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 유우령 에피메테우스 [1085533] · MS 2021 · 쪽지

2024-06-19 19: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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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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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세계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동구권에 불기 시작한 자유화·민주화의 물결로 넘실대던 시기였고, 천안문 6.4 항쟁의 소식이 전 세계 언론으로 보도되자 미국, 유럽은 물론 개방화가 진행되던 소련 매체들도 이 시위를 지지했다.

따라서 학생 지도부, 베이징시 시민, 그 누구도 인민해방군의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부분 진압봉과 최루탄 정도를 사용한 강제해산 정도로 끝나고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본 것이다. 실제 학생 지도부 중 "천안문 광장이 피로 얼룩져야만 민중들이 각성할 것이다."라고 끝까지 저항을 계속한 강경파 차이링도 훗날 "기껏해야 강제해산일 줄 알았다."고 회고하였다. 하지만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이 이끌던 중국중공군은 인민들을 무력으로 깔아뭉개 버렸다. 당시 덩샤오핑은 텔레비전 등에 나와 이들을 난동꾼이라고 비난하면서 확고한 진압을 주장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그의 확고한 의지였나 아니면 보수파의 위협적인 부상을 무마하려는 것이었나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으나 결론적으로 덩샤오핑은 이 사건에 대한 평가를 이후에도 뒤집지 않았다. 특히 인민을 해방한다는 군대가 일당독재와 부정부패로부터 해방을 부르짖던 인민을 짓밟았다는 점은 큰 충격이자 아이러니였다.


-꺼무 중-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기본으로 하는 실리주의적인 지도자로만 생각했는데

이 항쟁의 강경진압을 덩샤오핑이 주도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네요

그렇지 않나요?


rare-시카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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