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69353722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요새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데 빠져있습니다
그저께 구한 답 중 하나는 '인성', 다시 말해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69353722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요새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데 빠져있습니다
그저께 구한 답 중 하나는 '인성', 다시 말해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그 어떠한 분야에도 재능을 가지지 않고 태어난 사람과 아직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먹고살정도가 아니면 없다고 판단하면 될것같습니다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무능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요?
예
확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는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재능을 가져도 주변이 전부 범죄자고 학원도 없으며 주변으로부터 그 어떠한 정보도 받을 수 없으면 근묵자흑이 되고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주변이 노벨상 수상자, 대기업 회장같은 사람밖에 없다면 그래도 그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좋은 환경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제 성적이 폭발적으로 올랐을 때를 돌이켜보면 서울과학고 조기입학한 친구, 경기과학고 들어간 친구 등이랑 선의의 경쟁을 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본인에게 맞는 방향으로 성장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주변의 어른과 교육자의 임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군요! 만약 어떤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주변 사람이 모두 범죄자이고,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으며, 정보 또한 부족한 상태에 있는 한 중학생을 만난다면 우루루I님께서는 어떤 도움을 어떻게 주실 것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그 중학생에게 나름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라면, 저는 제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꼈던 모든 것들을 말해줄 것이고 그 학생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루트를 설계해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것 같아요. 저도 옛날에 한 학원 선생님이 저를 돈으로 보지 않고 자식처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셔서 잘 되었던, 견딜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제가 그 친구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네요. 제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소개시켜줄 수도 있고요.
우루루I님께서는 정말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이시군요, 앞서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을 즉각적으로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고민해오시고 그것을 바로 정리하여 말씀해주셨다는 느낌을 받아 감사하면서도 대단하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의 시행착오와 그 과정에서 느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며칠 전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교육이 이어질 때 어떠한 형태로 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겪어온 일들과 그 속에서 든 생각, 받은 느낌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루루I님께서도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함으로써 상대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시는 듯합니다.
항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를 통해 보다 나은 균형을 찾아가는 태도가 지혜로울 수 있겠지만 어쩌면 현실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물론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어오던 중에, '자식처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셨던' 학원 선생님께 감사함을 느끼신 우루루I님의 이야기 덕분에 저도 다시 한 번 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성찰해 볼 기회를 선물 받았습니다.
시간 내어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남은 오늘 하루도 행복한 순간으로 채워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멘탈
배움에 있어 강한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말씀해주신 것인가요, 정신 수양을 목표로 두고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것인가요, 둘 다인가요 혹은 다른 의미인가요?
서울대 김홍종 교수님이 쓰신 미적분학1 에 나온 내용에서 “우리가 미적분을 공부하는 이유는 수학적 사고를 통해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를 통해 생각함
“우리가 미적분을 공부하는 이유는 수학적 사고를 통해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김홍종 교수님께서 정말 좋은 말씀을 남겨주셨군요! 저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영역, 우리가 '수능 수학'이라고 부르는 분야를 공부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수용적 사고력을 토대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내어 삶을 이어가다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고자 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집 몇 권을 반복해서 풀며 답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어떻게 푸는지 모르겠다면 답지를 보고 따라해 보는 것만으로는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고자 수능 수학을 공부하는 의미를 충분히 채워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주어진 함수 f(x)가 실수 전체의 집합에서 연속이라는 조건 대신 미분 가능하다는 조건이 주어졌다면 답을 더 효율적으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을까?'라거나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수학 영역 20번에서 어떤 함수 g(x)를 평행이동한 함수의 도함수는 g'(x)를 평행이동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참고하고,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수학 영역 미적분 29번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복잡하지만 몇 개 대입해 보고 직접 확인해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부분을 참고하여, 무리수 e의 정의를 주제로 한 문항을 새로 만들어 본다면 어떤 문항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이어가며 깊이 고민해 보고, 고민해 본 것을 다른 친구들과 나누어 봄으로써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문제집 몇 권을 반복해서 풀 수 있을 정도의 실력, 답지를 보고 따라해 보아서라도 실력을 기르고자 하는 태도가 준비되어야 할 텐데, 현재로서 그 태도를 갖춘 학생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이는 꼭 수능을 준비하는 10대만의 문제가 아닌, 학교를 떠난 지 시간이 꽤 흘렀을 40-50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학 공부를 통해, 혹은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다른 공부를 통해 국민 모두가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경험해 보고, 고민을 이어가며 다양한 분들께 대화를 요청드리고 있는데,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지디컴백님께서 들려주신 김홍종 교수님의 말씀 덕에 저도 방향을 찾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간 내어 댓글을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등?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떠한 맥락에서의 '평등'을 말씀해주신 것인지 조금 더 여쭤보아도 괜찮으실까요?
기회와 내용의 공평함
그렇다면 설경제 사냥꾼님께서는 '공평'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또한 말씀해주신 맥락에서의 평등을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에서 한 번 더 다루어주신다면 제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와 같은 선천적 요인에 따라 교육의 기회가 제한받지 않는 것
대한민국에 태어난다면 누구나 배우고자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는다면 태어났을 때 부모의 경제력을 포함해 갖고 있는 것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에 격차는 존재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격차를 가진 자의 것을 뺏지 않는 선에서 좁힐 수 있는 방법과 수능 수학의 경우 유튜브에 업로드한 무료 강의와 같은 방식으로 도움을 드리고자 할 수 있겠군요!
때로 이러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치 가진 자가 악(惡)이고,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선(善)한 자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베푸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전국민의 깊은 논의가 이어져 대한민국이 더 나은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데 지혜로운 한 마디씩이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라 불릴 자격을 얻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생각의 성숙함이나, 최소한의 교양 등등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어른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때 그 판단할 자격은 누가 갖추고 있다 판단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판단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른이라 불릴 자격'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다듬어 보는 것이 생각을 이어나가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어른이라 불릴 자격은 사회상 통념적으로 선호되는 인재로 다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으로 평가 기준을 정한다고 해도 속으로 급나누기가 만연하기에 현실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실용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상을 심어서 눈과 길을 터주고, 그에 맞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자격 조건을 쥐여주는 과정을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 통념을 따를 때 사회가 선호하는 인재를 '어른이라 불릴 자격'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해주신 부분이 크게 흥미롭습니다. 생명의 존재 이유를 유전 정보의 보존에 두고, 존재 방식을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비모님게서 말씀해주신 교육이라는 것은 한 생명인 인간의 적응을 통한 유전 정보의 보존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인공지능의 발전, 그리고 더 많은 것이 디지털로 전환될 미래 사회에서 생명의 존재 이유에 유전 정보의 보존이 아닌 다른 것이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면, 그리고 얼마 전 별세하신 장기표 선생님께서 당신의 저서 '위기의 한국'에서 말씀해주셨듯이 경제학의 뿌리를 바꾸어 이기적인 Homo economicus가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학이 아닌 개인이 각자의 행복을 위해 경제 활동을 이어간다는 자아실현 경제학으로 우리가 우리의 경제와 관련된 것을 바라보는 방식을 크게 바꾸게 된다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그리고 '통념'이라 불리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인간이 다시 맞이하게 되진 않을지 신경쓰입니다.
기초적인 수준의 교육은 인성이 목적이여야 하지만,
보다 높은 수준에선 "선별" 이 목적이여야 합니다.
또한 선별은 다시 수단이 되어 학문의 발전 이라는 목적을 이루어야 하고
학문의 발전은 다시 수단이 되어 기술과 인류의 발전에 이르러야 합니다.
필자의 주장은 제 생각에는 교육의 목적과 단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6월3일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교육의 목적이나 단계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거나 혹은 주제를 조금 더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성을 목적으로 한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후 선별을 목적으로 한 교육이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기술과 인류의 발전 위해 힘 쓰고자 한다면 그것의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6월3일님께서는 교육의 궁극적인 의미를 인류의 발전에 두고 계신 것인지, 혹은 제가 잘못 받아들인 부분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해하신 부분이 맞습니다.
학문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다른 생물종으로부터 차별되어, 문명을 이루고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교육의 목표는 학문의 창달 및 그 계승과 발전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결국 인류발전으로 이어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육의 목적이 인류발전에 있는 이유를 제시하기 보다는 불가분적관련성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는 관계에 있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선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시간적 선후는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꼭 인과적일 필요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반박 및 의문점 환영합니다
건전한 토의를 지향합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아직 교육학에 관한 지식을 갖지 못해 말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고, 문장을 오래 곱씹어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읽어보시다가 정정해주실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스템 내에서의 교육을 생각할 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 학생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학사 학위, 석사 학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누구나 이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가가 제시한 교육과정 내 내용에 충실히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대학에 진학하여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해가는 과정과 동시에 학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나만의 독창적인 견해나 내가 최초로 발견한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학문의 창달 및 그 계승과 발전을 염두에 두고 배움을 지속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표현의 차이이겠지만, 저는 중학교만을 졸업하더라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이를 테면 소통 능력, 배려심을 갖춘 어른) 을 일정 수준 이상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대학에 진학해 학문의 발전을 통한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진 못하더라도, 무엇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무엇이 '어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줄 아는, 혹은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본인의 믿음을 따라 하루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 또한 교육의 본질을 따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에 진학해 학문 발전을 위해 힘 쓸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과,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어른을 길러내는 교육을 구분해 본다면 저는 대한민국이 후자에 조금 더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해 수학을 깊이 연구하진 않더라도, 남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른이 우리 사회에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와 같은 공간에서 댓글을 읽더라도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반박과 의문점을 환영하고 건전한 토의를 지향하고자 함이 기본값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과한 이상일 수 있고, 정돈되지 않은 생각일 수 있으나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그런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인류는 더 편한 삶을 누리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금보다 더 편해지지 않더라도 다함께 더 자주 웃을 수 있고 마음 상하지 않는 일상이 각자에게 선물로 안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탐구, 과학탐구 영역이 객관식, 주관식 문항으로 출제되는 것에도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구해내는 것보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보거나 문제를 잘 정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교육 현장'이 학교와 같은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고 어디를 가나 서로가 예의를 갖추어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배움의 놀이터가 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예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禮)가 교육에서 중요하다는 뜻에 동감합니다. 그렇다면 예(禮)는 교실 안 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거나 교실 바깥에서의 교육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라면 부모 혹은 학생 주변의 어른이 취할 수 있는 지혜로운 태도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예를 중시하지 않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막기. 분리하기.
예를 중시하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그 아이들에 잘못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 아이들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모여 예를 중시하지 않음이 짙어지는 것을 막는 것에서 나아가 어떻게 하면 예를 갖추도록 이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예'라고 부르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질문이 많은 듯한데, 시간 되실 때 편하게 생각해주시고 나누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막고, 분리하는 것에서 나아가 어떻게 하면 그 아이들이 더 예를 중시할 수 있을지, '예'란 무엇일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더 예를 갖춘 구성원들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qwer_ty-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교육'자'의 능력과 자질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Needs79님께서는 '교육자'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그리고 교육자의 '능력'이라 한다면 어떠한 능력이 포함되며, 교육자의 '자질'이라는 것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재능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거죠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병철 회장님께서 당신의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밝히셨던 것과 같이 각자의 기량(器量)에 맞게 살아가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 듯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보며 무엇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조금씩 구해가는 것이 나의 기량(器量)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正道)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외에 Sha'Carri Richardson님께서 생각하시는 각자의 재능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학교 현장에서부터 공부라는 천편일률적인 기준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제 야자도 폐지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획일적인 기준을 따라 학생이 공부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 이러한 맥락에서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는 것 또한 막아야 한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나, 1+1=2와 같이 어떤 맥락에서 기초적인 합의를 따르도록 하는 데는 획일적인 기준과 때로는 학생의 자유를 조금 억압하더라도 강제성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신다면 이 획일성과 강제성, 그리고 다양성과 독창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 나이와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학생에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형태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강제성이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관한 고견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교육은 사회라는 시스템에 개인을 맞춰놓는 방법이라 생각하기에 사회적으로 보면 교육은 획일화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계속된 탈중앙화와 중앙화의 반복된 갈등으로 탈중앙화를 외치는 집단이 구심점이돼서 새로운 중앙화를 이루니 각 집단간 경쟁으로 어떤 집단이 미래의 중앙화를 이루냐에따라 또 달라지겠으나.. 그건 현시대에 볼때 그런것이고, 새로운 중앙화 시대에서는 또 그 시대의 중심에 맞는 획일화가 교육이 되겠네요
우리가 말하는 개성과 다양성이 어찌보면 새로운 구심점에서의 획일화일수있겠다는게 제 생각이라.. 격변의 시대인것만은 확실해보입니다
시스템에 개인을 맞춰놓는 방법으로서 교육을 정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획일화'가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탈중앙화를 외치는 집단이 새로운 구심점이 된다는 시각에서 각 '시대의 중심에 맞는 획일화'가 교육이 될 것이라 말씀해주신 부분도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태도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이것이 새로운 '구심점'이 된다면 그것으로부터 탈(脫)하고자 하는 강렬한 움직임을 가까운 미래에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격변의 시대'라면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품고 무엇을 일상 속에서 이어가며 어떠한 태도로 새로운 구심점이 형성되길 기다리는 것이, 혹은 새로운 구심점을 형성하거나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중앙화는 개인의 노력이 이끄는건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집단이 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지는것인건 맞으나 개개인만 보면 집단이 아니기때문이죠
이미 집단의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운명적으로 결정돼있다 믿기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다보면 그 구심점 역할의 주인공이 내가 될수도 아닐수도 있다 생각합니다만... 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정도의 행위만을 하게되겠죠
최근 가장 떠오르는 단어중 하나가 적자생존인데 이 단어가 계속 언급되는것이 우리가 격변의 시대에 있다는 방증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결국 유전자에 따라 사는것이고, 유전자에 이로운것은 인간에게 행복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면 되지않을까하는게 제가 내린 결론이고, 현재 재직중인데 저도 진로나 삶에 대해 많이 방황중이지만 바뀌지않을 결론은 나의 행복을 추구하자기에 입시판에 다시 뛰어들고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수학공부할때만큼 재밌었던적이 없고, 수학과에서 타과로 전과한걸 많이 후회중이거든요 다만 또 나중가서 어찌 방황할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방향은 유지하려합니다
| 집단의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운명적으로 결정되어있다.
| 유전자에 이로운 것은 인간에게 행복을 주로 가져다준다.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시는 논술12관왕님의 뜻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싶습니다. 저도 방황이라면 방황을 하는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행복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생존하지 못하면 행복이든 절망이든 느낄 수가 없는데 생존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바라보고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지와 같은 고민에도 돈을 많이 벌어 보다 안정적인 생존을 할 수 있을 분야,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기량(器量)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행복한 것이지만 동시에 절망적이고, 속상하고, 스스로의 무능(無能)이 보다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운명적으로 결정된 그 사람이 누구일지, 그리고 그 사람은 행복할지 감히 예상해 볼 수 없겠으나 저도 우선 제 행복과 즐거움을 따라 제게 맞는 길을 걸어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올해 수능 원서 접수 하셨나요? 후회 없는 결과와 함께 내년의 논술12관왕님께서 더 행복하시길, 더 즐거우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시간 내어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저만의 길을 못찾았고 우선 좋아하는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뛰어들었고 올해 접수는 했으나 내년수능이 최종지향점이네요
다만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지금 속한 집단에서 내가 어느 지역이나 어느 세부분야에서 위치가 얼마나되는지는 일하면서 인지가 돼있기에 지금의 선택이라도 할수있었던것같네요
일반적으로 우러러보는 전문직이라해도 문닫힌지 오래고 뛰어들어도 기반없으면 살아남기위해 인생을 갈아야하기에 사는게 많이 힘들어보이더라고요
하물며 다른 직종은 말해뭐하겠냐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무엇이라도 해봐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여유라는게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가서 새로운 선택이 가능한것같습니다
프로필보니 아직 젊으시던데, 많이 고민해보시고 일단 부딪히면서 해당 분야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보는 경험을 쌓아나가면 보다 나은 선택을 하실 수 있겠다는게 제 개인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라 하기는 조금 가벼운 조언이겠네요
응원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길 찾는건 당연히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삶을 사는 서로가 되길 응원합니다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위로 올라가면 행복할줄알았는데 윗층에 있는 사람끼리 똑같은 삶을 산다
단지 금전적인 선택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뿐이다
제 생각 조금 추가하자면 앞으로 세금은 더 커질것이니.. 위로 올라가는것이 행복을 추구하는것보다 과거에비하면 효용이 많이 줄어들거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고민은 먼저 삶을 살아온 기성세대와도 대화나눠보면 시각차이도 알게되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큰 맥도 얻게되더라고요 그게 저는 개인의 욕구충족에 따르는 행복추구였습니다
논술12관왕님의 이야기와 생각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많이 고민해 보고, 일단 부딪히며 제가 속한 곳에서 제 위치를 확인해 보는 경험을 쌓아가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나 흔히 이야기 하는 '상류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나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태도가 주류가 된다면 다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그 속에 논술12관왕님과 제 삶은 어떠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욕구가 충족됨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대한민국이 점차 더 강한 복지 국가로 나아가며 개인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늘어나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오늘의 행복,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다면 그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 우리의 대한민국이 더 자주 웃을 수 있는 나라의 모습을 띄고 있길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다시 한 번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논술12관왕님의 '길'에 더 가까운 삶을, 그리고 저도 제 '길'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길 바라봅니다.
사회의 기본 소양(사회성, 인성, 교양 등)을 길러주기
사회성(社會性):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인격, 혹은 성격 분류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로,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따위.
인성(人性): 사람의 성품.
교양(敎養):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살펴본 사회성, 인성, 교양의 정의(定義)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해주신 것과 같은 사회의 기본 소양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어떠한 생각 혹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교실 안 교육, 국가 교육과정을 활용할 때는 어떠한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인가, 교실 밖 교육에 초점을 둘 때는 어떠한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인가, 유튜브의 쇼츠나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같은 '숏폼' 컨텐츠를 활용해서 사회 전반에 이와 관련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어떤 주제의 어떤 내용을 어떤 형태로 연출하여 담아낼 것인가
한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mayday님께서는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그리고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아가 한 개인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내용을 어떠한 방식으로 가르쳐주어야 할지, 뇌에 의학적인 문제가 있어 충동을 제어하기 어렵거나 사회의 구성원이 이룬 어떠한 합의를 심각한 수준으로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어떠한 형태의 교육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mayday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 생각은 사람이 두명 이상 모여있으며, 그들간의 일련의 집단의식이 형성됐을 때 사회가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냥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뜻하겠네요.
일단 ‘사회’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회라고 정의내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사회가 명시적, 암묵적으로 만든 규범이나 가치등을 알려주고, 또한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 이런 흔히 말하는 교과과목을 지금보다 폭넓게 가르쳐서 학생의 뇌에 어떠한 지식 체계를 심어주는것입니다. 그다음에 앞서 가르쳐준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개선점이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도 물어보게 할 것입니다.
뇌에 대한 문제는 약물이나, 심리치료등을 통해 사회의 합의를 따르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회 구성원이 합의를 심각하게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일단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시키되, 그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회구성원들에 이익을 침해한다는것이 밝혀지면 그에 따른 제제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식견이 짧아 지금은 여기까지밖에 생각이 안나네요
|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만들어진 규범이나 가치
| 학생의 뇌에 어떠한 지식 체계를 심어주는 것, '그 다음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어보고 대안 제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 사회적 합의를 따른다.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 그러나 경우에 따라 제재(制裁)도 필요할 것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는 말씀해주신 이러한 내용에 대해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시간 내어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실 미성년자를 가르치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건 필자분과 마찬가지로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걸 뼈저리게 느끼는게 고등학교에서 예의를 잘 못 지키는 다른 학생들에게 남들이 보는 앞에서 비난,혹은 비판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고 더욱 느낍니다.
교육자라는 직업이 학문을 가르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초 예절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걸 좋게 인도해 줄 수 있는 인성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기본적인 것이 잘 안 갖춰져있는 걸 앞에서 못 배웠다고 나무라는게 아닌, 그걸 포용하고 ‘직접’ 알려주는게 ‘교육’자의 의미에 저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학생인지라 그런 교육자분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수 있습니다.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분이 상하셨을 수 있고,무시받는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적어도 ‘학생이 모르는 걸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교육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인성이든,지식이든, 예절이든 말이죠.적어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걸 관용하고 직접 알려줄 수 있는,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인성’을 갖춘 사람이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멀어지고, 가까워 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성으로 부터 나오니까,적어도 기본적인 인성과 지식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교육에 가장 부합하는 교육자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어쩌다보니 교육자 이야기까지 나왔네요ㅎ 아무래도 교육이 저는 미래라고 생각이 들어서 말이 길어졌나봐요ㅠ 이 긴 글을 읽어주신 누군가 항상 행복하세용!)
물론 그걸 받아먹는 학생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초적 입장에서 보면 받아먹는 학생을 좋게 형성하는 가정 교육이 정말 핵심이 될 것 같네요.
가정 교육도 정말 연구가 많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성화,개인주의 사회로 발전하면서 공동체,가정의 의미가 점점 쇠퇴하고 개인 중심의 사회가 되니
가정 교육 관련해서도 많이 약화되는 그런 사회가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ex:그냥 핸드폰 쥐어주기)
공감과 사랑,이해와 감사 같은 가정에서 정말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그런 가치들이 많이 쇠퇴하면서
차가운 사회,이성 중심의 사회가 되는 것 같네요.
이게 나쁜건 아닌데 적어도 감정이 배척당하는 사회가 되는 것 같은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고,완벽한 이성적 인간이란 것도 불가능하다는게 제 입장입니다. 결국 감정이라는 영역도 인간의 능력이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임에도 이를 배척하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아쉽네요.
그래서 근원적인 가정 교육도 정말 책임이 막중한 것 같습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부조리와 괴리를 인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 비추어 보면, 부조리와 괴리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봅니다.그런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학생이 ‘(무엇이든)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고,그 경험 속에서 승리를 하는 경험이 생겨난다면 세계를 보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고,무기력증이 완화되며 그러한 능력도 고조되지 않을까 싶네요.극단적인 이상주의자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누구나 인간은 무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혹은 사회가 정해놓은 세계에서 억압되고 제한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약 그 부조리와 괴리를 승리하는 경험을 통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알베르 카뮈의 책 데미안에서 한 말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알은 세계다,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한다.”와 같이 세계를 부수고 훨훨 날 수 있는 개인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승리 경험을 쌓아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솔직히 이건 개인이 스스로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교육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봐요 ㅠ 글 읽으신 분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포용하고 ‘직접’ 알려주는 것이 교육자의 모습이다.
| ‘학생이 모르는 걸 채워줄 수 있는 사람’
| 가정 교육: 공감, 사랑, 이해, 감사
| 감정이 배척 당하지 않는 사회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 부조리와 괴리를 인식하는 능력: 이를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저항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저는 누구나 인간은 무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회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아 교육자의 지위를 갖춘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사이에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차이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저도 khj3248님께서 말씀해주신 것 전반과 같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수능을 응시한 지는 이제 곧 3년이지만, 과외를 이어오며 중고등학생 그리고 수능을 준비하시던 분들과 가끔씩 이러한 주제에 관한 대화를 이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khj3248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많이 부족하고 더 치열하게 배워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더 진심으로 이 순간에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른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라는 이야기에 크게 반항하지 않았고, 대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어른의 말씀에 크게 반대하는 일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나의 자식과 나 사이에는 어떠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질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만약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도움을 줄 자격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잘 들어야 한다고 배워 온 '어른'의 말씀에서, 이 '어른'도 당시의 나와 같은 상태에 있다가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라면 과연 그들을, 아이들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할 올바른 교육자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가정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올바른 가정 교육을 이끄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가정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가정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이 올바른 가정 교육을 이끌 수 있는, 아이들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할 올바른 교육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어려운 주제이고 어쩌면 답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오늘 khj3248님께서 말씀해주신 것들을 단서로 삼아 더 고민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문화의 힘은 강력하고 교육의 힘도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도 교육의 힘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효과적인 도움이 준비되더라도 결국 개인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 아래에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고민을 이어가겠습니다. khj3248님의 말씀대로 오늘 이 댓글로 나누어진 대화에 함께 해주실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번에는 역으로 질문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책참님은 ‘어른’의 정의를 어떻게 보시나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19년의 짧은 삶을 살아보며 느낀게 ‘참된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제가 나름대로 내린 저의 이상이자 도달해야할 지점이라고 보아서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이 뭘까?’ 부터 질문을 시작하니 타인의 어른의 정의도 궁금해져서 질문드려요!! 그리고 저보다 고학력자이시고,언어를 사용하시는 면모만 보아도 배울 점이 정말 많은 것 같아서 역으로 질문드립니다.+(저의 개인적인 어른의 정의는’나의 따스함으로 타자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입니다!!)
나의 따스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온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사람, khj3248님께서 내리신 어른의 정의가 마음에 듭니다. 나는 따스함을 지닌 사람인가,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나의 온기를 불어 넣어 주었는가 성찰하게 됩니다. 성찰의 기회를 선물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른'을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이라고 정의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수식이 있습니다. 0=-1+1=0입니다. 의미는, 22수능 독서 지문으로 다루어졌던 헤겔의 변증법에서 생각을 이어가 만약 [정립-반정립-종합]의 형태로 [수용적 사고력-비판적 사고력-창의적 사고력]을 바라볼 수 있다면 처음에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는 끝까지 의심해 보고, 그 다음에는 처음에 받아들였던 것과 후에 의심해 본 것을 함께 고려하여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거나 떠올리지 못했던 것을 다루어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본인이 믿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본인이 발견한 것만이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어떤 인물 그 자체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본인이 믿지 않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본인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이 발견한 것이 적절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어떤 인물을 지지하진 않지만, 그 사람의 어떤 생각을 나름의 이유에서 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저도 올해로 20년 조금 더 되는 짧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력도 고등학교 졸업인지라 (두 개의 대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아직 학사 학위를 취득하진 못했습니다.)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나이와 학력이 그 사람의 깊이를 알려주진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khj3248님께 배움의 순간을 선물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좋게 봐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내리는 '어른'의 정의도 매순간 바뀌어 가겠지만, 현재로서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복잡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뭔가 가슴에 와닿는 말이네요. 우리의 삶이,인생이 복잡하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고,새로운 것을 함께 만들 수 있으니까요. 책참님이 정반합 관련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의심을 통한 이해라는 말도 정말 깊이 와닿네요.무엇보다 다름을 이해하는 마음,우리가 구별됨을 받아들임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정말 감사해요, 성찰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네요.그리고 저는 책참님이랑 이야기 나누는 지금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은 잘 못하지만,누구나에게 배울점은 존재하고,어느 순간에도 배움은 진행되니까요. 바로 오늘 제가 책참님 덕분에 더욱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처럼요! 그래서 감사드려요. 덕분에 내가 가야할 ‘어른’에 대해 더 고민하고 치열하게 노력할 불씨가 더 생기네요!! 오늘도 좋은 밤 보내세요!
네 좋은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khj3248님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시간 되실 때 Paul Schumaker 교수님의 From Ideologies to Public Philosophies라는 책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한국어 제목은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인데 말씀해주신 '의심을 통한 이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실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교육자에게도, 학생에게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책임감을 길러주는게(교육자는 교육이라는 본인의 업무에 몰두하며 본인이 하고 있는 교육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이다, 귀가본능님의 말씀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어떠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과 '책임'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면, 이 학생이 가질 수 있는 책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혹은 귀가본능님의 이야기를 여쭤보아도 괜찮으시다면, 지금 어떤 책임을 갖고 계신가요?
초등학교 1학년이 져야 할 책임과, 성인이 져야 할 책임은 다르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져야 할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게는 수업시간에 집중하며 떠들지 않으며 집중해야할 책임, 자신이 맡은 청소따위를 해야할 책임 등이 있을 수 있고, 크게는 학생들간의 갈등에서 다시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책임따위가 있겠죠. 전자 후자 모두 1학년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못하더라도 경험과 그에 따른 피드백 과정에서 교사가 어떻게 지도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꽤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일단 학교의 전교1등으로서 타의 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반과 학교의 학습분위기에 제 발언 하나하나가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끔씩은 선의의 거짓말을 할때도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진심을 다해서 학습 조언을 해줍니다.(저는 입학때는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전교 40등대정도였습니다. 어느순간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 느꼇고 그때부터 다양한 성적 상승 칼럼/공부법을 닥치는대로 찾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지 않았던 문제점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끌고와서 대략적 해결법정도를 전해줄 수 있는데, 가끔 저의 경험인 양 말할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생명을 좀 잘해서 기출을 덜끝냈는데도 유전은 거의 안틀려서 1~2등급을 받고있는데, 난 걍 대충 ~~이라 말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럴때는 남의 경험을 제 경험인양 가끔 말합니다.) 이외에도 그냥 학습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친구들간의 내 위치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책임 등을 전 가지고 삽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사는 이유는 어릴 때 부터 제가 다소 머리가 좋았고, 다소 잘난척을 했기 때문에 남들과의 관계를 진심으로 맺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지만 다소 사회부적응자같았습니다. 한 초등학교때까진요. 그러다가 학폭당하던 애를 초6쯤에 만나고 나서 조금 많이 바뀌었던거 같네요. 최소한 무언가에 대한 책임을 지자란 생각을 가졌고, 어찌되었든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인격적으로 가장 많이 발전한 사람인 선생님과 대화를 자주 하면서 결국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한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건 매우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꼭 본인만의 결론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무엇이 정공법인지 논하는 것도 재밌는 시간이 되겠지만, 다양한 칼럼/공부법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시고 현재 전교 1등을 지키고 계시다니 정말 멋지십니다. 귀가본능님께서 정공법대로 성적 향상이라는 하나의 문제 상황에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시어 스스로의 성장을 도우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험과 그에 따른 피드백 과정에서 교사가 어떻게 지도하는지에 따라 (학생의) 결과가 많이 달라질거라고 생각"하신다는 부분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요새 쓰는 표현 중 '교실 안 교육' 과 '교실 밖 교육'이 있는데, 이를 보다 다듬는다면 '형식을 갖춘 교육'과 '형식을 갖추지 않은 교육'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이 부분은 형식을 갖추지 않은 교육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교육자가 신경써야 할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직접) 겪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끌고 와서 대략적인 학습 조언을 전해줄 수 있"으시다고 말씀해주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생이 되어 과외와 같은 형태로 중고등학생의 학습에 도움을 드릴 때, 제가 직접 떠올린 것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도움을 받은 사람도 있으니 참고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이다'와 같이 학습 조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조언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때, 제 개인적인 경험에만 근거를 두기보다 주변 사람과 제가 닥치는 대로 긁어 모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토대로 종합적인 조언을 드리고자 노력합니다.
공부나 일을 할 때, 삶을 이어갈 때 가장 확실한 동기는 죽음과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과 관련된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할 때에도 항상 태도의 중앙에 죽음과 책임을 두고자 노력합니다.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이러한 맥락에서의 책임을 말씀해주신 것인지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슷한 맥락에서 말씀을 주신 것 같아 크게 다르게 이해하지 않은 듯하여 다행입니다.
나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 책임감으로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중인가, 고민해 보겠습니다. 시간 내어 댓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름의 결론을 찾기 위해 내일도 애쓰겠습니다. 귀가본능님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언젠가 함께 더 다양한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교육은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들을 서로 이어나가는지는 교육을 설계해나가는 입장에서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이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 재가 되어 나리는 하늘님의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증기 기관과 인터넷이 인간 사회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듯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기에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우리의 미래를 크게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곤 합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몇몇 인공지능 전문가들께서 말씀해주시고 있으십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 이것을 조금 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맥락으로 불러온다면 어떠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재가 되어 나리는 하늘님의 이야기를 여쭤봐도 괜찮으시다면, 오늘 하루 맞이하신 순간 중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에 관련되었던 인상적인 순간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
곰돌이 괴롭히깅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무엇인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제가 그걸 모르겠어서 교육의 중요한 이념 중 하나로 언급한거긴 합니다
제가 확신을 가졌더라도 주변에서 틀렸다고하면 흔들리게 되더라고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아직 제가 원하는 삶을 찾지 못했는데, 찾기 위해 더 읽고 쓰고 말하고 들어야겠습니다.
확신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주변에서 틀렸다고 이야기할 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디까지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부터 나의 주관을 고집해야할까요? 정답이 없는 질문이겠지만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오늘 생각해 보신 그 결론을 듣고 싶습니다.
자율성의 보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교사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학생들은 생기부로 보복 당하는 것이 두려워 문제에대해 지적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학생들 발언의 자율성을 빼았을뿐 아니라, 학생의 비판적 역량을 축소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국민의 비판적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것,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재 대한민국 입시에 있어 수시 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할 때 학교생활기록부를 포함해 대학에 제출될 자료에 본인의 이야기가 잘 담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꼭 대학 진학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무슨 일을 하든 내가 한 일이 올바르게 평가되고 그 평가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사회 운동이나 대안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개인이 잃어야 할 것, 어쩌면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회비용을 키우는 것은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데 꼭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워 교사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이러한 순간이 쌓여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학생의 비판적 사고력이 향상되기 어려운 환경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요? 직접 선생님께 가서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거나, 문제 상황에 공감하는 친구들을 모아 단체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 외에 문제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의 수 자체가 적거나 혹은 진솔한 대화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개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어떻게 취할 수 있을까요?
교육자로써는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육자에게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혹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본문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또한, 책임감에는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어른으로써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인성 또한 포함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학생에게 행하는 행실, 혹은 교육 내용에 심각하게 비도덕적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교육자로서 필터링 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내가 만난 학생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앞으로 제가 교육자로서 일을 할지 혹은 어떠한 형태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명심해두겠습니다. 최고의 방법은 없겠지만 조금 더 나를 돌아보고,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지혜로이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야겠습니다. 일반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성장에 있어 특별한 지름길은 없을 확률이 클 테기에, log__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참고하여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교육이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더 열린 사고로 다양한 논제에 넓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고 적절한 토론과 토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토론과 합의를 거치며 자신이 틀린 경우, 그냥 의견이 달랐을 뿐인 경우, 다른 사람이 틀린 경우, 모두가 틀린 경우 등...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겠죠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엔 분명 불쾌하고 때로는 아프겠지만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는 추동력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동력(推動力)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제든 나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혹은 적어도 나보다 더 나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의 성장은 물론 개인의 행복에도 정말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정치를 다루는 기사를 네이버 뉴스에서 확인하고, 그 댓글을 읽다보면 누구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치 자신의 의견이 유일한 정답이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악(惡)으로 분류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장 수능을 준비할 때 과학탐구 영역을 공부하다가도 교과서에서 다루어지는 것들이 현재로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을지 몰라도 가까운 미래에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조심스러운 생각으로, 객관식이나 주관식과 같은 형태로 이미 정답이 명확히 존재하는 문항을 주어진 시간 내에 정확하고 빠르게 풀어내어야 좋은 성적을 받고 목표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대학 입시의 모습이 개인이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진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객관식, 주관식 문항보다는 서술형, 논술형 문항이 학생의 사고 과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답이 정해진 문제 상황에 대한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인 풀이 훈련도 중요하지만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 상황에 대해 여러 명이 모여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예의와 품위를 갖추어 자유로이 나누어 보는 것과 때로는 문제 자체를 정의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교육이 꼭 다루어야 할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따라 첫 출제될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담고 있진 못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 이러한 부분을 고려한 현실적인 대안이 제시되어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더 나은 오늘을 꿈 꿀 수 있길 간절히 바라 봅니다.
교육은 현실과 이상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꿈꾸고 도전 할 수 있는 청년시기를 의미있게 보내서 헛되게 보내는 시간없이 자신을 성장하게 할 원동력을 불어 넣어주고 지나친 이상을 경계하도록 판단 할 수 있는 안목을 만들어주는게 청소년기에 중요한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는 시기를 뜻깊게 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지나친 이상은 경계하여 지혜로운 태도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저는 전자에는 꽤나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후자에는 그만큼의 무게를 두고 있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에 동감하며 지나친 이상을 경계하고 '최소한의'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 또한 제가, 그리고 앞으로 제가 만날 학생이 길러갈 수 있도록 신경써야겠습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학생에게는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한 행동을 실행하게 하며 본인을 끊임없이 분석하게 하는 생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봅니다.
요지는, 어떤 목표를 갖든 학생이 능동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서, 교육은 그런 학생의 태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워낙 요즘 시대가 정보가 과잉되고 자극적인 컨텐츠들이 늘어남에 따라 학생들의 능동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선천적인 재능은 크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본인의 내재된 능력에 따라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험생이시라면 시간이 더욱 귀할 텐데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마음가짐을 만들어주는 교육은 현실적이지 않고, 학생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능동적으로 이루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교육의 목표 중 하나로 두어 보는 것이 의미를 지닐 수 있겠습니다.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옝얭옝님의 생각을 더 듣고 싶습니다. 학생의 그러한 태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똑똑한 학생이라면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석하여 '이러한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말해줄 테니 그러한 말을 편하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두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목표 설정과 설정 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혹은 뚜렷한 목표를 세우기 어려운 경우 등) 를 찾아가는 데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학생도 있을 것이며 어쩌면 다수가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한정적이지 않다면 항상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지만,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혹은 학생이 언제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관해 나누어주실 수 있는 생각이 있다면 여쭤보고 싶습니다.
일단 제 이상적인 주장에서 맥락이 시작되기에, 이상적인 맥락에서 말씀드리자면 본인의 생각이 확고하게 잡힌 학생에게는 학생이 질문하는 바,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이 잡히지 않은 학생들에게 본인들이 스스로 생각을 할수 있도록 하는 촉매의 역할을 교육이 해야 합니다. 그들을 초점으로 한 게 댓글로 작성한 제 주장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줄거냐? 라고 묻는다면 거기에 더이상 답이 나오질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돕기 위해서 한 교육이 그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해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선뜻 하나로 정해서 말씁드릴 수 없다고 봅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바람직하다면 어떠한 맥락에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을 해칠 수 있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인데, 어쩌면 그 어떠한 답도 제공하지 않은 채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수법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저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교수법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외를 할 때에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존재하나요? 존재한다면 어떻게 유도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근의 공식 유도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는 셈입니다.
인성과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습닏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리안드림님께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구체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제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여쭤보고 싶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쁜 것 빼고) 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 난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게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능력을 확인하고, 존재 가치를 느끼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것! 말씀해주신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주제를 던져주었을 때 홀로 고민하고 배우고자 함으로써 나름의 답을 찾아갈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고민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혹은 어떠한 이유로 본인의 무능에 좌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을 교육의 목적이라 생각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은 그리고 선생님과 다른 어른들을 포함한 사회의 구성원은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요?
1. 언제든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주어진다는 걸 알게 해주기(선생님과 어른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거 같습니다)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기)
2. 이 고민은 평생 가는 것이고 단발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기(대표적으로 학교가 그러라고 있는 거 같습니다!)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기,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고민이 의미가 있고 나이와 배경에 무관히 모두가 이 고민을 죽음까지 안고 갈 수 있음에 대한... 동료 의식?
또래의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것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이라 보신다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것까지만을 생각하고 이후는 학생과 사회 구성원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히 이어질 것들에 맡기시는 것인가요?
혹은 학교라는 사회에 대해 '이러한 모습이 바람직하다'라거나 '이러한 기능이 필요하다'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시다면 그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너무 이과적인 생각 같지만 결국 교육의 목적은 인류의 발전 같습니다. 수능공부할 때 수학과 과학은 우주의 원리에 다가가기 위해(물론 수,과학이 그렇다는것도 결국 지금 살고있는 시대만의 주류이긴 하지만), 영어는 다른문화권과의 지식소통을위해 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국어에관해서는 현역때까지 회의적이었다가 대학을 와서 조금 생각이 바뀐 것 같습니다. 결국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종들과는 달리 후대로의 지식의 전달이고, 단순 구두로써의 전달의 한계를 깨뜨린 것이 글자인것 같습니다. 결국 인류는 선대가 남긴 글자의 지식을 읽고 이해하여 앞으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것이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이러한 사람을 원하는곳이 대학이며, 대부분의 인류의 지식은 글자로 쓰여진 논문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렇기 때뭉에 글자로 남긴 지식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국어시험을 보는 것 같아요.
물론 이건 지극히 학문적인 측면에서의 교육인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문학교육이 상대방의 감정표현을 읽고 상대방이 왜 이러한 감정을 느꼈을까 공감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좀더 필요하다고도 생각하구요.. ㅎㅎ 결국 결과적으로는 학문적이든 사회적이든 인류가 같이 뭉쳐서 발전해나갈 수 있는 후대를 양성하는게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이지 않나 싶네요.. ㅎㅎ
다함께 발전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발전할 수 있는 후대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말씀해주신 것에 동감합니다. 또한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나누어주신 생각에도 동의합니다. 더 많은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언어'라는 합의를 통해 원활한 의사 소통을 이어 온 인간이 다른 생물종과 다르게 큰 강점을 갖고 있음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영어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고, KBS한국어능력시험의 비슷한 맥락에서의 취지에도 동감하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는 약 8천만 명이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는 약 15억 명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의 산업혁명과 미국의 발전을 생각할 때 인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순간은 영어와 함께 하였고, 지금도 특히 이공계 분야에 있어 업적이라 불릴 만한 논문은 대부분 영어로 쓰이고 영어로 읽힙니다.
교육의 목적을 인류의 발전에 둔다면, 어린 아이에게 우선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왕이면 영어로요! 이후에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 속에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 후에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성과 공감능력을 기르는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목적이 사회 발전과 기술의 진보라면 다수의 청소년들을 한 곳에 모아서 교육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아닌것 같습니다.
인성과 평등도 물론 맞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수의 청소년을 한 곳에 모아서 교육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방식이 존재한다면, AI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교육 서비스 제공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최소한의 사회성과 공감능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최소한'의 기준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요?
민주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적수준 갖추기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기준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요?
사회에 나가서 인간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없고, 한 명의 사회인으로써 1인분을 할 수 있도록 키워주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지금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그 구성원은 어떤 특징을 지니곤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즐겁게 다가옵니다. 아직 책과 논문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과 다함께 오래토록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주제로 다가옵니다.
전인교육이 교육의 근간이다라는 전제하에
역량을 강조하는게 요새 기조라고 하시더라구요
전인교육을 근간으로 할 때 역량을 강조한다, 혹시 어떤 분께서 말씀해주신 것인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또한 아무거또하기시러님께서는 말씀해주신 전제에 동감하시는지, '역량'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교대 교수님들이십니다...
영어과 교육론, 미술과 교육론쪽에서 말씀해주신걸 두번이나 들어서 기억에 남았네요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번 말씀하셔서 세뇌된 기분이에요
현 교육과정의 특징이라고 하십니다
역량의 정의는 모호해요 저도 사실이해가 안가고 크게 관심이 없는 부분인데 국가 교육과정이 그걸 중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가치 있는 폭넓은 교양과 건전한 인격체로서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교육을 실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 사상이나 사물 따위의 상태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상적이며 위태롭지 아니함.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것,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위험한 듯하지 않음. 알맞은 정도,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지 않음. 일정한 기준, 조건, 정도 따위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한 데가 있음, 들인 밑천이나 제 값어치보다 얻는 것이 적지 않음.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더 읽어보고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교대 교수님들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공교육은 사회화가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윗분도 비슷한 얘기 해주셨는데
그것이 인간 관계가 되었든 기초 지식이 되었든 사회에 나가 1인분 정도는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회'라는 단어와 사회에 나갔을 때 '1인분' 정도를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자주 보여 흥미롭습니다.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하루를 이어가고 유전 정보를 지키기에, 인간도 결국 '사회화'라는 하나의 적응 과정을 거치는 것에서 교육의 본질을 다루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무교육과 고등교육으로 교육의 범위를 한정한다면, 스스로 효율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깨우치게 해주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현대 사회에서는 결과를 단편적으로 해석한 내용을 그저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 치우쳐 있는 듯 해서 아쉽네요...
스스로: _________
효율적으로: _________
사고하는: _________
법: _________
각각의 표현을 어떻게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또한 결과를 단편적으로 해석한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곤 하는 현대 사회에서의 교육의 한 모습이 존재함에 동의하고, 그것이 아쉽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연세대학교 경제학부에 다니다가 보다 다양한 교육을 경험하고 싶어 세 번째 학기를 마치고 태재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지금 세 번째 학기를 경험하는 중인데, 두 대학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형태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1. 학생은 책을 읽고 궁금한 부분이나 흥미로운 부분, 혹은 우연히 떠오른 부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다.
2.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여 다른 사람과 토의, 토론 등의 방식으로 나누어 본다.
3. 학생이 필요로 할 때 Lecturer 혹은 Facilitator와 같은 교육자가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다.
만약 제가 대학을 세운다면 이러한 대학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육부의 인가를 받는 과정이나, 학생이 국가 장학금을 신청하고 지급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것이 '지나친 이상'일 수 있다는 이유로 개교 당시에는 처음에 떠올렸던 형태와 그 모습이 크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서는 수능을 공부하더라도 실력 향상과 그에 따른 성적 향상에 초점을 두는 동시에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수능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해 보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학 선지의 누군가의 해설을 읽어보며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이것이 타당한 설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 보는 것, 비록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영역은 수학1, 수학2로 이루어진 공통 22문항과 확률과통계, 미적분, 기하로 이루어진 선택 8문항을 다루고 있기에 선택 과목 세 개 중 하나만 잘 해도 대학 가는 데에 문제가 없으며 출제 또한 따로 이루어지지만 확률과통계의 '연속확률변수'라는 주제와 미적분의 '부분적분'이라는 주제를 융합한 문항을 만들어 본다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것.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다양한 맥락에서 바라보며 놀아보고자 한다면 사회탐구 영역 9과목과 과학탐구 영역 8과목을 모두 공부하여 EBS연계교재인 수능특강 17과목 책 중 임의로 2개 과목 책을 고르고 임의의 페이지를 펼쳐 각각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보는 것, 혹은 그렇게 펼친 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인터넷과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해 더 다양한 이야기와 엮어봄으로써 (e.g. 사진을 촬영하여 ChatGPT 4o에 입력하고 'Search about the topic in the picture and generate some related questions or things to think about please'와 같은 문장을 입력하기) 배움의 길을 넓혀가 보는 것.
학교 밖을 나가서도 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이 제 1 기능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사회에서 학교라는 곳은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세대 간의 지식을 전달 하는 장소의 역할이 컸으나
사회 발전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사회 여러 곳곳에서 혁신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고
그 만큼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갖췄었더라도
이 사회에서 도태되기 더 쉬워졌습니다.
학교는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지식을 통해 학생 개인의 역량 계발을 위해 훈련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인성이나 사회성은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학습이 가능하며
역량을 배제하고 전인 교육만을 강조했었던 교육 시스템 중에서 성공한 케이스를
본 사례가 없습니다.
물론, 개인의 공적정신이 계발되지 않은 채로 학교 밖을 나갔을 때
생길 수 있는 도덕적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보단 산업 구조에서 발생하는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성 사회성 계발 명목으로
체계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아서 그럽니다
인권 교육 시간에 자거나 학원 숙제하는 학생이 많은지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이 많은지 모르는 학생 없습니다
단지, 학습량이 많아서 인간성을 기를 여유가 없다는 변명으로 애꿎은 공부량만 줄어들었죠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장로 드래곤님께서는 인성과 사회성을 계발하기 위한 목적의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인권 교육 시간과 같은 때에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이 늘도록 하기 위해서 개인이, 사회가, 그리고 교육자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 학교는 학생 개인의 역량 계발을 위해 훈련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 산업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다른 맥락에서 다루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제 생각)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페이퍼컴퍼니님께서는 학생 개인의 '역량'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역량을 정의하기전에 미래사회에 개인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부터 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 교육과정도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 미래 사회의 시민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6대 역량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역량이 계발될 수 있도록 학습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각 교과과정은 학생 개인의 역량에 대한 초첨을 맞춘
교육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지식을 전달하고 그 지식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역량이 "자연스럽게" 개발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역량 교육은 뒷전으로 미뤄둔채로
교과이기주의에 기반한 지식교육만을 시행했기에 한국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듯 합니다.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습니다. 교육과정에 관한 자료를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지식이 전달되고 학습되는 과정에서 역량이 '자연스럽게' 개발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 개발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면, 예를 들어 어떠한 내용을 어떻게 다루는 수업 등이 마련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꿈 꿀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고민 중이신 대안이 있으시다면 나누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거보고 백인성 선생님 듣기로함
2021년에 생2 섬개완 열심히 들었었는데 오랜만에 듣는 성함이네요
요소들의 우열을 가릴수 없다고 생각
현답입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육이란게 고등학교 이전의 교육이면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거라 생각합니다(인성,지식 등등)
반면 대학부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고, 대학부터의 교육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직업이라든지 지위를 부여받았을때 그에 맞는 책임을 주어진 역할로 볼 수 있을것같습니다
대학에서는 교육보다는 학문에 대한 학습이라 생각하고요
학업적 능력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학업적 능력이라 함은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여 우리가 '학문'이라 부르는 분야의 지식을 쌓고 관련한 생각을 깊이 이어가 볼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해 보아도 괜찮을까요?
환경 같아요 ..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라미숙해님께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환경이 있다고 생각하신 이유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꿈을 꿀 수있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교육의 본의라 생각합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222만뜨자님께서는 '꿈'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으실까요? 그리고 누군가가 꿈을 꿀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바람직하다면 왜 그러한지, 그리고 어떻게 인도해줄 수 있을지 (적어도 꿈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에 대한 고견 또한 구하고 싶습니다.
네
우선 책참님의 질문에 관한 답변을 드리기 전 ,모든 답변이 저의 짧은 식견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부족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히고 글을 계속 써보겠습니다.
저는 인생에는 목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라는 불합리 앞에선 그리고 우주의 무한성에 대한 비밀을 알아갈 수록
자아(주체)가 생각하기에 가치있는 어떤 것이라도 허무해지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치있는 것이란 명예,돈,학문적 성취,사랑.. 등이 있겠네요.
인간의 삶이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난김에 사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 그렇기에, 인생이 그렇게나 허무한 것이기에 마음대로,하고싶은 대로 그리고 주체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기쁘게 행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생이라도 자기가 생각하고,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컨대,저는 사랑이 그저 호르몬의 작용임에도 사랑한다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저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살고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그것들이 모두 기만이라 할지라도요.
그래서 전 인생의 목적이 없기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주체들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그네들의 인생에 부여할 의미 , 그것이 꿈 내지는 작은 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 꿈을 찾도록 이끌어주는 게 바람직하냐고요?
그 꿈이라도 없으면 한 번뿐인 인생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또, 본인이 본인으로써 살지 않고 죽는다면 숨이 멎을 그 순간 후회가 가득 남을 것같지 않습니까?
너무 경박한 대답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자는 교단 위에 서서 학생들 각자의 개성을 찾도록 인도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 모두가 꿈을 '가질 수'있다는 생각을 불어넣고 계속해서 자신과의 대화를 하도록 독려하며
나아가,그것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견고히 다질 수 있는 여러 방면의 경험을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글을 쏟아내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요새 삶의 방향을 잃어버려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고민을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전해주신 "그 꿈이라도 없으면 한 번뿐인 인생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라는 문장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답이란 없을 것이고 저도 생각을 해 볼수록 생각이 바뀌겠지만 현재로서 "꿈을 꿀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우리가 교육이라 부르는 것의 목표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답글을 읽으신 다른 분께서 질문이 있으시다 하여, 전달받은 그대로 남겨드리니 시간 되실 때 이 또한 답해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답해주신다면 질문자님께 그대로 전달드리겠습니다.
"거대한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일개 인간의 개인적 삶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기때문에 개개인이 개별적 목적을 설정하여도 괜찮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삶이 개인의 입장에서 가치있고 목적이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깊습니다. 댓글에 써주신 내용을 미루어 보았을 때 희망이 보이지않는 좌절적인 상황에서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아무개들에게 아무개 개인만을 위한 소박한 희망을 부여해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관점은 인간의 관점에서 '교육자'라는 직업에 큰 가치를 두시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222만뜨자님은 교육자의 역할에 무게를 무겁게 두실 것 같은데, 제 해석이 맞나요? 그러면 사람(학생)들에게 희망, 꿈을 줄 수 있는 자격을 감히 가지고 있는 교육자가 추구해야할 가치/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 지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교육은 가르쳐 주고 배우는것이 본질입니다.
이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양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세계에 비유할 때, "모두가 서로 다른 자신만에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한 사람의 세계는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특히 세계는 비율로 볼 때 급격히 팽창하고 사춘기 청소년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계속해서 팽창하다 어느 순간 자리를 잡게 되고 그 후부턴 조금씩 세계는 팽창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교육이라는 건 한 개인이 이 세상에 더 잘 적응하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살아가는 시대와 생각의 수준에 맞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더 잘 살아남도록 돕는것 이지요 만약 이렇다할 교육 없이 바로 사회로 나오게 된다면 아이들의 작은 세계는 거대한 세계들에게 짓눌려서 팽창을 거의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필요한 것은 제가 보기엔 실패나 실수를 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한다거나 두려워하지 않게끔 생각하게 하는 것이
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하던걸 글로 적을려니 쉽지가 않네요 중복되는 문장도 있고 불필요한 문장도 있고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신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때로 한 세계가 다른 세계의 '팽창'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도 흥미롭습니다.
| 생존: 다른 세계에 의해 나의 세계의 팽창이 방해받지 않도록
| 생존: 실패하거나 실수를 해도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앞으로 누군가의 세계의 팽창에 도움을 줄 때 실패나 실수에 그 사람이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이끌어주고자 신경써야겠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도 실패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포기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겠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공교육 기준 사회에서 1인분 하게 만들어주는것이요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우왕ㅋ굳ㅋ님께서 생각하시는 '1인분'이란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듣고 싶습니다.
생존이죠. 먹히지 않기 위해, 나와 내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특히 근대부터는 역사가 그에 대해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현대에도 기본적인 경제와 법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무장해제 후 전쟁터에 나가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무장, 때로는 The Leviathun을 지향하는 절대 권력.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내게 도움이 될 것을 추출해내는 태도를 '보수의 논리'라는 표현으로 다루어 보던 중입니다. 말씀해주신 것이 이 '보수의 논리'에 포함된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한동안 생존, 보다 정확히는 죽음과 책임을 원동력으로 자기 발전과 하루 하루 죽어가지 않는 것을 목표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삶이 재미 없어졌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순간이 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위에 222만뜨자님께서 말씀해주신 "그 꿈이라도 없으면 한 번뿐인 인생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와 같은 맥락을 새로운 원동력으로 잡아보자, 즉 순수 재미와 나의 행복 그리고 자아 실현을 중심에 두고 나아가보자고 마음을 먹은 상태인데 참괴님의 생존이라는 답 덕분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그 꿈이라도 없으면 한 번뿐인 인생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라는 문장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참괴님께서는 생존 다음으로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엔 어떠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닉네임 보면 아시겠지만 저도 별거 없는 사람이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선 지금 말씀하시는 맥락이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인지 '교육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인지 명확히 구분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오로지 본인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이해 받을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너무 자기주관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 좀 더 써보겠습니다.
생물로 태어난 이상 모두 두 가지의 프로세스를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행복추구' 둘째로 '고통회피' 입니다. 전자인 행복은 명확히 구분짓기 힘든 추상적인 관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게 뭔지도 이걸 추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정의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고통은 명확합니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우리는 언제나 고통과 함께 살아갑니다. 극단적으로 이 고통의 변화의 편차가 행복이라는 사상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는 불명확한 행복보다 명확히 보이는 고통을 피할 것이 우선 순위라고 생각합니다. 이 맥락에서 저라면 "꿈이 없다면 인생이 재미가 없다."라는 꿈을 추구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고통의 총량과 "죽음과 책임을 원동력으로 하는 자기발전"의 자기발전을 하지 않았을 때 오는 고통의 총량의 비교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지만 고통은.. 마음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것이니까요.
2. '교육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보수의 논리보다는 진보의 논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리바이어던을 말씀하셨는데 그 책을 읽지는 않아서 정확히 내용을 모르지만 쌍사러로써 대충 절대권력에 순응하고 시스템에 적응하는 책이라고 가정하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교육을 오히려 저항권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국가권력이든 단체의 압력이든 개인 간 갈등이든 우리는 중대한 침해가 행해질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경우 차들이 보행자에게 횡단보도를 양보하지 않자 횡단보도 양 끝에 벽돌을 놓아두고 그걸 들고 건너게 하자 차들이 멈춰서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같은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가는 미숙한 국민이 약자로서 사회에 나올 때 자신의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예방하는 짱돌 하나쯤은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벽돌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벽돌만큼 든든한 것이 없을테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교육이란 우선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개인의 생존권이 보장되면서 국가 전체가 발전하는 것은 상업혁명, 산업혁명 기타 등등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고요.
생존 다음으로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즐거움이겠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군자 삼락의 세번째. 위에도 썼지만 생물이라면 일단 고통을 회피합니다. 따라서 교육자와 피교육자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부과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붕괴합니다. 인성도 매우 중요하지만 일단 생존을 제외한다면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모두 즐거운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졸린데 일필휘지로 써내려가서 틀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대충 맥락을 잡아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생물은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한다.
| 교육에 있어 생존이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는 즐거움이 중요하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제가 사랑하는 것들 중 '죽음'과 '꿈'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나의 죽음과 나의 꿈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죽음과 꿈을 정의하는 방식이, 어쩌면 정의할 수 있는지조차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씀해주신 생물이 타고난 두 과정과 '교육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에서의 생존은 제가 죽음이라고 다루곤 하는 맥락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즐거움의 경우 제가 꿈으로 다루곤 하는 맥락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드리고자 한 말씀도 정돈되지 않은 상태의 것이기에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남겨주신 답변으로부터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을 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죽음'과 '나의 꿈'으로 제가 다루는 대상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며 말씀해주신 것을 몇 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제 성장에 도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의무교육 고등교육의 역할은 다른듯요
의무교육에서는 인성을포함해서 사회성을
고등교육에서는 학문을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테드ㅇ3ㅇ님께서는 '사회성'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그리고 인성을 포함한 사회성을 길러가는 데 있어 어떠한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중학교 교실에서 사회성을 기르는 목적의 수업을 준비한다면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다루고 싶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아가 테드ㅇ3ㅇ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학문에는 어떠한 것이 있고 현재 어떤 방식으로 그 학습을 이어가고 있으신지도 듣고 싶습니다. 나누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서 수능 이후에 댓글을 남기고 싶은데 그때에도 봐줄 수 있으실까요?
이전에는 제가 오르비에 자주 들어오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몇 되지 않아 오래된 글에 달리는 댓글도 확인 후 제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오르비에 들어오는 시간이 줄고 종종 댓글이 여러 개가 달리면 무슨 글에 무슨 댓글이 달리는지 모두 확인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능 이후에 댓글을 남겨주셨을 때 혹시나 제가 답을 달지 않는다면 쪽지로 연락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글의 경우 생각보다 여러 개의 댓글이 담겨 저도 정말 감사히 여기고 있어 주기적으로 새로 달린 댓글이 있는지 확인해가겠습니다. 25수능에서 후회 없는 결과를 받으시길, 그 결과로 목표하시는 대학/학과에 최종 합격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책참님 하시는 일 다 좋은 의미가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ㅎㅎ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