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4-08-02 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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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이메일 양식과 예의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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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과거에 대한민국 인재상이라는 전국에서 뽑는 꽤 큰 대회에 도전을 했다가 수상에 실패한 적이 있는데요, 마침 제가 재학 중인 대학의 의대에서 한 선배분이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참조해서 해당 선배님과 선배님의 지도교수님의 성함을 확인하여 찾아서 이메일로 도움을 요청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동국대 남 모 교수님과 우연히 연락이 다시 최근에 닿게 되어서, 이번에 제가 준비 중인 유학과 대학원 관련해서 조언을 구하고자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제 얼굴도 모르셨지만, 상당히 후학을 양성하는 것에 깊은 열정을 가지셔서 저처럼 잘 모르는 학생에게도 아주 진심으로 정겹게 대해주셔서 매우 황송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학생들이 보내는 이메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수님이 좀 고민이라고 하시더군요. 왜 그러냐니까, 학생들이 이메일을 마치 친구한테 카톡을 보내듯이, 딱 용건만 말하는가 하면 최소한의 양식조차 지키지 않아서 좀 답답하고, 그런데 또 지적하고 말하자니까 꼰대로 몰릴까봐 걱정스럽다고 하시더군요.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교수라는 존재가 가지는 권위도 떨어지기도 했고, 학생들은 수능 공부 하느라 최소한의 매너나 예의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든요. 저 또한 여러분과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 또래 동년배들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빨리 터득한 것일 뿐입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너무 요새는 극단으로 치우쳐버린거 같다고, 예전에는 교수한테 예의 안지키면 크게 혼났지만 이제는 거꾸로 최소한의 매너조차 학생들이 갖추질 못하는 것 같다고 하시길레, '대학내일' 사이트에 올라온 '교수님께 이메일 보내는 법'을 공유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명시적으로 배운 적은 없겠지만, 여러 사회생활 관련된 것을 배워두면 정말 요긴합니다

https://univ20.com/79636





 이 내용을 보내드렸더니, 딱 정말 맞는 말이라고 교수님 본인만 걱정하시던게 아니구나~ 하시고 안도의 답장을 보내시더라구요 ㅎㅎ 교수님이 미국 유학파이셔서 말씀하시길, 미국은 최소한 존댓말이 없더라 하더라도 상호간의 매너를 지키지만 한국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참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글을 적으면서 느끼는게 꼰대 중고등학교 선생놈들이 머리카락 길이로 지랄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그 시간에 가르쳤어야 하는거 같은데... 하는 아쉬움도 있네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제가 여태 알게 된 이메일 예절과 관련해서, 그리고 그 예절 덕분에 얼마나 큰 행운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과거 김박사넷에서 진행하는 유학 관련 프로그램을 교육받은 적이 있는데, '리마인더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습니다. 뭐냐하면 말 그대로 상기시킨다는 의미인데, 알다시피 교수는 정말정말 바쁩니다. 본인 논문도 써야하고 연구도 해야하고 밑에 석박사들 상담 및 지도도 해야하고 학부생 수업도 준비해야하고 개인 일과도 보내야 하고 하루에 이메일을 엄청나게 많이 받습니다.




 그러니까 교수 입장에서도 누군가 보낸 이메일, 특히 모르는 사람이 보낸 이메일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습니다. 1. 아예 안열어보거나 2. 열어보고 나서 읽지를 않거나 3. 읽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 그래서 개인적으로 교수가 답장을 하는 것에는 이 3가지 기적....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고등학생 입장에서, 전국 스타강사한테 이메일 보낸다고 하면 답장 받을 확률이 굉장히 낮잖아요? 그거랑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답장을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는 요일을 지정해서 한꺼번에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누구는 그때 바로 읽는 즉시 답장을 간단하게 보내기도 하고(제가 그렇습니다 일을 쌓아두는걸 극도로 싫어해)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게 1주일 정도 답장이 안왔으면, 더 기다려도 답장이 안 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 1주일 후에 상기시키는 이메일을 보내는 것입니다. 과거에 제가 몇날 며칠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유가 나실때 확인하시고 답장 부탁드립니다~ 라고요













 사실 전 처음에 이 리마인더 이메일을 다소 위험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하였습니다. 좀 부정적으로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면, 야 너가 내 이메일 안보고 답장도 안했는데 확인 좀 해달라. 니가 바쁘더라도 내가 보낸 이메일 확인 좀 하고 답장 해달라 라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 또한 다소 우려스러웠고요.




 그런데 다행히 교수, 학문, 연구자 사회에서는 이런 리마인드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상당히 보편적인 문화라고 하더군요.




 이 리마인더 이메일을 상당히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빨라야 올해 초?에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4개월 만에 이 리마인더 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전 재료공학과 출신으로 현재 신경과학, 뇌과학으로 대학원을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뇌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최신 트렌드의 학문이고, 한국은 미국에 비해서 밀리는 감이 있습니다. 다른 전통적인 공학과 달리 쌓인 데이터베이스가 적습니다. 그래서 전 교수님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면담을 직접 하면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정확히 시간이 기억나는 것이, 올해 총선이 4월 10일이었잖아요? 서울대 뇌인지과학과의 한 교수님과 면담을 잡았는데 4월 11일날로 잡았거든요. 일단 제가 사는 곳이 서울대에서 1시간 반 거리입니다. 때문에 면담 일정을 잡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고, 면담을 잡은 것도 약 일주일 전에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월 10일날 쯤이 되니까 약간 걱정이 되더라고요. 4월 10일이 총선이라서 빨간 날, 그러니까 노는 날인데 혹시 교수님이 깜빡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날 바로 이메일을 간단하게 보냈습니다. 무슨 격식을 엄청 차려서 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전 누구누구 입니다, 내일 약속한 대로 언제 어디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보냈습니다.




 그날 교수님을 찾아뵈었는데, 1시간 정도 면담을 했는데 30분간 탈곡기가 털리는 것처럼 영혼이 털렸습니다. 제가 정말 심리학이나 뇌과학, 통계학,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아는 게 단 1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영혼이 너덜너덜 해졌을 때, 갑자기 그 교수님이 분위기를 반전시키더니




 "넌 리마인더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느냐. 사회적 attitude가 되어있다" 하시면서 저를 갑자기 엄청나게 고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고작 이메일 하나로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있나;;

https://tokikoki.tistory.com/59








 그러시더니 제가 같이 처음 이메일에 첨부한, 제가 쓴 오르비 칼럼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편에 있었던 것을 읽어보았다고 하시면서(보통 교수님들이 바쁘셔서 이메일 답장 받기도 어려운데, 그 와중에 제가 쓴 글까지 다 읽어보셨다는 것은 글쓴이에게 크나큰 영광입니다) 너 참 글 잘 쓴다, 내가 EBS 작가 알려줄 테니까 과학 저널리스트의 길을 가라고 추천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아시는 EBS 작가분에게 추천의 이메일(!!)까지 적어주셨습니다.




 이때 있었던 썰은 나중에 천천히 풀겠지만, 고작 리마인더 이메일 하나 덕분에 저에 대한 평가가 확 바뀐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던 사례입니다. 와 ㅋㅋ 리마인더 이메일 안보냈으면 어찌되었을까? 아찔한 생각도 들더군요.




 제가 느끼기에 의외로 젊은 교수님들이 오히려 이런 부분에 더 민감하신 듯 합니다. 민감하다는 것이, 잘못 이메일을 썼다고 구박한다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는데 이런 이메일 한 두개를 보내는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참 대단한 안목을 지닌 사람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여태 리마인더 이메일을 삼수 이후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단 한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하기에, 교수님과 면담을 약속하면 늦어도 4일 이내에 만나게 되었고, 또 한 번도 늦거나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그냥 학교까지 걸어가면 되었었거든요.




 제가 하도 어안이 벙벙해서 지도교수님께 이 썰을 풀었더니, '배려심'이라고 하시더군요. 보통 리마인더 이메일은 아쉬운 사람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내는 것인데 그 덕분에 윗사람이 혹시라도 깜빡하고 실례하는 상황을 없애버린 것이니까, 리마인더 이메일을 받는 사람 입장에선 상당히 괜찮게 생각할 수 있다~ (참고로 전 지도교수님께도 리마인더 이메일을 한번도 보낸 적이 없는데) 보통 한 4일 이내에 뭔가 만나기로 한 것이라면 약속을 잊을 리가 없으니 리마인더를 안보내도 무방하지 ㅎㅎ 하시더라구요.










 

 제가 취미로 글을 많이 쓰긴 하는데, 사실 뒷생각은 별로 안하고 그냥 편안하게 쓰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이메일 하나하나가 나의 명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이후에는 조금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됩니다. 




 고딩들에게 '오르비'가 있다면, 대학생에게는 '김박사넷'과 '하이브레인넷'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박사넷이 좀 자유롭게 서로 물어뜯고(?) 자기 교수 고발도 하고(?) 하는 분위기라서 오르비에 좀 더 가깝습니다. 대체로 연령이 낮은 대학생이 김박사넷을, 연령이 높은 대학원생 정도의 사람들이 하이브레인넷을 자주 사용하는 듯 합니다.




 이것도 제가 김박사넷 유학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해당 프로그램 지도 선생님이 서울대 학석박 출신이셨거든요. 그래서 친구 중에서 교수가 많답니다. 그런데 카이스트에 있는 아는 교수님이 한번은 연락을 하신게




 혹시 김박사넷에 교수님한테 이메일을 보내는 일종의 템플릿, 양식이 있느냐? 였답니다. 하도 학생들이 똑같은 형식으로 이메일을 보내니까 궁금했답니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정말 있었답니다 ㅋㅋㅋ







ㅋㅋㅋ

https://phdkim.net/board/free/24687







 그런데 그 카이스트 교수님이 참 답답해하신게, 해당 템플릿 자체에 문제가 좀 있답니다. 교수님이 과거에 집필한 어느 특정 논문을 언급하며 그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문제는 그 논문은 교수님이 과거에 집필한 것이기에 현재 관심사가 아닐 확률이 높다고 하시더라구요.




 게다가 전 저런 탬플릿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해서 단지 이름과 교수, 논문 제목 등만 바꿔서 짜집기 하는 태도와 행동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위에서는 대학내일에서 나온 이메일 예시를 참고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와서 왜 그걸 베끼지 말라는 것이냐!




 여러분도 마더텅 같은 기출문제집 공부하면서, 풀이를 그대로 딸딸딸 외워서 시험을 보질 않잖아요? 기출문제집에 있는 풀이도 참고용일 뿐이고, 그걸 바탕으로 공부해서 자신만의 색을 입힌, 스스로에게 최적화된 풀이를 통해서 문제를 풉니다.








 여러분이 과외는 하는데, 학생이 스스로의 소신이나 창의성 없이, 그저 여러분이 쓴 풀이에만 집착해서 그것만 딸딸딸 외우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아마 저 탬플릿의 존재를 아는 교수님이라면, 저 탬플릿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학생은 아예 답장도 안할 뿐더러 차단을 박아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도 복붙 스팸메일 차단박잖아요? 사람 사는 것이 똑같습니다.




 실수를 할 까봐, 나름 내 소신과 주관을 같이 적어냈는데 그게 무례하게 느껴질까봐 걱정되는거 저도 매우매우 공감하고 잘 압니다. 저는 오히려 여러분보다 겁이 훨씬 더 많아요. 하지만, 스스로 소신과 창의성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뚜렷한 주관으로 내용을 채우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평생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성장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본인 생각하기에 이렇게 쓰면 예의를 잘 차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지적받는다면, 사과를 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혹시 딱 지적한 사람 한 사람만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지 등 여러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겁이 나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그 정도로 겁먹고 남의 것만 베낄 생각을 한다면 그냥 공부 때려 치우십시오.




 한낱 이메일 따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하는 논문은 무슨 용기로 쓸거에요? 실패와 피드백을 통해 계속해서 교정해나가고 완전한 형태까지 진화해가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예의를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먼저 경험을 해보니, 이런 예의범절에 대해서 인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스스로의 가치와 몸값을 높이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래의 짤을 보게 되는데 ㅋㅋ 과거 한국은 예의범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정말 그런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예의범절을 전혀 신경을 안쓰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모두가 예절을 지키지 않을 때, 여러분이 예절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난 매력 요소가 되고 어드밴티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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