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연대햏자 [7996] · 쪽지

2004-08-07 03: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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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운다. <19편-최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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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할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앞으로 남은 수기 구상을 하며 지금 떠올리는 마음속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나중에 쓰게될 때 놓치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혹시나 만약에 이번에도 대학을 못 가게되면 또 다시 맛보게 되는 좌절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1월27일 어릴 적, 그리고 현재 우상인 서태지씨가 새 앨범을 들고 나왔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우고 했던 나였다. 2000년 가을에 잠적한 후 지금 2004년 초에 돌아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잠적한 시기는 내가 힘겹게 살았던 시기와 일치했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콘서트 기록, 앨범 판매량 등에서 역사를 세우고 활약하는 것처럼 이제야 나도 새로 도약을 할 수 있지 않을 까....

2월 10일  추가 합격 여부를 확인하라는 문자를 받고, 한양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애써 숨을 죽이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나와 거리가 멀었던 글귀였다....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스스로 자책하고 무너지지도 하면서까지 얻은 말 이였다. 저 글귀를 위해 그 동안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끝내 3수까지 해서 얻은 결과는 그토록 바랬던 최선이 아닌 차선이였다. 학교 뿐만 아니라 학과 역시 제2의 선택을 해야했다.

이 합격 소식을 주변 사람들한테 알려야 할까 고민했다. 그리 성공적이지도 않은, 자랑할 만한 것도 못되는 이 결과를 말이다.

그런데 이 것이 고 2말부터 근 4년 간을 준비해오고 그토록 힘겹게 달려 온 결과라면? 앞으로 내가 뼈를 묻고 다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야 할 모교에 처음으로 발을 들어서는 순간이라면?

단 한번만이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힘겹게 살아온 과정에 따른 미약한 결과에 대해서 수고했다는 말이라도......형식적이겠지만 듣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람들한테...\'한양공대 합격했어요\' 라는 문자를 수십 개 보냈다.. 그리고 축하하고 가서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약간 어색했지만 말이다.


2월 14일... 지금도 옆에서 힘이 되어 주는 소중한 상대가 생겼다. 그 상대 역시 바로 당시에 입시 싸이트에 올렸던 이 수기를 보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 이였는데, 고3시절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를 몇 년 동안 잃어버린 나였던 만큼 매우 특별한 일이였다.

2월 19일.. 기숙사에 합격했다. 경제적인 면에서 부모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2월 27일... 창가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떴다. 거의 2년 만에 맞는 아침 햇살이다. 03년 합격자 발표에 노심초사해서 시작되고......그리고 밤에 일을 하게되면서 이어진.. 나중엔 수능 공부를 밤에 하느라 연속된  주침야활 생활....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해를 잃어버려야 했다. 이제 오늘 아침에 나를 깨우는 건 핸드폰 알람소리가 아니였다.


내가 행복해 질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합격 후에 운영하는 입시 커뮤니티에 남긴 글이 생각난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공학부입니다. 그동안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만큼 누구보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합격 소식을 알았을 때 기쁨보단 오히려 근 몇 년간 걱정해왔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게 하는 편안함이 먼저 와 닿았습니다. 그것이 옳은지는 모릅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그것이 옳게끔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설사 옳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후회하진 않는다. 지금 나에겐 이 것이 최선이기에....



2월의 어느 날..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수기를 읽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그런데 상처가 될까봐 그동안 못 했지만 말이야......
오빠한테.......2년을....되돌려 주고 싶어.....\'



곁에 있던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바로 앞에 있는 여자친구에 상관하지 않고......눈물이 쏟아져 내렸다....그 어떤 말보다 함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술을 마셔도 매서운 눈빛만은 살아있었으며,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야한다고 건방진 웃음을 연발했었다. 겉으로는 행복한 듯 웃었으나, 속으로는 울어야 했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혼자 흘리고 했던 눈물이였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흘러온 인생이지만 여태까지 겪은 시련이 필연적이지는 않은 것 이였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꼭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가 라는 것이다.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였기에 스스로 영웅이라고 위시하며 극복하려 했다.


재수생 종합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본 날에는 대게 학생들이 시험결과에 상관없이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게 그런 일은 상당히 사치스러운 일이 였다. 재수생활을 상당히 검소하게 했으며, 삼수 생활의 식사 중 절반을 김밥,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이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고, 결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숙하는 거지...영웅인데 남들과는 당연히 달라야지....생각하면서도....가만 보면 꼭 이런 과정이 나에게 꼭 있어야만 했냐는 것이다. 이제 고학년이 되어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미 사회에 나가있는 친구들..군대에서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친구들....그런데 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이제 정말 시작하는 것 이였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줄곧 상위권을 유지해오던 신화형보다 노력해서 점수를 올려 성공하는 전설형에 공감하고, 표를 던질 것이다. 전설형의 전설이 더욱 극적일수록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신화형이다.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든, 또는 올라갈 수 없는 신화형의 학생들은 예전에는 훨씬 뒤떨어져 있던 전설형의 학생들이 바로 뒤까지 쫓아오거나 또는 자신을 추월해버린 것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나 역시 전설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화형에 가까웠다. 많은 이들이 고1 첫 모의고사를 시작으로 하여 고3때까지 많은 점수를 올리고, 또 언론에서 특히 조작이 심하니 주의해야 하지만, 재수를 해서 몇 십 점 이상 올리는 경우를 보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올리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신화형의 한 학생이였다. 그 신화형의 한 학생이 결국에 선택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신화 속의 전설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 신화 속에 머물고 마는, 즉 현실에 안주하는 것 이였다.


사람들은 수기 속의 인물과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그 공통점을 찾아냈다면 자신을 그 인물에 대입해 본다. 대부분 수기 속의 인물들은 \'노력하니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다\' 식의 말을 하고,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동의해 버리며, 자신도 그 수기 속의 인물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들이 보아온 수기는 바로 합격자 수기라는 것에 있다. 극에 달할 노력량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결과를 낳은 불합격자의 이야기가 출판 되서 널리 퍼질 일은 거의 없으니 사람들은 더더욱 현실을 더 모르게 된다. 오히려 그렇게 공부했어도 떨어져서 나와 비슷하게 차선책을 찾아간 사례도 상당히 많은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는 사람은 여전히 수능도 비슷하게 잘 나올 것이라고 여길 것이고, 학생부 성적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서 수시 모집에 지원하여 대학을 가면 될 것이라고 여기고, 그리고 성적이 상대적으로 쳐지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가장 흡사한 전설형의 학생을 찾아서 그처럼 공부하면 나중에 점수가 많이 올라서 막판 뒤짚기가 가능할 것이라 여긴다. 정 안되면 언론에서 떠드는 대로 재수를 하면 점수가 올라서 훨씬 월등한 대학을 가겠지 하고 여긴다. 그런데 매우 안타깝게도 각종 학습지, 입시 기관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히 입시 성공자란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며....자신과 동일시하며.. 마치 자신도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자신이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물론 그런 경우도 빈번히 일어나지만 자신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거라고 모두들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고3, 재수시절 그러했으니 말이다. 나를 통해 이런 경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야기이기에 말이다.  

어느 날, 몇몇 학생에게서 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느낀 건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인데, 내 기준에 자신의 결과가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수까지 하게 된 연유에 관해 자문하곤 했다. 가만히 내가 재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수기를 쓰면 어떻게 되었을까. 1년 열심히 공부하고 요령이 없어서 실패한 후 1년 더 열심히 했더니 마침내 해냈지 않느냐. 이런 틀에 박힌 말이 나왔을 것이다. 재수시절 재수가 끝나고 수기를 쓸 때 마지막 부분을 미리 생각해 놨었다.
\'여유롭게 커피한잔을 마실 때면 가만히 회상해 본다. 20대 초반으로 들어서는 즈음..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때 참 많이 힘들었다고...\'

그런데 이제 내가 할 말은 그것이 아니다. 여태까지 힘들었고,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이 것이 내 인생이라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고, 그럴 자신도 생겼으니 말이다.



나는 수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운다.

수리 영역을 통해 정교함을 중시하는 사회를 배운다면, 언어 영역을 통해 때로는 자신만의 편견을 깨고, 대중들의 보편적인 사고에 기인하여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하는 법을 배운다.


지난 4년 간 수능이란 단어는 머리 속에서 결코 사라질 수가 없었다. 어느 새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내가 가장 훌륭하게 여기고, 찬양을 아끼지 않는 시험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정말 많이도 흘러갔다. 이런 말을 하기 위해 거의 4년 간 측정하기 힘들 정도의 땀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안타까운 사례들도 비일비재함을 알고 있기에 절망하지는 않았다. 1교시 언어영역 시험지를 펼쳐드는 바로 그 순간까지...어느 누가 자신이 수능시험을 망칠 수도 있고, 재수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까....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재수시절부터는 모의고사 지망 대학, 학과를 쓰는 란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다가 제 3지망 한양대학교 응용화학공학부라고 써있는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써냈던 곳을 내가 다니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삶이란 sine함수같이 오르막, 내리막이 존재하며 앞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갈지의 여부는 그 도함수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첨점과 불연속점이 존재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니, 항상 미리 대비를 해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 내가 폭넓은 경험을 쌓고자 노력하는 것에도 나중에 또 어떤 일이 갑자기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서이다. 갑작스런 찾아 온 내리막에 간혹 너무 당황해서 또 다시 예전처럼 그 동안 쌓아온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기 싫기에...



학교 입학 전에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선택한 것은 명예였다. 명예는 내 가치관에 근거한 권력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의 현장에 갔다. 예비 한양 공대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큰소리!  더 큰소리!

이들과 함께 \'더욱 더 발전된 나\'로 거듭날 수 있을까.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04들이여! 세상을 향해 온 몸을 던져라!\'

꽤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 준 힘겨운 과정이 있었기에 온 몸을 던질 준비는 너무도 잘 되어있다.


그 동안 쉬지 않고 앞만 본 채로 달려왔다. 그 때의 숨소리를 솔직하고 꾸밈없이 문자로 전해줄 수 있을까.,, A4용지 54장에 달하는 4년의 삶.....10편 이후의 이야기를 작성하기 위해서 일부러 감정적인 상태가 되는 우울 모드를 만들었으며, 예전 노래들을 찾아서 듣기도하고, 예전 기록을 뒤지기도 했다. 나는 이 4년 간의 이야기를 수기가 아니라 감히 자서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장 속의 자서전\'..........







그토록 노력을 하는 이유는 힘겨웠던 시절 혼자서 흘렸던 눈물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까닭은 곧 그 권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해서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그리고 내 자신에게 항상 최고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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