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연대햏자 [7996] · 쪽지

2004-07-18 00: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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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운다. <1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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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내가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고려대 수학교육과를 지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사실이다. 계속되는 불경기 및 취업난으로 이번에도 커트라인이 오를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 능력과 적성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전환점을 필요로 했다. 떨어지면 더 좋을 꺼 같다라는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고대 수교과의 수시모집에 지원했다.  그리고 역시 떨어졌다. 통산 5번째의 낙방이였다. 같은 학교, 그것도 같은 학과를 5번이나 지원해서 떨어진다는 것...이제, 더 이상 미련한 짓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있던 중,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02학번 친구로터 얘기를 듣는다.
\'어제 연고전을 했어. 이 곳에서 응원을 통한 화합 및 조화를 느낄 수가 있었어.. 이는 연세대학교가 취업양성소가 아닌 학원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모습이지...너에게..그 현장의 소리를...들려 주고싶어..\'

고려대학교를 열망하다보니, 내게 있어서 어느 새 호랑이가 가장 좋은 동물이 되어버렸고, 연고전이란 말보다 고연전이란 말이 더 익숙하고.. 지하철 6호선은 고려대학교를 경유하는 노선이 아니라, 고려대학교를 위해 만든 노선 이였다.

더 이상 그곳만을 지망하는 것은 융통성 없는 고집에 불과했으며, 정형성, 정도에서의 탈피를 표방했던 내 자신에게 전면적으로 위배되는 것 이였다. 고대 수교과는 내게 있어서 따고 싶고, 딸 거 같은데 딸 수 없는 포도와 같았다. 포도를 시다고 변명하며, 포기하고 길을 돌린 여우처럼... 나름대로의 근거에 의존한 변명을 남긴채... 현실을 찾아갔다..

가고자 하는 곳은 연세대 공학계열, 이학계열, 고려대 공과대학, 이과대학이였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지 보람이 있다며, 적성에 맞춰 과를 선택할 것을 당부한 소신 있던 학생은, 이제 상대적으로 유리한 수능점수로 보이지 않는 특권이나 누리고자 연고대 간판을 따려하는, 예전에 그 학생이 욕하던, 비열한 놈이 되어있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근 4년이 지나면서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고, 현실의 벽을 뼈져리게 체험했지만 말이다.

근처 도서관에 늦은 점심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오면 서울 시내의 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집에 오면 오르비의 학습게시판과 운영자로 있던 입시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 아침 7시정도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씻고 나갈 준비를 한 후 근처 가게에서 오늘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체력을 제공해 줄 빵과 우유를 사먹었다. 먹을 줄 아는 거라곤 빵과 우유, 김밥과 라면 뿐 이였다. 사회 생활 중 돈을 버는 것은 매우 힘든 것임을 몸소 체험해서, 낭비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운영하게 된  입시 커뮤니티에서 친한 고3 재학생들도 수능 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여전히 서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답 글을 달아주었으며, 혼자 공부해서 외롭다는 감정을 그나마 먼 곳에서 같은 일을 행하며 정을 쌓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많이 친했는데 나중에 연락이 뜸했다가,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3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와 학습방법을 공유하며 자주 연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10월 대성모의고사 수리영역의 난이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오르비에서 난이도를 판단하는 투표까지 했다. 문제를 풀며, 마치 내가 02수능 수리시험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으며, 이번 수능에서 수학문제가 굉장히 난해하게 출제될 것이라는 전망이 돌았다. 이는 수능 당일날  수학 문제를 푸는 심리에 적지 않게 작용한다.

모든 영역에 걸쳐서 출제되는 난이도에 따라서,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에 있어서 여러 시나리오를 짰다.  언어 문제를 풀다가 혹시나 시간이 모자를 때, 과학탐구가 02년 9월 모의평가처럼 극강으로 어렵게 나왔을때등... 예년과 다르게  형편없이 떨어진 모의고사 점수를 보면서 한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내가 승부할 것은 오로지 수능이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 앞에서 항상 자신있다는 말을 반복하며 내년에는 연고대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하곤 했다.

이윽고 수능 전날, 경춘선에 몸을 싣는다.
춘천에 도착해서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부 많이 했냐고 선생님들이 묻자, 실제로 공부량은 예전보다 훨씬 줄었으면서,
\'그럼요. 자신있어요. 이제 예전 그 곳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제가 연고대에 감으로써, 학교에 저희 학년은 마무리됩니다\'
약간의 두려움을 건방질정도로 보이는 자신감으로 극복해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후배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을 찾아가서 방마다 돌며, 소리 높였다.

\'떨리지? 당연하지. 나도 떨린걸. 자, 명심해. 과식은 절대 금물이야. 그리고 내일 아침을 못 먹거나 잠을 얼마 못 잤다던지. 시험장 스피커가 안 좋다던지. 그래서 수능을 못 봤다고? 다 핑계야. 분명히 내일 또 스피커 안 좋아서 영어듣기 망했다는 애들 있을꺼야. 왜 그런 줄 알어? 자기 영어 듣기 못 봤는데 주변에 스피커 안 좋았다는 애가 있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핑계거리 찾다가 그게 가장 문안하니까 그걸로 대는 거지.

선배나 선생님들이 말하지. 시험 전날에는 밤 12시전에는 자라고? 괜히 오버하지 말란 말이야. 더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그냥 자면 돼. 모의고사 치듯이 봐야돼. 내일 언어영역의 경우 사설 모의과는 다르게 굉장히 난해할꺼야. 배배꼬아놓고 지문도 길고. 그거 신경 쓰지 말고 빠르게 풀고 넘어가야 돼. 괜히 분석한답시고 계속 같은 문제 잡고 있지 말고.
오늘 긴장 되서 잠 못 자는 사람, 분명히 있어. 하지만 막상 내일 시험장 가 봐. 절대로 잠 안 와! 인생이 걸렸는데, 잠이 올 거 같아? 혹시 밤새더라도 겁먹지마.
문제는 많이 남았는데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어. 이땐 사람이 두 가지로 갈려. 첫째, 당황해서 쩔쩔매다가 시간 다 까먹는 사람, 둘째, 극한 상황이기에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람!
그리고 시험지 걷을 때 되면 괜히 긴장 되서, 마킹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감독관 눈치보고 그러는데, 절대로 그러지마. 그런거 신경쓰게 생겼어? 무시하고 그냥 마킹해.

누가 건방지고, 자신있게 푸느냐의 싸움이야.
당당하고 자신있게!\'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3수한 친구보고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 끈다. 내일 오후 5시에 연락하자\'
3번째 수능이다.. 나는 이번 시험에서  여태까지 살아온 과정의 종지부를 찍는다....
떨린다..잠이 오지 않는다...

주침야활의 습성은 여기서도 예외가 없다. 그나마 이번에 모의고사를 친 날에도 3시간 자고 간 적이 있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후배들한테 말한 내용을 떠올렸다.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숙소에서 불을 켜놓고, 형식상 가져왔던 수학ㆍ사회ㆍ과학탐구 오답노트를 놀라운 집중력으로 모두 끝내버렸다. 그리고 오르비 운영자 이광복씨의 당부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대박 같은 부끄러운 단어로 지금까지 네가 쏟아 부은 노력을 기만하지 마라. 지금까지 네가 들인 만큼의 노력만을 정정당당히 수치화 할 수 있게 되기를 너의 신에게 요구해라.\'

노력을 의심하지 말자. 능력을 의심하지 말자. 실력을 의심하지 말자. 기필고 증명해 보이지자!

옆에서 들리는 코고는 소리에 머릿속은 혼란스러운 채.. 새벽 4시 반...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6시 반... 벌떡 일어난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먹는다. 몇 명에게서 건투를 빈다는 문자를 받는다. 강원도 춘천고등학교의 교문에 들어선다. 그 학교 후배들이 선배들을 위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교문에 들어선다. 몇몇의 취재진도 보인다. 나를 위한 것인가?

작년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작년의 나를 그대로 재현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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