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
게시글 주소: https://i.orbi.kr/0008317538
P는 어머니를 죽였다.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의 가정엔 아무 싸움도 없었으며, 그날 아침에도 P는 어머니와 같이 TV를 보며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의 시체는 부엌의 식탁과 가스레인지 사이에 있었다. 깨진 두개골 조각이 피와 뇌수에 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끈덕지게 흩어져있다. 그는 으깨진 두개골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소름이 끼쳐 바로 뺀다. P는 재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간다. 옷을 벗어 욕조에 놔두고, 샤워를 한다. 식은땀이 흐르며 긴장되었던 몸에 따스한 물을 부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죄책감은 느껴지니 난 양심이 있는 거야.'
멋진 변명이다.
P는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집 밖으로 나선다. 단지 어머니의 시체와 함께 거실에 있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공포에 도망치려는 게 아닌, 다른 것이었다.
P는 그의 친구가 사는 하숙집으로 향한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살갑게 대해준다. P도 신사처럼 살짝 미소 짓는다. 친구는 방은 술 냄새가 난다. 매트리스 위에서 P의 친구는 자고 있다. P는 친구를 깨우지 않고, 다시 나간다. 아주머니가 다시 살갑게 대해준다. P도 신사처럼 살짝 미소 짓는다.
P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보니 가스밸브가 열려있었다. P는 가스밸브를 잠그러 식탁으로 이동하다가, 발에 어머니의 시체가 채인다. 살짝 쳐다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가스밸브를 잠근다. P는 베란다로 가서 조립식 빨래건조대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문득, 빨래가 걸린 긴 쇠막대기를 잡고, 빨래를 털어낸다. 모자를 쓰고 다시 바깥으로 향한다. 쇠막대기가 가벼워 기분이 좋다. 계단을 내려가는 P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P군, 어딜 그렇게 즐겁게 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살짝 미소 지으며 P는 집주인에게 말한다.
"나중에 아버지랑 같이 술 한 잔 하자. 내랑 너네랑은 같은 동문이니까 볼 때마다 그 뭐랄까 동지감이라는 게 막 생기는 것 같어. 친 아들내미 같단 말이야."
P는 아무 말도 않고 층계를 쳐다본다.
"아무튼, 잘 갔다 와라."
"예."
P는 멀리 가는 척 하다가 다시 뒤로 돌아 집주인이 계단을 오르는 것을 훔쳐본다. 그는 쇠막대기를 세게 쥔다. 그리곤 집주인의 차 뒷 유리창을 깬다. 날카로운 경보음이 동리를 울린다. P는 쇠막대기를 저 멀리 던져버린다. 집주인이 허둥지둥 내려온다. P는 그 모습이 마치 돼지 같아 슬쩍 비웃는다.
"시방, 뭐여 이게."
"잡을라 했는데 못 잡았어요."
P는 헐떡이는 연기를 하며 말한다. 집주인의 의심스런 눈초리는 P를 향했지만, 깨진 유리창이 제일이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저 이만."
P는 다시 갈 길을 간다. 집주인 아저씨는 P를 향해 무어라 말을 했지만 P는 안 듣는다. 들리긴 하였으나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집주인이 다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떡집의 트럭 뒤에 몰래 숨어 지켜본다. P는 뒤통수가 짜릿했다. 아둥바둥 하며 전활 걸고, 떵떵 소리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웃는다.
'항렬 하나 높은 게 뭐 대수라고...'
P는 단상을 하고 뒤로 돌아 시내로 향한다.
이제 곧 해가 저물어 갈 시간이다. 그가 시내에 도착할 때엔 해가 완전히 진다.
P는 화려한 산호 군락 속에 뒤섞인다. 딱히 할 것은 없었다. 정한 것도 없었고, 원하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낯선 거리를 직면한다. 왼쪽 발목 위 근육이 아프다.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죄책감은 느꼈으니 난 양심은 있다.‘
새벽 즈음 되었을까, P는 집 앞에 도착한다. 경찰차 2대가 서있다. 두 경찰관이 P에게 다가와 수갑을 채우며 무어라고 한다. P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차는 뒷좌석에 손잡이가 없구나.’
P는 신기해한다. 본래엔 손잡이가 있어야 할 민둥하니 어색한 부분을 반히 본다. 차가 멈추고, P는 꺼내어진다.
사거리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있다.
"너 어리면 다냐? 스무살이면 다 야? 이 미친년아 이 육실헐년...“
이 말을 반복해서 소리치고 있다. 당연히 P와 경찰관들 모두 쳐다본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사거리에서부터 경찰관 앞까지 소리치며 걸어온다. 밤늦은 새벽에 큰 소리로 명확한 대상도 없이 욕을 하며 걸어 다니는데 정말 누가 미쳤는지. 그 아주머니를 화나게 한 사람이 미쳤는지, 아주머니가 미쳤는지. 아니면 남의 일에 대해 이 정도까지 상상하는 P가 미쳤는지.
갑자기 P는 유리된다. 옆의 빠른 흐름을 본다. 보도블록의 일렁이는 물결무늬를 따라 고개를 흔든다. 경찰관은 아주머니를 말린다.
P는, 잠시, 머뭇거린다. 급류가 손짓한다. 연석에 걸터앉는다. 발을 도로에 담근다. 때마침 몰려오는 무지근한, 하지만 기민한 급류가, 부닥친다.
두 개의 향이 목을 탁 꺾으며, 무너져 내린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안놀아도 공부 3-4시간 놀아도 공부 3-4시간인데 6
순공 어떻게 늘리죠..?
-
장나라 닮음
-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
첫 해라 모르겠네
-
잘해야하는거지 라고 하면서 열심히하는데 성적안나온 애들 깔아뭉갠 서울대출신 선생님 생신이시네 오늘
-
정시파이터 방학때 딱 하루 콘서트 가는거 에바임? 15
진짜 다른 날 열심히 하고 콘서트 하루 갔다오면 에바임?
-
팔뚝은 엄청 얇은데 광배근이 넓은 여자? 그리고 직각어깨
-
관계 끝나버린 게 너무 자책감이 들어서 힘드네요..
-
화작확통생윤사문 89 95 2 96 98
-
지구과학 1 하려면 20
지구과학 1 하려면 수학 어디까지 알아야 하나요?
-
진짜 수능 출제진들 엄청나게 대단하다 한때 킬러없애니 뭐니 할때 저래도 되나......
-
나도 나도 나도 들어갈래 초대해줘
-
왜 작년엔 몰랐을까.... 수2 너무 달달하다
-
으이구 0
반수 말고 쌩삼수 할걸..기출 n제 말고 실모 벅벅하고 싶어서 우럿어
-
문디컬 2
7모 원점수기준 언 확 생윤 사문 98 96 95(이건영어) 50 41 등급은 다...
-
유행어같은 건 디시발 유행어가 엄청 많은데 나무위키 실검은 펨코발 이슈가 대부분이랄까
-
3개월만 더 있었으면...... 하 진짜 할게 왜 이렇게 많냐ㅠㅠ 고2때 정시로...
-
청소했는데 레전드였음..
-
왐마 힘드러
-
9월 모의고사 전에 모의고사 한 세트 배포할 생각입니다! * 이 시험은 수능특강,...
-
시이~발 씹1기만이 따로없네 본인은 이별은 쉽고 만남이 어렵노…하아 공감하면 개추
-
갑종배당이자소득세님, 12
당시 고민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오전 2시 35분 이후, 경찰로부터 전혀오지 않아...
-
문학 안그러면 ㄹㅇ 개판남
-
독재 거리 1
독재학원이 집에서 버스타고 1시간거리면 다니기 많이 힘들까요..?
-
2년정도 유학재수학원 다니면서 준비중인데 그냥 심심하니깐 질문(膣아님)받는다 무물ㄱㄱ
-
반수생이고 한완수 파트 1 2회독 중이고 파트 2 진도 나가고 있습니다 한완수...
-
후자는 뭔가 강의듣는시간만 늘거같고 전자는 혼자 답지만 보고 풀수있을까 걱정되고
-
안녕 11
-
진짜 사무치게 그립다 진짜 좆같다 하아… 너무너무 보고싶다
-
나기출 서점에 1
파나요..?? 온라인에서만 파는건가
-
삼수면 서울대 내신 반영 더 낮아지나요? 국제고 내신 3.4 정도면 bb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서바 1
오늘 지학서바 42받았는데 잘본거임? 서바는 첨이라서 잘 모름
-
수특문학 따로 안사도 되나요?
-
답은 기억이 안납니다.. 아마 누군가 맞추신다면 기억날 듯.. + p분의 q x 루트3입니다
-
재탕이긴하지만 14회분이라니 개맛있겠다
-
영동군 재난업무 담당 20대 공무원 숨진 채 발견…경찰 수사 1
(영동=뉴스1) 박건영 기자 = 충북 영동군의 재난 업무를 담당하던 20대 공무원이...
-
원래 등급당 0.5점씩 감점 아니였나? 3등급은 2점, 4등급은 4점감점이넹......
-
씹으면 안에서 꿀과 흙설탕 깨가 터져 나오는 색깔 다양한 꿀떡
-
시수 비율도 반영하는지 학년별 비율 다른지 궁금합니다
-
7모딸 치고싶다 7
뭔가 우울하네
-
재밌습니다. 크툴루 배경인 작품인데 카연갤에서 정말 재밌게 봤음 d몬도 카연갤...
-
[수학] 실전개념 요약집 무료배포 feat. 강의소개 221
안녕하세요 수학강사 이대은입니다. 오늘은 무료자료 배포랑 짧고 굵은 강의홍보로...
-
취집공vs뉴런 0
뭐가더 어려운가요?
-
ㅋㅋㅋㅋ
-
파견체 체크포인트 디펜스 게임의 폭군이 되었다
-
오르비 플레이 << 이새낀 대체 왜 만든 거임?
-
고민이 있습니다 5
수학 문제를 노트에 따로 푸는게 도움이 될까요? 타과목은 이런 말이 없는데 유독...
-
길에서 주움
필력ㄷㄷ 수특 지문인줄
뭐야 왜 문제가없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