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PineTree) [50039] · MS 2018 · 쪽지

2007-06-15 19: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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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의 저녁 밤하늘. (재수) -이 순간에 나의 모든 것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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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순간에 나의 모든 것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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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보통의 하루

7:00~7:30 기상

7:40 학원 등원

8:00~ 5:30 학원 수업.

5:30 학원 수업 종료

11:00까지 자습

11:20~30 집 도착

12:00~1:00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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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하는 것은 나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할 기회라고 느꼈다.

고 1, 고 2를 공부 안 하고 논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공부를 해보겠다는 생각]

이걸 가지는 데 상당히 방황 했다.

나도 장승수형님처럼 제대로, 공부를 정말 즐겁게 느끼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재수생인 것이 부끄럽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말하기로 했다.

당연하다고 느껴서였다.

공부를 안 한 것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개념 하나 하나를  나를 속이지 않고 정확하게 익히려고 노력했다.



수능을 치고 나서 며칠 되지 않아 혼자서 학교에 나와서 수학 정석을 풀었다.

그토록 싫고 재미없던 공부가 스스로 하게 되니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재수를 스스로 반갑게 받아들였다.

물론 여전히 싫은 공부였지만 보람참을 느끼고 기초를 알게 되면서부터

\'공부‘라는 것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존경하는 수학선생님도 나를 도와주셔서

정말로 보람되게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감사합니다. ㅠㅠ 수학선생님.)


혼자서 추운 겨울에 교실에서 정석을 풀고 있으니 참으로 쓸쓸 했지만

나도 이제 제대로 공부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뻤다.



(6차 과정의 내 정석들...)

2월이 되었고, 삼수를 해서 의대에 진학하고 있는 이종사촌형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재수에 대해서 들었다.

형이 추천하는 부산에 있는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나의 재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보람차게 공부한 1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뭔가에 홀린 듯이 공부한 1년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시기라서

빨려들듯 공부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공부 했고, 또한 정말로 진실 되게 공부하기로 했다.

장승수형님이 공부 자체를 즐겼다고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공부가 재미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공부했다.

그 답은 정말로 정확하게 공부하고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나는 수업시간이 끝나고 모르는 것을 묻는 질문을 하면서

질문이란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재미있는가를 느꼈다.

어떤 분야든지 뛰어난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그 분야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더구나 그 분야를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정말 즐거워짐을 알았다.

나는 정말 기초적이고, 보통 학생이면 넘어갈 것 까지도 다 물었고,

시험에 나오지 않아도 질문을 했다.  

내가 물었던 질문은 이런 것도 있었다.

“선생님, 집합이 뭔가요? “

”왜 수학을 배우나요? “

”동사가 뭐죠? “

정말 기초적인 것을 많이 물어서 선생님을 힘들게 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질문 하는 예절이 없어서 선생님께 혼도 많이 나면서,

질문을 할 때의 예절을 배울 수 있었다.


모든 선생님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열심히 들으니 충실감이 들었고 공부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나는 가능한 학원의 모든 수업과 자습에 출석하기 위해서 애썼다.

(군대 신검을 받고난 날에도 바로 돌아와서 수업에 참여하고 자습을 했다.)

내 머리 속에는 공부의 보람됨을 알아가고

장승수형님이 체험했던 ‘공부의 재미’를 알고,

나의 스승께서해주신 말인

‘현재에 보람되고 바라는 일을 하라’

에 충실하려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열심히 듣고 공부했고,

매일 정석 1~2단원을 목표로 꾸준히 수학 기본 정석을 풀었다.



(풀고 또 틀리면 표시하고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풀고...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8월의 어느 날 밤, 6차 정석 공통수학, 수1을 다 풀고

마지막 수2 정석의 연습문제를 새벽 2시가 넘어서 풀었을 때의 그 보람됨을.

그 전까지 나는 어떤 기본서라는 걸 끈기 있게

끝까지 풀어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열심히 열심히 끈기를 가지고 하면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로 기뻤다.

정말 그날은 보람찬 마음으로 이불에 누웠던 것을 기억한다.

(6차 때는 정석이 3권이었습니다.)



(6차 정석 마지막 부분 풀고 기뻐서...)


그리고 언어영역도 정말 열심히 해서 재수 중반쯤에는 언어영역을 깨닫게 되고

1년 동안의 모의고사에서 110점을 2번 빼고 다 넘겼다.

(이때는 120점 만점 이었습니다. 언어가)

모든 생활의 지침은 언어영역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공부 자체에 빠져서 보람찬 생활을 하라’에 맞추었다.

정말 좋은 스승이 보여주는 길은 보람찼다.

정말 이때의 1년은 하루하루가 보람 되서 정말 힘들지만

그럼에도 기쁜 하루 하루였다.

뭔가 배워간다는 기쁨이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해준 1년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모아서 공부라는 것에 빠져 들었다.


특히 질문은 첫 재수 할 때 정말 정말 많이 했다.

하루에 100번 넘게 질문한 하루도 있었으니...

거의 쉬는 시간, 점심 시간, 공강 시간은 교무실에 가서

질문 할 때가 엄청나게 많았다.


내가 다닌 재수 학원은 비 서울권이지만 수학선생님들이 참으로 뛰어났다.

내가 다닌 메이져 학원과 비교 해봐도

전혀 수학선생님들이 실력이 밀리지 않았다.

몇몇 선생님분들은 정말 훌륭하셨다.

그래서 재수 때 크게 수학 실력을 올릴수 있었다.

과탐 선생님들도 참 실력이 좋으셔서 (단...물리 빼고) 크게 배우는 것이 많았다.


9월. KICE에서 모의고사를 냈었다. 이때 360점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험이 어려운 편이어서 내 성적으로 한의대를 지원 할 수 있다고 나왔다.

기뻤다.

수능까지는 2개월 정도 가 남았으니 더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매일 매일이 보람찼다.  

수능 치기 전에 혼자서 쳐본 모의고사는 380~390점 사이였다.

물론 항상 수학에서 문제가 발생 했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만족스럽고 즐겁게 공부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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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 두 번째 수능

내 생애 그렇게 자신감 있게 수능시험장에 들어간 기억은 없다.

아직도 기억한다. 시험장 입구로 들어갈 때

나는 정말로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 후배들이 응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학교 생물 선생님이 교문에서 응원하고 계셨다.

반가웠다.

“ ◯ ◯ 아. 아주 좋아 보이네? 그래. 준비 열심히 했나? ”

“네. 선생님. ”

“그래. 좋은 결과 있을끼다. 잘 하거라. ”

마음속으로 선생님 걱정 마세요. 라고 말하면서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 전에 약간은 긴장 되었지만 작년만큼은 아니었다.

자신 있었고 최선을 다하자고 자신에게 계속 말했다.


1교시. 언어영역

언어영역은 스승님께 배운 방법대로 열심히 풀었다.

작년처럼 반 조금 넘게 풀고 망하는 사태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올해 언어영역은 2번 빼고 110을 넘겼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난 항상 처음에 마지막 지문을 푸는데 그 때 60번을 평소 답을 체크 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체크를 했다.

마음속으로 조금 생각할 여지가 있는 문제 같으니까 다르게 체크 해야지라고 순간적으로 생각 하고 그랬는데,

이게 큰 실수였다.

나름 빠르게 풀었다고 생각 했는데 시험이 꽤 어려웠다.

시간이 다 된 상황에서 중간의 1지문이 남았다.

시간이 없었다.

정말 씁쓸한 심정으로 1지문을 찍고 마킹을 해나갔다.

그런데... 60번을 보니 답에 체크가 안 되어 있었다.

당황하다가 시험관이 다가오시기에 아무번호나 찍은 순간...

다르게 체크한 걸 알았다.

아아.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답안지를 걷어갔다.

마음을 추스르면서 이번 언어가 엄청 어려운 편이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저번 수능처럼 반밖에 못 푼 것 보다는 괜찮아. ‘ 라고 외치면서

남은 과목에서 만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2. 수리영역.

수리영역 공부를 올해는 정말 열심히 했었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시험에 임했다.

하지만 이 때 나온 킬러 문제. 벡터 한 문제를 계속 잡고 있다가

시간을 크게 허비했다.

결국 4문제를 찍었다. 물론 모조리 틀렸다.

물론 내가 부족했음이 크게 작용했지만...

결국 그때의 내 실력으로 2문제만 틀릴 수 있었을 것을 4문제나 틀렸다.

6차 과정의 수학에서 4문제는 지금 수학 4문제 틀린 것 보다

더욱 비중이 큰 편이어서

(난이도가 6차가 더 낮아서 몇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크게 내려갔다...)

후에 공부하면서 알았지만,

어려운 문제를 넘길 줄 아는 훈련이 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운이 조금 따라서, 2문제만 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되뇌었지만,

그건 다 필요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느꼈다..



3. 사탐-과탐 영역

항상 사탐-과탐은 나의 강점 과목이었다.

이때는 120분 에 80문제를 푸는 시험이었는데,

지금 7차보다 난이도가 아주 낮아서 시간이 엄청나게 남는 경우도 있었다.

(어려운 문제는 약간 나오지만, 시간 압박자체가 지금보다 덜 해서...)

나의 경우는 과탐은 자신이 있는 편이어서 항상 사탐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사탐부터 다 풀고, 그다음 화학2를 푼 뒤 공통과학을 푸는 순서로 풀어왔다.

이번 시험은 그런 나에게 시련이었다.

과탐이 엄청나게 어렵게 출제되어서, 과탐만 풀어도 시간이 꽤 걸렸다.

친구들 중에서는 과탐만 풀고 사탐은 손도 못 댄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습관대로 사탐부터 풀었다. 사탐을 풀고... 과탐을 풀려는데...

정말 어려웠다.

물론 지금의 7차 정도의 시험이라고 생각 되지만,

그 때는 엄청난 난이도의 증가 였다...

특히 화학2는 지금 봐도 어려운 문제들이니...

사탐을 깔끔하게 다 풀고 화학2를 푸는데 무지막지하게 어려웠다.

화학2를 끙끙 거리면서 다 풀자 공통과학 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빨리 빨리 풀었는데 실수를 많이 했다.

맞출 문제도 틀렸다...

6차 과탐 시험중 가장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자랑 했었던 04수능...

특히 화2는 이때부터 계속 난이도로 수험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04수능에서 내 친구는 5문제 맞추고 다 틀렸을까...

(평소 1~2개 틀리던 친구 였다.)

나는 5개를 틀렸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험 때문에,

나는 화학을 제대로 그 뒤에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잃은 것만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발전이 없었다고 느꼈기에.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때때로는 비관적으로 보는 내 자신이 있었기에... 항상 애썼다.


4. 외국어영역.

외국어 영역은 그렇게 부담 되지 않았다.

약간 아슬아슬 했지만 다 풀어냈던 것으로 기억

한다. 6차의 외국어영역은 난이도가 정말 쉬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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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다 치고 나왔을 때 홀가분했다. 수리 4문제가 조금 걸렸지만...

운이 조금만 따라주면 커트라인은 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시간 없이 푼 공통 과학도 걸리긴 했지만,

올해 열심히 한 나의 시간이 설마 배신할까 생각했다.

합격 가능 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나, 수능을 채점 해 보고 나는 멍해졌다.

언어는 한 지문 못 푼 곳에서만 다 틀려서 가채점 때 111이었는데,

마지막 문제를 마킹을 다른 걸 했기 때문에 107점이었다.

나머지 한 문제는 어디서 틀렸는지 알 수가 없다.

(1등급)

수리영역은 나의 바람과는 달리 69점

(3등급)이었다.

단 한문제의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건 괜찮았지만, 나중에 다시 풀어 보았을 때,

풀 수 있었던 2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고

내 부족한 실력을 계속 해서 자책 했다...



사탐은 43점으로 1등급이었다.

공통과학, 화2는 평소보다 대부분 10점은 떨어진 걸로 기억한다.

나도 마찬가지 였다...

다만 함께 친 친구들 보다는 하락세가 작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외국어는 77(2등급)로 2개 틀렸는데 실력대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6차의 난이도가 쉬워서 1문제까지만 1등급으로 기억한다.

등급으로 따지면 1-3-1-2-2. (언-수-사탐-과탐-외)



아쉬운, 나에게는 아픈, 점수였다.

뭔가 약간의 톱니바퀴가 어긋난 것을 나는 느끼면서...

멍하게 하루하루를 게임으로 보냈다.

그리고 한의대는 원서를 넣기가 불가능 한 것을 알았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난 뒤 안전하게 약대를 1곳 넣고,

하위권 의대를 넣어 보기로 했다.

내가 넣었던 가장 낮은 의대 컷은 결국 내 점수와 3점차로 떨어졌다.

의대 2군데에 떨어지고 나서 약대는 안전하게

( 점수가 약간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넣었는데...

내가 넣은 약대 경쟁률이 50:1 정도인가? 엄청나게 몰렸다.

(내가 아는 형이 넣은 약대는

거의 100:1까지 올라갔다. 이해에 몇몇 약대가 몰렸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한의대와는 점수가 너무 멀리 있어서 원서를 넣어 보지도 못했다.

3패의 쓴 잔을 마셨다.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루하루 허무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내가 지방에서 재수를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공부를 할 생각이면 서울로 가라고 압력을 넣으셨다.

이게 나에게 시련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몰랐다.

삼수는... 나에게 있어서 어떤 1년을 보내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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