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PineTree) [50039] · MS 2018 · 쪽지

2007-05-15 23: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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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의 저녁 밤하늘. - 재수 전 어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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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의 저녁 밤하늘. - 재수 전 어린 시절 -

안녕하세요.

Pine Tree입니다.

저는 수능에 5번 도전했고, 현재 원광대 한의대에 재학 중입니다.

제 수험생활 5년을 짧게 적어드리면...

현역-비 서울권 재수(학원)- 서울권 3수(메이져 학원+고시원, 중간 원룸독학)-비 서울권 4수(학원)-5수(독서실, 독학)입니다.

수험생활을 오래 하면서 눈물, 보람, 슬픔, 좌절, 분노, 기쁨... 여러가지를 많이 느꼈네요.

그 과정에서 오르비의 많은 수기와 공부법, 격려의 말씀은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글과 수기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오르비 에서 도움을 받았던 걸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한 청년이 술자리에서 “그래요.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세요.” 한다면 어떨런지요.

정말 그런 느낌으로 쓰고 있습니다.

(정말로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물어보면... ^^;)

빨리 올리려고 했는데 글이라는 것이 참 쓰기 힘든 거라는 걸 느낍니다.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인증 샷을 요구하셔서 겨우 올립니다. (제가 사진 올리는 법을 잘 몰라서... 죄송해요.)

2003 학년도 재학생 때 받은 성적표는 잃어 버렸습니다...( 복사본을 나중에 발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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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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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1월. 나의 4번째 수능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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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을 나설 때 정말로 참담한 느낌이었다.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멍하게 걷다가 갑자기 몸이 무겁다는 걸 느꼈다.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택시를 잡아서 집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뉴스가 나왔다.

“오늘 시행된 수학능력평가시험은....”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정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수학이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제발.

제발. 80점이라도 좋으니...

영어 듣기도 과연 마킹이 제대로 되었는지 의심스러웠고,

화학1은 제대로 풀지 못한 느낌이었다.

아아. 아아. 시험 전날은 홀가분한 느낌 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아. 그렇지. 다 내 잘못이야. 공부가 부족 했었어...

아냐! 아니라고. 지난 4년간 충실 하지 않았냐고.

거짓말이야. 이건. 꿈 일꺼다.

“손님. 도착했습니다만...?”

“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한다고...”

택시비를 떨리는 손으로 겨우 내고 내렸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집에 들어가서 방으로 향했다. 그래. 아직 모른다.

채점을 해봐야 아는 거지. 괜찮아. 수학점수는 잘 나올 꺼야.

열심히 했잖아? 괜찮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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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 오후.6:00

“재수를 하면 친구가 떠나가고, 삼수를 하면 부모가 떠나가고,

사수를 하면 출제위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

입시 설명회에서 강연자께서 해주신 농담이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편이 씁쓸하면서 아파왔다. 왜 일까.

5번의 수능. 4번의 낙방. 이번은 어떨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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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수 전 어린 시절 -

재수하기 전에 저의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재수 생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니 정말 술자리에서 제 이야기 하는 것 같네요.

부끄러운 어린 시절입니다...





1. 어린 중학생.

199○. ○. ○. 부산의 한 중학교

교실 뒤편.

1:4.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상황이 실제로 나에게 닥쳤다.

교실 뒤쪽 게시판 벽에 등을 기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4명에게 둘러싸인 나.

“○○○○! 이 씨○○○!”

얼굴을 막은 두 손사이로 내가 본 것은

나에게 날아오는 주먹3개와 신발 뒷 굽이었다.

5분정도의 린치였다.

정말 길게 느껴졌다.

‘왜...왜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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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뒤통수를 뭔가가 때렸다.

소리를 지르고 뒤를 보니 축구공이었다.

소위 반에서 좀 날린다는 친구가 나를 싫어했는데

그 녀석이 뒤쪽에서 웃으면서 쪼개고 있었다.

“야! 하지 마! 뭐야!”

그 녀석은 이리저리 싸움을 걸고 다니는 녀석이다.

오늘은 내가 신경에 거슬렸는가 보였다.

다시 한 번 축구공이 날아와 내 머리를 때렸다.

정말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저 녀석은 싸움에 이골난 녀석이고

나는 운동도 못하는 통통한 학생일 뿐이었다.

“○밥아.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라.”

속으로 생각했다.

왜 같은 친구를 괴롭히는 걸까. 왜.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어찌되든 좋았다.

분노에 차서 일어나 그녀석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겼다.

그리고 쓰러트려 올라탔다.

그 뒤에 그 친구의 친구들 3명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교실 뒤편 게시판 쪽에서 둘러 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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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때리던 녀석들이 지쳤는지 헉헉 거리더니 가만히 있었다.

나는 피투성이인 얼굴을 닦으며 화장실에 가서 휘어진 코에서 피를 빼냈다.

돌아와서 그 녀석들을 쏘아 보았다.

그렇게 맞고도 개기고 있는 것이 기가 찼는지 가만히

서로 보고 있는 상태로 시간이 지났다.

난 너무나도 씁쓸했다.

남자에게 있어 친구는 인생의 보물이라는데,

왜 나는 이렇게 이 친구들에게 미움을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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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아직 나이 어린 중학생들 중 나는 소위 말하는 바른 생활 학생이었다.

바르지 않은 걸 너무 심하게 싫어해서 소위 빗나간 아이들을 대단히

안 좋게 보았다. 나는 어리버리 했다.

생각은 너무 융통성 없게 바른 생활 주의고, 힘도 없는 게

학생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소위 틀어진 아이들을 못마땅해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를 해줘야 하는 입장인데

(어릴 때 한번 빗나가는 시기정도는 누구도 있는 경우가 많으니...)

나는 아직 사회화가 덜 되어 있었다.

잘난 체 하는 버릇도 있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집안 사정으로 비뚤어진

빗나간 중학생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지금의 나도 때때로 저렇게 엄청나게 막힌 범생형을

보게 되는데 꼴불견이고, 정말로 괴롭혀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과거의 내 자신을 생각해보며 정말 부끄러워진다.)

과거의 내 자신을 돌이켜 볼 때마다 부끄럽다.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그 때가 있어서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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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정한 우정을 갈망하며.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나는 내가 공부를 잘 해서 그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 공부는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생각 했다.

어떻게 하면 사교를 잘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조금 빗나간 친구들

을 대하는 내 습관의 문제였지만, 그걸 어릴 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내 마지막 성적표에는 정말 훌륭한 성적이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쓸모일까. 겨우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는데.’

친구 관계가 공부 때문에 멀어진다고 생각해서,

나는 공부에 집중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내신 정말 피처럼 관리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는데,

인문계 고등학교 가는데는 점수가 너무 남았고

내신은 무슨 쓸모 일까 생각하면서 졸업했다.

그리고 내신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결심 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덜 해서 빗나간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그때는 공부를 잘함은 친구 관계를 껄끄럽게 한다는 생각이

너무 나의 머리 속에 박혀있었다.

내 친구 중에 성적도 좋으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친구가

그때는 보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직. 나는 어렸다.

나중에 성적도 좋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는 다시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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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원 양산 형 수재.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 했었다.

중학교 들어서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는데

자기가 스스로 공부하는 힘은 아주 미약했다.

그냥 학원 시스템을 따라서 공부하고 문제 푸는 것이었다.

학원에서는 선행학습을 빨리 시켜서 중2 넘어서인가?

수학 정석을 교재로 했다.  

진도가 빨랐는데 나는 약간씩 미루다 보니

결국 진도는 나가는데 아는 건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스스로 인정 하지 않고 배웠다고 착각했다.

이 잘못된 고리는 나중에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기 싫게 만들어서

공부를 결국 던지게 했다.

항상 나는 기초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

지금도 보면 학원 양산형 수재들이 많은 것 같다.

많은 학원들은 앞서가야 한다면서 마구 진도를 빼는데,

진도는 좋지만 학생이 제대로 알아가는 걸 확인을 하는 학원이 적다.

확인 하더라도 학생 스스로가 공부하는 습관이 없는 아이들은

결국 진도만 나가고 아는 건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어릴 때 공부의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시 고치는 건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 문제는 풀 줄 아는데 설명도 못하고 이론을 모르는 학원 양산 형 수재였었다고 생각 한다.)







4. 철 없던 나.

중2말부터 고3때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까지

N사의 온라인게임을 했었는데,

그 게임을 접한 뒤 내 삶의 중심은 그 게임캐릭터의 레벨과 아이템이었다.

최고렙을 찍기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허비 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정말 후회되는 행동이었다.

여러 가지를 많이 접해야할 학생의 시기에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은

참으로 좁은 생각이었다.







5. 나의 꿈.

어릴 때 처음 꾼 목표는 초능력자였다.

하늘을 나르고, 물체를 움직이고, 여기저기 순간이동해 다니는 초능력자.

하지만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물체를 바라보아도 물체를 띄우기는 힘들었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시도는

어린 나에게는 너무 힘든 시련이었다.

그 뒤 추리소설 셜록홈즈와 뤼팽을 읽고는 탐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꿈은 계속 커가면서 바뀌었다.

초능력자, 탐정, 발명가, 물리학자, 수학선생님, 소설가...

그러다가 초등학교 언제 인가.

하늘을 보면서 나도 한의사가 되겠다고 어렴풋이 생각 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 한의사가 되겠다고 생각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자그마한 아이일 때부터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진로를 처음으로 깊게 생각 한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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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철없는 고등학생.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마음 속 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사교 관계에 대한 나의 부족한 점들을 고쳐나가고,

공부는 하던 기본이 있으니 한의대 정도는 갈 수 있을 것이라 라고 생각했다.

- 아. 얼마나 착각이 심했는가.

그 당시 나의 머릿속에는 서울대 물리학과- 서울대기타학과- 연세 , 고려대

(고 연 대)- 의대 한의대- 부산대-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생각 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내가 입시에 관심도 없었고, 잘 몰랐는가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시간부터 나는 수학책을 펴고 친구와 함께 놀고

국어시간에는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을 잤다.

중학교 때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때때로 들을 때가 많았지만,

나는 이 중학교 때 하지 않던 나태한 일들이 얼마나 편한가를 느끼면서

계속 선생님을 무시하며 잠을 청하고 옆 친구와 노닥거리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성격상 잘 하지 못하는 짓도 조금씩 일부러 했다.

나는 갑갑한 내 자신을 탈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것보다

내 자신의 생활이 참으로 나태해져 가는 것이이 더 큰걸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고2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나는 내신이 대학가는 데 반영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성적은 반에서 20등 가까이 였고, 전교 158등이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세월을 헛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보낸 시간이라서

나의 불찰이었지만.





7. 장승수씨의 책을 읽다.

이때쯤인가, 아니면 그 전인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나의 인생관을 크게 바꾸어 준 책을 하나 읽었다. 언제 읽었을까.

아마 그전부터 가지고는 있었는데 제대로 읽지는 못한 것 같다.

장승수씨가 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인가.

그 책을 읽고 엄청 감명을 받았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장승수씨는 막노동을 하시다가 수험 공부를 하게 되셨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점은 학창시절 마구 놀고 장성하여 일하다가

공부가 하고 싶어서 수능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공부가 보람차고 재미있었다고 한 점이었다.

공부가 재미있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었을까. 나도 그렇게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장승수형님처럼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고2의 마지막 겨울,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 점프를 해서 슛을 쏘았는데 그 순간 하늘이 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 슛을 쏘면서

‘그래. 나도 공부를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8. 나의 스승을 찾아...

고2 때 언어영역 학원을 하나 다니고 있었다.

그 학원에서는 마구 문제집을 풀게 시키고 언어영역의 문제를

유형화해서 계속 학생에게 밀어 넣었다.

뭐 잘 모르니까 시키는 데로 무식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나쁜 방법으로 공부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언어영역 점수가 80~90점대에서 90~100점대로 오르긴 올랐는데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언어영역을 공부하면서 다시금 공부에 자신이 조금 생겼다.

그리고 고3이 될 무렵, 공부를 마음먹었다.


(※ 저의 현역~재수는 6차 수능 때입니다. 400점이 만점이었습니다.

언어 120점 (만점)  수리 80점 (만점) 사탐48+과탐48+선택24=120점 (만점)

외국어 80점 (만점)입니다... 7차분들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듯 해서...)


그나마 국어하고 문학을 좋아하고 학원에서 열심히 해서

언어영역 공부를 먼저 시작했다.

언어영역 문제집을 냅다 풀기 시작했고, 공부하면서 지학사에서 나온 18종 문학자습서를 항상 학교 문학, 국어 시간에 들고 다니면서 공부했다.

그리고 글 동산 시리즈도 전부 사서다 공부해 나갔다.

조금씩 언어영역은 자신이 생겼고 점수도 105점 정도에서 왔다갔다했다.

하지만 110점 넘기가 너무 힘들었다.

(혹시, 재수생들 중에 언어가 부족해서 18종 문학 자습서나 글 동산 위주로

공부 하시려는 분들, 제발 부탁 인데 일단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기출문제’가 중요하지 자습서, 글동산 등의 문학자습서 위주의 공부는 ‘언어’공부가 아니게 될 확률이 큽니다.

언어를 알고 나서 공부를 하시면 모르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어영역 관련 글을 혹시 쓰게 된다면 적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공통수학1단원 (지금으로 따지면 10-가 수학입니다.).

‘집합’을 펼쳤다.

정석은 나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개념원리 라는 책을 보았는데 분량도

정석에 비해서 적고 간단하게 느껴져서 개념원리를 풀기로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고3 3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쉬는 시간까지 공부하면서

개념원리 공통수학을 공부했다.

고3 3월이 되기 전에 친 모의고사는 400점 만점에 280점 대였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지금 등급제로 치면 2등급 하나도 없었을 꺼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도 장승수 형님처럼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까를 연구하기로 했다.

언어영역, 과학은 흥미가 있었는데, 영어와 수학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장승수씨가 한 방법처럼 기초부터 생각하면서 차근차근히 계속 공부 했다.

아마도 내가 합격까지 오래 걸린 이유도

아마 뭐든지 기초부터 계속 차근차근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목표는 한의대였다. 내 생각 외로 공부를 하고 배치표를 보니 너무나 높은 곳에

한의대는 위치해 있음을 깨달았다.

내 성적은 배치표 저기 밑에 있었다.

하지만 장승수씨가 느꼈던, 그 심정

“뭐 대학이야 어때. 수험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걸. “

그 심정을 정말 느껴 보고 싶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학생은 공부를 짜증나고 하기 싫은 거라고 느끼는데

그 점이 너무 힘들었다.

공부란 과연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어차피 학문을 해야 하고, 또한 살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면.  

재미가 있어야 할 수 있을 거라고 느껴졌다.

나는 그 이후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옆에 가서 물어보고

그 친구의 공부 방법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그 점은 여전하다.

나보다 뭐든지 잘하면 그에게서 배우려고 노력한다.

고3 중간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는 수업시간에 자지도 않았다.

도리어 반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학생 몇 명에 들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내신은 이미 한의대가기에 힘든 내신이었다.

내신은 상위권이 아니어서 내신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남은 내신만 잘 받기로 했다.

그래서 더욱더 내신이 안 좋았던 장승수형님을 생각하면서

수능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다.

언어영역은 고2부터 관심이 있었다.

고2겨울,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언어영역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라서 지학사 18종 문학 자습서, 글 동산인가 하는 책을

다 풀면서 언어영역 문제집을 풀었다.

지금은 언어영역에 대해서 훤하기 때문에

정말 비효율적으로 공부했다고 느껴지지만

그때는 방법도 몰라서 그냥 냅다 풀고 풀고 풀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언어영역은 이과 전체에서 항상 상위에 들었고

문학은 이과에서 제일 잘했던 걸로 기억난다.

과학은 잘 하는 편이었고 공통과학과 화2는 정말로 재미있어서 성적도 잘 나왔다.

문제는 수리하고 외국어였는데 너무 부족 했다.

내가 고3때 친 수리모의는 40~50점대였고 4월인가? 5월인가에

수학 36점을 받았다.

나의 수리 실력은 정말 형편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60점을 넘기가 힘들었다.

영어도 40~60점 대 였다.

6차 교육과정을 겪어보신 분이면 알겠지만

이때의 외국어는 변별력이 너무 없어서 만점이냐 아니냐로 1,2등급이 갈렸다.

그런데도 나의 영어점수는 엉망이었다.

한 영어 선생님이 고2때 영어단어와 문장을 못 외우면

마구 때리시고 정좌하게 하셨는데

그 선생님 덕분에 60~70점 대로 영어성적이 올랐다.

그래도 여전히 영어실력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쉽게 출제되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시험을 칠수 있었다.

1학년입학 때 공부를 잘하는 특별반에 들어 갈수 있었는데

특별반은 수업이 끝나고 보충수업으로 공부를 선생님들이 더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 관심 없어서 들지 않았다.

3학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특별반 모집을 한다고 하셨다.

나도 들고 싶어 졌다. 성적이 아슬아슬하게 되었던 것 같다.

들어간 특별반에서 한 수학선생님이

자신이 생각하는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 강의도 정말 잘 하셨다.

나는 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날 기회를 과거에 모르고 날렸을까 후회하면서

동시에 지금이라도 만났으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선생님들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냥 보는게 아니라

‘누가 나의 스승’ 이실까? 하면서

수업 하나하나를 바르게 들으면서 관찰했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분 중

큰 스승으로 생각하는 언어영역 선생님을 이때 처음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갔던 한 사설 학원의 단과 강의였는데,

첫 수업을 듣고 놀라움과 감탄을 크게 했던 게 기억난다.


물론 재학생 때는 가르쳐 주시는 데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언어영역 실력은 부족 했지만,

인간의 삶과, 공부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서 정말 크게 배웠다.

지금도 나는 그 분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다.

(훌륭한 스승께 배운 걸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 최고의 장기는 질문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궁금하면 무조건 질문을 했다.

사실 질문 하는 주 이유는 2가지였다.



1번째는 그렇게 물어야만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2번째는 예상외로 이 ‘질문’이 공부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을 알아서 였다.

그래서 나는 공부가 하기 싫을 때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묻고 또 묻고 또 물었다.

공부하기 싫을 때 마다 물었으니 얼마나 많이 물었을까.

물어보면 다시 뭔가를 알게 되고 공부가 재미있어 졌다.

나보다 더 어떤 것에 대해서 깊은 사고와 생각을 가진 분께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정말로 그의 세상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그 방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면

함께 그 사고의 세상에서 공유되는 느낌이

정말로 신선하고 즐거웠다.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서 질문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점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느끼니... 누가 수업도중에 손을 들어서 질문하면 나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이미 이런 생각이 학습 되어있다고 느낀다.)

이런 점은 한국 수업의 문제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3수가 넘어 질문의 경험이 쌓인 뒤에는

수업시간에 따로 선생님이 질문 해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수업 끝나고 묻는 게 습관이 되었다.

( 수업 시간 도중에 질문을 몇 번만 해보라. 그럼 주위의 눈총이 느껴질꺼다. -ㅅ-; 수업 중에 질문은 분위기가 되면 합시다.)

한국 수업의 안 좋은 점 중 하나긴 하다.

고3 8~9월인가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으로 350점을 넘긴 점수인 354점을 받고 기뻐서

혼자서 남아서 공부를 자습실에서 더하고 갔다.

정말 나도 하면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340점 정도의 점수만 계속 받았다.

하지만 계속 열심히 공부했다.

9월 모의 평가인가. 그때 320점인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수능 가까이 돼서는

모의평가 점수는 대충 350점 정도에 있었다.

그리고 첫 수능을 보았다.

첫 수능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전이라서 그럴까.

사실 나는 수능치기 전 부터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한의대 갈 실력이 아니었다.

그래도 열심히 수능을 치면 기적이 생길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

그리고 수능을 쳤다.


9. 재학생- 첫 번째 수능 -

1교시 언어영역. 너무나 긴장해서 꼼꼼하게 풀다가

반 정도 풀었는데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다 풀지도 못하고 시험이 종료 되어 버렸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언어는 그나마 잘 칠수 있을 것 같았는데...

2교시 수리영역. 풀다가 다 풀지도 못했는데 종이 쳐 버렸다.

3,4교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5년전 기억이 너무 희미해서 일까.

그 때 적어 놓은 것도 없고, 성적표 마저도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2003년도 수능)

기억나는 건 원점 총점 324점.

내 실력만큼 나왔다고 느꼈다.

처음 받았던 290점 대의 성적에 비교해보면 많이 올랐다고 생각했다.

재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장승수형님처럼 제대로 재수학원에서 다시 한 번 공부 하고 싶었다.

수능시험장을 나오면서, 바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나도 공부를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놀았던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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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수생~5수생 부분은 나중에 완성되는데로 올리겠습니다...

하루하루 보람찬 수험생활 되세요. Pine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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