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뚜와 나고 애정해 [952612] · MS 2020 · 쪽지

2024-06-05 16: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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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이후에 '신입생'들이 받게 될 영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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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긴 글을 썼던 때가 대략 2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이곳 분위기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에도 종종 입시 상담을 위해 오픈 채팅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다들 원했던 뜻을 잘 이뤄내셨기를 바랍니다. 


어제 6평을 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졸업한지는 너무 긴 시간이 흘러서 요즘 문제의 트렌드나 방향성은 잘 알지 못하지만 사뭇 평이 많이 갈렸던 모양입니다. 지금쯤이 정시를 준비하는 분들에겐 점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선택과목을 바꿔야 할지 (요즘은 의치대 입시도 사탐런이 가능한 모양이더라고요..?), 더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과목이 무엇인지, ebs 연계를 어느 정도까지 파야 할지 등, 많은 고민이 첩첩산중으로 쌓여가고 있을 것입니다. 


힘든 시기이지만, 그래도 먼저 입학한 사람으로서, 그래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으로써, '해야 할 말은 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고생해서 얻은 결과가 원래의 기대, 생각과 다르다면 분명 억울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하소연할 곳은 없어 무척이나 답답할지 모릅니다. 그런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결코 '증원 반대'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그저 "증원 후에 신입생분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글일 뿐입니다. 저 역시 현재와 같은 불합리한 형태의 정책에 무작정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행동을 선택한 의료계의 판단에도 더러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적어도 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으로 설계하고 그려나가고 있는 용감하고 의지 가득한 수험생들이, 조금이나마 그런 판단에 있어 도움을 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써보겠습니다. 


사담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막상 내용은 그리 많지 않으니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해당 글은 비단 저나 주변 동기들의 판단으로만 쓰여진 글은 아닙니다. 모임 중에 만난 의과대학 교수님들의 이야기, 현재 전공의 등으로 활동 중인 여타 선배님들의 이야기도 함께 버무려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1. 의평원 인증의 어려움과 관련하여. 

현재 증원이 이뤄진 학교는 사실상 서울 소재 의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략 30여 개 학교에서 증원이 이뤄졌고, 이미 교육부와 보복부, 대교협 및 각 대학의 총장, 협의체의 승인을 받은 상태에서 더는 인원 조절이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원이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의평원 인증이 필요합니다. 해당 인증은 보통 2~6년 단위로 이뤄지지만, 몇몇 상황에선 인증 기간이 끝나지 않더라도 재인증이 필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인원 증가입니다. 입학 인원이 10% 이상 증가한 경우 재인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재인증 과정이 단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증가한 인원 만큼을 교육할 수 있는 수업, 실습 기관 및 교육 인력이 존재하는지 등을 확인받아야 재인증이 가능합니다. (일단 현재까지 의평원은 이번 증원에 있어 증원된 모든 학교에 재인증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긴 합니다.. 물론 정부가 올해 안에 최대한 지원을 몰아준다면 또 어떻게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문제는 재인증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의평원 인증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국시'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의평원 인증을 받지 못하면 해당 학교의 국시 응시가 제한될 수 있단 뜻입니다. 이건 단지 새 학번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가 이어질 경우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의 국시 응시도 제한될 수 있습니다. 국시 응시 제한은 결국 6년의 교육을 허사로 만들 뿐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물론 정부가 해결책을 만들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언급했던 것처럼 충분한 지원을 통해 의평원의 인증 기준을 통과하면 될 문제이긴 합니다. 만약 그만큼의 예산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의평원과의 협상 과정을 통해 이를 풀어나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협상이 잘될진 모르겠지만요.. 외압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는 관료가 제발 없길 바랍니다..) 정말 최후의 수로 교육 인증을 하는 기관을 교체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기관을 정부가 설립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이건 가능성이 떨어지긴 합니다. (의평원은 국제 인증을 받은 기관이기도 하고, 정부에서도 이미 인허한 기관이다보니 쉽게 바꾸긴 어렵습니다.) 


문제만 제시하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해결법은 내놓아야 하는데,,, 막상 좋은 방법은 그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저희끼리 이야기할 때에도 "그럼 인서울 의대를 가면 되겠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래서 그런지 부쩍 예1, 2 학생들의 반수가 늘어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동아리 모임에 잘 나오던 친구도 갑자기 아무런 소식 없이 모습을 감추기도 하는 등.. 분명 이번 입시에선 여러모로 이변과 변수가 많지 않을까 사뭇 걱정이 됩니다.. 



2. 늘어나게 될 유급과 제적, 그리고 어려워질 국시와 졸시.

이 영역은 제 뇌피셜을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교수님들께서 해주신 말씀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만약에, 1번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돼어 현재와 같은 입학 정원을 유지하게 된다면, 이후 생길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슬픈 내용이지만, 분명 유급의 비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중론입니다. 기본적으로 교육 시설이 열악해지는 것에서 시작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학생들마다 받을 수 있는 교육, 실습의 양이 필연적으로 줄어들다보니 결국엔 더 찾아서 공부하는 사람, 더 심열을 기울여 실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격차도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서 유급의 비율이 더 커지는 원인이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이전과 달리 유급, 제적에 있어서도 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다는 말씀도 있으셨습니다. 현재까진 유급 위기에 처한 학생들에게 재시 기회를 거듭해서 마련해주는 학교가 많습니다. 보통의 의과대학 학칙을 보면 유급이 연속 2회 이상 발생하거나, 재학 기간 중 3회 이상 유급하는 경우 제적 처리가 된다라는 항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급의 수가 늘어나면 결국 제적의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단 뜻입니다. 그리고 유급, 제적 위기인 학생들에 대한 구명체계도 이전처럼 운영하긴 어려울 것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교육의 기회가 줄어들고, 더 경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유급, 제적 제도에 대한 운영도 보수적이고 완고한 형태로 변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졸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처럼 본4 학생 중 학업 위험 상태를 분류하여 관리하는 형태의 제도도 간소화될 것이고 (학생수가 늘어나니, 어쩌면 교수님들의 손길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겠죠..) 졸시 불통 학생들에 대한 구명 제도도 마련하기 힘들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꼭 그러란 보장이 어디있고, 또 지나치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단지 이런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옳다 생각해 꺼낸 이야기란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과거 5공 시절엔 '대학 정원제'란 것이 있었습니다. 해당 제도는 모든 대학의 입학 정원을 30% 늘리는 제도로 입원 정원과 달리 졸업 인원을 제한하여 졸업의 난이도를 높였던 제도였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이 투쟁 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것을 막기 위해 졸업 경쟁을 만들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제도는 효용성 문제, 대학 기관의 반대 등에 부딪혀 실시 3년 정도에 대부분 폐지되긴 했습니다. 무튼, 졸업 정원제는 의과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됐었고, 이전에 120~150명 대였던 의과대학에서 한번에 200명 가량이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업에 어려움이 있었고, 지금 나오는 이야기처럼 A, B반으로 쪼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졸업 학기가 되었을 때, 200명 중 한번의 유급 없이 학교를 졸업한 인원은 80~100명 가량이었습니다. 과반 이상이 유급 및 제적을 당했고, 졸시에서도 어려움을 맛봤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이와 완전히 일치하진 않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과 같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전의 사례들에서도 분명 의미 있는 분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국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국시를 출제하는 분들이 결국 모두 의과대학 교수님들인 만큼 난이도를 대폭 올리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면허 시험은 '상대적인 수준'을 평가한다는 개념보단, '최소한의 지식 및 술기'를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지금까진 각 의과대학의 교육 수준을 신뢰하여 국시 시험의 난이도를 그렇게 높게 잡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국시 출제위원들의 각 의과대학의 교육 수준에 대한 신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국시의 난이도나 통과 기준에도 변화가 생길지 모릅니다. 


모릅니다라는 말이 더 많았던 2번 문단이었습니다. 그만큼 현재로썬 도무지 알아낼 수 없는 답답한 영역이 많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끝을 맽으며 

의대 지망 수험생들, 많이 바쁜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그러니까 저녁을 먹으러 급식실에 줄을 서고 있는 순간이라던가, 버스를 타고 재종에 등교하는 등의 짜투리 시간이 생기면, "왜 의사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의학'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의사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보란 뜻입니다. 의사는 봉사와 사명의 직업입니다. 서머싯 몸의 유명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에서도 존중받는 의사의 모습을 자뭇 인상깊게 그리고 있습니다. 밤 늦게까지 분만을 돕다 간신히 왕진을 끝내고 나온 의사 뒤로 존경의 인사를 건내는 경관의 모습이 저에겐 참 묘한 울림처럼 다가왔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그 끝에 보상도 따르기 나름입니다. 보상은 꼭 금전의 형태로'만'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수혜적 성격으로 이 업을 바라보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고, 그런 가치와 계획에 의사라는 직업이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해야 원하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너무 깊게는 아니더라도 종종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미래와 수험 생활에 회의가 느껴질 때 떠올릴 수 있도록 하나쯤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됩니다. 


MMI를 질문해오던 학생들에게 항상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어라. 그리고 결코 그 가치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면접에 응하라. 면접관이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확고한 자신의 의지를 보일 때, 비로소 가장 정석에 가까운 답이, 끊이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질 것이다. 혼란 속에서 믿을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생각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믿음은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꼰대같은 글이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다른 의견도 많이 베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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