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한양을 떠나련다 [825260] · MS 2018 · 쪽지

2018-08-16 23: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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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며 썼던 썰(4)-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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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에 올라왔던 길을 다시 뛰어내려갔다.

숨이 너무 차서 잠깐만 걸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혼자 있는 C를 생각하니 다리가 아파도 그냥 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분간 달려서 언덕 초입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헐레벌떡 들어갔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반창고가 어딘가에 있었을텐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휴지도 분명 10매짜리가 어딘가에는 있었을텐데 보이지 않았다. 대신 큼직한 30매짜리만 보여서 급한대로 그걸 집었다.


상처를 씻어낼 생수를 하나만 집었다가 혹시나 피가 계속 나면 어쩌지 싶어서 하나 더 집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계산대로 가는데 문득 레쓰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고 순간 이전에 어떤 웹툰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두 개를 집었다.


얼른 계산을 하고 다시 열대야 속의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올라가보니 C는 필자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라고 준거 아닌데..)


무릎의 상처를 보니 처음에 나온 피는 굳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피는 나고 있었다. 꽤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필 : 다친 데 좀 보여줘봐.


생수를 하나 까서 상처부위 주위에 쫄쫄쫄 흘렸다.

상처 주위의 돌부스러기들이 씻겨내려가는 모습을 보자 뿌듯했다.


물휴지를 건네서 피를 닦게 한 후 상처부위를 꽉 누르고 있으라고 했다.


C: 야.

필: 왜.

C: 고맙다.


평서형 종결어미 ‘-다’는 C가 잘 안쓰는 말투다.

뻘쭘할 때나 쓰지.


문득 레쓰비를 사온 게 떠올랐다.

C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필: 자 하나 골라봐.

C:??

필: 하나는 즐거’워지는’ 커피. 다른 하나는 즐겁게 ‘되는’ 커피.

C: 너 바보냐. 같은 거잖아.


웹툰에서는 여자주인공이 군말안하고 하나 골랐던 걸로 기억하는데 C가 이런 반응을 보여 살짝 실망할 뻔했다.

그래도 하나 고르게 하고 싶어서 말을 이어갔다.


필: 너가 의미부여하기 나름 아닐까?ㅋㅋ

C: 그러면...음...너가 기분 좋아지는 커피는 어느쪽이야?


예상밖의 반응에 얼떨결에 오른쪽이라고 대답했다.


C: 그래? 그러면 나 오른쪽 커피 마실래.


하고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가져갔다.


C가 눈을 감고 커피를 들이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얀 목덜미에서 목젖의 박동이 들렸다.



C는 캔커피를 비운 후 한쪽 눈으로 필자를 흘끔 쳐다보면서 “지금 기분 어때?”하고 물었다.


그냥 순순히 만족감을 드러내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필: 하...2프로 부족하다..

C: 뭐냐 그 반응은.

필:  불러주면 딱 좋을 거 같애.

C: 휘파람? 너 휘파람 못 불어?

필: 아니아니 그 휘파람 말고ㅋㅋㅋ블랙핑크 .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C: 아 그 휘파람ㅋㅋㅋ그런 건 니 미래의 여친한테 나 부탁해ㅋㅋㅋ



서로 웃다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이 은은하게 예뻤다.


이제 좀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C의 말에 자리를 일어났다.

C가 또 넘어질까봐 손을 꼭 붙잡고 언덕을 넘어왔다.

말없이 그냥 걸었다.

아까같은 어색함이 아닌, 정말 친한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누가 나서서 얘기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그런 편안한 정적이었다.


이윽고 C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C를 엘리베이터에 태운 후 작별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C: 너도 타. 물 한잔 먹고 가.

필: 괜찮아 괜찮아. 조심해서 들어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 C에게 카톡을 보냈다.


-피곤할텐데 얼른 샤워하고 약 바르고 일찍 자. 좋은 꿈 꿔.


다시 언덕길을 넘어 필자의 집에 도착한 후 곧장 샤워하러 갔다.

샤워기의 물을 맞으면서 눈을 감고는 C와 단둘이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잊지 않으려고.


방에 와서 보니 C한테 카톡이 와있었다.


-내일 시간 돼?


답장을 보냈다.

-과외 있음


엄마가 불러서 거실에서 수박을 먹으며 tv를 봤다.

그러다 한 새벽 1시 40분쯤에 다시 방으로 자러 와서 보니 아-까 전에 C한테 답신이 와있었다.


-언제?


-1시-3시, 4시-6시


전송을 눌렀다. 수신확인 1이 뜨자마자 바로 사라졌다.


‘얘는 핸드폰을 끼고 사나...어떻게 바로 확인할 수 있지...’


C: 6시 이후에 시간 돼?

필: 빨랑 안 자고 뭐하냐

필: 딱히 약속은 없는데 왜?

C: 조금 할 게 있어서

C: 내일 노래방 가자


‘아까 애들 있을 때 말할 것이지 뭔 뒷북이냐ㅡㅡ’


필: 나야 뭐 상관없는데 B가 내일 대학 동기들하고 밥 먹는다 그랬는데

필: 그리고 대충 하고 빨랑 자 피곤할 땐 잠이 최고임

C: 아니 너만 와.


필: ?

필: 너 지금 대화상대 잘못 본 거 아냐?

필: 나 A 아님ㅋㅋㅋ이름 좀 똑바로 봐봐ㅋㅋㅋ



C:ㅋ

C:(필자)야

C:너가 왜 여친하고 깨졌는지 대충 알겠다ㅋㅋ



필:?

필: 닌 또 왜 갑자기 시비냐 



C: 너 진짜 금붕어냐

C: 아까 니가 휘파람 불러달라매

C: 내일 불러줄게 노래방 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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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기대해 :) 내 꿈 꿔.




(노잼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려용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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