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언매쩔더라 [1245407]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4-01-04 23: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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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시리즈 2편.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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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시리즈의 글들은 장영준 교수의 “언어학 101”과 김진우 교수의 “언어 이론과 그 응용"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립니다. 



언어학 시리즈 1편: 언어란 무엇인가



동물에게 언어는 있는가



언어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척도라고 여겨진다. 많은 언어학자들이 언어는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놈 촘스키는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한,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차별적 특질이자 인간의 정수라 부를만한 어떤 것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저번에 의사소통이 언어의 본질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의사소통이 언어의 중요한 기능임은 부정할 수 없다. 만일 동물들도 체계적인 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도 나름대로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세계에도 비록 원시적이지만 어떤 통신 방법이 있는데도 무슨 기준으로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를 구별하며, 언어에 어떠한 자질이 있어야 하길래 어째서 ‘언어'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것일까?


코넬 대학교의 교수였던 찰스 하킷(Charles F. Hockett)이 지적한 언어의 구성 자질(Design features of lanugage)를 살펴보자. 


  • 이원성(duality). 인간의 언어에는 소리의 체계와 의미의 체계가 분리·독립되어 있는 반면, 동물의 신호는 소리와 의미가 한 덩이가 되어 있어 둘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언어에서는 비슷한 소리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소리가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 창의성(creativity). 언어는 그 어휘수에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단어를 언제나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또 어휘의 다른 배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통신 사항에는 제한이 없어서, 새로운 문장을 언제나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 반면, 동물의 통신 내용의 목록은 선천적으로 규정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개방성(openess) 즉 신조어를 마음대로 창조해 내는 능력은 동물의 소통 체계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 임의성(arbitrariness). 말의 소리와 그 소리가 상징하는 개념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고 자의적이라는 것. 동물 말은 ‘말'이라는 소리, ‘horse’라는 소리, ‘cheval’이라는 소리 등 여러 언어에서 다르게 표현되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 . 네 다리와 목, 얼굴이 길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으며, 꼬리는 긴 털로 덮여 있는 초식동물 '말'을 ‘말'이나 ‘horse’라고 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 교환성(interchangeability). 화자가 수시로(정시 아님) 청자도 되고 청자는 화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인간 언어에선 동일한 통신자가 메시지의 송신자와 수신자가 모두 될 수 있지만, 동물 세계에서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분리된 경우가 많다. 


  • 전위(displacement). 인간의 언어는 “지금"과 “여기"를 떠나 과거와 미래,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서술할 수 있고 실제 일어나지 않은 “거짓말"도 할 수 있다는 것. 반면 동물의 언어는 현재와 현장에 관한 것을 통신하는 데 제한되어 있다. 


  • 문화적 전승(cultural transmission). 언어 전달은 유전적이지 않고 문화적이라는 것. 즉 잼민이가 한국어를 하는 것은 그 부모가 한국인이거나 한국어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의 문화권 내에서 언어를 습득했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더라도 해외 입양을 당하면 입양을 간 곳의 언어를 배우기 마련이다. 반면에 동물들은 유전적으로 신호의 소리가 선천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참새가 까치들 틈에서 자랐다고 해서 까치 소리를 낼 수는 없다. 



어떤 통신 수단이 이러한 자질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인간의 언어답다고 할 수 없다. 언어학자들이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것은 동물 세계의 소통 체계에서는 위와 같은 자질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꿀벌의 춤과 새의 경고음 그리고 인간 언어를 비교해 보자. 



1. 꿀벌의 춤 


꿀벌은 동물원들의 동물들과 달리 훈련 없이 그들 자체의 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꿀벌은 꿀을 발견하면 집으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춤’으로 이를 알린다. 꿀이 가까이 있다면 원형 춤(round dance)을, 멀리 있다면 8자 춤(waggle dance)을 춘다. 또 춤이 빠를수록 거리가 짧고 느릴수록 거리가 멂을 가리키는데 15초 안에 열 번 돌면 약 100m, 여섯 번 돌면 약 500m, 네 번 돌면 약 1500m 정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곤충학자들에 의하면 꿀벌은 고립된 채 길러졌더라도 어떤 벌통에 가게 되면 그곳의 꿀벌들과 같은 춤을 춘다고 한다. 물론 정교함에 있어 그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어느 시간 정도 연습 비행을 할 필요가 있고 다른 벌의 춤에 정확하게 반응하기 위해 다른 벌들을 따라 춤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따라서 꿀벌의 춤은 전반적으로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지만 정교함은 후천적인 학습으로 얻어진다고 할 수 있다. 





2. 새(조류)의 소리


새들은 위험이 닥칠 때 동료에게 경고음을 내기도 하고, 공중에서 서로 모이기 위해, 짝짓기를 하기 위해, 배고픔을 알리기 위해, 혹은 보금자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특정한 소리를 이용한다. 새가 내는 두 가지 소리는 경고소리와 노랫소리이다. 경고소리는 몇 마디의 짧은 음으로 이루어지지만 노랫소리는 좀 더 복잡하다. 또 경고소리는 생득적 또는 본원적이지만 노랫소리는 종-특정적이다. 새의 노랫소리는 자기 종 안에서 짝을 찾거나 지배 영역을 가져야 하므로, 모든 새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 혹은 특정 개체에게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격리된 채 길러진 새는 자연에서 나고 자란 새와 똑같은 노래를 하지 않는다. 꿀벌의 춤과 마찬가지로 세세한 부분은 주어진 환경에서 습득한다. 격리된 채 길러진 새는 노래를 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노래와는 그 정교함에 차이가 있다. 즉 새의 노랫소리 역시 전반적으로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정교함은 후천적인 학습으로 얻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소통 체계는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꿀벌, 새 또는 다른 동물들의 소통 체계와 비교할 때 인간의 언어는 그 영역이 매우 광범위하다. 창의성이라는 자질은 다른 동물들의 소통에는 보이지 않는다. 꿀벌의 춤은 식량원의 거리, 방향, 꿀의 질 등에 대한 무제한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생산적인 소통을 불가능하다. 꿀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의 다른 특성들에 대해 어떠한 생산적 소통도 할 수 없다. 새의 노래와 경고소리도 제한된 방법으로 제한된 수의 사건들에 대해서만 소통이 가능하다.


인간은 무한히 많은 관점에서 무한히 많은 사건에 대해 소통할 수 있고 언어에 의해 생성될 수 있는 메시지의 수는 거의 무제한적이다. 인간은 서로 구분되는 신호를 무제한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들을 결합하여 문장을 만든다. 새는 많은 경고음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경고음들을 배열하여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단어나 문장과 같은 언어형식은 의미와 자의적 관계가 있다. 꿀벌의 춤과 새의 소리도 그것이 나타내느 것과 자의적인 관계를 이룰까? 식량원의 방향을 나타내는 꿀벌의 춤을 구성하는 요소는 그것이 지시하는 것과 필연적이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즉, 벌이 벌통 바깥의 착륙 지점에서 춤을 출 때 달리는 방향은 꿀의 위치와 동일한 방향을 나타낸다. 또 먼 거리일수록 가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한 바퀴를 도는 데 더 오래 걸리는 춤이 원거리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새의 노래와 경고음은 자의적이다. 특정한 경고음과 노래의 형식은 이 소리들이 나타내는 것과 직접적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고음이나 노래소리를 내는 것은 외부 자극에 의한 것이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특정한 자극이 생기면 예측할 수 있는 특정한 행태를 보이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다. 불이 나거나 포식자가 접근하거나 하는 등의 외부 자극에 결정된다.  


이와 다르게 인간의 언어적 메시지는 외부 자극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적 개념에 의해 통제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굼벵이를 보고 “참 맛있는 간식거리네"라고 말한다. 그런데 똑같은 굼벵이를 보고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우웩, 구역질 나"라고 말할지 모른다. 굼벵이가 있다는 환경에 의해 그러한 말을 하게 됐지만, 소통 행위가 자극 자체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이들이 벌레에 대해 보인 반응은 학습에 의해 얻어진 태도이고, 특정한 문화나 개인에 대해 상대적이다. 인간의 소통은 자극-결속적이지 않다. 


거짓말이나 비사실적인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능력을 조작(prevarication)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소통 체계에서 조작은 보이지 않는다. 포식자를 속이기 위해 죽은 척을 하거나 다른 동물의 소리를 흉내내는 등의 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이는 유전적 프로그래밍에 의해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 자극-결속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포식자가 다가올 때만 다른 동물의 소리를 흉내내지만, 인간은 그러한 외부 자극이 없더라도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할 수 있다. 


정교함의 차이가 있겠지만 격리되어 자란 꿀벌은 꿀벌들이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춤을 추고, 격리되어 자란 새도 여전히 해당 종에만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자라면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 언어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게 될 언어의 규칙이나 어휘를 배워야 한다. 


결국 자연 환경에서 동물들이 이용하는 소통 체계는 ‘언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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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습득과 유인원 



그렇다면 언어의 습득은 인간 고유의 것일까? 유인원은 인관과 유사한 비언어적 행위 때문에 자주 실험 대상으로 쓰이는데 이들이 자연에서 보이는 소통 체계 역시 여타 동물들과 같이 인간 언어의 구성 자질이 없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들은 유인원들이 인간다운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자연환경이 인간의 생활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과 똑같은 생활 환경이라면 인간다운 언어를 습득할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침팬지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동물에게도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고, 따라서 언어가 인간의 소유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생활 환경에 의한 것이지 인간만의 생리학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님이 증명될 것이다. 몇몇 사례들을 살펴보자. 


1. 와쇼



네바다대학교의 알렌 가드너(Allen Gardner)와 베아트리스 가드너(Beatrice Gardner) 교수는 침팬지의 언어 능력이 일련의 몸짓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들은 와쇼(Washoe)라는 이름의 침팬지의 언어 능력을 밝혀내기 위해 미국수화(American Sign Language)를 사용하기로 했다. 연구자들은 ASL과 침팬지가 내는 것과 비슷한 소리로만 와쇼와 소통했다. 와쇼는 1979년에 약 250개의 신호를 습득했고 이들 신호를 정확하게 사용하여 사물을 묘사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답했다고 한다. 또 와쇼가 신호들을 결합하여 백조를 보고 “water bird”라고 하는 등 합성명사를 임의적으로 표현해 냈고 “come open” 같은 문장으로 보이기도 하는 단어 결합을 만들어냈는데 와쇼의 훈련사들이 이를 보고 언어 능력의 증거라고 얘기하였다. 그러나 두 단어를 독립적으로 수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가장 큰 약점으로는 조련사의 자의적인 해석이 꼽히는데 아래는 한 청각 장애인 참여자의 기록이다(이 정도 영어는 해석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very time the chimp made a sign, we were supposed to write it down in the log. . . . They were always complaining because my log didn't show enough signs. All the hearing people turned in logs with long lists of signs. They always saw more signs than I did... . I watched really carefully. The chimp's hands were moving constantly. Maybe I missed something, but I don't think so. I just wasn't seeing any signs. The hearing people were logging every movement the chimp made as a sign. Every time the chimp put his finger in his mouth, they'd say ‘Oh, he's making the sign for drink,’ and they'd give him some milk. . . . When the chimp scratched itself, they'd record it as the sign for scratch. . . . When [the chimps] want something, they reach. Sometimes [the trainers would] say, ‘Oh, amazing, look at that, it's exactly like the ASL sign for give!’ It wasn't.” 



2. 칸지



칸지(Kanzi)라는 보노보는 컴퓨터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유인원들과 함꼐 자랐다. 어미 마타타(Matata)와 달리 칸지는 이 기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어미의 기술을 관찰할 수는 있었다. 키보드에는 무작위적인 기호들이 있었고 각 기호는 한 단어를 나타냈다. 놀라운 점은 칸지가 훈련 없이 자발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단 것이다. 또 마타타가 어떤 행동을 고집하면 칸지는 동사를 두 번째 자리에 놓아 “Matata bite” 같은 표현을, 마타타가 수동적으로 어떤 일을 당하면 동사를 첫 번째 자리에 놓아 “grabbed Matata” 같은 표현을 만들었다. 심리학자들은 칸지가 단순하긴 하지만 문법을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문장처럼 보이는 표현에 규칙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관성" 즉 어쩌다가 우발적으로가 아니라 일관되게 그러한 표현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논의는 자세히 되지 않았다. 



3. 님 침스키(Nim Chimsky)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다. 놈 촘스키를 딴 이름이다. 놈 촘스키의 가설을 반박하려고 이런 이름까지 붙여 줬지만 오히려 촘스키의 가설만 강화해 준 꼴이 됐다. 이 침팬지는 100여개의 어휘를 습득했고 “drink”란 단어를 수화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님의 발화는 되풀이된 두 단어의 연쇄에 불과했고 자발성의 부족이나 창조성의 결여로 인해 언어 습득에 실패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문법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는데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eat Nim(V+S)”으로 쓰기도 “Nim eat(S+V)”으로 쓰기도 하는 등 주어와 목적어의 역할이 어순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렇듯 여러 연구가 있긴 했지만 모두 동일한 반박에 공격당했다. “유인원들은 기계적으로 습득한 단어를 되풀이할 뿐, 그것을 이용하여 창의적이거나 자발적인 언어 구사를 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It's about as likely that an ape will prove to have a language ability as that there is an island somewhere with a species of flightless birds waiting for human beings to teach them to fly" Chomsky(1979). 


“Whatever the chimps are doing is not even homologous as far as we know” (Chomsky).


“You can train animals to do all kinds of amazing things” (Pinker).


“No matter how eloquently a dog may bark, he cannot tell you that his parents were poor but honest” (Russel).


"유인원이 언어구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순히 암기 혹은 모방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유인원의 언어 능력에 회의적이다. 어째서 회의적일 수밖에 없냐고? 어떤 소통체계가 언어가 되기 위해선 ‘기호'가 ‘체계'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즉 문법이라는 규칙으로 기호들이 연결되어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님 촘스키 연구자들 중 한 명인 허버트 테라스(Herbert S. Terrace)는 연구 진행에 회의을 느끼게 되어 침팬지가 문법을 배우거나 이용할 능력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는 연구 조교들과 님과의 소통을 녹화한 영상을 분석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유인원들에게 올바른 답을 암시하는 미세한 무의식적인 힌트를 제공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한 조교가 손에 고양이를 들고 님에게 답을 하라고 하면 침스키는 “me hug cat”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것이 문장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님이 ‘me’라는 신호를 보낼 때 연구자가 ‘you’라고 신호를 하고, 침팬지가 ‘cat’이라는 신호를 보낼 때 연구자가 ‘who’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님은 이전에 연습을 통해 ‘who’라는 신호에 ‘cat’이라고 답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연구자가 보내는 신호에 대해 기계적으로 응하도록 조건화됐으므로 님의 신호는 언어라고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련의 신호들을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조건화가 됐다는 점에서 토마시 시복(Thomas Sebeok)과 도나 진 우미-시복(Donna Jean Umiker-Sebeok)은 영리한 한스처럼 님 촘스키 모두 의도하지 않은 힌트에 반응했다고 지적했다. 또 테라스는 님의 발화는 시간이 지나고 길이가 늘지 않았고 대부분은 연구자의 발화를 따라한 것이고,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지도 않았으며, 소위 주고받기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 많은 유인원 언어 연구자들이 재반박을 하기도 했다. 유인원 언어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메카니즘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기에 인간에게만 부여된 것인지는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렇지만 앞서 살펴본 꿀벌의 춤과 새의 경고음을 통해 적어도 인간의 언어가 동물의 소통 체계와는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표로 정리해 보자. 아래 표는 “Rowe & Levine(2012)”의 일부이다. 




모든 동물은 그들 종의 다른 구성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종종 다른 구성원에게까지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의 소통의 가장 큰 차이는 소통의 범위이다. 벌이나 새의 소통도 매우 복잡하지만, 체계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체계는 동물들이 만들 수 있는 메시지의 수와 종류로 한정된다. 이에 비해 인간의 언어는 개방적이다. 


또, 동물의 소통은 자극-결속적이다. 즉 어떤 자극에 노출되었을 경우에만 신호가 전달된다. 반면 인간의 언어는 자극-자유적이다. 외부 자극에 의존적이지 않다. 종달새는 기본적으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하는데, 모두 동일한 자극에 대해 동일한 반응을 보이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수십만 가지의 행동 양식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인간은 특정한 자극에 대해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 


자연에서 소위 동물 “언어" 즉 동물이 이용하는 소통 체계는 인간의 언어라고 불리는 소통 체계라고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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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와 언어 그리고 진화 


Pääbo, Svante. "The mosaic that is our genome." Nature 421, 2003



인간과 유인원은 약 500만 년 전부터 800만 년 전 사이에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간접적이지만 언어 유형의 소통을 위한 인간의 능력은 약 260만 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는 증거들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조상은 약 260만 년 전에 석기 도구를 만들기 시자했고 이 시점부터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기술적 복잡성이 증가하고 두뇌의 크기가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약 2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 불리는 인류에게서 두뇌의 브로카 영역(Broca’s Area)과 유사한 모양의 두개골의 모습이 생겼다. 또 소화기관과 호흡기관이 발달되며 말하는 행위가 가능해졌다. 브로카 영역은 후두, 입술, 혀 및 기타 소화와 호흡기관을 관장하는데 이는 언어 산출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 영역이 손상을 입으면 발화 산출에 문제가 생기는 브로카 실어증에 걸리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은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이다. 베르니케 영역은 발화의 이해와 어휘의 선택을 관장하는 부분으로 이 영역이 손상을 입으면 어휘 실수와 무의미한 단어 사용이 나타나는 베르니케 실어증에 걸리게 된다. 언어 능력에 관한 영역들은 주로 좌반구에 있는데 유인원 역시 좌반구가 발달되어 있고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등은 브로카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특정한 발달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침팬지는 베르니케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 발달했다. 그러나 현 유인원의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일부 발달했다고 하여 유인원이 언어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클라우디오 칸탈루포(Claudio Cantalupo)와 윌리엄 홉킨스(William D. Hopkins) 박사는 유인원의 뇌에서 이 영역이 발달한 것은 ‘발화에 수반되는 다양한 몸짓의 산출'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를 보였다. 


두뇌영상기술을 이용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뇌의 많은 부분은 언어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걸음걸이와 같은 신체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영역도 언어 능력과 관련이 있단 것이다. 필립 리버먼(Philip Lieberman)은 인간의 조상이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진화하면서 함께 발달한 두뇌의 영역이 언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두 발로 걷는 데 필요한 운동신경능력과 복잡한 언어 능력이 함께 진화했을 거라는 얘기다. 일부 학자들은 손과 얼굴의 제스처를 언어의 선구로 보기도 한다. 


진정한 언어 능력이 부분적 두 발 걷기로의 진화의 결과라면, 언어는 인간과 유인원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리된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인간에게만 독특하게 나타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인원의 실험에서 어느 정도의 언어 수행을 보여줬다면, 언어는 인간만의 배타적 영역으로 간주될 만한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물론 유인원의 실험의 타당성은 놈 촘스키나 스티븐 핑커 같은 유인원 언어 회의론자들에게 매우 그리고 열렬히 공격당하고 있지만 말이다. 







다음 글은 “언어의 기원(ft. 언어 유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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