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공대햏자 [7996] · 쪽지

2004-09-02 09: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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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 생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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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중반에 거의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여타의 대학생과 다를 바 없이 새로 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을 쌓아나가는 것 이였으며, 그 과정을 지금 돌이켜보자면, 다분히 전략적인 하나의 게임에 임했던 것 같다.

컴퓨터에 능숙하거나, 고전역학, 양자역학 등 물리학의 서적들을 두루 섭렵하거나, 각종 시사 관련 주제에 관해 한번씩 고찰해 보는 동기 등에게는 비슷한 분야의 대화 주제를 던지며 접근해 나갔으며, 멋부리기를 좋아하고 연애쪽에 관심을 지닌 동기에겐 마찬가지로 그 분야의 가벼운 주제를 꺼내며 다가갔다. 한편, 몇 번 시도해서, 거의 아무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동기들에겐 비록 인간적인 호감을 가졌다 하더라도, \'나에겐 너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가 있다\'라는 자존심에서랄까. 과감히 내 인간 관계의 망에서 배제해버렸다. 과 동기들과는 같이 운동도 하고 과제도 하고, 음주도 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기에 이른다. 당시 나의 착각이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양대학교 중앙동아리의 대부분이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한양대 바로 옆에 위치한 한양여대와의 연합동아리이다. 이는 나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는데, 첫 번째로는 한양대 여학생과 한양여대 여학생이 같은 집단에서 활동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였다. 동아리를 통해서 한양대학교의 의식 있는 여학생을 만나보자 내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다. 두 번째,  한양대 내에서의 공과대학의 입김이 세서 그런지 몰라도, 거의 대부분의 동아리의 사람이 공과대학 재학생이였다. 이유인 즉슨, 상경대학, 인문대학, 사회대학의 경우 공과대학과 달리 단과대학 내의 동아리가 많이 분포하고, 소모임도 공과대학보다 훨씬 많아서 그 학우들로부터 그 곳에서 활동하게끔 만든다는 것 이였다. 인문계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폭넓은 시각을 배워 보고 싶다는 나에겐 커다란 손실이였다.  


초기 동아리 생활 중 호감이 가는 쪽은 경제 동아리였다. 동아리의 집회(세미나)당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데, 03학번 주축으로 이루어진 회장, 학습 부장 선배와 고 학번들과의 열띤 토론은 바로 내가 그리던 선배의 모습이였다. 경제 동아리의 회원들은 고 학번 경제학과, 경영학과, 공과대학 재학생 그리고 03학번의 경우 경제학과, 공과대학정도였는데, 남성 중심의 진행성 있는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내가 언급한 위의 집회 당시 같이 앉아 있던 한양여대 재학생의 대부분은 \'뭐야, 왜 이렇게 재미없어\'라는 반응은 나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며, 한양대 신입생이 나를 포함 단 2명 이여서 적응하기 매우 불편하였다. 그리고 경제동아리의 주축을 이루었던 00학번 이상의 선배들에게 혼자 진지한 태도로 다가가는데 있어서 나는 많이 부족했다.(많은 학번 차이가 나는 선배들 앞에서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라도 그 어린 후배가 어줍짢은 인생얘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쨌든 03회장선배, 학습 부장의 언변솜씨와 리더십, 그리고 고 학번 선배들이 이끌어 나가는 동아리의 추진성은 매우 마음에 들었고,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1주에 한번 있는 동아리 집회(세미나)에는 항상 참여했다.


영어 동아리의 경우 선배들이 먼저 영어로 간단한 상황을 묘사한 후 그 것을 후배들이 조를 짜서 따라하고 단어를 외거나 하는 스터디를 가졌는데, 그게 선배들의 의도대로 잘 되지 않았다. 점점 분위기가 가볍게 흘러갔으며, 그 3, 4명씩 조를 짜서 영어로 연기를 하는 스터디는 빛을 바래고, 급기야 나중에는 앞에서 연기는 거의 하지 않은 채 영어로 몇 마디 하고 선배들에게 봐달라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나의 경우 그 대본이 아닌 거의 새로운 대본을 써서 즉흥적으로 영어 연기를 했는데, 이는 선배들에게 어필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어 동아리의 선배들은 각 학번에 포진되어 있었는데, 그들 나름대로 복학생끼리 뭉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무리의 선배들은 후배들도 챙겨주고 했는데, 과 생활에 적응하느라 아직까지 동아리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나로선 선배들로부터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학생회의 경우 처음에 지원동기를 말했듯이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를 하는 편이였다. 그러나, 학생회내의 다수를 차지하는 1학기 수시 합격생을 위주로 형성된 이른 바 학부내의 main쪽에 끼기에는 매우 역부족이였다. 1학기 수시 합격생들은 학생회 선배들과 매우 돈독한 사이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과의 관계가 더욱 외면으로 표현될수록 이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과방청소 및 학부의 학생회장, 부회장 선거 운동 등 학부내의 활동에 참여했다.


어쨌든 이렇게 바쁘게 사느라 입학 이후로 3주간 손에서 펜을 놓게 되었는데, 단과대학 특성상 항상 과제물이 있었으며, 수업 진도에 맞춰 복습을 하지 않음으로써 안게 되는 막중한 학습 부담감도 피할 수는 없었다. 여태껏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 여자친구와의 교제, 학과 공부 등 해야할 것은 워낙 많았기에 이 생활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학부 내 선거 운동을 끝으로 학생 부회장 선배에게 말하고 일단 학생회에서 탈퇴했다. 슬슬 내가 탄 그네는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남은 1학기 생활의 전주곡일까..


개강 후 3주가 지나자, 밀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 8,9시면 가서 일단 미적분, 화학, 물리등을 예습, 복습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한편, 학부 내에서도 각 과목별로 거의 모든 과제 및 Report가 나왔는데, 특히 가장 취약한 일반 물리학의 경우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과제를 해결하는데도  시간 부족을 호소했다. 화학과 물리의 실험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험 과정은 흥미로웠으나, 다음시간이면 제출해야할 보고서로 인해 급기야 주말에 친구를 만나더라도 항상 해야할 레포트가 있다는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공대 선배들이 하시던 너희 1학년 숙제와 공부량은 2학년 이상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하는 말은 잠재적인 부담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동아리에서 모임 후 술이라도 마시는 날이면, 피곤해서 과제를 그 날 못 끝내고 늦게 내거나 다음날 내고 했는데, 몇몇 동기들의 경우 과음을 하고도 그 날 숙제는 다 마치고 단 몇 시간만 자고 학교에 오는 기염을 토했다. 체력 면에서 뒤졌다는 것인데, 그들이 많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체력을 한 순간에 바꾸기 힘든 것을 알기에 깨어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자고 마음먹었다.


사람들과의 인맥 관리에도 신경을 쓴 채 나름대로 학점관리도 해야하는데, 이 중간점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였으며, 나의 경우 전자 쪽에 무게를 더 두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라는 요소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될 때가 의외로 많았다. 일단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 03선배의 경우 먼저 다가온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동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편해지자고 가볍게 웃어 제끼는 제스처를 여기 저기에서 취했는데, 이는 동기들로 하여금 나를 친구 같은 형으로 여기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나중에 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줄은 이 땐 역시 몰랐다.  



인맥관리에 대해 더 언급하자면 나의 경우 두루 친한 사이를 원했고, 그 중에서도 마음이 맞는 몇몇 동기와 같이 다니게 되기를 원했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다. 순전히 개강초기부터 알게된 무리들끼리만 어울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다수의 동기들이 자신과 친한 무리들과의 관계만을 중시하는 지나치게 배타적이였으며, 이는 나에게 매우 거부감을 들게 해 주었다. 그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즐겨썼으며, 개강 초부터 남들에게 그 우리라는 무리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하는 선을 그어놓았다. \'우리\'라는 말속에는 위험한 정의가 내포되어있는데, 그 우리 내부의 구성원들에겐 서로 공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반면에 우리 외부의 사람들을 졸지에 남들로 규정시켜 버린다. \'우리\'라고 규정짓지 않고 나 하나 일 때는 누구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반면, 우리라고 정의되면 그 외부의 사람은 바로 그 곳을 배회할 수는 있으나 그 곳에 들어 설 수 없는 말 그대로 \'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내 체질상 항상 그 우리를 필요로 하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한양대학교 지하철 역 출구 앞에서 걸어서 5분이 걸리는 공학관을 혼자 가기 멋쩍어서 동기에게 연락을 해서 몇 십 분을 역에서 기다린 후 같이 가고, 공강 시간에 항상 누군가 같이 있을 사람을 찾고, 식사 시간이면 항상 같이 밥을 먹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그 상호 계약적인 우리라는 단체를 만드려고 애쓰는 모습은 나에게 매우 맞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에대한 비판의식 때문에 도리어 3월 한 달은 \'우리\'가 아닌 \'나\'로 지낸 것 같다.


한편 교양수업은 중국근현대사와 현실경제의 이해라는 과목을 신청했는데, 청나라 말기 시절부터 전개된 중국의 역사를 알고자 함 이였으며, 동아리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을 알고싶어서였다. 특히 후자의 수업의 경우 담당 교수님께서 현실 사례를 적절히 들어가며 토론식의 수업을 하며 굉장히 열강 하셨는데, 물가가 오를 수 밖에 없는 원인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은 매우 그럴싸했다. 그리고 모의 주식 투자를 하고, 사이버 강의실을 통해 1,2주마다 여러 경제 이슈에 관해 토론해 보는 자리를 가졌는데,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고학년들의 글들은 매우 논리적이였으며,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 투자와 투기의 차이점이나 부동산 원가 공개등 여러 이슈에 관해 도움이 되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 아직 그  고 학번들이 나의 막강한 경쟁상대가 될 줄은 그 땐 미처 인식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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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점양♡ · 63965 · 05/09/02 13:20

    오옹, +ㅁ+ 기대 +ㅁ+

  • 하루의지배자~☆ · 7152 · 05/09/02 17:45 · MS 2002

    음...그 \'우리\'라는 말에서 느끼셨던 기분을 저도 느껴본바...가히 좋은 기분은 아니더군요...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했지만...그들의 눈빛은 다가서려하려는 눈빛보다 지켜내려는 눈빛이었달까? 어쨌건 뭐 여러가지중 이러한것이 학교가 싫어진 이유중 하나-_ -;; 난 언제 수기쓸 수 있을라나..나도 성공해서 써야지!

  • Ryul · 41716 · 05/09/02 22:23

    마음에 와 닿네요...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겐 접근을 못하고,

    잘 어울리지 못해서요.

    일단 약간이라도 친숙해지면 그때는 말도 많고

    편하게 다가가는데..처음에 다가가질 못하겠다는...

    지금도 학원에서 조용히 있는 편이거든요..

    고3때는 안그랬는데.. 그냥 글 보다가 생각나서

    주절거려봅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 넌별이된다★ · 55041 · 05/09/03 01:33

    바쁜 대학생활이네요.. 대학생도 그렇게 바쁘다니 +ㅁ+;

  • 넌별이된다★ · 55041 · 05/09/03 02:06

    ↑Ryul님,, 고삼땐 안그러셨었다면,, 지금도 잘 다가가실 수 있을 거에요~
    혹시 괜히 위축되고 계신 건 아닌지요..? 힘을 내시어요~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