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 문학] 핫산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5915013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과 장소는 픽션입니다.
일체 특정 집단에 대한 비하 목적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일어나라, 핫산.”
핫산은 사장의 말을 듣고 구부렸던 쇠자가 펴지듯이, 번뜩 , 일어난다.
핫산은 철판을 자르는 공장에서 일한다.
이곳의 사장은 아직 아날로그의 향수에 젖어있다.
공장 바깥의 현대인들이 아이폰6를 들고 다니며 서로에게 자랑을 하는데 아직 사장의 폴더 핸드폰(핫산은 영어는 능통하여 ‘모토로라’ 라고 동료 직원에게 알려준 적도 있다.)은 녹광을 뿜는다.
스크루지도 울고 갈 이 사장은 신비한 고향을 등지고 지옥불반도로 온 핫산에게 겨우 시급 4500원을 쥐어준다.
그야먈로 핫산은 수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핫산, 왜 근무 시간에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지?”
핫산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그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핫산이 할 줄 아는 말은 ,네 , 고맙습니다 , 알겠습니다 … 따위 뿐이다,
그의 뇌엔 오랜 근무로 인해 ‘거절’이라는 프로세스가 제거되어 있다.
핫산은 사장의 요구에 화장실 청소를 하러 공장 바깥에 있는 자그마한 임시 변소로 향한다.
그곳엔 세 인부가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담배를 피지 않고 싸구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든 인부가, 비쩍 마른 입술을 혀로 낼름, 적시고 말한다.
“거 얘기 들었소? 저기 3구역의 최 양이 프레스에 손이 끼어 잘라냈다고 하더만...”
그 말에 담배를 문 인부 둘이 크게 놀라며, 히익 , 세상에 , 참한 처녀였는데 … 라는 말을 기계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엔 남의 일이다. 이들이 말하는 최 양은 결국 잊혀질 것이다.
떠난 사람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잊혀져 간다.
그러다 커피 잔을 든 인부가 다시 입을 열어 화제를 바꾼다.
“거 사장 아들이 이번에 배재대를 갔다는데??”
그러다가 담배를 문 한 인부가 대답했다.
“거 내 아들도 내년에 수능을 보는디, 사장놈 아들내미 만큼 못해주는 게 좀 그려혀”
다른 인부가 말한다.
“아니, 배재대가 뭐시 잘났다고 그려? 그 우에 좋은 대학이 몇갠디?? 사장놈 아들내미 문과 아녀?? 결국엔 여서 철판 짜르는 일이나 더 하겄어??”
“아들내미가 애비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는구먼, 애비인 사장놈은 거 성균관대인가를 나오지 않었어?”
“성균관? 고것이 아직도 있당가? 거 고려시대에 세워진 거시 아녀??”
“아따, 그런 데를 나왔구먼....”
그들은 단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양가 없는 ‘남의 일’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인부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2년제 전문대를 나온 인부들이다.
하지만 거친 세파를 겪으며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직시하는 자들이다.
핫산은 한국말이 서툴기에 저들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국에서 핫산은 4년제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는가!
그의 개조된 두뇌는 갑자기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엔 ‘수능’ 이라는 단어와 ‘배재대’, ‘성균관대’, ‘좋은 대학’, ‘문과’ 라는 말이 새겨졌다.
‘문과‘ 와 ‘배재대’ 타이틀을 얻게 되면 이곳에서 영락없이 철판을 자르게 된다.
하지만 ‘성균관대’의 타이틀이면, 사장처럼 떵떵거리며 명령내리고, 어느 한 왕국의 왕인 마냥 살 수 있다는 건가?
핫산은 이제 28살이다. 품속에서 고향의 가족사진을 꺼낸다.
그의 기억을 스쳐가는 주름이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 아리따운 아내, 핏덩이 같은 자식,
핫산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돈을 벌기 위해 왔다. 그는 고향의 가족들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스크루지의 철판 공장에서 변소 청소나 하여 돈을 벌수나 있겠는가?
그는 앞으로…
“핫산, 사장님이 널 부르신다.”
“네…”
핫산은 원대한 상상 속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어가지 못한 채 사장이 자신을 왜 부르는가에 대해서만 상상하기 시작한다.
핫산은 사장의 방에 들어선다. 그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
퀴퀴한 홀애비 냄새와 담배 찌든내, 곰팡이, 마치 장형의 반지하방에서 나는 냄새다.
의자엔 사장이 앉아있다.
“핫산, 일을 하다가 어디로 사라진거야?”
핫산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쏭합니다, 라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사장의 인신공격은 계속 되었다.
부모님의 안부, 자식 걱정…
그 전설의 리그? 인가 하는 게임에서도 이렇게까지 상대방을 헐뜯진 않을거다!
사장은 씩씩거리며, 핫산을 돌려보낸다.
핫산의 눈에선 닭똥같은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그놈의 대학이 문제다.’
‘이 지옥불반도에선 대학과 계열이 문제다.’
‘그노오오오옴의 대학!’
핫산은 속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의 고통을 알아줄 이가 이곳에 얼마나 있을까.
같이 일하며 한글을 조금씩 알려주는 장형도 핫산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핫산은 사장실을 등지며, 자신의 상상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자기 자식에 대한 상상이다.
“내 자식을 ‘성균관대’ 혹은 그보다 ‘좋은 대학’에 보내서, 사장놈을…”.
하지만 이 상상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이 나라에선 모든 것이 불확실할 뿐이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기하 <~ 30분만잇어도널널한개꿀과목
-
허허 이것참
-
시험장에서 28 29 30 중 한문제 맞추는 실력이 3문제중 두문제는 맞추려면 얼마...
-
연대같은 극상위 의대는 현역이 최소 60퍼는 가볍게 넘길 줄 알았는데 연의 24...
-
연대가고싶다 12
6평 3주남았는데 올4찍고 나가뒤질거같다
-
곧 있으면 통역장교로 정식 임관인디... 많이 두렵고... 많이 걱정됩니다......
-
또오셧네 16
칼블라ㄷㄷ
-
가장 큰 반례로 양자역학에 엄청난 업적을 남긴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의...
-
사람이 달라보이네 멋있다
-
포함과배제의원리 4
inclusion-exclusion principle
-
경제는독학서같은거없나 12
사실선택자수가그런데있을리가없겠지
-
. 3
공스타 자기기록은이 뭔가 순수 기록용이라기보단 자기자랑용이 돼가는것같다 내가 이만큼...
-
법, 정치 배경지식 많이 쌓일까요?
-
02-3290-1114
-
장난으로 한 말이였지만 왜 아직 긁히지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랑 인정욕구가 너무 센가봐
-
우우좌좌우좌인가 그거였나 ㅋㅋㅋ
-
드릴 수록 문제들이 기출이랑 똑같은 문제들인가요?? 아님 변형문제인가여??
-
그게 본인의 글일 때의 느낌을 서술하시오. [고닉이었음] [3점]
-
5월 학평 수학(집모) 10
95분 96점(21) 21번 쉽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문제 스포는 X) 제가...
-
6평1이 목푠데 일단 한 담주쯤에 그날니날 살거같고 조정식 빈칸이제 들으면서 엑셀도...
-
과제 다했다 5
제출했으면 다 한거임
-
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좋다ㅈㄴ...
-
전직농수사무차관장남살해사건(元農水事務次官長男殺害事件) 전직 농림수산성 사무차관 장남...
-
사과문) 죄송합니다 10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
지1 44점 맞기 vs 사탐 중 택1 47,8점 맞기 7
뭐가 더 어려움? (뭐가 더 시간 노력 더부어야함?) 사탐 안해봐서 모름
-
지금 1회독했는데 한 번 더 2회독할까요 아니면 imfact할까요..?
-
10억만 일 안하고 살고 싶구나....
-
이거 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130까진 2퍼센트 정도로 반에 한두명은 있는 반면...
-
똑같이 생김 ^^;;
-
내일부터 식비아끼기 시작~
-
종강종강돌을던지자 21
교수몰래돌을던지자
-
문제 링크 : https://orbi.kr/00068051141 문제 해설 뭐여...
-
대충기습기만어쩌구 제게도꿈은있었습니다 저는고능아가되고싶었어요 한잔은멍청해진나를위하여
-
저 블아 애니 한번도 안봤음요 근데 블아 애니가 뭐지? 그런게 나온적이 있었나?
-
남초 부럽다
-
어려워요
-
아니 성대모사 솔직히 계속나와서 뭔가 좀 재밌는 질문이 없고 성대모사 비중...
-
스포 ㄴㄴ ㅜㅜ
-
막 5평 한달 공부하고 만점 이런 거에 취하면 안 됨 69수능 50 50 47...
-
쪽지로 번호 좀 다오.
-
(글이 꽤 길어여...) 안녕하세요 고대에 재학 중인 04년생입니다 본론부터...
-
ㅈㄱㄴ
-
고2 정시러입니다 수1 쎈발점 끝냈고 수1 기출 돌리며 수2를 나가려 하는데 수1을...
-
엄마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
도표 다 공부하긴 하지만 6모까지 나올 거만 집중적으로 더 하고 가게요.. 등급 안...
-
실모만 살 것임
-
작년보다 훨씬 더 퇴화한 것 같은데... 생각들이나 도구들은 다양해졌지만 프로세서가...
김첨지 대항마로 핫산 ㄷㄷ
똑바로 서라 핫산!
근데 성대보다 좋은 학교가 있나.. 성서한 성서연고 성하예프 앞에 감히!
성하예프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