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기차 [477377] · MS 2013 · 쪽지

2024-06-22 23: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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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러분이 멍청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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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라이라 불린 사나이. 


저는 재수할 때 특이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은 매번 저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했지만, 수능이 끝난 이후에는 너처럼 하니까 서울대를 가는구나라고 말할 정도였죠.


간절하면 행동하게 된다.


제가 그동안 여러분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저는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행동했습니다. 누구보다 간절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하지 않을 행동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물론,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그런 행동은 아니었구요.


그 중에 하나가 수학 모의고사 2회분을 쉬지 않고 연속으로 푸는 연습이었습니다. 혹시 해본 적 있는 학생들이 있나요? 수학 모의고사를 2회분 연속으로 풀면 어떨 것 같나요?


"음..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해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절로 나올 거라 예상해 봅니다. 


'이 짓을 어떻게 하지..? 그리고 도대체 왜 하지?'


그도 그럴 것이 200분은 3시간 20분이에요. 3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집중해서 수학 인강을 듣는 것도 벅찬데, 3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수학 문제를 푼다니요.. 아침 9시에 시작해도 끝나면 점심 먹을 시간인 12시 20분이 될 정도의 시간 동안 풀집중을 하면, 뇌에 경련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 겁니다. 


제가 왜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한 걸까요? 수학이 좋아서, 수학에 미쳐서 그랬을까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뚜렷한 목적성이 있었어요. 저는 재수를 하면서 정말 놓치기 싫은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했습니다.



 최대한 자주 멍청해지세요 


멍청해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 수록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수 있는데, 다 듣고 나면 여러분 또한 여러분이 멍청해지는 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될 거예요. 그래야만 하구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한 수능 시험에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마는 원인이 순간적인 판단 미스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 내가 미쳤었나 진짜 왜 그랬지? 멍청한 X끼.. 시험이 끝나고 이렇게 말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실수도 저지기도 하죠.





우리는 때때로 컨디션이 좋을 때 우리의 예상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죠. 그런데 반대로 긴장감이나 압박감을 느끼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면 우리는 우리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평균치 이하의 성적을 얻기도 합니다. 이 순간, 우리는 멍청한 버전의 우리 자신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후자의 경험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없을 거예요.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이 멍청해지지 않는에 대해 고민합니다. 긴장을 낮추고 압박감을 안 느낄 수 있는 방법들을 말이죠. 저도 그런 방법들을 알려드린 적이 있구요. 그런데 수능 시험에서 긴장을 아예 안 하고 압박감을 아예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할까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멍청해졌을 때 도대체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거예요. 분명 멍청해질 거니까요.



 집중력 고갈은 축복이다 


제가 아주 고급 용어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세 글자 단어인데요. 잘 듣고, 앞으로도 꼭 기억해 주셔야 할 단어입니다.



나새끼



저는 멍청해졌을 때의 제 자신을 나새끼라고 불렀어요. 시험 중간중간 나새끼로 빙의할 수 있는 확률이 존재했기에, 아니 아주 높았기에, 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 나새끼가 실전에서 범할 수 있는 사고오류를 미리 파악해서 정리하는 게 필수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수학 모의고사 한 회를 풂으로써 의도적으로 집중력이 고갈된 상태를 만든 거죠.


네, 나새끼를 소환한 겁니다. 그리고 그 나새끼에게 수학 모의고사 1회분을 풀어보라고 했더니, 아주 되도 않는 실수들을 많이 하고, 원래라면 10의 속도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을 5~6의 속도로 풀더라구요. 이렇게 2회분의 모의고사를 치고난 후에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나서는,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리고 원래는 쉽게 풀 수 있지만 집중력이 고갈되었을 때 버벅거리는 구간을 찾아서 메꿔줬어요.


이 방법을 통해 저는 나새끼를 계속 훈련시켰어요. 그러니 점점 나새끼가 발전을 하더라구요. 상황과 컨디션에 따른 변동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자기가 이전에 했던 판단 미스들을 파악해놓은 상태니까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혼미한 상태에서도 그런 판단 미스들을 하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수학 모의고사 1회분을 푸는 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더라구요. 100분 동안 풀집중해서 쭉 풀고난 후에도 쌩쌩했어요.


물론 매번 수학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2회분을 치는 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목적성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집중력을 고갈시키는 경험을 해보자는 것이지, 매번 그렇게 하면 다른 공부를 할 때 지장이 가거든요.


조금 더 일반적인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수학 모의고사를 풀기 직전에 시간을 정해놓고 준킬러를 3~5문제 정도 타임어택해보세요. 해설은 볼 필요 없습니다. 못 풀었다면 그 찝찝함을 가지고 바로 수학 모의고사를 풀러 가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 있는 나새끼가 수학 모의고사를 풀 때 슬금슬금 기어나올 거예요. 그때 나새끼를 훈련을 시켜주시면 됩니다. 



간절하면 행동하게 된다.



여러분 또한 여러분이 멍청해지는 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될 거란 말, 이제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사실 이 방법은 제가 지금껏 여러분에게 전해온 메시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나의 천장이 아닌 바닥의 높이를 높여,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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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은 주말에도 여러분의 바닥의 높이를 높여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새끼의 실력을 높임으로써 멘탈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통제력을 잃지 않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쌓아 왔고, 쌓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니까요.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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