었지만, 그래도 완전 아싸되기는 싫어서 갔습니다. 처음엔 어색하다가도 이미 친해진 교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 대화하는 게 어려운 특성상 타이밍을 잡지 못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평소에 안 마시는 술도 주량의 3~4배를 들이키면서까지 고군분투했지만, 모인 사람들하고 대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그때 되서야 처음으로 나이 깔 일이 있었는데, 나이 까니까 OTL... 제가 처음 학교 들어갔을 때 학생회장, 부회장 분들이 95, 96년생 이랬었는데, 어느새 제가 그 입장이 되었다는 걸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1학기 때 들었던 신입생 세미나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인스타 교환 시간이 있어서 거기에는 참가했고, 5년을 넘게해도 10 미만이던 인스타 팔로워 수가 처음으로 10을 넘었습니다. 끝나고 노래방도 갔는데 몸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서 그만하고 나왔고, 집에 돌아가던 도중 자빠지고 헛소리하는 등 힘겹게 가다가 집 도착하니까 필름이 끊기고 하루가 종료되었습니다.  





2. 10월

10월이 되었습니다. 위의 생활이 계속 반복되던 도중, 이때 무슨 쪽지 시험 같은 게 있었습니다. 외워야 할 양이 많자 학생들끼리 의기투합해서 같이 공부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톡방을 하나 파기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몇몇 학생이 주도해서 만들기로 하고, 저도 번호를 줘서 초대해 달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제가 ''로 강조를 한 지점이 있는데, 결국 초대 안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별 회의 방에서 단톡 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까먹은 건지 의도적인 건지는 몰라도 일단 그러려니 하고, 또 일부 학생들만 참가하는 걸로 알아서 그냥 뒀습니다.

...만 엄청난 반전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시험은 제대로 망했지만, 똑같이 망한 사람들이 꽤 있길래 어려웠구나 싶어서 일단 나름 안심했습니다. 애초에 잘 볼 거라는 기대도 그렇게 크진 않았기도 하고요...


이달부터 학생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각양각색으로 달라졌습니다. 제가 학기 시작할 때부터 소외되지 않으려고 번호도 따고, 몇 명에 한해서 인스타도 교환하고, 애들 다 같이 몰려가는 곳에도 끼어보고, 심지어 1:1로 같이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몇몇 학생들은 우선 표면적으로는 저랑 많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심지어 연애 조언(...)을 구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나이이다보니까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했나보고, 무엇보다 제가 했던 말이 뭔가 와전이 되어서 졸지에 장기 연애하는 형오빠로 이미지가 박혀 학기 끝날 때까지 그렇게 지내야 했습니다.


그나마 9~10월까지는 제 상태가 꽤 괜찮았습니다. 이때는 심리적으로 간만에 안정되어있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말 드물게 연락도 되면서 사람이 2명 정도 있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포함해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2-1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위와 같이 발표에서 절고, 학생들이 초대 안 해줘도 크게 마음 상하지 않고 그냥 넘기면서 그럭저럭 다닐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밝아서 그래서 일부 학생들하고도 몇십 초 정도는 이야기가 될 정도로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 사건으로 11월부터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정말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10월 분량이 앞뒤 개월보다 상당히 짧은데, 그 이유는 작년 추석 연휴가 장난 아니게 길었던데다가 그 일정이 이 수업하고 상당히 많이 겹쳤고, 그 연휴 끝나자마자 곧 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 강의 한정으로는 그렇게 임팩트 있는 사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때부터는 다른 곳에서 생고생을 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아무튼 시험도 끝나고 날이 점점 급격하게 쌀쌀해지기 시작합니다.




3. 11월

11월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있었던 다시 서울대 안에서 만나는 사람, 연락하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쌀쌀한 가을이었습니다. 그동안 잠잠했던 정신적 폐해가 다시 드러나고 있었을 때, 다시 조 바꿔서 팀 발표와 개인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저도 피해만 안 줄 정도로 준비하고 말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힘은 모조리 빠져버리고, 더군다나 필교 중에서 가장 자신 없는 과목인데다가 로드가 너무 많아서 이 강의에 급속도로 지쳐버린 상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어졌던 발표에서는 지난번 발표하고 비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이번엔 팀 발표에서는 째려볼 정도의 발표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 위안이었습니다. 물론 개인 발표는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그런데 발표하고 관련 없는 부분에서 갑자기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이 같이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지라 먹을 걸 정말 많이 사주셨습니다. 언급은 안 했지만 위 회식하고 이후에도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11월 초중반에 있었던 2번째 회식에서는 1번째 회식과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미 대부분 학생들은 다 친해진 상황이었고, 저는 이번에도 그냥 혼자 교수님과 마주 앉아서 아무 말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약 때문에 술 못 마신다는 핑계를 대고 안 마셨고, 나머지는 전부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여느 회식과 다를 바 없었고, 오히려 지난번보다 다들 친근해졌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단점은 가게가 상당히 좁았고, 환기가 잘 안되는 데다 워낙 시끄럽고 사람이 많아서 술 안 먹었는데도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꿋꿋이 있어 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1차 회식이 끝나고 2차로 넘어가면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1차에서 다들 엄청나게 마셔댔는지 취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교수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중간 합류한 친구들이 있었던지라 안 취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솔직히 취한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라 그냥 갈까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 취했을 때 가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2차는 그래도 공간이 넓고, 연기는 없어서 조금 시끄러운 것 빼면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이미 취한 분들이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강의가 새내기가 많이 듣는 강의라서 저와 한 분 빼고는 대부분이 이제 겨우 20살이 넘는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꽤 술을 마시는 분들이었습니다. 다행히 여학생은 귀가하거나 여러 이유로 많지 않았고, 취한 학생이 없어서 더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남학생들이 주사가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1명은 대뜸 저에게 기대거나 무릎 위에 눕고, 1명은 평소에는 조용한데 갑자기 극E로 변하더니 고성방가를 하고, 1명은 평소에 저하고 교류는 별로 없지만 존댓말하는 친구였는데 대뜸 말 놓고... 일단 여기까지가 초반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견딜만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중, 뜬금없이 저를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난히 먹고 마시고 했었고, 아무 일 없이 잘 흘러갔습니다. 사실상 무의식에 가깝게 이야기가 흘러가던 중 학생들하고 교수님이 수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취한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라서 그냥 듣고 있었고, 이미 배가 어느 정도 찬 상황이라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폰만 만지작거리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교수님이 누가 그 과목을 잘하고 못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못하는 사람에 저와 몇 명을 찝어서 말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일단 교수님도 취하셨으니 약간 조크성 발언인가 싶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라 발표 실력이 좋지 않다더니, 말을 잘 못한다더니 하는 발언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듣고 있던 학생들도 동조하거나 약간 키득거리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농담 듣는 것처럼 웃어넘겼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제대로 감정이 상했습니다. 취중진담(醉中眞談), 교양 강의 구성원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발표에서 조금 실수한 것 빼면 강의에 폐 끼치거나 한 건 없는데 알고보니 다들 저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첫 회식 때는 다들 이런 자리가 초면이라서 취할 정도로 마신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자리는 불편했지만 나름 오래 있을 수 있었는데, 이번엔 아니었습니다. 가뜩이나 10월 말 ~ 11월 초에 꽤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중간도 전부 망해버렸는데 일까지 안 좋아져서 스트레스가 극심해졌고, 결국 중간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11월 중순에 위에서 언급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괴로움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좀 안 좋은 행동을 하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느덧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4. 12월

12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종강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 계절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지쳐버렸고, 사실상 기말도 반쯤 포기 상태여서 그냥 방학이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12월 초에 점심을 사다 줘서 먹던 중 학생들끼리 기말 공부를 같이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저는 딱히 표현은 안 했지만 꽤 많은 인원이 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가보기로 하고, 며칠 후 지정된 날에 일단 말없이 쫓아가 봤습니다. 그 날은 여러 평가 중에 첫날이었는데, 시간대가 각자 달라서 일단 되는 사람들끼리 공부하다가 시간이 되면 알아서 가는 시스템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스터디룸 같은 곳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같이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또 서로 도와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분명히 이런 걸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끼어서 신기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이런 거 처음 해봐서... 사실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나름 분위기도 활발했고, 또 진지할 때는 진지하고, 과연 서울대 친구들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안 온 친구들 중에게 뭔가 공유한다는 이야기가 돌 때, '우리' 단톡에 올리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뭔가 굉장히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분명히 같은 조가 한 번도 된 적 없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웬 단톡?? 이라고 생각해서 일단 듣고 있다가, 그래도 말이 어느 정도 통했던 분에게 그 방의 존재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은근슬쩍 방에서 잘못 나온 척, 초대를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요청이 받아들여졌고,


그 단톡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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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인원수를 제일 먼저 확인했습니다. 저 빼고 모든 강의 학생들이 전부 다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공지에는 자기들끼리 언제 종강 끝나고 회식 할 건지(연말 회식) 날짜를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충격이 엄청났지만 우선 학생들이 많아서 침착하게, 이 단톡 언제쯤 만들어졌냐고 물어봤더니, 이미 중간고사 때 전후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중간고사 때로 돌아가 봅시다. 그때 학생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자고 단톡을 팠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걸 종합하면 결론은 2~3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이미 중간고사 공부하면서 저를 뺀 모든 인원이 단톡을 만들었다던지, 아니면 그때 같이 이야기 나눴던 일부 학생들만 단톡을 만든 것은 맞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방이 교양 강의 전체 인원의 단톡방이 된 것인지, 아니면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일단 최소한 11월에는 그 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정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 일부 조 팀플 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른 톡방에서 뭔가 시험이나 공부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이야기가 돌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방의 존재가 단순히 일부 학생만 모인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종강이 다 되어서야 겨우 존재를 알고 물어 그 단톡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저를 그 방에 초대해준 사람도, 방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일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미 정나미가 없어질 만큼 마음이 바닥난 강의였지만, 그래도 몇몇 학생들은 제가 다가가면 귀찮은 눈치였지만 말이라도 해주고 가끔 웃어주기도 해서 모든 애들이 나를 버리진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강이 다 되어서야 눈치챈 사실에 그야말로 2학기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초대는 되었지만 더 이상 저는 그곳에 소속되어있을 수 없었습니다. 원래는 그 모임에서 점심을 같이하고 다른 과목은 다 종강한지라 같이 오후까지 공부할 생각이었지만, 급히 그 생각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점심 먹고 불편한 마음으로 다시 혼자서 공부를 했지만 이미 충격에 손에 잡히지 않았고, 눈물도 나지 않고 그저 깊은 한숨만 하루종일 내쉬었습니다. 결국 그 혼란한 마음 속에서 기말평가도 그렇게 말아먹었습니다. 종강도 제일 늦게 끝나는 강의라서 마지막까지 불편함만 느끼다가 결국 그렇게 험난한 2학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종강하고 저에게 남은 생각은 딱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평생 혼자 살아야 하나..." "이럴려고 고생해서 서울대학교에 왔나..."

마음까지 얼어붙은,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느낄새가 없었던, 참으로 간만에 느껴보는 비폭력 외로움이었습니다.





5. 결말 및 결론

이 글이 올라오는 시점이 이미 2024학년도 신학기가 시작되는 달이라 이미 작년 2학기 종강한지는 이미 3개월도 더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서운하지만 조금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일보다 더 큰 일이 동시기에 있었고 저는 그것에 훨씬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당시에는 배신감을 느끼고 실망했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지, 아니었으면 간만에 제대로 꼬라지 나올 뻔했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되었던 지점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걸 떠나서 저 자체가 사람하고 친해지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사람들은 이미 절 이상하게 바라봤을지도, 그냥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나이도 수강생 전체하고도 꽤 차이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나잇값을 했냐하면 저하고 비슷한 나이대의 분(이분은 군필이지만 저보다는 1살 어렸습니다.)이 그 강의 내에서 사실상 에이스이자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사실상 병풍 역할이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회식 때 아무리 취했다지만 대놓고 저에 대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출했다던가, 저만 뺀 단톡방을 만들고 저는 초대시키지 않았던 것은 지금도 꽤 서럽긴 합니다. 나중에 아마 겪을 수도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걸 미리 체험하는 느낌이기도 하네요.


사실 이 학기에 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구조화 집단상담, 그리고 위 9월에 잡았다던 그 강의에서 했던 비구조화 상담에서 저 스스로 그걸 처음 느꼈습니다. 물론 이 강의와는 달리 두 상담 모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꺼내야 해서 성겨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이야기할 때 다들 표정이 뭔가 쎄하다는 느낌이 엄청 들었습니다. 그 동안 이렇게 사람들하고 이야기해본 적이 팀플이나 조별활동을 제외하면 성인이 되어서는 아예 없었기 때문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습니다. 두 상담 모두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편한 자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이해도 해주는 것 같고 조금은 안정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상담 모두 연령대가 저와 비슷한 분들이나, 더 많은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부분 때문에 이번 필교 강의가 더욱 비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경험이 저에겐 상당히 깊숙하게 다가왔고, 이후 남은 서울대학교 생활에 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일로 정신적 문제도 더 심해져서 현재 약 용량이 학교 입학 전보다 3배나 증가하였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의심이 정말 강해져버렸고, 그 이후로 모든 걸 포기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할 의지가 없어졌습니다.  자기관리고 뭐고 전부 내팽겨치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정말 길었던 것 같습니다. 한때 겨울방학에는 이걸 극복한다고 평소에 저 같으면 절대 안하는 짓을 겨울에 했었는데, 동아리나 멘토링, 학교에서 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지원했었습니다. 총 15군데를 지원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붙은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붙었어도 제대로 할 수 있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고요. 그나마도 계절학기 안 들었으면 정말 허무한 긴 방학이 될 뻔했습니다.


사실 새 학년으로 진급한 지금으로써 가장 불안한 1순위는 과 생활입니다. 이미 과에서도 사실상 없는 사람을 넘어서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데 만약 과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땐 분명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나마 학부 자체가 전공이 나뉘는 시스템이라서 전체에게 따돌림 당할 확률은 극히 적지만, 같은 전공 사람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정말 미지수입니다. 물론 저는 이미 힘이 극도로 없는지라 누군가에게 해가 될 만한 짓은 못하고, 저에게 심히 안 좋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퇴까지도 고려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이번에 들어온 후배들에게는 잘해주고자 얼굴 한 번 본 적은 없지만 무지성으로 과 사람들에게 팔로우도 걸어서 생전 처음보는 팔로워수를 기록했고,  제 성격 상 절대 안 하던 짝선-짝후(혹은 뻔선뻔후)까지도 해봤지만, 이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상한 일만 안 터지고 무사히 학기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가 보니 서울대에서 지낸 1년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서울대 합격이 되어버린 것 같네요. 작년 솔직히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해지려고 제일 노력했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평소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최악의 한 해였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터지면 정말 사람들하고 영원히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들도 안 다가오고, 저도 다가올 생각 없어지고... 2024년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달라야만 합니다. 마침 올해는 또 저의 해이기도 해서 기대가 더욱 큽니다. 작년은 일단 미친듯이 액땜했다고 치고 올해는 괴로운 일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기회가 된다면 연락하는 사람도 생기고, 먼 훗날엔 친구도 애인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믿으면서 오늘도 하루를 견뎌내는 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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