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수능 국어에 등장한 유한준을 아시나요 - ‘아는 만큼 보인다’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65193385
![](https://s3.orbi.kr/data/file/united/4f24cd903f324ba6ac24424fda2e8f61.jpg)
어제(23년 11월 16일) 치른 수능 국어에서 극악한 지문 하나가 수험생들의 애를 먹였습니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잊음을 논함’(망해 忘解)이라는 글입니다.
수능 지문에 등장한 유한준의 망해 첫 단락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나는 이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잊는 것이 병이라고 생각하느냐? 잊는 것은 병이 아니다. 너는 잊지 않기를 바라느냐? 잊지 않는 것이 병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잊지 않는 것이 병이 되고, 잊는 것이 도리어 병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근거로 할까?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다.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잊는 것이 병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는 사람에게는 잊는 것이 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이 옳을까?”
일부 수험생들은 ‘이런 말장난 같은 문장으로 문학 해독 능력을 판단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어느 수험생은 ‘글쓴이가 중2병에 걸린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유구무언입니다.
수능을 주관하는 교육과정평가원과 출제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아닌 것은 아니다’ 라는 식의, 현실에서는 별로 쓰이지도 않을 문투를 반복하는 이런 글에서 진절머리가 난다는 학생들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이런 것을 시험으로 풀어내는 게 과연 문학 해독 능력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지문 풀이용 기계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각설하고...
많은 이들이 글쓴이인 유한준이라는 인물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듯합니다. 유한준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그럼, 이런 식으로 풀어보죠.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위용을 떨치는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등장했던 다음 문장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소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국민 격언을 만든 문장입니다. 예술이든 그 어떤 활동이든,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문장입니다.
한데, 이 문장의 ‘원작자’가 바로 유한준입니다.
유한준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서화를 모은 ‘석농화원’(石農畫苑)이라는 화집에서 발문을 씁니다. 거기서 유한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
이 문장을 현대문으로 번역하면 이 정도가 될 겁니다.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보고자 한다. 보고 있노라면 그것과 함께 하고자(畜) 한다. 이리되면 그저 헛되이 모으는 것이 아닌 경지에 이른다.
여기 등장하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진심으로 보고 싶고, 갖고 싶어한다’는 문장을, 유홍준 선생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로 바꾼 것이지요. 그 유명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문장의 남상은 사실 유한준에게 있는 것이지요. (유홍준 선생은 유한준의 후손입니다. 기계 유(兪)씨이거든요.)
유한준은 석농화원 발문에서, 그간 많은 재산을 들여 그림을 모은 석농 김광국(石農 金光國 1727~1797)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입니다. 석농은, 부유한 의관 가계에서 태어나 그 역시 의관으로 일하며 평생 그림을 수집했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막말로 ‘국민문장’을 탄생시킨 이가 유한준인데, 24 수능 국어 지문으로 바로 ‘중2병’이 돼 버리니, 뭐랄까요, 그냥 할 말이 없어서 이렇게 넋두리처럼 몇 자 적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엘릭 ㅈㄴ 불쌍함… 초딩이 자기 주변 사람 죽는 거 보고 본인이 죽을 뻔하고 그러면...
-
평가원만 따졌을 때 기준으로 난 93 93 3 93 92 나옴 님들은?
-
프로필 장착할건 다 장착하니까 ㄹㅇ 미친고인물같네 12
은테+애니프사+55렙파란색+냥뱃+빨간닉네임 겁나알록달록해서 미친고인물같은...
-
여러분의 친구
-
잠이 안온다리 6
수학이나 좀더 보고 잘까요
-
화미생지 내 커하인데
-
추천해주세요 내일 집 와서 먹을거
-
그거 맨 마지막 사람 기준으로 누백 적으니까 그렇게 보이는거지 절대로 평균은 안...
-
사랑했다 사랑한다
-
구경하고가세요
-
궁금해지네
-
런할때부터 5050고정이라고 떠들던데
-
저랑 9평 평백 누가 더 낮은지 내기할 사람 없나
-
작수 생명 50 지구 47로 11 베이스고 첫휴가 나와서 방금 6모 풀어보니까 둘...
-
아직 남친 자리는 남아있는거 맞죠?
-
은근 진짜로 쓰려고보면 생각보다.. 더 높던데요... 평백 93이런거 순 구라 뻥쟁이임
-
근데 아무도 대답 안해주면 지워서 뻘글만 쓰는 것처럼 보이는거임
-
쌤 마지막 수업 들은지 벌써 꽤 됐네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쌤 근데...
-
기출한접시)구간별 함수의 미분가능을 판단하는 방법(211130(나)) 1
1. 구간별 함수의 미분가능을 확인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
-
메인글 정석준T 이야기 나오니, 이훈식선생님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8
항상 감사합니다. 수업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재밌어요.
-
이가 시려워 꽁 2
바밤바 개 차갑다
-
100 88 2 99 99안 내 친구가 설낮공 적정이었음
-
가 소지형 시가라는 처음 들어보는 장르라 시조가 맞는지 찾아보다가 넣지도...
-
풀 컨텐츠가 없어서 공부를 안해도 뒤처지지가 않자나?! 이거 완전
-
차라리 생지를 하세요
-
고대 경영 논술쓰는게 개이득아닐까 이거 걍 최저만 맞추면 될듯하던데
-
모두가 그런 게 아니었구나
-
과탐에서 사탐 넘어가서 1등급 파이 먹는 애들보다 뭣도 모르고 사탐 가겠다고...
-
고1인데 기계, 토목에서 갈팡질팡중임. 기계과, 토목과 둘다 4대역학 배우던데...
-
선착순 12
굿나잇 뽑보
-
앙망징창 복권할거임
-
동생 공부 도와주다 갑자기 저 문제 어디서 봤던 기억이.. 시발점 미분 스텝투에요
-
근데 진짜 5
내가 여르비였다면 어떨거같음? 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나
-
과탐은 등급컷 높아진다고 징징징 사탐은 블랭크생긴다고 징징징인데 수능은 상대평가라...
-
수학 한 백분위 92정도만 맞고 나머지 올1로 고대 경영뚫는 가능세계 없나요
-
그만 오르비 끄고 자라 10
넵
-
키키
-
님들은 아이스크림 먹으면 이가 안 시려워? 양치할 때 찬물로 입 헹구면 좀 시리잖아...
-
반수해라 vs 하지마라 10
재수해서 건동홍 라인옴 반수해서 연고대 갈수 있으면 하고 안되면 그냥 학교다닐예정...
-
5. 23 언어이해 [1-3] 판사의 진솔 의무; 풀이 복기 7
0. 언어이해 1세트 풀이 복기 https://orbi.kr/00067557013...
-
덕코안주면 문다 5
하아아악
-
르세라핌 4
-
기립성 저혈압 0
앉았다가 기지개 펴면 어질어질
-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러 가봅시다 !
-
ㅈㄱㄴ
-
유빈 1
하 그동안 17000명 유빈방쓰고있었는데 160000명 유빈방이있었네..
-
누가 죽었나요 3
조의금은 어디로 보내나요
-
나한테 꼬리 있는대로 다 치더니 있는 덕코 없는 덕코 다 주면서 만났더니 이젠...
-
얿서운 사실 2
보닌은 덕코를 현금거래 해봤다
-
ㅈㄱㄴ
진짜로 ‘아는 만큼 보이는’ 지문이네요
하여튼, 답답은 합니다. 이런 비상용적 문장을 빠르게 읽고 문학 작품에 대해 논하는 능력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요. 참 살기 힘든 나라...
허나, 읽으면서 참 글이 교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도리라는 게 있는데…
그렇죠. 한데 수능을 푸시면서 그런 생각까지...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저라면 급해서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다시 읽어보면 글 자체의 내용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지문을 읽고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수능엔... 글쎄요
저도 수능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글이 진정한 문학사랑을 막는다고 봅니다.
이런 글을 수험용으로 읽으면 무슨 감동이 있을까요? 답답합니다.
중2병이라고 보지 않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문장이 저분 꺼였다는 걸 모르지 않지는 않았어서 다시 보게 되네요
허걱.. 죄송합니다.
![](https://s3.orbi.kr/data/emoticons/orcon/002.png)
드..드립인거 아시죠..?하하. 오죽하면 이런 댓글을 다셨으려고요. 저도 답답하네요.
사실, 읽어보면 참 좋은 말이다…라는 생각은 합니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누렸다’ 라는, 어느 신문에서의 이완용의 죽음에 대한 평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근데 저걸 수능에..음…
헤겔도 읽어보면 좋은 말이죠…
하하... 유구무언입니다. 정말로. 참 좋은 글이기는 한데 짧은 시간에 저런 '의고적 문투'의 글을 풀면서 문학 능력을 평가하려니... 다시금 유구무언입니다.
그냥 나쁜거 좋은거 두게로 이분만 하면 나름대로 쉽게 풀렸던 것 같은데
아, 그렇게 푸는 것도 방법이었군요.
”망해“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