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를 건너는 법. txt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33959111
나는 집에 도착한 그 첫 순간에 베일에 가린 듯이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된 나 자신을 느꼈다. 집에서 맞는 첫날 아침을 나는 이상한 비현실감 속에서 맞았다. “이런 학원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 TV에서 흘러나오는 아침드라마 소리, 설거지 하는 소리가 웬일일까?” 라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던 것이다. ‘이런 학원에서’란 느낌은 어떤 긴박한 위기에 대처한 생생한 의지였다. 그것은 아직도 내 몸에 밴 수능 냄새였다. 그런데 설거지 소리, 유행가 소리 따위를 의식했을때 나는 뭔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나의 안에 있는 긴박함에 비해서 밖은 너무도 무의미하고 태평스럽고 어쩌면 쾌덕스럽기까지 했다. 재종 존예도, 수능 공부도, 또 나로부터 그토록 수많은 밤을 앗아 갔던 자습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들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하등의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나날이 권태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따금 나는내 안의 긴장에 대해서, 적어도 숨김없는 그 진실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려 애써 보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 이제 생각이 난다. 며칠 전 수능장에서의 일이. 실내엔 도시락 냄새가 꽉 차 있었고 선정적인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어떤 여자가 영어를 들려주고 있었다. 어쩌다가 내가 그 얘기를 들려주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운전하고 있는 삼수생의 팔을 건드리며 유리창을 가리켰지. 그는 겁에 질린 해쓱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곁눈질했을뿐이야. 그렇지, 혈관 속을 움직이는 피의 선회마저 느낄 듯한 이 비상한 감각, 그리고 심연에서 샘처럼 솟아 오르는 넘칠듯한 생동감이 없이는, 저 샤프심에 찔려 죽는 문제 따위야 아무것도 신기할 것이 없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혼자서 빙긋웃었어.
삼수생이 다시 얼굴을 힐끔 돌리며 잡아 늘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
“재수생은 무섭지 않나?”
“아뇨, 전연.”
“대단하군. 여기선 적이 언제 어디서라도 나타날 수 있지.”
“저는 적보다 진정으로 무서운 건 무감각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수능이 끝나면 곧장 고백할 거야.”
“언젭니까, 수능이?”
“삼 일 남았지.”
“저는 지금까지 마치 꿈을 꾸다가 태어난 것 같아요. 이곳에 온 뒤론 바로 생명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샤프가 고장났지. 몇 분 지체하고 나니 벌써 오분 전 종이 울리더군. 이제부터 정말 위험이 시작된 것이라 싶더군. 왜냐하면 감독관의 매의 눈에 발견되면 의심을 받을 우려가 있는 데다 오엠알 마킹도 아직 하지 않아 그도 또한 견디기 어려운 문제였지.
(중략)
아까부터 나는 창 옆에서 사수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그가 그토록 진지한 얼굴로 잃어버린 성적을 계속 찾을 것인지. 대체로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사수생이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내앞에 나타난다면 무료한 가운데서도 어떤 안정성을 획득하고 있던 나의 생활은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가 창밖에서 뭔가 열심히 찾고 있는 한 나는 계속 도전을 받는 셈이기에. 때문에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수생이 찾고 있는 성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런저런 것을 알아보노라면 사수생의 그와 같은 숙연한 태도와 잃어버린 등급사이의 상관관계도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제 나는 그와 한마디 얘기라도 나눠 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심정이다.
드디어 에코백에 책을 싣고 자습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수생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어제와 거의 같은 장소에서 사수생은발걸음을 멈추고 짐을 푼다. 시계-샤프-플래너 따위들이 착착 있을 곳에 놓여진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준비를 끝낸 사수생은 이내 패딩 안에서 빠져나와 책상 앞에 앉는 게 아닌다. 사수생은 하루 사이 아주 눈에띠게 쇠약한 모습이긴 하나 끈질긴 어떤 힘이 그의 전신에서 면면히 솟아 나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완전히 안정을 잃고자습실 복도를 오락가락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이다. 어떤 대학이 사수생에게 저토록 소중하게 여겨진단 말인가. 아니, 사수생은 무슨 실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자습실에서 뛰쳐나왔다.
[삼수를 건너는 법]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키가 약간 자란다 나만해도 고3때 175였는데 지금 177까지 큼
-
그냥 흔한 동네 병원인데도 사람 넘친다 넘쳐
-
맞지만 아님
-
[2025수특] 이형기의 '낙화' 분석 및 관련 기출문제 0
안녕하세요. 새로운 교육의 시작, 남윤입니다! EBS 문학 연계 대비 자료를 업로드...
-
김승리는 세권에 9만이네 ebs 작품 수록한 교재를 한권에 3만원으로 팔아먹기..?
-
그래도 일단 칼을 뽑은 이상 승부를 봐야겠습니다
-
韓아이들 평균키 3~7㎝ 늘었다…男15세, 女14세 되면 '다 컸다' 1
(세종=뉴스1) 심언기 기자 = 10년 사이 우리나라 아동·청소년들의 평균키가...
-
수특 문학 교재 시즌제로 내서 드랍할 수 있도록 해준 정석민t 압도적 감사~!
-
올해수특수완표지가다왜이모양이냐
-
허허
-
통화가치가 내려가고 환율은 내려가는거? 인가요?
-
뭐하고 놀까요? 1
(대충 그 짤)
-
지구에서 280 광년 떨어져 있는 WASP-38b 행성의 날씨를 관측했으며 또한 이...
-
중간고사가 성적에 40퍼 들어가는데 중간고사 50점 만점 기준으로 11점 받았거든요...
-
안먹어봤지만 재료 조합만 봐도 맛있어서 뒤집어질것 같은 느낌이 남 근데 땅콩버터...
-
강윤구t 1
이미지쌤 세젤쉬 수강했고 강윤구쌤 들을려고 하는데 포인트1 들어야하나요?
-
[고1~고3 내신대비 자료 공유] 2025 EBS 수능특강 국영수, 고1 국어, 고2 문학, 독서 분석 문제 배포 0
안녕하세요 나무아카데미입니다. 2025학년도 고1~고3 내신대비를 위해 수능특강...
-
안나오는거 맞나요? 대치에서도 안가르치던데
-
아 온도가 애매하네 여긴
-
독후감이 과제인데 예전에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독후감 형식이 있었거든요 그...
-
현재 학생들의 중간고사가 끝났고, 곧 학원끊고 과외알아보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
좀 많이 마셧더니 피곤해죽것네
-
서울대에서 나오는사람들 서울대 아닌사람도있나요??? 4
동기부여하려고 서울와서 서울대도 막 보고있는데, 아니,,, 지금 서울대입구에서 그...
-
총점 1000점중에 50점만 내신반영에 그 50점 중에서도 40점은 기본점수니...
-
수시 포기할까요 8
원래 고려대 언어학과 목표로 해서 고대 내신 2.2까지 끌어 올렸는데 이번에 그냥...
-
답이랑 풀이가 다른데 제 풀이의 논리적오류가 어딘지 파악이안되네요
-
수특도 그렇고 수완도 그렇고 예고 미술과 학생 한명 데려다가 그려라해도 저거보단...
-
스트레스 너무 받는다,,,
-
얼버기 0
-
왈도체가 본인임
-
모의고사 80후반에서 90초반 나오는데 믿어봐부터 들어야 돼요?? 지금까진 동네학원에서 배웠어요
-
안녕하세요 4
작년 반수때 닉으로 돌아갔으요
-
사소한 질문도 제 심심함을 달래줄 수 있습니다
-
수분감? 자이?
-
하지 말라면 하지마셈..
-
전공이 빡세니까 2
한 번 놓치면 끝없이 놓치게 되네요 역시 대학 왔다고 끝이 아닌가봅니다
-
고2이고 영어는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건지 아예 몰라서 질문 드립니다. 아래 글은 안...
-
속보)의대증원 근거 요구에 대통령실 "충분히 낼 것" 6
https://naver.me/FNG571ii 대통령실은 법원에서 의대 2000명...
-
예를 들어 서울대 국문과가 10명을 모집하는데 딱 10명이 지원하면 점수가 매우...
-
피곤하다 1
펜 들기도 힘들어요
-
그렇다면 나는 화1 바이럴을!
-
정시 군은 왜 있는 거임? 정시 지원 실패하면 학교 급이 확 떨어져버림;; 윤도영...
-
높은곳올라갔을때 그느낌이 나서 미치겟음 다른 증상은 없어요 심전도도 정상이라 하셧음
-
교수님들 일반화학 수업하실 때 생윤사문 배운 학생 들 감당가능하세요..?
-
누가 제글에 댓글썻다가 지워서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이라고하면 궁금해서 바로...
-
통변을 내놓아라!
-
운동중이라 빵 안먹는데 빵 버리고 띠부띠부씰만 챙길까
-
솔직히 1등급 진짜 쉬운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정법런으로 합격쟁취하자!...
-
진짜 몇달만에 온듯 없으면 그냥 다시 일하러 감 암거나 ㄱㄴ 선넘질 ㄱㄴ 연세대학교...
Ptsd온다
사수는 그런 것 없음 ㅋㅋㅋ
그냥 [사수]
아 ㅋㅋ 너 마주치면 죽는다
나는 또 수능과의 대결에 지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수생 지나갑니다
"그럼, 오빠는 정철을 한번도 못죽여 봤어?"
ㅋㅋㅋㅋㅋ
중략이후..,ㄷㄷ
재수, 그 일년의 기다림
정성추ㅋㅋㅋㅋㅋ
처음에 뭔가 했네 ㅋㅋ
옯문학 하나 추가되는거봐 ㅅㅂㅋㅋㅋ
나만 ㅇ해안가???
올해 오르비는 명작 작가 기어이 배출해내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