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님이 자살하신 날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68730718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19살 나이에 양말 공장에서 손가락이 전부 잘렸지만 응급 처치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부모 형제도 없는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파키스탄 불법 체류자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어린 시절부터 자칭 목사 아버지에게 수백 번을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과 육체가 마비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신병원 병실에서 알 수 없는 울음을 내지르는 13살 소녀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자녀들이 전부 신용 불량자가 되어 집안 가산을 탕진하고, 이제는 낮에는 폐지와 쓰레기를 줍고, 밤에는 고시원 독방에서 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독거 노인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희귀한 장애를 앓고 있지만 부모에게 버림받고 80 넘은 조부모 손에 길러지면서도 초등학교에서 따돌림마저 당하는 소년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고등학교 때 부모 친지 친구에게 모두 버림받고 이태원 바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에게 몸과 맘을 주다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홀로 울며 죽어가는 트랜스여성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폭력과 불안이 가득한 집안에서 탈출하듯 만난 남자에게 헌신짝마냥 조종, 조롱당하고 버림 받은 채 단칸 원룸에서 수면제 스무 알을 들이키는 젊은 여자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성격이 어수룩하고 말을 더듬고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만으로 군대에서 선임들에게 왕따와 폭행을 당하고 야밤에 화장실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군인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사십 줄에 중소기업에서 해고당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이, 아이들은 다 크지도 않았는데 매일 같이 아내와 싸우고 다투고 하다가 홀로 한강 대교 밑에서 소주를 마시는 무능한 가장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전주 시장의 야채 팔이 할멈들은 그 와중에도 서열이란게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리 선점을 하기 위해 싸운다.
그 안에도 정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이가 아흔쯤 되어 보이는 순박한 노파는 그 와중에 누가 봐도 서열 꼴지이다.
허탈하게 빙그레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왠지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장을 놀러온 그 어떤 젊은 부부도, 대학생 커플도,
소위 멋진 남성과 여성들이라면 모두 그 할멈들의 야채를 사주지도, 손에 지전 한장조차 얹어주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한 여대생이 단란하게 남자친구의 손을 맞잡고 야채 파는 할머니들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뒷모습과, 주변의 다른 상인들에게조차 무시 동정의 대상이 되어 회한조차 무뎌진듯한 할머니의 미소 앞에서,
이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더라면 어땠을까. 누구를 나무랄 것은 없었지만, 단지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 때 그 자리를 회상하면서 그곳에 놀러온 연인들의 추억과 설렘의 순간을 축복하고, 전주 시장 할머니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도.
노인의 아흔해 인생은 지저분한 거리에서 야채떨이 파는 인생으로 끝나게 되었는데, 여대생의 스무해 인생은 남자친구와 아름다운 거리에서 추억을 만들며 지속되고 있구나.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 두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결말을 억측할 수는 없지만 현재, 지금의 세상은 그런 풍경을 보여주고 있구나.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신촌 연세로 밤거리에 젊은이들이 남긴 쓰레기를 주섬주섬 봉투에 담는 노파에게는 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
신촌역 6번 출구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수염도 깎지 못한 채 벤치에 홀로 누워 사람 없는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노숙인에게는 왜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인가?
왜 아무도 그들에 대해 볼려고 하지도 일말의 진심을 다한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가.
그러나 그대들의 이익이 당장에라도 침해되면 대학 잠바를 거리에 늘어놓고 의식 있는 척 목소리를 높이지 않느냐?
그대들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먼 나라의 기후와 기아들에 대해서는 가끔 생각하는 척 하면서,
바로 옆의 이웃과 심지어 바로 옆의 또래 학우들의 어려움과 아픔조차 귀찮고 바쁘다는 핑계로 나몰라라 하지 않느냐?
그들이 하나씩 죽어나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안타깝다고 추모의 댓글 하나 쓰면 그만이지 않느냐?
그러나 내가 말하는 모든 것조차 그대들에게는 결국 이데올로기의 하나일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넘겨질 작고 가여운 일이 아니더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지옥에 가서 중생과 영혼을 제도하고 보살피는 보살의 이름이 있으니 그 이름이 지장(地藏)이다.
지장은 이생에서의 공덕으로 천상 극락에 났으나, 지옥 중생들이 불쌍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 지옥으로 갔으니, 그는 모든 영혼이 지옥에서 다 나오기 전까지는 부처가 되지도 지옥을 떠나지도 않는 존재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 41-46)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트럼프 피격] "총알 날아오는 순간 고개 돌려 살았다" 3
"차트 보기 위해 제때에 머리 돌려…그렇지 않았다면 총알 머리에 맞았을 것" "신발...
-
개 오래 걸리네
-
잇올 유료컨설팅이랑 메가 컨설팅 괜찮나여? 학종으로 갈라하는데 컨설팅 한번...
-
레전드 상황 발생
-
최저 3합7 제도 신설됬는데 의대정원으로 인한 낙수효과까지 고려하면 중앙대 수시...
-
[트럼프 피격] 군중 눈앞서 버젓이 정조준…美언론 '총격범 최후 영상' 보도 1
"갈색 장발 남성, 표적 정확히 겨누려 노력하다 방아쇠" 지붕에 엎드려...
-
강사컨, 학원컨, 시중컨 처리 순서가 어떻게 되나요..? 시중컨 많이 풀고...
-
10분컷 1등급☆
-
만신임 ㅇㅇ
-
저거 작년6평 수능은 52342
-
몇년도꺼부터 기출푸는게조을찌 추천좀해줘 교육부에서 몇년도 기출을 참고하라고 햇엇는데...
-
작년 수시 종합으로 중앙대 합격했고 올해 의대증원으로 인한 낙수효과에 한양대 교과...
-
우리 은하에서 최초로 중간질량 블랙홀이 관측됨... 4
지구에서 15000 광년 떨어진 오메가 센타우리 구상성단에서 발견된 블랙홀의 질량은...
-
. 1
-
주어 안에있는 동사를 문장 주요 동사로 착각해서 맨날 해석이 틀려용...
-
남캐 그림 투척 1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로 채워넣음
-
열받는 사실 내포가 불분명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ambiguous의 역어는...
-
pH 4
온도는 25°C
-
거래소 '조회공시' 요구 (서울=연합뉴스) 곽윤아 기자 = 한양대를 운영하는...
-
이건 뭔 개소리임??
-
지금 의식불명, 정확히는 인사불성이라 하는데 그 말은 즉슨 의식불명인 채로 호흡이...
-
주말에 계속 책상 앞에 앉아있기도 하고 문제도 많이 풀고 하는데.. 왜 항상 잘...
-
몸살 나은지 얼마 안되서 술을 마구마구
-
2022년 7월: https://orbi.kr/00057971264 2022년...
-
ㅗㅜㅑ 2
-
+배수비례를 깨달음
-
셋다 풀거긴 한데 어느거부터 풀까요..? 일단 비문학부터 공부하는 느낌 추가해서 풀겁니다
-
있나요 왤케 언급량이 많지
-
비밀하나알려줌 4
기숙사 침대 베개 아래에 라노벨 숨겨놓고 보는중임
-
위 뉴스기사의 주인공 최덕근 영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 신분으로 위장한...
-
중앙대 가고싶다 13
올해 보내줘
-
25까지 회복했네 물론 부정적 평가가 훨씬 크기는한데
-
현실에 보이는 저같은 애들 없이 다 기만러분들이라 볼때마다 열등감이 ㅜ 열심히...
-
그냥 다이어트 하기로했다 10키로감량 고고혓
-
ㄷㄷㄷㄷ
-
32일차 7
-
지문 한 7개 보면 영어가 어지럽고 머리 지끈거리던데 정상인가
-
N수 화이팅 6
N수 화이팅! 진짜 올해로 끝내 보자고!
-
이거 어떻게 운영되는건가요? 모의고사, 교재는 착불 택배로 오고 전 강의만...
-
7. 22 언어이해 [28-30] 칸트의 외면성 명제; 풀이 복기 2
0. 언어이해 1세트 풀이 복기 https://orbi.kr/00067557013...
-
다음대선은 이재명뽑는다
-
수능 광명상가 문과 추추추합
-
뭐지뭐지
-
이원준 김상훈 0
독서론이랑 브크독서 중에 뭐 들을까요?
-
언팔 좀 해주삼
-
걍 다 0으로 만들고싶은데
-
기하이분들 0
저번에 개념강의 뉴런 추천받아서 오늘 다 들었는데 제 수준은 강의듣고 뉴런안에 있는...
-
현재 고2 일반고 다니고 있습니다. 성적은 국영수물화생,생윤순으로...
-
공부 잘한편이냐
-
하나당 400원만 아니었어도... 저건 사실 좀 쉽긴 한데
님이 쓰신 거에요…?ㄷㄷ
네
정독을 해 봤는데, 불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교리를 마지막에 연결하는 데에서 소름이 돋았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ㄷㄷㄷ..
감사합니다
진짜 불교가셨나요??
아니요 지금은 천주교도 불교도 아닌 세상 속에서 구도자 그 자체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그랬듯..
갓데 갓데 파라갓데
_()_
![](https://s3.orbi.kr/data/emoticons/dangi_animated/020.gif)
잘 쓴 글이네요. 문학작가가 쓴 글인줄 알았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