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한양을 떠나련다 [825260] · MS 2018 · 쪽지

2018-08-18 0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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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며 썼던 썰(6)-두달 전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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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야구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C가 말했었다.


자기는 A랑 사귀기 전부터 남친 생기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듀엣곡 부르는 거였다고.

근데 A랑 자기는 노래 취향이 너무 달라서 같이 부를만한 노래가 없는게 아쉽다고 그랬다.



필: 너 어제 듀엣곡 부르고 싶댔지?

C: 응 왜?

필: 이거...어때?


약간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좋다고 대답했다.



전주가 깔렸다. 듣자마자 누구나 ‘아 이거~’ 할만한 노래일만큼, 인트로가 주는 무드가 강력한 노래. 들으면 괜히 아련해지는 그런 노래.


그때 필자는 후회하고 있었다.

왜 듀엣곡이 하필 이 노래밖에 안 떠올랐을까. 지금은 막 떠오르는데. 악뮤 노래나 나 이나 왜 이런 노래들이 이제야 떠오르는 거냐고 하면서.


남자친구와 듀엣을 하고 싶다는 애가 허락해준 듀엣이었다.

필자는 그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차선책이고 싶었다.



https://m.youtube.com/watch?v=XRqMn6c0tsU


(들으면서 읽으면 몰입이 잘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링크를 걸었다.)



C가 눈을 감고 먼저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 눈동자 

자꾸 가슴이 시려서 잊혀지길 바랬어 

꿈이라면 이제 깨어났으면 제발 

정말 네가 나의 운명인 걸까 넌 Falling You..”

.

.



“운명처럼 너를 Falling 

또 나를 부르네 Calling 

헤어 나올 수 없어 제발 Hold Me 

내 인연의 끈이 넌지 

기다린 네가 맞는지 

가슴이 먼저 왜 내려앉는지 


(Stay With Me)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네가 사는지 

(Stay With Me) 

내 안에 숨겨왔던 진실”





사실 이 노래, 필자가 전여친한테 고백받았던 날에 불렀던 노래다.


깨지고 나서는 안 듣던 노래였지만, 전여친이 그때 이 노래 같이 부르면서 정말 기분 좋았다고 했던 게 기억나 무심코 골랐던 거다.


노래를 부르는데 전여친과의 일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정말 세상을 다 줘도 안 바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잘해주고 싶었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대략 두 달쯤 전의 토요일 밤.

과 동기인 친한 동생이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흐릿한 사진이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필자가 생일 선물로 사 준 노란 블라우스 차림의 여친이 모르는 남자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동생이 전화를 해왔고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들과 술 먹으러 왔다가 둘이 모텔에서 나오는 걸 보고 철렁해서 사진 찍었다고.


그 사진을 보고 여친한테 계속 전화를 했지만 묵묵부답. 당연히 그 이후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날밤부터 거의 몇 주 동안은 일과 후를 참X슬과 함께 보냈다.


무슨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난건지,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아파야만 하는겁니까, 왜 나를 못 죽여서 안달이 나신겁니까 대답 좀 해달라고 시발 제발


하고 자취방에서 혼자 허공에다 대고 소리지르고.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컵라면 먹고 다시 마시고 마시고 마시다가 토하고 울다 지쳐 잠들고.


폐인같은 생활이 지속되던 무렵에 군대에 갔던 B가 휴가 나온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3인방과의 추억들.

참 아름다웠던 시절.


먼저 단톡방을 깔고 A와 C에게 안부인사를 건넸을 때 격하게 반겨주던 그들의 답신을 보며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흐흐 잘 지내는구나 하면서 웃었다.


당장 그들을 눈앞에서 대하는 게 아니었는데도 오랜만에 면도를 했다. 방에 어지럽게 늘어진 빈 병들을 버리고 청소를 한 다음 깨끗하게 샤워하고 난 후 카톡으로 베프들과 노가리를 깠다.

단정한 차림으로 그들을 맞는다는 느낌으로.

그들과 오랜만에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느낀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괴로운 경험이 남은 자취방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조금 거리가 멀어도 상관없었다.

그곳에 갇혀있는 게 싫었으니까.


원래 술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 탓에 지난 몇 주간의 과음으로 몸이 망가진 걸 알게되었다. 의사선생님이 도대체 학생은 동나이 또래하고 비교해서 좀...그렇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

“학교 생활을 너무 재밌게 해서 그런가봐요^^;;”

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C가 개인톡으로 수줍게 A와의 연애사실을 고백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 연애 파트너였기에 그들의 열애를 있는 그대로 축하해줬다.

(‘술 마시다 센치해져서 쓴 썰’의 내용상 시작 시점이다.)


그 때 필자가 그들에게 보낸 축하는 단순한 축하라기보다도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끼리 맺어져서 참...다행이다.’

에 더 가까웠다.


이후 노래방에서 A를 향한 C의 감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았고


그들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스스로를 치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다가 꼬이긴 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두달 전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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